우리 사회 속 또 다른 삶의 형태, 탈가정 청년 〈111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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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 속 또 다른 삶의 형태, 탈가정 청년 〈1115호〉
  • 이지현 수습기자, 이서하 수습기자
  • 승인 2023.05.08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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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과 인식의 사각지대 속에서 어려움 겪어

근현대를 거치며 우리 사회에서 가족의 형태는 계속 변화해왔고, 그 크기는 축소돼왔다. 그러나 현재까지도 혈연 및 결혼으로 맺어지지 않은 관계는 대다수에게 가족으로 인식되지 않는다. 가족의 형태, 크기 등 형식적 변화는 인정되었지만 의 미의 변화는 아직인 것이다. 사회의 인식뿐 아니라 제도에도 허점이 있다. 기초생활보장제도, 국가장학금 등 다양한 복지 제도는 원가정의 소득을 확인한다. ‘살기 위해’ 원가정을 벗어난 탈가정 청년들은 ‘살아가기 위해’ 원가정과 연락해야 한다. 원가정 중심 사회구조 및 인식 속에서 탈가정 청년들은 제도와 정책의 사각지대로 내몰린다. 우리 사회의 인식이 꾸준히 발전하고 있음은 분명하지만, 탈가정 청년이 사회 구성원으로서 안전히 살아갈 수 있도록 지속적인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본지는 그 논의를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야 할지 알아보고자 탈가정 청년들의 목소리를 청취했다.

 

원가정 떠난 청년들, 탈가정이라는 홀로서기

2020년, 서울시 청년참여기구 서울청년정책네트워크에서는 탈가정 청년을 ‘(가정폭력, 가정불화, 성폭력, 아웃팅, 파산 등으로 인한)탈가정 경험이 있거나 이를 시도하였으나 실패한 청년 혹은 탈가정을 희망하는 청년’이라고 정의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그 정의와 달리 탈가정을 가출이나 비행으로 오해하기도 한다. 탈가정 청년들에게 원가정이란 안전한 공간도, 믿을 수 있는 상대도 아니다. 생존하기 위해 집을 벗어났지만, ‘집 나가면 고생’이고 ‘그래도 가족’이라는 편견 어린 시선은 탈가정 청년의 발목을 잡는다.

독립 청년과 탈가정 청년을 구분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탈가정은 보편적인 독립과 달리 살기 위해 원가정을 떠나는 것이다. 우리 사회 소수그룹의 이야기를 전하는 예비 사회적기업 ‘282북스’는 지난해 탈가정 청년의 규모 및 실태를 파악하고자 탈가정 청년 60명을 대상으로 탈가정 이유 설문 조사를 진행했다. 참여자들의 응답은 △정서적 학대 △신체적 폭력 △방임 △성 정체성 아웃팅 △기타 문제 순으로 나타났다. 당사자마다 처한 상황 및 폭력 여부에 따라 가족과 얼마나 강하게 단절되었는지는 조금씩 다르다.

탈가정 청년 당사자 박주현 씨(이하 박 씨)는 “원가족과 절연을 하고 따로 나와 사는 이 상태를 독립이나 자취와는 다르게 느꼈다”라며 탈가정 청년이라는 단어를 통해 자신의 상태를 정의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이처럼 탈가정 청년이라는 정의를 아는 것은 해당 현상을 바르게 이해하기 위한 초석이다.

 

청년과 가족, 단어의 함정: 인식 바깥의 존재들

우리 사회에서 청년은 흔히 자립 능력이 있는 존재로 인식된다. 직접적으로 소득에 도움을 주는 지원책이 적은 이유다. 그러나 탈가정 청년의 홀로서기는 대다수의 독립 청년처럼 준비된 상태가 아닌 생존을 위한 갑작스러운 탈출에서 시작된다. 원가정과 연락을 끊었기에 경제적 도움을 받을 수도 없다. 지원이 절실하지만, 탈가정 청년에 대한 개념조차 잘 알려지지 않은 실정이다. 282북스의 강미선 대표(이하 강 대표)는 “이들을 지원해야 할 현장의 기관과 관계자들조차 탈가정 청년이 존재하는지 모르고 있는 것도 문제”라며 탈가정 청년에 대한 가시화와 지원책이 미진한 이유로 ‘성인이니 스스로 자립해야 한다는 인식’과 ‘정상 가족 중심의 사고방식’을 꼽았다.

정상 가족 중심의 사고방식은 탈가정 청년들에게 직접적인 압박이 되기도 한다. 탈가정 청년 당사자 ‘셜리’ 씨는 “탈가정을 하는 과정에서 주변인들 때문에 실패한 적이 있다”라며 주변인들이 가족과의 연락을 강력히 밀어붙인 경험을 전했다. 그런 말을 듣지 않더라도 마음이 편한 건 아니다. 셜리 씨는 “가족을 내팽개치고 나의 이익을 위해 떠난다는 생각이 깊게 박혔던 것 같다”라며 원가정에서의 고통이 컸음에도 탈가정을 선택하는 데 오래 걸린 이유를 설명했다. 박 씨 역시 “아무도 뭐라 하지 않았지만 이렇게까지 하는 게 맞을까 자기 검열이 굉장히 심했다”라며 우리 사회에 깊게 자리한 가족에 대한 개념으로부터 스스로 느꼈던 압박감을 전했다.

그럼에도 박 씨는 탈가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사람들에게는 최대한 자신의 사정에 대해 말하고 있다. 어느 정도의 상처를 감수하더라도 탈가정 청년의 존재를 가시화하고 싶다는 마음에서다. 강 대표 역시 “서로가 서로를 모르면 당연히 자신을 기준으로 생각하게 된다”라며 편견이 존재할 수밖에 없는 현실에 대해 “당장 편견을 없애라는 말보다는, 마음을 열고 잘 몰랐던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말하고 싶다”라고 전했다. 결국 탈 가정 청년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장이 더 마련 되어야 한다는 의견이다.

 

원가정 중심 제도, 있는 정책도 적용 어려워

논의는 인식뿐 아니라 제도를 위해서도 필요하다. 현행법상 30세 이상은 단독 세대주가 될 수 있다. 그러나 30세 미만은 결혼을 통해 세대 분리를 하거나, 중위소득 40% 이상의 수익을 유지해 단독 가구로 분리되어야 한다. 갑작스레 홀로 선 탈가정 청년으로서는 쉽지 않은 일이다. 탈가정 청년 당사자 한윤진 씨(이하 한 씨)는 “기초생활수급비를 받기 위해서는 부모 즉 학대 가해자에게 연락해야만 했다”라며 세대 분리가 어려운 현실을 지적했다. 국가장학금 역시 원가정의 소득 수준으로 지원 여부 및 금액이 결정된다. 박 씨는 “저는 국가 장학금을 받은 다음에 집을 나왔지만, 탈가정 친구 중 휴학을 하고 알바를 3개씩 하는 친구가 있었다”라며 현행 제도의 불완전함을 지적했다. 정말 필요한 사람에게 지급하기 위하여 가구소득을 기준으로 삼고 있지만, 오히려 원가정 바깥의 청년들은 사각지대로 밀려났다.

한 씨는 이어 “응급실에 실려 가면 보호자에게 연락이 갔다”라며 원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학대 가해자가 피해자의 생명권, 건강권을 결정하는 현행 제도의 한계를 지적했다. 이는 의료법상 환자의 보호자가 민법상 부양의무자에 준해 △직계존속 △직계비속 △배우자 △생계를 같이하는 친족 등 제한적으로 해석되기에 생기는 문제다.

현재 처한 상황을 증명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문제도 있다. 셜리 씨는 긴급 복지 전화 센터(이하 센터)에 거듭 연락했던 경험을 말하며 “그럼 지금 다니시는 병원이 있냐고 물어보셨고, 그 병원이 대학병원인지 물어보셨다”라며 “다행히 대학병원에서 서류를 뗄 수 있는 상황이었다”라고 말했다. 센터에서는 대학병원 진단서를 요구했지만, 이는 3개월 이상 진료를 받았을 경우에 요청할 수 있다. 또한 의사마다 진단서를 작성하는 기준도 다를뿐더러, 누구나 대학병원을 다닐 시간적, 경제적 여건이 되는 건 아니라는 지적이다.

 

어디서든 안전하게 살아갈 권리

탈가정 청년이 처음 의제화된 이후 3년이 지났다. 그동안 진행된 논의는 많지 않으나, 당사자들의 활동은 꾸준했다. 282북스에서는 탈가정 청년들의 이야기를 전하기 위해 지난해 8월 17일부터 9월 30일까지 예술 기반 사회적 처방 워크숍 ‘궤도이탈; 청년독립선언’을, 11월 29일부터 12월 11일까지 감정 체험 전시 ‘파란, 문을 열고 들어오세요’ 를 진행했다. 블로그와 SNS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탈가정 청년들도 있다. 이제 필요한 것은 세상의 관심과 논의다. 셜리 씨는 “전시나 SNS를 통해서 많이 활동하고 계신다는 건 알고 있는데, 그렇게 활동하는 만큼 시선이 와야 한다고 생각한다”라며 사회의 관심을 촉구했다. 교수, 정치인 등 많은 사람이 관심을 두고 탈가정 청년을 사회적 이슈로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다.

▲사진은 지난해 12월 5일, 탈가정 청년 감정 체험 전시 ‘파란, 문을 열고 들어오세요’의 한 장면이다. (제공/ 282 북스)
▲사진은 지난해 12월 5일, 탈가정 청년 감정 체험 전시 ‘파란, 문을 열고 들어오세요’의 한 장면이다. (제공/ 282 북스)

도입이 시급한 지원책으로는 사회적 관계망과 심리 상담 센터가 제시됐다. 셜리 씨는 “동사무소 처럼 가까운 곳에 심리 상담사를 두거나 인근 병원으로 연계해 치료를 받게 하고, 탈가정을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나 이런 걸 공유할 수 없나 생각 했다”라고 말했다. 한 씨 역시 “심리 상담을 받거나 정신건강의학과에 가는 데 드는 비용이 상당하다”라며 상담과 의료비 지원이 필요함을 전했다.

이외에도 원가정과의 세대 분리, 타인과 가정을 꾸릴 수 있는 법률적 연결 보장 등이 제시됐다. 박 씨는 “정상 가족 형태를 재생산하고 싶지는 않지만, 내 삶의 울타리라고 할 수 있는 가족은 있었으면 좋겠다고 늘 생각한다”라며 직접 선택한 안전한 가족에 대한 바람을 전했다. 한 씨는 “법률적으로 보호자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과 그 연결 상태가 주는 실질적 권리 누림, 효능감, 안정감이 있다고 생각한다”라며 대안 가정의 필요성을 제시했다. 자신이 선택한 가족과 함께할 수 있도록 가족의 범위가 확장될 필요성, 새로운 가족 제도가 만들어질 필요성이 제기된 것이다.

기존의 정책 역시 수정되어야 한다. 강 대표는 “탈가정 청년 문제에서 잊지 말아야 하는 점은 그들이 현재 정책들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점” 이라며 사각지대를 어떻게 없앨 수 있는가를 고민해야 한다고 전했다. 탈가정 청년이 기존 정책에서 왜 소외되고 있는지, 어떤 문제가 있는지를 파악하고 기존 정책의 지원 범위를 넓히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박 씨의 의견도 비슷하다. 박 씨는 “탈가정 청년이 정책 대상화되지 못했기 때문에 배제되는 상황이 많다”라며 탈가정 청년을 대상으로 한 정책이 개발될 필요를 논했다. 동시에 “모든 청년의 안전한 자립을 위한 정책이 같이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라는 의견을 전했다. 청년의 안전한 자립이 보장된다면, 탈가정 청년 역시 정착하지 못하는 시간을 최소화할 수 있을 거라는 의견이다.

 

정해진 가정이 아닌 내가 선택하는 가정

미흡한 정책 속에서 고단한 점은 있지만, 원가정을 떠나서 얻은 것도 있다. 우선 원가족과 함께하며 생기는 각종 폭력에 노출되지 않을 수 있다. 박 씨는 “원가족과의 트러블이 없어지거나 줄어들었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라며 탈가정이 지금의 자신을 살게 해 주었다고 전했다. 사회에서 가정에 전가한 사회적 안전망은 사라졌지만, 원가정 내에서 벌어지는 폭력을 견디는 대신 자신의 삶을 찾은 것이다.

한 씨는 올바르고 좋은 가정의 기준이 “얼마나 건강한 애착 관계를 형성할 수 있고, 서로를 존중하며 열린 대화를 할 수 있는가”라고 말했다. 탈가정 청년들은 이를 충족할 수 없는 원가정 대신 그 바깥에서 서로를 존중하는 자신만의 가정을 만들고자 한다. 그것이 1인 가구든, 친구 또는 연인과의 가구든 기존의 혈연 중심적 가족관계와는 거리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형태든 자신이 가장 행복할 수 있는 상황을 찾고자 하는 것은 인간의 기본적인 바람이다.

셜리 씨는 탈가정 청년도 동등한 청년일 뿐이라며 “다만 조금 더 책임질 게 많은 청년”이라고 표현했다. 강 대표 또한 마찬가지다. “탈가정 청년들은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 특별한 누군가가 아니다”라며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선택하고 자신만의 궤도를 살아가는 보통의 청년들”이라고 전했다.

 

다른 청년들이 독립이나 결혼을 꿈꾸듯, 탈가정 청년들 역시 자신만의 삶을 꿈꾼다. 셜리 씨는 “탈가정을 고민하고, 그 훗날의 일들도 책임지겠다고 나온 청년들을 내모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라고 전했다. 보다 많은, 상세한 논의를 통하여 탈가정 청년이 정책적, 사회적 사각지대에 내몰리지 않도록 개선이 이뤄져야 한다. 탈가정 청년 들이 자유로이 안전한, 행복한 가정을 이룰 수 있도록 혈연만이 가족이라는 시각에서 벗어나 다양한 형태의 가정이 있음을 이해하는 사회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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