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식성 인문학자의 세상읽기] 피해자들의 연대와 가해자들의 연대는 어느 쪽이 더 견고할까 〈111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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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식성 인문학자의 세상읽기] 피해자들의 연대와 가해자들의 연대는 어느 쪽이 더 견고할까 〈1112호〉
  • 강부원 인문학협동조합원
  • 승인 2023.03.14 2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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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부원 인문학협동조합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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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한국 사회를 뒤흔들고 있는 최고의 화제는 ‘학교폭력’과 ‘사이비종교’이다. 대통령이 임명한 국가수사본부장의 아들이 학폭 가해자로 드러났다. 학폭위가 열려 강제전학 조치가 취해졌음에도 불구하고 검사 아버지가 처벌을 무력화했다. 전 국민이 분노했다. 더해 주목받고 있는 드라마 <더 글로리>는 공교롭게도 끔찍한 학폭 피해를 당한 주인공이 복수에 나서는 이야기다. 어느 때보다 학폭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높을 수밖에 없다.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나는 신이다>에도 관심이 높다. 여기서는 한국의 대표적 사이비종교였던 JMS, 오대양, 아가동산, 만민중앙교회의 악행을 고발하고 있다. 살아남은 피해자들이 교주에게 당한 성폭행과 금전 강탈, 노동착취 등을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다. 새삼 사이비종교에 대한 불안과 공포를 느끼는 사람이 늘었다.

학교폭력과 사이비종교가 난데없이 드러난 문제는 아니다. <PD수첩>이나 <그것이 알고 싶다> 같은 방송에서도 수차례 다룬 바 있다. 수십 년 전부터 학교폭력은 한국 사회의 고질적인 병폐였다.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는 사이비종교들 역시 100년 전 등장했던 ‘백백교’를 기원으로 볼 수 있을 정도로 오랫동안 해악을 끼쳐왔다. 그간 아무리 없애려 해도 뿌리가 깊게 박힌 잡초처럼 사라지지 않았다. 어떤 해법도 무소용이었고, 점점 잔혹하게 변모해갔다.

<더 글로리>와 <나는 신이다>가 너무 자극적이라고 지적하는 사람들이 있다. 드라마는 전기 머리인두(속칭 ‘고데기’)로 온몸을 지지는 장면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다큐멘터리는 성폭행 현장에서 채집한 녹취와 촬영 영상을 여과 없이 노출한다. 성폭행 피해 사실을 고백하는 젊은 여성의 우는 얼굴을 집요하게 클로즈업한 것도 불편하다는 말이 나온다. 또 다른 폭력이고, 흥밋거리로만 전락시켰다는 문제 제기다. 반짝 반응을 끌어내기야 하겠지만, 진지한의제로까지 인식하기 어렵게 만든다는 염려일 테다.

물론 학교폭력의 만연과 사이비종교의 번성은 사회적 질병이자 공동체의 위기를 보여주는 적나라한 증상이다. 경쟁과 성장에만 매몰된 우리 사회가 겪는 부작용임이 분명하다.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고, 제도적 차원의 해결이 선행돼야 한다. 그래서 줄곧 우리 사회는 공적인 관점에서 이 문제들을 거론해왔다. 처벌을 강화하고 무관용 정책을 도입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바뀐 것은 없다. 힘세고 돈 많은 가해자들은 뻔뻔하게 계속 잘 산다. 피해자는 일상이 파괴되고 트라우마에 시달리는데, 학폭범은 서울대를 나와 판검사가 될 가능성이 높다. 사이비 교주들을 가까스로 법정에 세워도 솜방망이 처벌에 그친다. 감옥에 가서도 ‘범털 대접’을 받다가, 어느새 형 집행정지로 풀려난다. 또다시 복귀해 성폭행을 일삼는다. 사적 제재를 다룬 콘텐츠가 인기를 얻을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더 세밀하게 살펴보아야 할 점이 있다. <더 글로리>와 <나는 신이다>의 서사를 이끌어 가는 가장 중요한 계기는 가해자들에게 반드시 복수하겠다는 의지를 꺾지 않은 ‘피해자들의 연대’였다. 벌레처럼 짓밟혀 육체와 영혼이 갈가리 찢긴 피해자들이 힘을 합쳐 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법으로 어쩌지 못한 가혹한 현실에 더 이상 굴복하지 않겠다며 서로가 서로의 피해를 증언한다. 치밀하게 계획하고 준비해 자력구제를 통해서라도 기어이 학폭 가해자에게 복수를 하고야 만다. 무자비하게 성폭행한 교주의 범죄를 더 이상 자기 탓으로 돌리거나 부끄러워하지 않기로 한다. 교주의 명령에 의해 가족이 살해된 고통을 가슴 속 응어리로만 묻어두지 않고, 분노에 찬 얼굴로 카메라앞에서 당당하게 고발한다.

부와 지위를 대물림하며 살고 있는 가해자들의 시간은 연속되며 영속된다. 반면 피해자들의 삶은 절연되고 지체됐다. 이익 공동체로 묶인 가해자들의 연대는 공고해 보이지만, 늘 배신의 위험이 상존한다. 겁에 질린 피해자들의 연대는 쉽게 성사되지 않지만, 전부를 내던져 맞잡은 두 손은 결기로 가득하다.

‘피해자들의 연대’는 학교폭력과 사이비종교 문제를 해결하는 하나의 실마리가 될 만하다. 악랄하게 진화하고 있는 가해자들의 연대에 맞서 더욱 견고한 피해자들의 연대를 구축하자. 우리 사회 전체가 피해자들의 용기 어린 호소와 행동에 공감해, 학교폭력과 사이비종교의 폐단을 끊어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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