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진칼럼] 봄을 그리다 〈1111호(개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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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진칼럼] 봄을 그리다 〈1111호(개강호)〉
  • 최신식 식품영양학과 교수
  • 승인 2023.02.27 22: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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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신식 식품영양학과 교수sschoi@mju.ac.kr
최신식 식품영양학과 교수
​​​​​​​sschoi@mju.ac.kr

긴 겨울의 끝자락과 새로운 봄의 시작 어딘가쯤에 서 있다. 마스크의 시절을 모두 겨울이라는 창고에 집어넣으면 3년의 겨울잠을 자고 이제 기지개를 켜는 셈이다. 나무가 아직 꽃잎을 보여주고 싶지 않은 듯 봉오리가 잔뜩 웅크리고 있는 것처럼, 사람들도 부끄러운 듯 입을 감추고 봄과 이야기하고 있다. 피로에 나부끼 는 몸을 바로 세우는 꿀잠이었는지 긴 잠에 취해 몸을 가누지 못하는 겨울이었는지는 봄 앞에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끝이 잘 보이지 않는 기나긴 겨울의 터널에서도 내가 계속 호흡하고 걷고 버티고 지나와서 이제 봄을 맞이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에게 우리에게 이번 봄은 어떤 그림일까? 엉뚱한 목표에 도전하는 그림을 떠올려 본다. 그 목표는 내가 세웠으니까 다른 사람은 잘 이해를 못 할 수 있다. 심지어 나를 잘 안다고 할 수 있는 부모님, 형제, 친구들도 왜 내가 그런 목표를 세웠는지, 어쩌면 그런 목표가 나에게 있었는지조차도 모르지만 나는 사실 그것을 나도 모르는 사이에 세우게 되었다. 어쩌면 그 기나긴 겨울잠을 자면서 터널을 지나면서 나는 그것을 나도 모르게 계속 생각했을 수도 있다. 밝은 빛을 보게 되니, 웅크렸던 몸을 펴게 되니 그 목표가 모습을 드러내고 툭 튀어나온 것일 수도 있다. 그래서 이번 봄은 특별하다. 목표는 다른 사람의 눈에는 거창하고 화려해 보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으며, 지극히 평범하고 뻔해 보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으며, 네가 왜 그렇게까지 해야 하느냐며 뜯어말리는 것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나에게서 나온 나의 목표를 나의 눈으로 본다. 그것은 내가 바라는 것이고 사랑스러운 것이다. 나는 그러한 목표에 도전하는 나의 모습이 담긴 그림을 그린다.

사람들과 마주 보고 이야기하는 그림을 그린다. 잠을 잤기에 누군가와 대화를 나눌 기회가 없었으며 어두운 터널이었기에 마주 보고 이야기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제 봄이 와서 나는 잠에서 깼으며 밝은 빛이 있어서 사람들을 볼 수 있다. 한 뼘이 안 되는 유리창에 글자를 넣어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많았으나, 이제는 한 뼘 정도 되는 사람의 얼굴을 보며 나도 내 입으로 그 사람도 그 사람의 입으로 이야기하는 그림을 그린다. 이 사람이 이런 목소리를 가졌구나! 이야기할 때 집게손가락으로 턱을 만지는 습관이 있었네! 마스크로 가려졌던 입이 보이듯이 한 뼘 안 되는 유리창에 담을 수 없었던 그 사람의 소리와 모습이 나타난다. 유리창에 글씨가 남아있지 않으므로 한 마디 한 마디에 귀 기울여야 한다. 같은 시간은 물론 공간까지도 공유하기에, 유리창이 가로막지 않기에 나의 말도 그 사람의 말도 힘을 싣고 달린다. 그 힘은 내가 도전하는 엉뚱한 목표에 나를 좀 더 가깝게 데려가 주기도 한다. 나는 누군가와 시공을 공유하며 마주 보고 엉뚱한 목표에 관해서도 이야기하는 그림을 그린다.

우리 학교를 그린다. 매서운 겨울바람이 오랫동안 불어서 갈라지고 메마른 곳이 군데군데 보였지만, 새로운 봄을 맞이하는 학교에는 봄비에 젖은 흙과 싹을 틔우는 나무가 그런 곳을 채우고 메우고 있다. 감사하게도 균열이 있었지만, 끊어진 곳이 없으며 말랐지만, 부스러진 곳은 없었다. 외풍으로 휘날리는 종이에 쓰인 글은 누군가의 외침으로 학교의 선과 면과 색을 바꾸었으며, 이제 봄으로 가는 학교 안 굽이굽이 골목길과 담장은 엉뚱한 목표를 도전하는 학생들과 선생님들이 예쁘게 접은 꽃들로 포장된다. 다른 말과 다른 피부의 손님들이 꽃과 열매들로 뒤덮인 학교를 보러 다니러 줄지어 들어와 그들의 색종이로 접은 꽃으로 길을 만들어 걸으며 노래를 부른다. 나는 우리 학교 안과 밖에서 벌어지는 나의 엉뚱한 목표 속에서 마주 보고 이야기하고 같이 일하는 사람들의 예쁜 꽃들로 인해 세상이 몰려들고 축제가 열리는 그림을 그린다. 그리고 그림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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