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信賴)란, 타인의 미래 행동이 자신에게 호의적이거나 또는 최소한 악의적이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와 믿음을 의미한다. 이것은 굳게 믿고, 의지할 수 있는가를 이야기할 때 ‘신뢰’할 수 있다고 이야기하곤 한다. 사람과 사람, 이익과 이익 등 상호 간의 만남과 충돌이 자연스러운 이 사회 속에서 신뢰 없이 살아가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아마도 신뢰할 이 하나 없이 세상을 살아가야만 한다면, 그 고독과 불안 속에서 무한히 헤엄치게 되는 것이 아닐까.
'신뢰'란 이렇듯 중요한 가치이고, 그 관계가 가까운 사이일수록 그 중요도는 더욱 짙어져 간다. 그런데, 그 신뢰를 송두리째 저버리고서도 그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철저한 오산이고 오만일 것이다. 깨져버린 신뢰는 결코 쉽게 돌아오지 않는다.
세계대전을 일으켰던 독일은 주변국들로부터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 오늘날까지도 피해국과 피해자들에 대한 진심 어린 사과를 이어오고 있다. 독일은 1952년 이후 홀로코스트 피해자들에게 총 800억 달러(약 97조 원)를 배상한 데 이어서, 최근에도 생존자 수천 명에게 매달 수백 유로를 추가로 지원하기로 결의하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독일은 땅에 떨어진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수십 년 동안 그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방법을 선택한 것이다.
이미 깨어진 신뢰는 당연히 돌이킬 수는 없다. 하지만 돌이키기 어렵다는 것을 핑계로 상대방과의 소통을 배제하고, 귀를 막는다면 상황은 악화되기만 할 뿐이다. 지금의 명지전문대와의 통합, 학과 개편을 둔 일련의 사건들은 상호 간의 신뢰를 산산히 조각내는 처사다. 설령, 학과 개편을 포함한 우리 대학의 변화가 매우 당위적인 것이고, 생존을 위해서 부득이한 선택이라고 할지라도 그것을 구성원에게 전달하고, 대화하고, 소통하는 과정이 생략됐다는 점에서 그 힘을 상실하기 시작한다. 네일 피츠제럴드 유니레버 전 회장은 "설사 모든 사실과 수치, 뒷받침하는 증거, 원하는 지지를 얻더라도 신뢰를 얻지 못하면 그것은 성공할 수 없다"라고 말한 바 있다.
신뢰는 모든 것에 영향을 미친다. 어떤 진실과 진리를 전한다고 할지라도, 상대방과의 신뢰 관계가 없다면 그것은 무용해진다. 이제는 깨어진 신뢰의 조각을 주워담아야 할 시간이다. 조각을 다시금 온전한 것으로 만들기 위한 용광로의 시간은 지금밖에 선택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