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펭귄의 어떤시선] 코끼리와 이태원 〈110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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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펭귄의 어떤시선] 코끼리와 이태원 〈1109호〉
  • 남주원 뉴스펭귄 기자
  • 승인 2022.11.22 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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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원 뉴스펭귄 기자 serennam@newspenguin.com
남주원 뉴스펭귄 기자 serennam@newspenguin.com

“주원 씨, 이태원 안 가셨죠? 신사역이랑 가까우니 불안해서...” 10월 30일 일요일 새벽 3시 회사 동료에게서 카톡이 왔다. 전날 밤 핼러윈을 테마로 한 와인 테이스팅 모임에 나갔다가 귀가해 침대에서 뒤척이던 차였다. 동료의 연락에 느낌이 싸해 휴대폰으로 곧장 뉴스를 찾아봤다. 두 눈을 의심했다. 너무 충격적이라 믿기지도 않았다. 핼러윈을 즐기려던 수많은 사람이 압사로 목숨을 잃었다.

결국 아침까지 잠들 수 없었다. 눈물이 쉴 새 없이 흘러나왔고 숨이 안 쉬어졌다. 코로나 때문에 대학 생활도 제대로 즐기지 못했을 젊은 영혼들이 허망하게 떠났다. 찬란하게 꽃을 피워보기도 전에 꺾여버렸다. 그날 현장에 있던 것도 아닌데 며칠 내내 일상생활에 지장을 줄 만큼 괴로웠다. 나도 이십대 핼러윈데이 때 종종 이태원을 가곤 했다. 끔찍한 참사가 일어난 그 골목을 나도 걸었다.

2022년 10월 31일, 대한민국이 애통함에 잠겨있던 이날 아프리카 케냐에서는 ‘디다 (Dida)’라는 이름의 우두머리 코끼리가 숨을 거뒀다. 차보이스트국립공원에 살던 암컷 코끼리로 생전 나이는 60~65세로 추정된다. 아프리카코끼리는 최대 70살까지 산다. 디다는 노화에 따른 자연사로 생을 마쳤다.

무리를 이끄는 모계장이었던 디다는 긴 생애 동안 많은 어려움을 헤쳐나가며 무리를 성공적으로 돌봤다. 코끼리는 모계사회로 보통 나이가 가장 많고 현명한 암컷이 가족 전체를 지도한다. 기대보다 더 오래 살아 사람들을 놀라게도 했다. 현지 보호단체는 “디다가 완전한 삶을 살 수 있었기에 매우 자랑스럽다”고 전했다.

온라인에서는 디다를 위한 애도의 물결이 이어졌다. 다만 생을 온전히 살아내고 자연사했기 때문에 슬픔보다는 따뜻한 위안의 말이 오갔다. 뉴스펭귄 기사에도 ‘자연사라서 정말 다행이다’라는 댓글이 가장 많이 달렸다. 평소 밀렵 등으로 제 명을 다하지 못한 숱한 코끼리 소식에 분노로 점철됐던 댓글 창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사람들은 오직 디다의 평안한 안식을 기원했다.

이처럼 한국의 청년들과 디다는 서로 다른 모습의 죽음을 맞이했다. 하지만 자식을 향한 부모의 슬픔은 사람이나 코끼리나 마찬가지일 터다. 자식을 먼저 여의는 부모의 마음을 감히 어찌 헤아릴 수 있을까. 어느덧 한 달 가까이 시간이 흐른 어제, 이태원 참사로 아들을 잃은 한 어머니의 손편지를 인터넷에서 읽었다. 지금은 이 세상에 없는 아들에게 토해내듯 적어 내려 간 한마디 한마디에 고장난 수도꼭지처럼 눈물이 멈추지 않고 흘러나왔다.

어미 코끼리도 새끼가 먼저 죽으면 그 사체를 며칠이고 안고 다닌다. 최근 인도과학연구소 발표에 따르면 코끼리는 무리 중 누군가가 죽을 때를 알아차릴 뿐 아니라 적극적으로 애도한다. 연구진은 “인간의 관점으로 본다면 아직 아이를 보낼 준비가 되지 않은 사별한 부모와 비슷한 모습”이라며 인간만이 죽음에 대한 이해를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뜻을 밝혔다.

연구진이 죽음에 대처하는 코끼리 반응을 분석한 결과 사체를 만지고 코를 킁킁거리는 행동이 가장 흔하게 나타났다. 대다수는 특히 얼굴이나 귀를 만졌다. 또 사체 곁에 머물며 나팔소리나 으르렁거리는 소리를 냈고 가까이에서 잠을 청했다. 몇몇은 이미 죽은 코끼리를 들어 올리거나 당기는 등 움직이게 하려는 시도를 보였다. 때로는 쓰러져 있는 코끼리를 지키기 위해 현장에 있는 촬영자를 쫓아내기도 했다.

사람이든 코끼리든 만약 부모가 사고 현장에 함께 있었다면 자식을 구하기 위해 기꺼이 무슨 일이든 했을 것이다. 2015년 인도 한 시골 마을에서는 어미 코끼리가 장장 11시간 동안 구덩이를 팠다. 진흙에 빠진 새끼를 구하기 위해서였다. 어미는 포기하지 않고 새끼를 꺼내는 데 사력을 다했다. ‘살려줘’라는 딸의 문자 메시지에 이태원으로 달려간 아버지는 오죽할까. 그는 다친 딸을 업고 1km를 넘게 달렸다.

부디 그곳에선 못다한 꽃을 활짝 피워내길. 반짝이는 청춘을 실컷 만끽하길. 그리고 매일 아침 눈을 뜨는 일조차 괴로울 그들의 부모가 남은 생을 잘 살아낼 수 있도록 조금만 내려다 봐주길.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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