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펭귄의 어떤시선] 나의 부모, 펭귄 부모 〈1108호(창간기념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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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펭귄의 어떤시선] 나의 부모, 펭귄 부모 〈1108호(창간기념호)〉
  • 남주원 뉴스펭귄 기자
  • 승인 2022.11.10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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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주원 뉴스펭귄 기자
남주원 뉴스펭귄 기자

가끔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지금 우리 부모님 말고 다른 사람이 나의 부모였으면 어땠을까’라는. 다소 강압적이고 엄하게 키우신 탓에 어렸을 땐 원망도 많이 했다. 세 남매 중 둘째 딸이었던 나는, 위아래로 언니와 남동생 사이에 끼어 서러움도 자주 겪었다. 잔뜩 어리광 피울 나이에 일찍 철이 든 애어른이 됐다.

나에게는 그게 무엇이든 한 번에 주어지는 일이 결코 없었다. 원하는 것을 얻고 싶으면 나의 존재 가치를 증명해 내야만 했다. ‘못해’, ‘싫어’는 허용되지 않았다. 때로는 친한 친구들이 부러웠다. 친구네 엄마, 아빠는 내 자식에게 필요한 건 먼저 나서서 다 해주셨다. 그들에겐 부모를 설득하고, 좌절하고, 체념하는 과정이 필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같은 소위 ‘스파르타’ 양육 방식 덕분에 나는 생존형 인간으로 성장했다. 하루아침에 어디에 떨궈놓더라도 잘 살아남을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마치 치열한 연습생 시절을 거친 아이돌이 데뷔 후 월드투어와 각종 방송 등 살인적인 스케줄을 강행할 수 있는 것처럼. 시리도록 고된 시절은 내게 값비싼 자양분을 줬다.

그저 귀엽고 뽀송해 보이는 새끼 펭귄들도 치열한 유년 시절을 보낸다. 새끼가 어느 정도 자라면, 어미 펭귄은 바로 먹이를 주지 않고 도망가는 행동을 한다. 새끼들이 한참을 추격한 후에야 먹이를 주는 것이다. “밥을 먹으려면 노력을 해야지!” 사람이었다면 이렇게 소리쳤을 법한 장면이다.

새끼를 두 마리씩 키우는 젠투펭귄, 턱끈펭귄, 아델리펭귄 모두 이런 행동을 한다. 심지어 한 마리를 키우는 황제펭귄도 느리지만 마찬가지다. 펭귄 부모도 제법 엄격하구나 싶지만 사실 제 새끼를 강하게 키우려는 목적은 아니다. 많은 새끼들 가운데 자기 새끼를 찾아내 방해받지 않고 공평하게 먹이를 먹이려는 행동으로 추정된다.

그렇다고 펭귄의 유년 시절이 평화로울 거란 착각은 금물이다. 황제펭귄은 지구상 가장 열악한 곳, 남극에서 태어난다. 유년기도 약 5개월로 짧다. 부모가 떠나면 그때부터는 본격 ‘남극에서 살아남기’ 시작이다. 황제가 되기 위한 새끼 펭귄의 홀로서기는 그야말로 서바이벌 그 자체다.

황제펭귄은 청소년기에 둥지를 떠나 처음 바다에 입수한 뒤 스스로 수영과 다이빙, 먹이 구하는 법 등을 배운다. 유년기 때 부모에게서 배우지 않고 혼자서 터득하는 것이다. 그래야만 자비 없는 얼음왕국에서 스스로 살아남을 수있다. 게다가 이제는 기후위기에 적응하고 생존할 능력까지 갖춰야 한다.

볏왕관펭귄은 또 어떠한가. ‘하나만 잘 키워 보자’. 뉴질랜드에 서식하는 볏왕관펭귄의 살벌한 육아법은 이 한 문장으로 표현된다. 이들은 알을 2개씩 낳는데, 첫 번째 알보다 크기가 더 큰 두 번째 알만 돌보는 경향이 있다. 생존 확률을 높이고자 의도적으로 둘째만 키우는 것이다.

부모 펭귄이 첫 번째 알을 품지도 않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심지어 두 번째 알을 낳기 전에 첫 번째 알을 깨뜨리거나 둥지 밖으로 몰아내는 경우도 있다. 때문에 무수한 첫째들이 세상 밖으로 나오기도 전에 죽거나 분실된다.

최근 발표된 연구 자료에 따르면 이러한 잔혹 육아는 먹이 부족에 직면한 볏왕관펭귄의 생존 전략으로 분석됐다. 지난 50년간 주식인 크릴과 오징어가 급감하자 볏왕관펭귄은 새끼 들에게 충분한 먹이를 제공할 수 없게 됐다. 결국 부모 펭귄이 선택한 방법은 생존 확률이 낮은 첫 번째 알을 희생시키는 것이었다.

삼십 대인 지금은 ‘부모님’이라는 단어만 들어도 마음이 아리다. 지금의 내 나이 때 이미 누군가의 엄마, 아빠였던 그들의 삶을 이제는 조금 알 것도 같다. 그들도 부모가 처음이었다. 잘잘못을 떠나 당신들 상황에서 최선의 방식으로 자식들을 키워냈을 뿐이다. 비록 최고의 선택은 아니었을지라도 최선의 선택이었음을 안다. 어쩔 수 없던 순간들도 있었으리라.

물론 혹독한 양육법 이전에 사랑과 희생이 있었던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수컷 황제펭귄은 위장 속에 저장해 놓은 먹이를 토해내 새끼에게 먹인다. 더 이상 토해낼 먹이가 없으면 자신의 위 점막조각을 녹여 먹인다. 이 분비물을 섭취한 새끼 펭귄은 풍부한 단백질과 지방, 튼튼한 면역력 등 생존에 필요한 힘을 갖게 된다.

나의 부모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기꺼이 살점을 떼어줬다. 아니, 삶을 내어줬다. 해주지 않은 것들에 대한 서운한 마음보다 애틋함이 더 큰 이유다. 이 험난한 세상을 헤쳐나갈 수 있는 힘을 준 나의 엄마, 아빠에게 문득 감사하다. 어엿하고 멋진 어른으로 잘살아가야겠다고 다짐하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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