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혜탁의 트렌드 관찰기] 미술관이 된 백화점, 신세계의 아트 비즈니스 〈1108호(창간기념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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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혜탁의 트렌드 관찰기] 미술관이 된 백화점, 신세계의 아트 비즈니스 〈1108호(창간기념호)〉
  • 석혜탁 경영 칼럼니스트
  • 승인 2022.11.10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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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혜탁 경영 칼럼니스트
석혜탁 경영 칼럼니스트

쇼핑 공간 속 갤러리. 최근 한 백화점을 갔다 오고 스친 생각이다. 미술 작품을 미술관에서만 볼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 보통 쇼핑과 외식, 휴식을 즐기러 가는 백화점에서 멋진 그림도 볼 수 있고, 구매까지 할 수 있다. 특정 층의 특정 공간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어서 각 층의 진열 공간을 찾아다니는 재미도 있다. 아트와 게이미피케이션(gamification)의 절묘한 조화다.

신세계백화점 본점에 가면, 300여 점의 그림이 백화점 곳곳에 걸려 있다. 지난달부터 11월 7일까지 진행하는 ‘블라썸 아트페어(Blossom Art Fair)’라는 이름의 이색적인 전시회다. 백화점에서 아트페어를 열었다고 하니, 정통 미술관에 걸리는 유명한 그림과는 차이가 있지 않을까 의구심을 가지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다. 얕은수의 마케팅이라고 오해하는 이도 있을지 모르겠다.

백화점 내부를 조금만 거닐다 보면 그런 걱정은 일거에 해소된다. 한국 단색화의 거장 박서보, 한국 생존 작가 중 미술시장에서 작품 가격이 가장 비싸다고 평가받는 이우환부터 현대미술의 악동 데미안 허스트, 현대 회화의 거장 알렉스 카츠, 추상미술 대가 스탠리 휘트니, 여성 아티스트 역대 경매 낙찰가 1위의 쿠사마 야요이까지. 라인업이 예사롭지 않다. 임지민, 김한나 등 신진작가의 작품도 소개된다.

작품의 가격대도 다양하다. 수천만 원짜리 작품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전시 기간 동안 전문적인 지식을 가진 큐레이터가 현장에 상주한다. 그림에 대한 여러 궁금증을 가진 고객을 위해 깊이 있는 상담을 해주는 것이다.

백화점 바깥도 전시 공간으로 활용된다. 외벽의 대형 스크린에 예술작품의 대체불가능토큰(NFT) 영상을 송출하는 미디어 아트를 선보이는 것이다. 박물관이 살아 있다, 아니 백화점이 살아 있다! 백화점이 살아 숨 쉬는 미술관이 되었다.

신세계는 업계에서 보기 드물게 갤러리팀을 만들었고, 임원급 조직으로까지 격상하였다.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 출신의 상무가 전시회의 기획을 총괄하고 있다. 당장의 매출 진작에만 급급하기 십상인 유통업계에서 보기 드문 장면이다. 미술품 경매회사에 대한 지분 투자를 단행하기도 했다. 그리고 아예 회사 사업목적에 ‘미술품 전시 · 판매 · 중개 · 임대업 관련 컨설팅업’을 추가했다. 신세계에게 ‘아트 비즈니스’는 잠깐의 유행이 아닌 중점 사업인 것이다.

신세계는 광주에서도 20년 넘게 미술제를 운영해오고 있다. 광주 인근에서 활동하거나 지역 출신 작가라면 연령, 자격 제한 없이 공모할 수 있다. 1995년에 시작한 ‘광주신세계미술제’를 통해 서미라, 이구용과 같은 역량 있는 작가가 지역에서 배출됐다. 이런 유의미한 공익적 역할을 학교나 공익재단이 아니라, 백화점을 운영하는 사기업이 맡은 것이 이채롭다. 새로운 형태의 지역 상생이자, 예술과 접목한 희소한 ESG 활동이다. 참고로 ‘광주신세계’는 업계 최초로 현지 법인으로 설립되었다. 올해가 벌써 27주년이다.

신세계백화점 강남점 3층은 이름 자체가 ‘아트 스페이스’다. 오프라인 유통이 위기를 맞고 있다는 비관적 전망이 가득한 요즘, 일단 고객을 매장 안으로 불러들이는 것이 핵심 과제일 터인데 ‘아트’는 고객을 불러들이는 새로운 무기가 되고 있다.

백화점이 단순히 ‘우아하게’ 보이기 위해서 이런 행보를 걷고 있는 것은 아니다. 물론 백화점이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지향하는 장소이니 고객의 다채로운 취향을 고려한 프리미엄 전략의 일환으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국내 미술시장 자체가 1조 원 규모로 성장한 측면을 빼놓을 수 없다. 최근에는 ‘아트테크(예술+재테크)’라는 말이 생겨날 만큼, 미술품이 주요한 투자 대상으로 부상했다. 관람만 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구매해서 추후 차익까지 고려하는 경제학의 영역이 된 것이다. 주된 고객의 연령대도 MZ세대로 확대되었다.

백화점이라고 하면 ‘오픈런’이라는 단어가 언론에 연관어로 많이 등장한다. 말 그대로 오픈 시간을 기다렸다가 빠르게 달려가 물건을 구매한다는 의미이다. 대개 ‘에루샤(에르메스 · 루이뷔통 · 샤넬)’와 같은 명품 브랜드에 국한된 용어였다. 이젠 인기 있는 미술 작품을 백화점에서 구매하기 위해 오픈런을 하게 되는 세상이 도래했다. 신세계백화점은 이제 롯데백화점, 현대백화점과 같은 동종 업계의 경쟁 회사뿐 아니라 유수 미술관과도 치열한 경쟁에 직면하게 됐다. 역으로 미술관도 마찬가지다. 아트노믹스(Art+Economics)의 시대, 마케팅의 궤도가 바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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