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사용 설명서’를 써보는 시간 〈110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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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사용 설명서’를 써보는 시간 〈1105호〉
  • 김나영 기자
  • 승인 2022.09.05 2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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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영 | 기획부 정기자
김나영 | 기획부 정기자

입시를 준비하면서는 목표 학교를, 입시가 끝나고 대학교에 입학해서는 대학 졸업 후 종사할 희망직종을 묻는 질문이 주를 이룬다. 미래를 위한 진로 설계는 앞으로의 삶을 꾸려나가기 위해 미리 계획해야 할 중요한 문제이니 당연한 질문이긴 하다. 그런데 붙여진 수식어만 잔뜩 존재한 채로 정작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모른다면 과연 그 수식어들은 의미가 있을까? 아무리 미래에 어떤 일을 할지 정해둬도 그 일을 하고 있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모른다면 어딘가 비뚤어진 방향키를 들고 운전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래서 ‘나’는 어떤 사람이고,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지를 곰곰이 생각해봤을 때 개성으로 가득 찬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결론을 내렸었다. 자신만의 그림체를 가진 사람, 자신만의 스타일을 가진 사람처럼 나만의 것이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사람마다 뛰어난 재능 하나쯤 가지고 있다고 하지만 여태 살아오면서 느낀 기자 본인은 그저 평범한 사람일 뿐이었다. 다른 이들보다 가파른 성장세를 보이기도 하지만, 다른 이들보다 성장세의 더딤이 빨리 찾아오는 사람. 모든 능력의 한계치가 평균 언저리였다. 평범함이란 그런 것이 아닌가, 크게 뛰어나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못한다고 할 수도 없는 상태.

그래서 인터뷰를 준비하며 읽어본 『철수 사용 설명서』의 주인공 ‘철수’도 비슷한 맥락으로 이해했다. 취업을 준비하는 평범한 29세 남성에게 타인이 주는 수많은 잣대가 평범함을 비정상으로 만든다고 생각했다. 질문 “철수와 같은 현대의 평범한 사람들에게 어떤 말을 건네고 싶으신가요?”라는 질문은 이러한 생각을 바탕으로 해서 탄생했고 “평범해도 괜찮아” 정도의 대답을 예상한 질문이었다. 그러나 “평범하다고 생각하지 마라. 정말 평범한 사람이라면 사용 설명서조차 필요하지 않다”라는 답변이 돌아와 큰 충격을 받았다. 그동안 가져온 생각을 단 한 번에 깨부순 답변이었다. ‘철수’는 결코 평범하지 않다. 평범하지 않기 때문에 자신만의 사용 설명서를 작성해서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드러내려 했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충분히 인지하고 있어서 자신의 매력이 담긴 사용 설명서를 작성할 수 있었다.

소설 마지막에서 철수는 자신의 사용 설명서를 가장 먼저 읽어야 하는 사람이 본인임을 깨닫는다. 항상 타인의 잣대에 자신을 증명하려던 ‘철수’가 본격적으로 ‘나’를 알아가기로 한 순간이다. 타인에게 ‘나’를 소개하기 전에 자신을 먼저 알아보는 시간은 필요하다. 내가 어떤 매력을 지닌 사람인지를 아는 과정이 없다면 ‘나’로서 사는 삶이 아니라 남의 잣대에 따라 ‘누군가’를 습작하는 삶이 될지 모른다. 지나가는 사람의 개성은 볼 줄 알면서 정작 내가 가진 매력을 찾지 못했던 지난날의 나에게 미안한 마음을 가진 채로 이제는 나를 위한, 내가 보기 위한 나의 사용 설명서를 써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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