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선을 던지는 소설가 전석순 작가의 '렌즈'를 들여다보다 〈110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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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을 던지는 소설가 전석순 작가의 '렌즈'를 들여다보다 〈1105호〉
  • 김나영 기자
  • 승인 2022.09.05 23: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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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수 기능이 없는 세탁기에 대고 “탈수 못하니까 넌 불량이야!”라고 말하지 마세요. 사실 불량은 제품의 문제가 아니라 사용자의 문제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 안 해보셨죠?

“Q. 철수는 그럴 일도 아닌데 자꾸 우는 것 같아요

A. 울 일이 아니라는 표준 기준은 아직 나와 있지 않습니다. 개인차가 큰 부분이므로, 사용자 본인의 기준을 철수에게 그대로 적용하여 고장이라고 판단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 『철수 사용 설명서』 中 -

 

Q. 전석순 작가님,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A. 안녕하세요. 문예창작학과 02학번, 지금은 소설을 쓰고 있는 전석순이라고 합니다.

 

글을 쓰기 시작하다

Q. 2008년 『강원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하셨습니다. 작가가 되고 싶다는 결심은 언제 하셨나요?

A. 중학교 때 시에 관심을 가졌고, 이후 진학한 고등학교에 문예부가 활성화돼 있어서 본격적으로 글쓰기 분야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고등학교 2학년 때쯤, 글쓰기에 관심이 많은 만큼 다른 직업보다는 작가 쪽으로 진로를 잡았죠.

 

Q. 대학교 시절 가장 기억에 남는 활동이 있다면요?

A. 문예창작학과에 ‘어린이’라는 소설 학회가 있었는데 학교 활동 중 제일 즐거웠어요. ‘어린이’는 말의 비늘이라는 뜻이 에요. 비늘이 물고기를 보호해 주기도 하고 아름답게 빛내주기도 하는 것처럼, 언어를 단단하게 보호하기도 또, 아름답게 해주기도 한다는 의미가 담겼죠. 학회 시간에 소설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면서 본격적으로 소설을 준비한 기억이 있어 현재까지도 의미가 큰 활동입니다.

 

Q. 졸업을 하면서 작가 준비에 돌입하셨나요?

A. 대학교 재학 당시에 대학교에서 진행하는 문학상들을 수상하면서 준비했고 4학년 때 신춘문예로 등단했어요. 사실 신춘문예로 등단하면서 취업과 작가 사이에 고민이 많았어요. 그래서 29살 때까지만 작가를 준비해 보고 성과가 나오지 않으면 취업 준비를 하기로 했는데, 공교롭게 29살 때 ‘오늘의 작가상’ 을 수상하게 돼서 그때부터 작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나의 거울, 나의 작품

Q. 소설이란 작가님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A. 세상을 바라보는 하나의 ‘렌즈’예요. 같은 대상을 보더라도 눈으로 보는 것과 선글라스나 렌즈를 끼고 보는 것은 또 다른 세상이잖아요. 더 자세히 또는 더 멀리 볼 수도 있고, 보지 못한 부분들을 볼 수도 있고요. 소설을 쓰다 보니 소설을 쓰지 않았으면 놓쳤을 만한 장면이나 사람들을 한 번 더 보게 돼요. 그래서 소설은 저한테 세상을 바라보는 하나의 ‘렌즈’입니다.

 

Q. 『철수 사용 설명서』는 철수가 자신의 ‘사용 설명서’를 작성하는 이야기입니다. 사용 설명서를 만든 이유는 불량품이 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어요. 사람에게도 자신의 사용 설명서가 필요하다는 생각은 어떻게 하게 되셨나요?

A. 『철수 사용 설명서』는 졸업 후 저와 주변 지인들이 모두 취업을 준비해야 하는 상황에서 썼던 소설이에요. 누구에게나 그렇듯 취업이 쉽게 이뤄지지는 않잖아요. 그 과정에서 좌절하기도 하고 고민이 깊어지기도 하죠. 그 모습이 꼭 사람을 기계처럼 다루는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보통은 사람을 기계라고 얘기하면 기계가 아니라고 말해야 하는데 오히려 “우리는 기계가 맞아. 사용 설명서가 있는 기계로 생각해줘”라고 얘기했을 때 기계가 아니라는 뜻이 더 선명하게 드러날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철수 사용 설명서를 구상하게 됐어요.

 

Q. 『철수 사용 설명서』는 철수가 ‘철수 사용 설명서’를 가장 먼저 읽어야 하는 사람이 본인임을 깨달으며 끝나는데요, 그렇다면 ‘철수 사용 설명서’는 남이 아니라 철수를 위한 것이었나요?

A. 취업을 준비하다 보면 자기소개서와 같은 방식으로 타인에게 나를 어필해야 하죠. 그런데 사용 설명서를 쓰면서 타인의 기준은 너무나도 다양하며 그 기준을 전부 맞추기도 힘들고 맞춘다고 해서 그것이 행복으로 이어지지 않음을 깨달아요. 그렇다면 사용 설명서의 의미는 무엇일까를 찾다가 결국, 나에 관한 이해가 없는 상태에서 사용 설명서를 써봤자 타인에게 이해받지 못한다는 걸 알게 되죠. 그래서 타인에게 나를 설명하기 전에 내가 나부터 명확하게 이해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마무리된 소설이에요.

 

“철수는 조금 더 자 두려고 눈을 감다가 문득 깨닫는다. 철수 사용 설명서를 쓸 수 있는 사람도, 그걸 가장 먼저 읽어야 하는 사람도 결국은 한 사람이라는 것을.”

- 『철수 사용 설명서』 中 -

 

Q. 철수처럼 평범한 사람들에게 어떤 말을 건네고 싶으신가요?

A. 자기가 평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사실 평범하다는 말은 굉장히 폭력적이에요. 그 누구도 평범하지 않거든요. 다 본인의 특색과 매력을 갖추고 있는데 그 매력을 찾지 못할 때 너무나도 쉽게 사람을 평범하다고 치부해버려요. 정말 평범한 사람이라면 사용 설명서조차 필요하지 않겠죠. 현대에 평범한 사람들에게 자기를 평범하다고 생각하지 말고 자신만의 매력을 면밀하게 살펴봤으면 좋겠다는 말을 건네고 싶어요.

 

작가와 나

Q. 그동안 만난 인물 중 특히 애정이 가는 인물이 있나요?

A. 두 번째 장편소설인 『거의 모든 거짓말』의 주인공한테 애정이 많이 가요. 소설 세계관은 거짓말 자격증이 있는 시대로 주인공은 거짓말에 빠져있어요. 거짓말 자격증 소지자인 화자가 가장 높은 등급인 1등급이 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데 결과적으로 그 모든 것이 다 거짓말이었고 속임수에 빠졌음을 나 중에 깨닫죠. 그 인물에게 이름을 붙여주지 못해 애정이 가네요. 정체가 계속 바뀌고 정체성에 혼란을 느끼는 인물이라서 이름을 지어주지 않았지만, 사실 그 인물에게도 이름이 필요 했을 거고 이름이 있었다면 삶이 좀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에요.

 

Q. 작가한테 직업병이라고 할 만한 습관이 있을까요?

A. 세상을 소설로 보는 경향이 있어요. 여행을 가거나 어떤 장소를 방문할 때 그 자체를 즐기기도 하지만 무의식적으로 이 상황이 소설이 될 수 있을지 생각해봐요. 그래서 어떤 장면이든 또 어떤 사람의 이야기를 듣든 이게 소설로 쓰이면 어떨까에 대한 고민을 먼저 하게 되죠. 그리고 또 하나는 의미를 궁금해 해요. 사람이나 공간에 여러 의미가 숨겨져 있다 보니 그런 이야기 들을 놓치지 않으려고 하는 것도 직업병이라면 직업병이죠.

 

Q. ‘잘 쓴 글’은 어떤 글이라고 생각하세요?

A. 잘 쓴 글은 문장이나 표현을 중심으로 작품을 평가할 때 많이 쓰는 말인 것 같아요. 형식적인 측면에서 정확한 표현이나 진부하지 않고 새로운 표현을 사용해 상황을 전달한 글을 잘 썼다고 하죠.

 

Q. 작가가 쓰는 ‘좋은 글’은 어떤 글인 것 같으세요?

A. 좋은 글은 내용적인 측면에서 보는 글인 것 같아요. 형식이 좀 서툴더라도 내용적인 측면에서 독자에게 변화를 안겨 준다면 그 글은 좋은 글이에요. 여기서 변화는 태도나 감정의 변화일 수도 있고, 단순히 의미를 파악해 보는 것일 수도 있어요. 독자가 글을 읽은 후에 전과 다른 변화를 느꼈다면 그 글은 좋은 글이라고 생각해요.

 

Q. 대중들이 작가님의 소설에서 무엇을 느끼면 좋겠나요?

A. 좋은 글이면서 잘 쓴 글이라는 느낌을 받으면 좋겠어요. 형식적으로 매끄럽게 읽히면서도 계속 되새겨보는 글이요. 최근에 “소설이 참 어려웠다. 하지만 다시 읽어보겠다”라는 짤막한 리뷰를 본 적이 있어요. 읽기 어려운 글은 일반적으로 멀리하기 마련인데 다시 안 읽어도 되는 글을 다시 읽겠다고 다짐하는 힘이 크게 왔죠. 제 소설도 한 번 읽고 끝나는 게 아니라 언젠가 다시 읽고 싶어지는 소설이었으면 좋겠네요.

 

Q. 오늘날 작가는 사회 속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을까요?

A. 시선과 이야기를 던지는 역할을 하고 있어요. 사회 현상이나 문제를 바라볼 때 작가만이 던질 수 있는 시선이 분명히 존재해요. 작가는 한 대상을 바라볼 때 겉만 분석하지 않고 그 안에 들어가서 서사를 끌어내죠. 사회에서 서로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지 않으면 오해하는 경우가 생기는데, 작가가 서사를 통해 그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힘을 만들어내고, 오해의 간격을 줄여줄 수 있답니다.

 

Q. 작가님은 어떤 작가가 되고 싶으세요?

A. 올해 원로 작가분들을 인터뷰하는 일을 계속하고 있는데, 최근에 어떤 작가님께서 문학은 삶이고 삶은 문학이니까 삶이 닳을 때까지 글을 쓰겠다고 한 말씀이 계속 기억에 남아요. 저 또한 글을 쓸 수 있는 여건이 되는 한 게으름 피우지 않고 계속 글을 쓰는 작가가 되고 싶고, 또 그 글이 위에서 말씀드렸던 것처럼 누군가에게 큰 울림과 변화를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Q. 작가 지망생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을까요?

A. 거침없이 많이 써보면 좋을 것 같아요. 작가가 된 이후에 는 이야기를 쓸 때 고민과 제한이 많아져요. 하지만 지망생은 어떤 장르의 소설이든 자유롭게 쓸 수 있거든요. 그리고 그 과정을 위해 많은 작품을 살펴보면 좋겠네요. 요즘에는 신문의 신춘 문예든 문학 신인상이든 경쟁률은 점점 높아지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독서량은 점점 떨어지는 사회예요. 말하고자 하는 사람은 많은데 들어주고자 하는 사람은 점점 줄어드는 시대죠. 내 이야기를 누군가가 들어주기 전에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 이는 과정도 필요하지 않을까 싶어요.

 

Q. 마지막으로, 우리 대학 학우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A. 뭐든 다 해봤으면 좋겠어요. 그 나이 때만 할 수 있는 것들이 있더라고요. 지금 미흡하거나 서툰 부분이 있어서 실수하더라도 아직 학생이기 때문에 큰 문제는 안 되거든요. 근데 나중에 졸업하고 나서 사회로 나왔을 때는 치명적인 문제가 되겠죠. 실수도 해본 사람이 반복하지 않기 때문에 최대한 다양한 경험을 쌓는 게 중요해요. 미래에도 큰 도움이 될 거고요.

 

“철수와 누나는 둘 다 대단히 심각한 수리가 필요한 제품이 되어 버렸다. 그래도 철수만은 누나를 그렇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누나의 사용 설명서에는 ‘아이를 낳기 싫어함’이란 제품 특징이 기록되어 있을 테니까. 그걸 알고 누나를 본다면 누나는 지극히 평범한 제품이었다. 오히려 제품에게 있지도 않은 기능을 요구하는 사용자가 이상한 것이다. 만약 누나에게 뭔가 선물 한다면 누나의 사용 설명서가 가장 좋을 듯싶다. 그러고 보면 불량품이란 어디에도 없는 것인지 모른다. 오직 그것을 불량하게 사용하는 사람들만 있을 뿐.”

- 『철수 사용 설명서』 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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