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평화'의 상징이 되기까지 〈110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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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평화'의 상징이 되기까지 〈1105호〉
  • 한지유 편집장
  • 승인 2022.09.05 2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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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특별자치도(이하 제주)가 세계평화의 섬(Jeju Island of World Peace)으로 지정된 이후, 올해로 17주년을 맞이했다. 본지는 인류 보편적인 가치인 ‘평화’ 그리고, 이를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평화문화’, 마지막으로 제주의 평화문화를 다시금 되돌아보고자 한다.

 

평화 그리고, 평화문화

평화학자 갈퉁(Johan Galtung)은 평화를 ‘소극적 평화’와 ‘적극적 평화’로 나누고, 이에 반대되는 것으로 ‘폭력’을 상정했다. 소극적 평화는 직접적이고 물리적인 폭력인 전쟁 등이 존재하지 않을 때, 적극적 평화는 △직접적 △구조적 △문화적 폭력까지 없고 인간의 기본적 요 구가 충족되면서 정의가 존재할 때 이루어진다고 주장한다. 여기에서 직접적 폭력은 물리적 폭력을 행한 가해자가 존재하는 것을, 구조적 폭력은 사회 구조와 체계, 제도로부터 피해를 당하는 것을, 문화적 폭력은 △종교 △사상 △언어 등과 같은 상징체계를 통해 직접적 혹은 구조적 폭력을 정당화하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평화 개념에서 ‘적극적 평화’를 일상에서 주체적으로 꾀하는 것이 바로 ‘평화문화(culture of peace)’라고 할 수 있다. 평화문화는 1989년 7월에 유네스코가 야무수크로(Yamoussoukro)에서 개최한 ‘인간의 마음에 깃들인 평화에 관한 국제회의’에서 처음 개념화되기 시작한다. 국제회의 이후 발표된 ‘인간의 마음에 깃들인 평화에 관한 야무수크로 선언(Yamoussoukro Declaration on Peace in the Minds of Men)’에서 평화문화를 정의한다. 제주대학교 초등교육과 변종헌 교수(이하 변 교수)의 논문 「세계평화의 섬 제주의 미래 비전: 평화문화 확산의 관점에서」에 따르면, 해당 선언에서 “평화문화는 삶의 양식이자 가치관, 행위양식, 연대의 원칙이며 인간과 인간, 국가와 집단 간의 관계를 포함하여 환경과의 관계 전체를 함의하는 것으로 정의”한다고 설명한다.

변 교수는 평화문화에 관해 “1989년 유네스코 국제회의에서 처음 등장한 평화문화 개념은 의식이나 가치관, 행위양식, 습관으로서의 평화라고 할 수 있다. 평화의 실현을 위한 구조적 조건의 변화보다는 평화로운 삶의 방식이 내면화된 생활양식의 변화를 강조하고 있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라고 강조했다. 이어 “문화의 속성이 그러하듯 평화문화 또한 지속적 변화의 과정 속에서 서서히 드러나거나 확인할 수 있는 것”이라고 전했다.

 

제주는 왜 ‘평화’를 외치게 되었나

제주는 2005년 1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제주 ‘세계평화의 섬 지정 선언문’(이하 선언문)에 서명하면서 국가 차원에서 ‘세계평화의 섬’으로 지정됐다. 이 선언문에서는 제주를 세계평화의 섬으로 지정한 이유를 밝히고 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대한민국 정부는 제주도가 삼무(三無)정신의 전통을 창조적으로 계승하고, 제주 4 · 3의 비극을 화해와 상생으로 승화시키며, 평화정착을 위한 정상외교의 정신을 이어받아 세계평화에 기여할 수 있도록 제주국제자유도시특별법 제12조의 규정에 의하여 제주도를 세계평화의 섬으로 지정한다.”

즉, 제주는 △도둑 △거지 △돌담이 없는 ‘삼무정신’ 과 1947년부터 1954년까지 제주 내에서 일어난 무력충돌과 민간인 희생사건인 ‘제주 4 · 3’을 계기에 두고 국가로부터 세계평화의 섬으로 지정되었음을 알 수 있다. 제주의 평화문화 기원에 관해서 변 교수는 “제주의 평화 문화는 제주의 자연, 역사, 지리 등 제주와 제주인의 정체성을 형성한 다양한 요인들이 관여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제주의 자연 생태계와의 공존과 조화, 전통적 지역 공동체와의 유대, 다른 사람들에 대한 존중과 배려 등 제주의 오랜 문화와 전통이 제주 평화문화의 연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제주 4 · 3의 화해와 상생의 가치, 유수 정상회담 개최지로서의 위상, 지자체 남북 교류협력의 선구적 경험, 남북한 통일 논의에서의 한라 백두의 상징성 등이 모두 제주의 평화문화를 이루는 제주의 자원이다”라고 말했다.

 

제주 ‘세계평화의 섬’은 무엇인가?

제주 ‘세계평화의 섬’은 각기 주장하는 방향성이 다른 상황으로, 학술적 논의가 계속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제주 사회에서도 아직 그 방향성을 두고 논쟁이 이어질 만큼, 매우 포괄적인 평화문화의 방향성과 주체를 구체적으로 어디에 둘 것인가의 문제는 매우 중요하다.

먼저, 제주특별자치도청은 세계평화의 섬이 “모든 위협요소로부터 자유로운 상태인 적극적 의미의 평화를 실천해 나가는 일련의 사고체계와 정책 등을 포괄하는 문화적, 사회적, 정치적 활동체계”이자 “적극적 평화상태를 실현하기 위한 사회구성원 간의 지적, 인적, 물적 네트워크가 형성되어 평화를 창출하고 확산하고 건설하는 제과정”이라 밝힌 바 있다. ‘적극적 평화상태’를 유지하고자 하는 활동체계로 상당히 포괄적인 정의를 사용하고 있다.

 

▲표는 세계평화의 섬 단계별 추진전략을 정리한 것이다. (출처/ 「제주 세계평화의 섬 지정 계획」)
▲표는 세계평화의 섬 단계별 추진전략을 정리한 것이다. (출처/ 「제주 세계평화의 섬 지정 계획」)

이에 반해, 지정 당시의 「제주 세계평화의 섬 지정 계획」을 살펴보면 정부는 당시 세계평화의 섬을 추진하면서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와 외교를 중점에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추진전략은 크게 △평화의 창출 △평화의 확산 △평화의 정착 순이다. 평화실천사업과 평화연 구활동, 평화의 제도화 등을 활용해 단계적인 발전을 계획한 것이다.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동아시아 외교 중심지 △아 · 태 대표포럼 육성 △동북아평화연구소 △국제기구 유치 등 외교적 측면과 관련한 사항들이 많고, 추진 당시에도 한반도 주변 각국의 지도자들이 세 계평화를 논의하고, 휴식을 취하면서 대화를 나누기에 최적의 장소임을 강조한 바 있다.

이를 두고 『평화학연구』의 논문 「제주, 세계평화의 섬의 평화실천 사업 평가와 과제」에서는 “지방보다 국가 또는 국제관계 차원의 사업들이 주종을 이루고 있어 지역사회 내부 지향성보다 한반도와 동북아, 세계 등의 대외지향성이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라고 정리하고 있 다. 특히 “각각의 사업들은 주로 갈퉁이 말하는 적극적 평화보다는 소극적 평화 구축에 치중된 사업들인 관계로 고위정치(high politics)가 사업의 중심을 이루고 있다. 그에 반해 풀뿌리 수준에서 참여할 수 있는 사업들은 거의 없는 것으로 보인다”라고 지적했다. 이는 적극적 평화를 주창하는 제주의 계획과는 배치됨을 의미한다.

 

▲사진은 제주국제평화센터에 위치한 제주평화헌장 조형물의 모습이다.
▲사진은 제주국제평화센터에 위치한 제주평화헌장 조형물의 모습이다.

이에 관해 변 교수는 “제주 세계평화의 섬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크게 두 가지 시각이 있다”라고 설명하면서 “하나는 제주를 국제 교류협력의 거점 내지 평화 논의의 장소로 보는 시각이고, 다른 하나는 제주도를 평화지대로 만들어야 한다는 시각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 러한 상반된 시각은 세계평화의 섬인 제주의 정체성을 충분히 담아내지 못한다고 의견을 밝혔다. 이어 “제주가 직면하고 있는 갈등 상황을 극복하고 제주 공동체의 미래를 위해 훨씬 중요한 것은 제주도민들의 내적 심성에서의 변화 그리고 제주의 자연과 공동체 등 다양한 삶의 환경과의 조화와 공존을 통해 개인의 일상에서 살아 움직이는 평화를 실현하는 것”이라며 “제주도민들 스스로가 제주와 제주도의 삶의 환경을 진정 평화롭게 만들어야 한다는 사고의 전환이 선행되고, 제주도민들 스스로가 평화의식을 내면화해 자연 생태계, 제주의 공동체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공존과 조화의 삶을 지향하고 추구하는 데서 제주의 평화문화가 시작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전했다.

 

제주 평화문화의 진척상황

 

▲표는 세계평화의 섬 17대 평화실천사업을 변형하여 정리한 것이다. (출처/ 제주특별자치도)
▲표는 세계평화의 섬 17대 평화실천사업을 변형하여 정리한 것이다. (출처/ 제주특별자치도)

제주를 세계평화의 섬으로 만들기 위해 정부와 제주특별자치도청은 ‘17대 평화실천사업’을 진행해왔다. 하지만 해당 평화실천사업이 평화의 정착으로 가는 방향성에서 큰 효과를 거두었냐는 지적이 있는 상황이다.

 

▲사진은 제주4 · 3평화공원 내에 위치한 제주4 · 3평화기념관(위)과 서귀포시 중문에 위치한 제주국제평화센터(아래)의 전경이다.
▲사진은 제주4 · 3평화공원 내에 위치한 제주4 · 3평화기념관(위)과 서귀포시 중문에 위치한 제주국제평화센터(아래)의 전경이다.

실제로 이러한 지적들을 확인하기 위해 본지 기자가 제주 현지를 살펴봤다. 그중 17대 평화실천사업과 관련해서 외부인들이 가장 손쉽게 찾을 수 있는 △제주 4 · 3 평화공원 △제주국제평화센터를 방문했다. 제주 4 · 3평화공원은 내부의 기념관과 봉안당, 위패, 조형물 등 다채롭게 제주 4 · 3의 비극적 역사를 잘 알리고 있었다. 무엇보다 ‘어둠에서 빛으로’ 서예와 백비(白碑) 등 조형물과 기념물을 활용한 기법으로 역사적 사실을 담담하게 전하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이와 대조적으로, 제주국제평화센터는 평화와 관련한 콘텐츠가 매우 빈약했다. 역사적 사실부터 실천사업에 관한 소개까지 제주 평화와 관련한 사안들을 구체적으로 둘러볼 수 있었으나, 오래된 내용과 전시기법들이 많고 전시의 흐름이 구체적으로 이해되지 않을 때도 있었다. 이 두 방문지는 모두 ‘세계평화의 섬’ 사업으로 건설되고 예산이 투입되었으나, 제주의 평화문화나 세계평화의 섬 사업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고 보기에는 어려웠다. 제주 4 · 3부터 외교와 정상회담에 이르기까지 종합적으로 해당 장소들에서 제주 평화문화를 경험할 수 있도록 바꿀 필요가 있어보인다.

 

▲표는 세계평화의 섬 평화실천사업 2.0을 정리한 것이다. (출처/ 제주특별자치도)
▲표는 세계평화의 섬 평화실천사업 2.0을 정리한 것이다. (출처/ 제주특별자치도)

이러한 지적에 발맞추어 제주특별자치도청도 2020년에 세계평화의 섬 평화실천사업 2.0을 구상해 실천계획을 수립해나가고 있다. 이를 통해 제주 평화사업이 재도약하는 기반을 마련하고 세계평화의 섬 제주의 평화 이미지 확산을 꾀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특히, 이번 평화실천사업은 기존과 달리 ‘풀뿌리’ 시민 단위에서 참여 할 수 있는 사업도 들어가고, 이어 ODA와 국제 수준에 맞춘 평화협력 증진도 목표로 하고 있는 상황이다.

 

평화가 살아있는 제주가 되기 위해서

그러나 여전히 문제점은 존재한다. ‘세계평화의 섬’ 지정으로부터 약 17년이 지났음에도, 제주 내의 자생적인 평화 움직임과 의식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또, 제주 해군 기지로 인해 생긴 여러 논란들과 평화의 섬을 둘러싼 갈 등은 아직 제주를 완전한 ‘평화의 정착’ 단계로 가지 못하게 발목을 잡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대해 변 교수는 “‘세계평화의 섬, 제주는 갈등과 대립으로부터 자유로운 곳인가?’라는 근원적인 물음에 답할 수 있는 대안이 바로, 평화문화라고 생각한다. 법적 제도적 차원의 평화 논의와 평화의 창출 노력에서 벗어나 인간 심성의 내적 변화를 통해 살아 움직이는 평화를 추구하는 평화문화의 창출을 위한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라면서 “이를 위해서는 제주인들 스스로가 자신의 정체성을 인식하고, 제주의 자연 그리고 제주 공동체와 구성원들과의 관계 속에서 공존과 조화의 상태를 이룰 수 있는 생활양식을 내면화하고 이를 실천해야 한다. 이와 같은 평화문화의 내 면화와 일상화가 세계평화의 섬인 제주의 정체성을 형성 하는 핵심이다”라고 전했다.

제주가 평화문화를 선두하는 중심지가 되기 위해서는 경제적이거나 외교적인 표면상의 이유만을 들 것이 아니라, 시민들 스스로의 평화의식을 길러 자정적인 갈등해결을 추구해 적극적인 평화를 만들어나갈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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