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친 현대인의 마음을 두드리는 문학, 미셀러니 〈1104호(개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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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친 현대인의 마음을 두드리는 문학, 미셀러니 〈1104호(개강호)〉
  • 박윤 기자
  • 승인 2022.08.29 23: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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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사람들이 떠올리는 에세이 문학은 자신의 삶에 대한 고찰을 일상적인 문체를 사용하여 감정적이고 정서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독자들은 에세이 작품을 읽으며 지친 삶에 위로를 얻고자 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에세이’란 이름으로 출간하는 대부분은 ‘에세이’가 아닌 ‘미셀러니’ 작품이다. 낯설지만 일상에서 쉽게 접해온 미셀러니 문학. 그 작품의 형태는 매우 다양하며, 주관적인 관점과 일상적인 문체로 글을 쓰는 누구든지 현대인들의 마음을 울리는 작가로 거듭나게 한다.


수필 문학과 미셀러니의 탄생

수필은 ‘자유롭게 쓴 글’이라는 의미로 인생과 자연 등 생활에서 직접 경험하고 생각한 것을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쓴 문학 형태이다. 영어로는 ‘essay’로 ‘시도하다’란 의미이다. 본래 에세이란 말은 프랑스 철학자 몽테뉴가 관직에서 물러나 한가롭게 자신의 체험이나 신념을 기술한 글들을 모아 엮은『수상록』에서 등장했다. 단지, 『수상록』에서의 에세이는 중수필과 경수필로 나뉘기 전의 포괄적 수필 개념이고, 현대에 들어와 수필은 에세이(중수필)와 미셀러니(경수필)로 구분된다. 외국에서는 에세이(essay)를 자기소개서와 비평문과 같은 실용적 글쓰기 즉, 중수필로 취급한다. 그리고 현재 우리나라에서 우리가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에세이’라고 불리는 작품은 중수필 의미의 에세이가 아닌, 경수필 의미의 미셀러니가 많다.

 

▲ 사진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가에 있는 광화문 교보문고의 에세이 인기 도서 코너이다. 이 코너의 작품 대부분은 ‘에세이’가 아닌 ‘미셀러니’라고 보는 것이 적절하다.
▲ 사진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1가에 있는 광화문 교보문고의 에세이 인기 도서 코너이다. 이 코너의 작품 대부분은 ‘에세이’가 아닌 ‘미셀러니’라고 보는 것이 적절하다.

에세이와 미셀러니는 상대되는 개념

우리가 에세이라 칭하는 수필은 시사와 철학 문제를 논리적, 지적으로 접근하는 글이다. 논리와 이성에 의존하며, 논증적인 진술이 드러나는 사색적인 수필이란 점에서 베이컨의 철학 사상에 가깝다. 베이컨은 “지식은 생활에 실용적인 도움을 주며, 지식은 경험에 기초한다. 이 지식으로 과학적 발견이 이루어진다”라고 주장했다. 에세이는 이성적 경험과 지식이 과학적 논리를 생산하는 베이컨의 사상을 이어받아 ‘베이컨적 수필’이라 칭하기도 한다. 즉, 감성보다는 논리와 이성에 근거한 글이 바로 에세이인 것이다. 반면에 일상생활의 경험을 감성적, 주관적, 개인적, 정서적으로 표현하는 성격을 지닌 수필은 몽테뉴의 『수상록』 사상을 이어받은 미셀러니 수필이다. 『수상록』에서 몽테뉴는 “내가 아는 것은 무엇인가?”를 기초에 두었고 “인간은 누구나 사람으로서의 특별한 기질을 전체적으로 지니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이는 인간 내면에 대한 깊은 성찰에서 이루어진 상대주의적 관점과 인간에 대한 관용이 표현된 것이다. 인간성이 주제이기에 감성과 감정, 본능적 판단에 의한 서술이 주를 이룬다는 점이 미셀러니 문학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개인의 내면을 그려내는 문학, 미셀러니

미셀러니는 경수필에 해당한다. 영어로 ‘miscellany’이며, 몽테뉴의 이름을 따 몽테뉴적 수필이라 칭하기도 한다. 미셀러니 작품은 가볍고 쉬운 느낌의 문장으로 구사되어 있고, 개인 정서와 감정에 의존해 주관적이며, 서술자인 ‘나’가 겉으로 직접 드러나 있다. 우리가 흔히 대하는 수필은 개인의 생각과 체험을 다룬 가벼운 신변잡기식 느낌의 수필이며 독자들에게 위로와 감동을 주는 것이 주를 이룬다. 일상 속 체험을 통한 감정과 감동은 당사자인 ‘나’를 주체로 이뤄지기에 객관적이기보다는 주관적인 관점으로 글이 전개된다. ‘자기표현’과 ‘자아실현’으로 개인의 행복을 추구하는 현대인들은 코로나19의 비대면 사회에서 타인보다 자신에게 집중하는 삶을 만들어왔고, 외부의 세계보다는 내면세계의 자극에 더 반응하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미셀러니는 개인의 내면에 집중하여 삶의 행복을 찾으려 하는 현대인들에게 열광을 받고 있다.


대표적인 미셀러니 작품, 김수현 작가의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

전 세계 156만 독자에게 선택받은 김수현 작가의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는 한국의 대표적인 미셀러니 작품이다. 어떤 계기와 과정에서 이러한 작품을 집필하게 되었는지 김수현 작가를 직접 인터뷰해보았다.

 

▲사진은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 작품의 표지이다. (출처/ 클레이하우스 출판사)
▲사진은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 작품의 표지이다. (출처/ 클레이하우스 출판사)

 

Q.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 작품의 집필 과정이 궁금합니다.

A. 10대와 20대에는 삶의 비슷한 틀이 존재해요. 물론 그 안에서 많은 차이를 느끼겠지만, 학생, 사회초년생이라는 공통분모가 있죠. 그런데 30대부터는 삶이 본격적으로 분화되는 것 같아요. 결혼하기도, 안 하기도, 이혼하기도, 아이가 있기도, 없기도 하죠. 본격적인 자립이 시작되면서 삶의 모습이 점점 달라질 거예요. 그렇게 되면 친구라는 테두리 안에서도 차이가 벌어질 텐데, 나는 그런 상황들을 어떻게 맞을 것인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죠. 그때가 20대 후반 무렵이었는데, 앞으로의 남들과 비교하면서 쫓기지 않기 위해선 정신적 자산이 필요하다고 느꼈어요. 그때 많은 책을 읽었는데, 인상적이었던 책이 사회 심리학에 관한 책들이었거든요. 일반적인 심리학이 개인의 내면에 집중한다면, 사회 심리학은 사회와 집단 속에서의 개인을 조망하는데요. 집단주의 사회인 우리나라에서는 특히나, 사회적인 관점에서 마음을 들여보는 과정이 필요했던 것 같아요. 나의 가치관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알고 보면, 어느 순간 사회로부터 주입된 것들이 많거든요. 한동안 그런 시기를 가지면서,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생각들을 많이 했어요. 그 생각과 다짐을 담은 책이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라는 책이었어요. 매번 그렇게, 제 고민과 관심사가 계기가 돼서, 책을 쓰게 되는 것 같아요.

▲사진은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 작품의 삽화이다. (출처/ 클레이하우스출판사)
▲사진은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 작품의 삽화이다. (출처/ 클레이하우스출판사)

인터뷰를 통해 알 수 있듯이, 미셀러니 작품의 탄생은 ‘개인의 경험’, ‘개인의 삶에 대한 고찰’로부터 시작한다. 또한, ‘사회와 집단 속에서의 개인’을 조망하기에 같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로부터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자아 성찰과 자아실현이 기반이 되어 한 작품으로 거듭나는 미셀러니는 대중에게 위로를 선사한다. 이러한 특징에서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와 같은 미셀러니 작품은 심적으로 지친 현대인들에게 수많은 선택을 받고 있다.


소셜 미디어로 확장된 미셀러니, ‘인스타툰’

소셜 미디어 플랫폼이 활성화됨에 따라 SNS를 통해 자신의 삶을 표현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삶에서 느낀 개인의 생각과 감정을 스스럼없이 표현하는 것은, SNS를 사용하는 불특정 다수의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이는 개인의 이야기를 감성적이고 주관적으로 작성하여 감동과 위로를 준다는 측면에서 소셜 미디어상의 미셀러니로 볼 수 있다. 더 나아가 이를 컷 만화와 함께 구성하여 이야기를 전개하는 ‘툰’ 형태의 미셀러니도 쉽게 볼 수 있다. 소셜 미디어 속 미셀러니의 대표적인 예시로 ‘인스타툰’이 있다. 인스타툰을 연재하는 서울라이터(@seoulwriter) 작가와 영지(@0g_maru) 작가를 인터뷰한 내용이다.

Q. 인스타그램이라는 소셜 미디어를 통해 작품을 연재하게 된 과정과 효과가 궁금합니다.

A. @seoulwriter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취미와 물리적인 도구의 등장이 디지털 드로잉을 시작하게 된 계기라고 할 수 있겠네요. 사실 제 인스타툰을 이렇게 많은 분이 봐주시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평범하다고 생각했던 저의 일과 일상을 흥미롭게 여겨 주시는 분들이 계시더라고요. 그리고 소셜 미디어가 생각보다 파급력이 크다는 걸 실제로 경험하기도 했어요. 제 인스타그램을 보신 몇몇 유명한 분들의 응원과 교류가 오갔거든요. 이렇게 기술의 힘을 빌려 사람에게 더 가까이 닿을 수 있다는 점이 놀라웠죠. 저를 친근하게 생각해 주시는 분들이 점점 늘어나서 좋은 인연을 계속 늘려갈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입니다. 지친 일상에서 잠시나마 제 인스타툰을 보고 미소 지으셨다면 그것이 저의 가장 큰 기쁨입니다. 더 나아가 제가 일하는 분야를 많은 분이 관심 있어 해주시면 좋겠다는 바람도 있어요.

 

▲서울라이터 작가의 인스타그램 게시물 캡처본이다.
▲서울라이터 작가의 인스타그램 게시물 캡처본이다.

A. @0g_maru 다들 SNS에 일상을 공유하기에 저도 남자친구와 함께하는 일상을 공유했습니다. 그리고 점점 많은 사람이, 특히 저와 같은 커플들이 저를 팔로우해주셨습니다. 제 일상이 누군가에게 위로나 웃음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기쁘고 재미있어서 꾸준히 연재하다 보니 어느새 11만 명이 넘는 팔로워들이 생겼고요. 일기처럼 꾸준히 만화를 통해 많은 생각과 경험을 드러내려다 보니 사실 저에게도 저를 알아가는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또한, SNS를 통해 사람들의 밝은 면만 계속해서 보다 보니 상대적 박탈감과 우울을 겪는 사람들이 많아 보였습니다. 저도 그랬고요. 그래서 저는 제 인스타툰에서만큼은 ‘밝은 면도 어두운 면도 가진 보통의 사람’의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진솔하고 풍부한 이야기를 통해 독자들이 ‘내가 해주고 싶었던 말을 대신해 주는 콘텐츠’ 또는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연애 문제의 방향성이나 해결책을 제시해주는 길잡이’가 되어주고 싶었습니다. 지금은 너무 진지한 문제를 다루기보단 남편과 연애 시절 겪었던 소소한 일상을 가볍게 툭툭 보여드리며 바쁜 하루에 잠깐이나마 여유를 가지고 웃으실 수 있는 만화를 그리려고 노력 중입니다.

 

▲영지 작가의 인스타그램 게시물 캡처본이다.
▲영지 작가의 인스타그램 게시물 캡처본이다.

위 인터뷰와 같이 미셀러니 글의 특징상 비전공자도 작가가 되어 도전할 수 있고, SNS라는 소통의 장이 만들어진다는 점에서 떠오르는 소셜 미디어 미셀러니 형태이다.


미셀러니가 가지는 의의

소소담담 출판사 편집부의 『수필 미학 사전』에서는 “인간은 수필 쓰기와 같은 다양한 방식으로 이야기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수필이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로 엮어내는 것도 바로, 시간에 대항하여 자기 자신을 바로 세우려는 기획이라고 할 수 있다”라고 서술했다. 이는 사람들이 자아실현의 욕구를 미셀러니와 같은 작품을 창작함으로써 해소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또한 “이야기하기로서 수필 쓰기에 의해 시간 속으로 묻혀버리고 말 자신의 인생을 문자로 기록됨으로써 새로운 의미와 빛으로 드러난다. 막연한 얼마의 파편으로 산재하던 인생의 조각이 하나의 통일된 줄기로 재탄생하는 것이다. 그래서 수필 쓰기는 내 삶의 재창조이다. 나를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하고 함께 삶을 영위했던 다양한 사람과 내 삶의 여정에서 명멸했던 무수한 사건에 대해 기록하는 것이 이야기 수필이다”라고 덧붙였다. 즉, 미셀러니 작품을 접함으로써 개인의 삶의 새로운 의미를 발견해낼 수 있다는 것이다.

개인의 삶을 그려내며 인생의 의미를 재창조하는 미셀러니. 창작자 본인이나 그것을 다양한 형태로 접하는 독자 모두에게 삶을 돌아보고 쉬어갈 수 있는 사회 속 공공 쉼터로서 자리매김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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