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이었던 음악, 대중과 공감할 수 있었기에 노래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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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이었던 음악, 대중과 공감할 수 있었기에 노래할 수 있었다”
  • 방연식
  • 승인 2010.09.13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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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트 아티스트 심수봉 동문을 만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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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이었던 음악, 대중과 공감할 수 있었기에 노래할 수 있었다”
트로트 아티스트 심수봉 동문을 만나다

1978년 ‘제2회 MBC 대학가요제’를 시작으로 가수의 길에 들어서 지금까지 31년 동안 가수로서 정상의 자리를 지켜온 심수봉은 우리대학 경영학과를 졸업한 76학번 동문이다. 그녀가 부른 ‘그때 그 사람’, ‘백만송이 장미’,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 ‘사랑밖에 난 몰라’ 등의 곡은 지금까지도 대중들에게 큰 사랑을 받고 있다. 10.26사태 당시 그 자리에 있었다는 이유로 각종 어려움을 겪었던 그녀이지만 지금은 누구나 인정하는 가요계의 큰 별로 평가받는다. 이처럼 보통 가수와는 다른 길을 걸으며 다른 삶을 살아온 가수 심수봉을 만나보았다.

경영학과 심수봉, 오기를 부려도 음악은 운명이었다
심수봉 동문(이하 심 동문)은 우리대학 경영학과에 진학하기 전에 타대학의 음악대학시험에 지원했다가 떨어진 경험이 있다. 심 동문은 “음악대학에 진학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갑자기 필기시험과 실기시험을 준비하느라 시험에 대한 감각적인 면이 부족했다”며 “음악대학에 떨어지고 나니 오기가 생겨 오히려 음악과는 관련이 없는 경영학과에 지원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덧붙여 “음악대학에 떨어지고 다른 길을 걸으려고 했음에도 음악을 계속하게 된 것은 운명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심 동문이 우리대학에 재학 중이던 시기는 현재까지도 역사적으로 회고되는 5.18운동과 광주민주화운동이 있던 시기였다. 심 동문은 “당시에는 사회적으로 국민 모두가 힘들었던 시기였기 때문에 대학가에서는 학생운동이 활발했다”며 “당시 어려웠던 상황 속에서도 대학생들은 통기타문화, 막걸리문화 등의 문화를 형성하며 대학생활을 즐겼다”고 회고했다. 덧붙여 “어려웠던 그 당시에 들었던 음악이 지금까지도 가장 기억에 남고, 다른 음악들과는 다른 향수가 있다”고 전했다.
심 동문은 대학교 3학년이었던 1978년, 당시 대학생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던 ‘제2회 MBC 대학가요제’에 참여하게 되었다. 자신이 만든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유일한 무대였던 ‘MBC 대학가요제’는 전국의 실력 있는 대학생들이 참여하는 행사였다. 심 동문은 “마지막으로 노래를 불러보겠다는 각오로 ‘제2회 MBC 대학가요제’에 참가했다”며 “지금까지도 활동하고 있는 임백천, 배철수, 노사연 등과 같은 가수들이 모두 ‘제2회 MBC 대학가요제’의 출신”이라고 말했다. 심 동문은 안타깝게도 대학가요제에서 입상하지 못했지만 오히려 그것이 전화위복이 되었다고 한다. 심 동문은 “‘제2회 MBC 대학가요제’가 끝난 후 그 다음날 레코드사에서 연락을 받았다”며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금액과 함께 전속계약을 체결해 본격적으로 가수활동을 시작했다”고 회상했다.

잊을 수 없는 그 날, 10.26
1979년 2월부터 본격적으로 가수활동을 시작하게 된 심 동문은 활동을 시작한지 8개월 만에 인생의 큰 역경에 부딪히게 되었다. 10.26사태가 발발했던 밤, 그 현장 속에 심 동문이 있었다는 사실 때문에 심 동문은 그 이후 힘든 시기를 보내게 되었다. 정신치료를 받기 위해 병원을 다녔고, 10.26사태에서 받은 충격은 약 10년 정도나 지속될 정도로 매우 컸다. 심 동문은 “그 사건이 있던 이후로 모든 활동이 중단되었고, 원활한 대학생활을 하기도 힘들었다”며 “그 때문에 대학생활의 마지막 시기를 떠올리면 지금도 다시는 돌아가지 못할 것 같다”고 말했다. 덧붙여 “지금 활동할 수 있는 상황이 좋아진 것은 대중들에게 진심으로 노래하는 내 모습이 통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운명적이었던 가수의 길
심 동문의 아버지 심재덕 선생님은 민요수집가, 큰 아버지 심상건 선생님은 가야금 명인, 고모인 심화영 선생님은 승무 무형문화재이다. 이에 대해 심 동문은 “집안 환경과 타고난 재능적인 영향도 없지는 않다”며 “어린 시절부터 노래에 대한 재능이 뛰어나다는 소리를 많이 듣고 자랐고, 어린 시절부터 각종 노래대회에 뽑혀 참가하게 되었다”고 말했다. 또, 심 동문은 1979년에 ‘KBS 올해의 신인가수상’, ‘MBC 올해 최고 인기 10대 가수상’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심 동문은 수상에 대해 “개인적으로 상과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한다”며 “상을 받으려고 노력하기보다 내 자신의 모습만을 가지고 대중들에게 다가가려고 노력했기 때문에 큰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또, 심 동문은 최근에는 ‘엠넷 아시안 뮤직 어워드 명예의 전당상’을 수상하며 다시 한 번 건재함을 과시했다. 심 동문은 지난해에는 전국투어 콘서트를 진행하는 등 다양한 공연을 진행하고 있다. 심 동문은 “다양한 공연을 해봤지만 얼마 전에 중국 도문에서 했던 공연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며 “중국과 북한의 끊어진 다리가 있는 곳이었는데 우리 민족이 갈라져서 볼 수 없다는 사실에 나도 모르게 가슴이 뭉클해 졌다”고 말했다.
심 동문은 ‘그때 그 사람’, ‘백만송이 장미’,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 ‘사랑밖에 난 몰라’ 등 다양한 히트곡을 보유하고 있다. 심 동문에게 있어 좋은 노래란 “욕심이나 마음의 스트레스를 갖고 있는 모든 사람들을 편하게 만들어 주는 곡”이라고 말한다. 심 동문은 “많은 곡 중에서도 ‘백만송이 장미’에 가장 애착이 간다”며 “‘백만송이 장미’는 언제 들어도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곡”이라고 표현했다. 올해로 데뷔한지 31년을 맞은 심 동문은 “시대와 장르에 구애받지 않고 나만의 음악으로 표현한 것이 대중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었던 것 같다”며 “가장 좋아하는 음악으로 내 삶을 그 속에 표현해 대중들과 공감할 수 있어 행복하다”고 밝혔다.

 “대학시절은 깨달음이 필요할 때”
심 동문은 머지않아 책과 음반을 함께 발매할 계획으로 당분간은 책을 집필하는데 많은 시간을 보내겠다고 밝혔다. “책을 집필해 발행하면 대중들과 더 다가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우리대학 학우들에게 심 동문은 “일상적이고 평범한 대학생활을 즐기지 못했던 것이 많이 안타깝다”며 “자신의 소명이 무엇인지, 더불어 사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달을 수 있는 대학생활이 되면 좋겠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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