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굶더라도 마른 몸 갖고 싶어요" 〈110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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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굶더라도 마른 몸 갖고 싶어요" 〈1101호〉
  • 이예은 기자
  • 승인 2022.05.02 02: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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섭식장애로 이어지는 왜곡된 ‘예쁜 몸’에 대한 환상

22세 여성 A 씨는 지난 5년간 마른 몸에 대한 강 박을 경험했다. 저체중임에도 살을 더 빼기를 원한 A 씨는 자신의 ‘키빼몸’(키에서 체중을 뺀 숫자)을 계산하고 하루에 한 끼도 제대로 먹지 않았다. 이틀간 단식을 하기도 하고, 음식을 씹기만 하고 뱉어버리는 등 음식 섭취를 극도로 피했다. 의지가 약해질 것 같아 SNS를 통해 함께 굶을 사람을 찾아 정보를 공유하기도 한다.

이처럼 마른 몸을 갖기 위해 일부러 굶거나 먹고 토하기, 씹고 뱉기 등을 행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본지는 이들이 몸에 강박을 가지고 위험한 식이 조절을 시도하는 원인과 위험성에 대해 알아봤다.

 

안 먹고 마른 몸 원하는 ‘프로아나 신드롬’

‘먹뱉’, ‘먹토’, ‘씹뱉’ 등을 SNS에 검색하면 수많은 게시글을 찾을 수 있다. 자신의 키와 현재 몸무게, 목표 몸무게를 공개해 언뜻 보면 다이어트를 독려하거나 같이 살을 뺄 사람을 찾는 것처럼 보이지만, 위험한 방식으로 극단적인 체중 감량을 원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이들은 자신들을 ‘프로아나’라고 말한다. 프로아나는 찬성한다는 뜻의 ‘프로(pro)’와 거식증을 뜻하는 ‘애너럭시아(anorexia)’의 합성어로, 거식증 환자의 마른 몸을 동경하고 닮고 싶어하는 현상을 뜻한다. 프로아나는 미국과 영국 등에서 거식증 모델 등의 몸을 동경하는 행위에서 시작되어 최근에는 거식증 환자처럼 음식 섭취를 거부하거나 극단적인 절식을 통해 다이어트를 하는 행위 자체를 의미하는 단어로 사용되고 있다.

먹뱉(먹고 뱉기), 먹토(먹고 토하기) 등 극단적인 방법으로 체중을 감량하는 프로아나 행위는 ‘프로아나 신드롬’이라 불릴 정도로 다이어트 문화로 자리잡았고 섭식장애로 이어지는 경우가 증가했다. 섭식장애는 섭식행동에 장애가 생기는 정 신적 질환으로, 신경성 식욕부진증(거식증)과 신경성 폭식증 등이 섭식장애에 해당한다. 프로아나의 주 연령층은 10~20대 초반 여성으로, ‘개말라 인간’, ‘뼈말라 인간’이 되고 싶어 한다. 프로아나들은 마른 몸을 가진 연예인이나 일반인 사진을 함께 올리며 프로아나 성공을 자극하기도 하고, ‘프로아나 성공 꿀팁’이라며 먹는 양을 줄이는 방법이나 오래 굶는 방법을 공유하기도 한다. 프로아나족들은 뚱뚱한 몸을 혐오하며 마른 몸에 집착한다. 이러한 강박은 쉽게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탈프아’(프로아나에서 벗어나는 것)에 성공하더라도 살이 찌면 다시 프로아나로 돌아와 굶거나 잘못된 방법으로 살을 빼려는 경우도 빈번하다. 또한, 최근 프로아나족 사이에서는 ‘나비약’이라 불리는 식욕억제제를 불법으로 구매해 섭취하기도 한다. 이 식욕억제제는 향정신성의약품으로, 장기간 복용하거나 오남용할 경우 우울증, 환각, 환청, 공황장애 등 부작용이 상당해 더 큰 질환으로 이 어질 수 있다.

 

프로아나, 라이프 스타일 · 다이어트 아닌 ‘섭식장애’

음식을 먹어도 뱉거나 토하는 행위는 섭식장애 중 하나인 거식증의 대표적인 증상이다. 살을 빼기 위해 음식을 뱉고 토한다면, 올바른 다이어트가 아닌 거식증을 앓는 것이다. 거식증은 생물학적 요인, 정신적 · 사회적 요인 등으로 나눌 수 있는데, 그중 정신적 · 사회적 요인에는 강박적 · 완벽주의적 성향, 아름다움에 대한 사회적 인식, 여성의 사회적 역할 변화로 인한 갈등, ‘신체는 노력만으로 얼마든지 변할 수 있다’는 대중매체에 의해 주입된 정보 등이 있다. 외모와 신체에 대한 지나친 강박, 트라우마 등 심리적인 영향이 주원인으로 작용하며 자존감이 낮고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성향 또한 거식증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실제로 외모에 많은 관심을 가지는 사춘기 청소년과 여성층에서 거식증 발생이 특히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건강보험심사 평가원 자료에 따르면, 2020년 거식증 진료를 받은 사람은 4,280명으로, 2019년(3,746명)보다 14.3% 가량 증가했으며, 전체 거식증 환자 4,280명 가운데 여성이 3,232명으로 남성보다 세 배 이상의 비중을 차지했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의원이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6년부터 2020년까지 5년간 거식증 진료를 받은 8,417명 중 10대 여성이 1,208명(14.4%)으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으며, 20대 여성 또한 958명(11.4%)으로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우리 대학 미래융합대학 심리치료학과 백근영 교수(이하 백 교수)는 “섭식장애는 말 그대로 섭식에 문제가 있기 때문에 생존의 문제와 직결된 경우들이 많다. 실제로 극심한 섭식장애들의 경우 사망률이 1,000명 가운데 5명인데 그중에서 20%는 자살이고 나머지 80%는 극도로 제한된 섭식으로 인해서 사망한 경우”라며 “섭식에 문제가 생기면 음식에 집착하거나 우울증, 불안, 사회적 위축, 주의집중의 손상 등의 문제가 생기고 심장박동수의 저하, 부정맥, 빈혈, 전해질 이상 등의 생리적 문제까지 생길 수 있다”라고 섭식장애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정상체중 · 저체중이어도 프로아나, 문제는 신체 이미지 왜곡

신체 이미지는 키, 체중, 체형 등 자신의 외모에 대한 생각과 인식, 태도를 의미하는 말이다. 자신의 몸에 대해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에 따라 긍정적인 신체 이미지를 갖기도 하고 부정적인 신체 이미지를 갖기도 한다. 미국의 섭식장애협회 NEDA에 따르면, 자신의 외모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포함하기 때문에, 자신의 신체에 결함이 있다고 느끼며 우울증, 고립감, 낮은 자존감, 섭식장애로 고통 받을 가능성이 더 크다고 밝혔다. 이러한 신체 이미지 왜곡은 특히 1020 여성층에서 심하게 나타났다. 지난해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발간한 「보건복지포럼 9월호 보고서」에 따르면, 한 달간 섭식장애 행동 경험은 여성 평균 2.4개, 남성 평균 1.5 개였으나 그중 10대 · 20대 여성은 각각 3.4개(2.7개)에 달했다. 또한, 보통 신체 이미지 왜곡은 객관적인 측면에서 비만 수준을 보여주는 체질량지수(BMI)와 주관적인 측면에서 비만 수준을 보여주는 체중 인식(BWP) 간의 비일치성을 많이 활용 한다. 2021년 실시한 청소년건강행태조사 통계에 따르면 2009~2020년 기간 신체 이미지 왜곡 인지율*은 여학생은 28.6~36.5% 범위를 유지했고, 남학생의 왜곡 인지율은 17.7~24.2%로 차이를 보였다. 즉, 왜곡 인지율이 높을수록 자신의 체형을 실제 체형보다 비만에 가깝게 인지하고 있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신체 이미지 왜곡은 청소년기에 더 심각한 영향을 끼친다. 2016년 성균관대학교의 보건사회연구 「청소년의 신체 이미지 왜곡이 우울에 미치는 영향」에 따르면, 청소년의 신체 이미지 왜곡은 부분적으로 스트레스를 높게 하며, 다시 청소년 우울 가능성을 높여 청소년 우울증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신체 이미지를 왜곡해 받아들이는 것은 자신의 몸에 만족하지 못하게 만든다. 백 교수는 프로아나의 원인에 대해 “심리적인 문제와 사회 문화적 압력이 가장 큰 원인이다. 심리적 어려움의 근본적인 원인은 자기상에 있는데, 자기에 대 해서 스스로 어떻게 생각하고 느끼는지가 영향을 끼친다”라며 “특히 섭식장애는 다른 심리적 어려움보다 사회문화적인 영향이 더 큰데, 잘못된 신체적 기준을 내면화하게 되면, 지속적으로 이러한 신체적 기준에 자신의 신체를 비교하면서 자신의 신체에 수치심을 느끼고 이는 우울, 몰입의 저하, 성 관련 문제, 섭식장애 등을 유발한다”라고 설명했다.

*소아청소년 표준성장도표 기준 성별 · 연령별 체질량 지수가 하위 85% 미만에 속하는 사람 중 자신의 체형을 살이 찐 편이라고 인식하는 사람의 비율

 

미디어를 통해 왜곡된 미의식, 보호할 방법은?

부정적인 신체 이미지를 갖게 되는 원인으로 미디어를 꼽을 수 있다. 미디어 속 비친 왜곡된 미의식이 마른 몸에 대한 동경을 만들어내기도 한다는 것이다. 백 교수는 “최근 연구를 보면, 뮤직비디오 등 여성의 신체를 유독 강조하는 TV나 영상매체를 접한 여성 청소년일수록 이러한 매체 속 여성의 몸과 비교해 자신의 몸을 평가하고 섭식장애를 경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최근에는 인스타그램 등과 같은 SNS가 섭식장애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라고 말했다. 5년간 프로아나로 활동하며 섭식장애를 경험했던 A 씨 역시 프로아나를 시작한 계기로 미디어를 꼽았다. “다이어트를 하고 나온 연예인들이 주변으로부터 대우가 달라지는 경우나 아이돌 중에 조금이라도 통통한 편인 연예인에게 비난이 심한 경우를 보면서 살을 빼야겠다고 생각했다”라며 “한 번 살을 빼고 나니, 주변 친구들이 내 몸을 부러워하는 것 때문에 더 빼고 싶어져 그만둘 수 없었고, 3~4일씩 굶거나 먹고 토하는 등 먹는 것에 강박이 생겼다”라고 말했다.

▲ 사진은 인스타그램에 ‘anorexia’를 검색한 결과이다.
▲ 사진은 인스타그램에 ‘anorexia’를 검색한 결과이다.

이러한 미디어에 담긴 잘못된 미의식이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일은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다. 영국에서도 최근 섭식장애로 인해 병원에 입원하는 환자가 증가했다. BBC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섭식장애 입원 환자 중 18세 이하 환자가 차지하는 비율이 전체의 25%인 4,471명에 달했다. 영국에서는 트위터를 통해 이뤄지는 프로아나의 무분별한 노출로부터 청소년들을 보호하기 위해 프로아나 관련 해시태그를 금지해야 한다는 청원이 등장했으며, 영국뿐만 아니라 호주, 미국 등 다양한 국가에서도 SNS에 프로아나 관련 콘텐츠 혹은 태그를 금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현재도 제재가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인스타그램에 영어로 ‘#anorexia’ ‘#bulimia(폭식증)’ 검색 시 게시물을 바로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상담 기관이나 신체 이미지에 대한 조언 등 지원받을 수 있는 조치가 먼저 보인다. 그러나 한국어로 ‘#프로아나’, ‘#거식증’ 등은 경고 문구 없이 게시물이 바로 노출되고 있으며, 프로아나 계정이 많은 트위터에서도 아무런 제약없이 검색이 가능하다. 섭식장애를 경험한 『살이 찌면 세상이 끝나는 줄 알았다』의 저자 김 안젤라는 『여성신문』 과의 인터뷰에서 자살 사건의 기사 하단에 우울증 치료 기관의 연락처가 표기되는 것처럼, 다이어트 관련 기사에도 섭식장애에 대한 경고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근본적인 해결방안은?

섭식장애를 예방하고 치료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이 시도되고 있다. 최근 디지털 정신건강 치료 방법으로 AI 기반 챗봇 프로그램을 통해 섭식장애를 예방하는 방안이 제시되기도 했다. 지난해 12월 국제섭식장애 연구저널에 따르면, 부정적인 신체 이미지와 왜곡된 자아상을 가진 사람들을 대상으로 챗봇 프로그램을 제시한 결과 신체에 대한 부정적 인식 정도가 줄어들었다고 밝혔다. 더불어 몸에 대한 인식을 바꾸기 위한 노력도 이어지고 있다. 신체 사이즈, 나이, 성별 등에 상관없이 그대로의 모습을 사랑하고 가꾸자는 ‘바디 포지 티브’ 캠페인이 확산되고 있으며, 굿네이버스에서 는 ‘마르지 않아도 좋아요’ 캠페인을 통해 다이어트를 유도하는 미디어 콘텐츠로부터 아동 · 청소년 보호가 필요함을 드러냈다.

더불어 정신건강 전문가들은 섭식장애는 전문 기관의 도움을 받아 몸에 대한 강박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전문적인 심리치료가 병행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근본적인 방안은 몸에 대한 강박에서 벗어 나는 것이 우선이라는 것이다. 백 교수는 해결방안에 대해 “미디어에서 마른 몸에 대해 이야기한다고 해도 이에 대한 비판적 사고력과 자신의 신체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고 외모에 대한 결점 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을 수용하고 내 몸을 사랑하는 ‘자가자비’의 마음도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이어 “나 자신을 위한 것에서 그치지 않고 여러 사람에게 공유해 언젠가는 마른 몸에 대한 이상적 기준들이 더 이상 사람들을 힘들게 하지 않는 날들이 오기를 바란다”라고 전했다.

※ 프로아나는 다이어트 방법이 아닌, 전문기관의 도움을 받아 치료가 필요한 섭식장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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