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 좋은 개살구, 감형반성문 〈109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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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 좋은 개살구, 감형반성문 〈1098호〉
  • 민보민 기자
  • 승인 2022.03.14 01: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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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해자 중심의 감경에서
피해자 중심의 감경으로

지난 2020년 10월 13일 서울특별시 양천구에서 발생한 아동 학대 살인 사건의 가해자는 입양한 생후 16개월의 아기를 상습적으로 폭행하고 학대한 혐의로 재판을 받았다.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피고인은 32차례에 걸쳐 반성문을 제출했으며, 이후 진행된 2심에서 법원은 피고인이 범행을 반성하고 있다면서 처벌을 징역 35년으로 감형했다. 그러나 피고인의 반성문에는 피해자가 아닌 피해자가 다녔던 어린이집과 자신의 남편에게 사과하는 내용만이 담겨있었다.

 

감형반성문이란

대법원 양형기준 속 감경 요소인 ‘진지한 반성’을 판단하는 요소 중 하나로 반성문이 포함되는 까닭에 피해자를 향한 사과 없이 오직 감형만을 목적으로 반성문을 제출하는 이른바 ‘감형반성문’이 속출하고 있다. 반성문은 「형법」 제51조에 명시된 양형의 조건 중 범행 후의 정황에 해당하며, 재판부의 주관적 참작 사유이기 때문에 무조건 형량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지난해 3월 ‘구급차 막은 택시기사’ 사건의 가해자 최 씨가 16번의 반성문을 제출하는 동안 유가족에게 연락을 취하는 행동을 보여주지 않았다. 그럼에도 법원은 최씨가 여러 차례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고 있다는 점을 감형 사유로 인정해 1심 선고 형량에서 2개월을 감형하자, 일각에서는 반성 없는 반성문이 형량에 미칠 여지를 차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성범죄에서는 더 쉬운 감형

이러한 감형반성문은 성범죄 사건에서 많이 발견된다. 성범죄의 양형기준에도 감경 요소로 ‘진지한 반성’이 모든 세부 성범죄 기준과 집행유예 기준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대법원 자료에 따르면, 2016년부터 2020년까지 선고된 성범죄 사건 중 63.8%가 진지한 반성이 감경 사유로 인정됐으며, 13세 이상을 대상으로 한 강간 사건의 경우 75.8%가 감경 사유로 진지한 반성이 적용됐다. 이에 대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박성준 의원은 지난해 9월 20일 국정감사에서 “감경 사유로 ‘진지한 반성’을 적용한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은데 그 판단기준이 모호하다”라며 “진정성과 객관성을 높이는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이보다 더 심각한 것은 디지털 성범죄이다. 법무부 검찰사건 통계 분석에 따르면, 2016년부터 2020년까지 디지털 성범죄 1심 선고에서 실형 비율은 5년 평균 9.37%에 그쳤다. 이에 대해 ‘법무부 디지털성범죄 등 전문위원회(이하 위원회)’는 “디지털 성범죄 1심 선고 실형 비율이 저조한 까닭은 ‘진지하게 반성’, ‘형사처벌 전력 없음’과 같은 가해자 중심 사유가 주요 감경 요소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지적했다.

▲표는 2016년부터 2020년까지 디지털 성범죄 사건 1심 형종이다. (출처/ 법무부)
▲표는 2016년부터 2020년까지 디지털 성범죄 사건 1심 형종이다. (출처/ 법무부)

 

반성문, 대필의 시대

법을 악용하여 반성문을 제출한 피고인들의 형량이 구형보다 줄거나, 2심이나 대법원에서 감형되는 일들이 심심치 않게 나오면서 반성문 대필 업체가 성행하고 있는 가운데 반성문 대필을 전문으로 하는 변호사까지 등장했다.

▲ 사진은 네이버에 ‘반성문’을 검색한 결과이다.
▲ 사진은 네이버에 ‘반성문’을 검색한 결과이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반성문’이라고만 검색해도 반성문 대필 업체와 로펌의 홍보글이 끝도 없이 나온다. 현재(11일 기준) 네이버에서 광고를 진행하고 있는 대필 업체는 총 29개로 업체별 차이는 있지만 대체로 5만 원 선에서 반성문을 대필해주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이들이 운영하는 블로그에는 올바른 반성문 작성법을 자세하게 써놓았으며 판사의 감성을 자극할 수 있는 문체들의 예시를 보여주고 있다. 심지어 서류 작성을 전문으로 하는 행정사에게 맡겨보라는 충고와 반성문 첨삭도 진행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어떤 종이에 어떻게 작성해야 성의가 있어 보이는지 △사건별로 어느 기관에 몇 번 반성문을 제출해야 하는지 △경찰서에는 몇 시에 반성문 몇 장을 가지고 가야 하는지 △경찰 조사를 받을 때 감형 및 선처를 받을 수 있는 행동이 무엇인지까지 컨설팅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실제로 감형을 받은 사람들은 지식거래플랫폼에서 자신의 반성문을 판매하고 있었다. 

비교적 낮은 디지털 성범죄의 처벌 수위로 인해 가해자들의 감형반성문 작성 방식은 나날이 교묘해지고 있다. 감형을 받은 가해자들은 온라인 커뮤니티나 블로그, 카페 등을 개설해 회원들의 정보를 받아 자신의 반성문을 공유하고 재판 전략을 상의하는 등 감형 노하우를 전달하고 있으며, 실제로 성범죄와 관련된 고민 상담과 정보 공유를 할 수 있다고 소개된 한 카페는 약 6만 2,000명의 회원이 가입해 지금까지 운영되고 있다.

이에 대해 한국성폭력상담소는 “기존 양형기준에서 규정하고 있는 ‘진지한 반성’이라는 감경 요소의 판단기준이 불명확하여 자의적 판단이 이루어지고 있고, 형식적 · 기계적으로 피고인의 반성을 인정하고 있는 것이 반성문 대필업체의 성행 등의 부작용을 낳았다”라는 내용을 담은 의견서를 양형위원회에 전달했다.

 

반성문 대필, 어떤 방식으로 이뤄지나

▲사진은 한 대필 업체의 반성문 작성을 위한 사전 조사 질문이다.
▲사진은 한 대필 업체의 반성문 작성을 위한 사전 조사 질문이다.

대부분의 대필 업체에는 법률전문가, 문예창작과 출신 등이 포진해 있었고, 반성문 작성 시간에 따라 금액이 달라졌으며 최고 가격은 15만 원이었다. 한 업체는 재범방지를 위한 심리교육과 심리상담사 의견서까지 발급해주고 있었으며, 또 다른 업체는 감형을 위한 패키지 상품을 판매하고 있었다.

실제로 본지 기자가 한 대필업체와 상담을 진행해 본 결과, 문자로 문의를 남기면 먼저 전화 상담을 진행해 고객의 성별과 사건에 대해 간략하게 물어봤다. 해당 업체는 의뢰가 들어오면 모든 내용을 고객에 맞춰 제각각으로 작성한다며 ‘본인이 쓴 것처럼’ 반성문을 만들어줄 수 있다는 자부심을 드러냈다. 상담 이후 계약이 체결되면 반성문 작성을 위한 △사건 개요 △나이 △전과 여부 △가정 상황 △본인이 강조하고 싶은 부분 등의 내용이 담긴 질문지가 문자로 전송된다. 반성문 작성까지 소요되는 시간은 하루였고, 비용은 55,000원 정도였다.

 

감형반성문,뿌리 뽑을 수 있을까?

이러한 거짓 반성을 막기 위해 지난 1월 28일 더불어민주당 송기헌 의원(이하 송 의원)이 대표로 형사재판 양형에 피해자 의견 진술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아 「형법」 개정안과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해당 법안은 법관이 양형을 참작할 때 피해자의 의견 진술을 듣도록 하는 내용을 포함하고 있어, 피고인 중심의 양형 참작 사유의 악용을 방지하기 위해 발의됐다. 법관의 양형 고려 사유로 △연령 △피해 정도 △처벌에 관한 의견 등 피해자 관점의 요소를 명시하고, 피해자가 △공판 출석 △서면 등으로 양형에 관한 의견을 진술할 수 있도록 했다. 송 의원은 “개정안이 통과되면 앞으로 형사재판 과정에서 피해자 권리를 실질적으로 보장함으로써 국민의 법 감정에 보다 부합하는 양형이 이
뤄질 것으로 기대한다”라며 “피해자 보호 관점의 양형기준 마련을 통해 피해자의 눈물을 닦아줘야 한다”라고 전했다.

이와 더불어 위원회는 “디지털 성범죄 등 성범죄와 관련하여 사회적 이슈가 된 몇몇 사례를 제외하고 여전히 대다수 사례에서 벌금 또는 집행유예 위주의 온정적 · 관행적 처벌이 이루어지고, 그 근거로 ‘진지한 반성’, ‘처벌 전력 없음’과 같은 가해자 중심 사유가 주된 감경 요소로 작용하고 있다”라고 지적하며 지난 1월 6일 제4차 권고안을 발표했다.

위원회는 권고사항으로 △형법상 양형기준 개정 △형사소송법상 ‘피해자 진술권’의 실질적 보장 △양형조사제도 개선을 제시했다.

이번 권고안은 가해자 중심으로 규정된 「형법」 제51조 양형기준에 △피해자의 연령 △피해의 결과 및 정도 △피해 회복 여부 △피해자의 처벌 및 양형에 관한 의견 등과 같은 피해자의 관점이 반영될 수 있도록 개정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 표는 법무부 디지털성범죄 등 전문위원회의 제4차 권고안의 일부분이다. (출처/ 법무부)
▲ 표는 법무부 디지털성범죄 등 전문위원회의 제4차 권고안의 일부분이다. (출처/ 법무부)

이와 더불어 권고안은 △디지털 성범죄 피해 확산 방지를 위한 조사 실무 정비 △피해자 진술권 보장에 관한 근거 규정 마련을 주된 내용으로 담고 있다. 즉, 가해자 중심의 양형 조건 속에서 피해자 진술권이 강화되어 피해자가 목소리를 낼 수 있는 활로가 마련된 것이다.

법무부는 “이번 권고를 바탕으로 가해자 중심으로 규정되어 있던 기존 형법상 양형 조건에 피해자 관점 및 회복적 사법(피해자 보호 및 피해 회복을 위한 요소)을 반영하여 충실한 양형 조사 · 심리 진행 및 양형기준의 적정한 적용을 실현하여 양형의 객관성·형평성 담보 및 사법 신뢰도 향상을 기대한다”라며 “형사 사법의 각 영역에서 피해자 권리 보호에 미흡함이 없는지 세밀하게 살피고, 합리적인 양형 실현을 통해 디지털 성범죄 등 성범죄에 엄정 대응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라고 전했다.

반성문이란 자신의 잘못된 행동이나 자신의 부족함을 뉘우치며 쓰는 문서이다. 그러나 피해자에 대한 사과 없이 재판부를 향한 호소만이 가득한 내용들이 감형 요소로 인정되고 있어 사법부에 대한 불신이 깊어지고 있는 가운데 형사 재판에 배치된 조사관을 늘려서라도 반성문을 판별할 수 있는 절차가 시급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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