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대박’ 나지 마세요” 〈1096호(종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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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대박’ 나지 마세요” 〈1096호(종강호)〉
  • 이시준(정외 21) 학우
  • 승인 2021.11.29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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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준(정외 21) 학우
이시준(정외 21) 학우

푸르른 하늘 아래 한때 울긋불긋했던 낙엽 위를 거닐다 보니 시나브로 단풍의 종식이 체감되는 날씨가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코끝이 시린 계절의 진입을 알리듯 막대 과자와 함께 ‘합격’을 기원하는 문구가 곳곳에 등장한다. 올해도 어김없이 대학수학능력시험의 시간이 찾아온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 이른바 ‘수능’이 지니는 파급력은 실로 지대하다. 아홉 시간 남짓의 시험을 위해 며칠간 국가의 행정력이 총동원될 뿐만 아니라 친지는 물론 정계와 연예계 등 사회 각계각층에서 응원을 보내 줄 정도다. 생판 얼굴도 모르는 서로가 한껏 부담을 실어 수험생에게 보내는 문구는 일명 ‘수능 대박’으로 요약할 수 있다. 상식적으로 학교생활 12년의 성패가 좌우된다는 시험에서 저주가 아니고서야 결과가 좋지 않기를 비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말의 실상에는 심각한 모순이 담겨 있다.

수능은 응시자를 제각기 줄 세우는 상대 평가에 기인한다. 즉, 모두가 대박이 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대박이 나서도 안 된다. 차등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누군가의 등급 상승은 다른 누군가의 등급 하락을 의미한다. 따라서 역설적으로 수능 대박을 바라는 마음은 다른 사람의 ‘쪽박’이 수반되지 않고는 성립할 수 없다. 자신의 합격을 위해 반드시 한 명이 낙제해야 하는 비극적인 시험의 구조를 답습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배경을 떠올린다면 수능 대박이라는 응원이 얼마나 섬뜩하고 참담한 의미인지 곱씹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더욱 절망적인 점은 타인을 짓밟고 정상을 향해야 하는 살인적인 경쟁이 청소년기에만 국한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한정적인 수강 신청의 자리와 곧 다가올 기말고사의 성적표 역시 규모의 차이만 있을 뿐 본질은 다르지 않다. 졸업 이후 맞이할 취업의 문턱과 '내 집 마련'의 꿈 역시 마찬가지다. 여생을 끔찍한 수능의 망령에 시달려야 하는 것이 ‘찬란한’ 자유 시장의 현실이다.

결국 모두가 불행해지는 ‘죽기 살기 게임 [zero-sum game]’에서 도대체 누구를 위한 경쟁을 하는 건지 되묻고 싶다. 누군가 실수하거나 실패하기를 바라야 하는 사회 구조는 지옥이다. 현상이 최선이라면 잔인하기 짝이 없고, 어쩔 수 없다면 무책임하다. 우리는 이런 사회에서 서로의 수능 대박을 진심으로 응원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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