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제67주년 명대신문 백마문화상 - 고등생물 (시 부문 당선작) 〈1096호(종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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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제67주년 명대신문 백마문화상 - 고등생물 (시 부문 당선작) 〈1096호(종강호)〉
  • 송유현 학생 (명지대학교 문예창작학과)
  • 승인 2021.11.28 13: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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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생물

 

건물에서 뛰어내리다가

그런데 사람들이 나를 점점 좋아하게 되면 어떡해?

생각했다 주말에 나는 친구에게 귀걸이를 만들어줬다

그걸 잃어버렸다는 말을 들어야겠다

또 주고 싶으니까 나는 나무 위로 착지했다

뼈와 나뭇가지가 바뀌었다 의사는

어느 쪽이 자랄지 궁금하다고 했다

 

종합상가 벽에 손을 얹고 걷는다

뭐든 악세서리가 될 수 있다

익숙한 얼굴들이 창가에 널려있다

 

집으로 돌아와 재료를 맞추어보면

어울리는 것은 하나도 없다

창밖에서 나무가 풀썩 내려앉는다

망해라 망해버려라 할 때마다

뼈가 자란다 병원에서는

샹들리에를 보고 천사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만났다

진액은 하얗게 굳는다

공터에서만 사람들은 기도했다

 

친구는 귀걸이를 잃어버리지 않은 척 한다

하얀 가지에 걸려있는 걸 보았는데도

기어코 아니라고 답하는 각목 같은 무릎

건물이 높아져서 뛰어내리기 좋았다

다리를 질질 끌고 돌아오는 날은

자꾸만 주머니에 구멍이 났다

 

 

<2021 67주년 명대신문 시 부문 수상소감>

 

송유현 학생(명지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송유현 학생(명지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소감문을 쓸 일이 있을 때마다 한껏 딴청을 피웠습니다. 길게 직접적으로 말할수록 망할 확률이 높아지는 것 같아서, 되도록이면 말을 줄이고 돌아가는 전략을 취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쓰겠습니다.

연초에 산책을 하다가 딱따구리를 마주쳤습니다. 그가 부리로 나무를 쪼는 소리는 도무지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 그곳에 있던 모두가 멈춰서서 두리번거리고 있었습니다.

이외에도 방에서 기르는 몬스테라가 새로 찢어진 잎을 펼친 것, 고작 두 번 만났을 뿐인 고양이가 무릎에 앉아 점잖게 졸아준 것이 기뻤습니다.

최근에는 친구들을 만나 시간을 보내는 것이 특히 즐겁습니다. 밥을 먹고 음료를 마시고 잘 모르는 동네를 돌아다닐 뿐이지만요. 잔뜩 재롱을 떨어서라도 그들을 웃게 하고 싶습니다.

수줍어 이름을 나열하지는 못하지만, 저는 가까운 친구가 얼마 없으므로 그들은 분명 알아차리게 되리라 생각합니다.

생일이 돌아오고 있습니다. 내년에는 스물이 됩니다.

 

<2021 67주년 명대신문 시 부문 심사평>

남진우 교수 (명지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남진우 교수 (명지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김언 객원 교수 (명지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김언 객원 교수 (명지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올해 백마문화상 시 부문 심사에서, 논의 끝에 고등생물2편을 당선작으로, 물의 뼈2편을 가작으로 선정했다. 먼저 물의 뼈2편은 라는 이질적이면서 상징적인 의미가 다분한 시어를 결합하여 물의 뼈라는 새로운 이미지를 창출하는 안목이 눈에 띈다. 인체를 구성하는 뼈가 그보다 더 근원적인 사물인 물의 성격과 뒤섞이면서 어떤 기원을 탐색하는 시적 인식으로 나아가고 있는 점도 인상적이었다. 차분하고 안정된 화법도 장점으로 읽혔는데, 다만 구체적인 정황을 담보하면서 시상이 전개되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시에 등장하는 사물이 상징적인 차원에만 머물면 시상이 막연해지기 쉽다. 자신의 구체적인 경험에서 비롯되는 구체적인 정황이 동반되어야 막연한 상징성에 머물지 않는 시가 될 수 있음을 짚어둔다.

당선작인 고등생물2편은 환상적인 서사가 담백한 어조에 실려서 나오는 점이 인상적이다. “나는 나무 위로 착지했다/ 뼈와 나뭇가지가 바뀌었다 의사는/ 어느 쪽이 자랄지 궁금하다고 했다는 대목에서 확인되듯, 소박한 문장으로 현실과 비현실을 오가는 장면을 구체적으로 포착하고 연출하는 솜씨가 예사롭지 않았다. 응모작 전편에 걸쳐 딱히 사족이라고 할 만한 구석 없이, 깔끔하게 한 편의 완성작을 도출해내는 역량도 신뢰감을 주었다. 환상에서 가장 빛나는 지점은 현실에서 가장 어두운 지점과 역상으로 연결되며, 현실의 어두운 지점은 사실상 시적 주체의 결손된 내면에서 비롯된다. 이 점을 인식하고서 이상하게 눈부시면서도 이상하게 아프게 읽히는 환상시의 매력을 더 날카롭게 벼려 나가기를 바란다. 당선작과 가작으로 뽑힌 두 분께 축하와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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