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관객 품으로, 2021 부산국제영화제 〈109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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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관객 품으로, 2021 부산국제영화제 〈1094호〉
  • 민보민 기자
  • 승인 2021.11.01 10: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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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찬 바람이 불어올 때쯤 부산에서는 전 세계 영화인들을 위한 축제가 시작된다. 1996년 9월 13 일 제1회를 시작으로 어느덧 25년이 지나 26회째를 맞이한 부산국제영화제는 코로나19로 축소됐던 작년과 달리 관객과 함께하는 행사로 우리 곁에 돌아왔다. 지난달 6일부터 15일까지 진행된 제26회 부산국제영화제는 2년 만에 열리는 대면 행사인 만큼 그 기대와 관심은 상당했다. 팬데믹 속에 막을 올린 대규모 문화행사라는 점에서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지만, 관객과 영화인들 모두의 간절함이 통한 듯 큰 사고 없이 성황리에 막을 내린 부산국제영화제를 살펴보자.

 

오랜 기다림, 다시 찾아온 개막식

지난달 6일 오후 6시, 2년의 기다림 끝에 부산 영화의전당에서 개막식의 꽃이라고 불리는 레드카펫 행사가 시작됐다. 코로나19로 인해 제한된 인원만 참석해 이전 행사와 같은 관객들의 열띤 환호 소리를 들을 수 없었지만, 개막식에 참석한 영화인들은 밝은 얼굴로 그 위를 걸으며 오랜만에 관객들과 인사를 나눴다.

개막식의 첫 순서로 한국영화공로상 시상이 진행됐다. 수상자는 지난 5월 세상을 떠난 영화인회의 이사장 故 이춘연 씨였으며, 그의 아들 이용진 씨가 대신 수상했다. 이어 아시아영화인상 시상이 진행됐으며, 60여 년간 102편의 영화를 연출한 임권택 감독이 수상했다. 시상 이후 부산국제영화제 허문영 집행위원장(이하 허 집행위원장)의 심사위원 소개가 진행됐으며, 베를린국제영화제포럼 위원장이자 뉴 커런츠* 심사위원인 크리스티나 노르트가 개막 인사를 전했다.

이번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는 임상수 감독의 장편 신작이자 2020년 칸영화제 공식 부문 초정작이었던 <행복한 나라로>가 선정됐다. 허 집행 위원장은 “여러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와 임상수 감독의 성숙한 연출을 엿볼 수 있는 작품”이라며 “우 연히 길에서 만난 두 남자가 인생의 마지막 행복을 찾기 위해 특별한 여행을 함께 떠나는 유쾌하면서도 서정적인 로드무비”라고 소개했다. 임상수 감독은 “이 영화는 팬데믹이 있기 전에 찍었다. 1년 동안 전국 방방 곳곳을 같이 돌아다니며 고생했던 스태프들을 생각해본다. 부디 즐거운 밤 되길 바란다”라며 선정 소감을 전했다. 이후 박형준 부산시장의 개막선언과 가수 한대수의 축하 공연을 마지막으로 개막식은 끝을 맺었다.

* 뉴 커런츠: 아시아의 재능 있는 신인 감독 발굴 및 격려의 의미로 아시아 영화 경쟁부문 중 하나로 신인 감독들의 첫 번째 혹은 두 번째 장편영화 중에서 두 편을 선정 하여 각각 3만 달러의 상금을 수여한다.
 

故 이춘연, 당신을 기억합니다

개막 2일째인 지난달 7일, 지난 5월 세상을 떠난 故 이춘연 씨를 기리기 위해 이춘연의 밤을 열고 추모집 『모두를 위한 한 사람, 이춘연』을 헌정하는 추모 행사가 비공개로 진행됐다.

故 이춘연 씨는 한국영화계의 큰 형으로 불렸던 인물이다. 그는 1990년대 후반 한국 영화가 신구세대로 나뉘어 갈등할 때 신세대 영화인들의 대표로서 앞장섰다. 또한, 그는 △스태프 처우 개선 △독과점 해소 문제 △표현의 자유와 블랙리스트 △부산 국제영화제 사태* 등 한국 영화의 모든 이슈에 대한 공적 논의와 실제적인 노력의 중심에서 문제를 해결하며 한국 영화의 변화와 발전을 이끌었다.

추모 행사에서 故 이춘연 씨의 대학 동기였던 김유진 감독은 프로듀서나 제작자를 응원하는 ‘이춘연 상’ 제정을 제안했다. 부산영화제 측은 이를 수렴해 ‘이춘연영화상’을 제정했으며, 내년 영화제부터 매년 한국 영화의 발전에 크게 공헌한 제작자, 프로듀서에게 수여하기로 했다.

* 부산국제영화제 사태: 부산국제영화제 조직위원장이자 부산시장이었던 서병수가 ‘정치적 중립성의 훼손’을 이유로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알리고자 만든 다큐멘터리 <다이빙벨>의 상영 선정 중단을 요청했지만, 부산국제영화제는 <다이빙벨> 상영을 진행했다. 이후 부산시가 부산국제영화제의 예산을 절반으로 삭감하고, 감사원 감시와 함께 상영 책임자인 이용관 전 집행위원장에 대해 검찰 고발 및 기소를 진행하면서 예술계 탄압을 시도한 사건이다.
 

영화제에 찾아온 드라마

이번 부산국제영화제는 아시아 최초로 ‘온 스크린(On screen)’ 섹션을 신설했다. 온 스크린은 온라인 동영상 스트리밍 플랫폼(Over the Top, 이하 OTT)에서 방영될 화제의 드라마 시리즈를 상영하는 섹션이다.

부산국제영화제는 온 스크린 섹션 신설로 전통적인 극장 개봉작뿐만 아니라 OTT 시리즈물까지 포괄하게 되면서, 오늘날 애호의 폭이 넓어지고 있는 관객들에게 보다 다양하고 좋은 작품들을 선보일 수 있게 됐다. 첫 해를 맞아 신중하고 엄정한 선정을 거쳐 확정된 올해 온 스크린 섹션 초청작은 △연상호 감독의 <지옥> △김진민 감독의 <마이 네임 > △아누차 분야와타나 감독과 조쉬 킴 감독의 합작 <포비든> 세 편이다. <지옥>과 <마이 네임>은 넷플릭스 시리즈, <포비든>은 HBO ASIA의 오리지널 드라마 시리즈다.

▲사진은 연상호 감독의 '지옥'  스틸컷이다. (출처/ 부산국제영화제)
▲사진은 연상호 감독의 '지옥'  스틸컷이다. (출처/ 부산국제영화제)

인기 웹툰을 원작으로 한 <지옥>은 기이한 존재가 사람들에게 지옥행 선고를 내리는 초자연적인 현상이 벌어지고, 이 혼란을 틈타 부흥한 종교단체 새진리회와 그에 맞서 사건의 실체를 밝히려는 사람들이 서로 얽히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매 작품 마다 탄탄한 스토리와 신선한 소재로 관객들을 장르적인 쾌감에 이르게 한다고 평가받는 연상호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배우 유아인, 박정민, 김현주 등이 출연했으며 총 6부작 중 3부작이 상영됐고, 토론토국제영화제에 이어 두 번째로 상영되는 아시아 프리미어* 작이다.

* 아시아 프리미어: 아시아 최초로 상영되는 작품을 말한다.

 

▲사진은 김진민 감독의 '마이 네임' 스틸컷이다. (출처/ 부산국제영화제)
▲사진은 김진민 감독의 '마이 네임' 스틸컷이다. (출처/ 부산국제영화제)

<마이 네임>은 영화 애호가들뿐만 아니라 영화 산업 관계자들까지도 충격과 놀라움에 빠뜨렸던 넷플릭스 시리즈 <인간수업>의 김진민 감독의 작품이다. 여성 서사를 중심으로 한 강렬하고 매혹적인 액션 느와르로, 아버지의 죽음에 얽힌 비밀을 밝히기 위해 경찰에 잠입한 주인공의 냉혹한 진실과 복수를 그렸다. 배우 한소희, 박희순, 안보현, 김상호, 이학주, 장률 등이 출연했으며 8부작 중 3부 작만 상영됐고, 월드 프리미어* 작이다.

* 월드 프리미어: 전 세계적으로 최초 상영되는 작품을 말한다.

 

▲사진은 아누차 분야와타나 감독과 조쉬 킴 감독의 합작 '포비든' 스틸컷이다. (출처/ 부산국제영화제)
▲사진은 아누차 분야와타나 감독과 조쉬 킴 감독의 합작 '포비든' 스틸컷이다. (출처/ 부산국제영화제)

마지막으로 영화 <포비든>은 태국 출신의 아누차 분야와타나 감독과 한국계 미국인인 조쉬 킴 감독이 공동 연출을 맡았다. 부산국제영화제에서는 아누차 분야와타나 감독이 연출한 에피소드가 상영됐으며, 아버지의 장례식을 위해 방콕에서 멀리 떨어진 산골마을로 향하는 네 친구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이번 작품은 태국 내 라이징 스타들이 대거 등장해 반전을 거듭하는 극강의 공포를 선사했 으며, 8부작 중 2부작만 상영된 월드 프리미어 작이다.

부산국제영화제 측은 “확장되는 영화산업의 현주소를 반영한 부산국제영화제의 온 스크린 섹션은 확장된 흐름과 가치를 포용하고 관객들에게 다양한 선택지를 제공했으며 영화의 또 다른 전망을 위한 도약이 될 것이다”라고 기대감을 내비쳤다.

 

내 집 앞이 영화관으로

▲사진은 부산 수영구 광안리해수욕장에서 ‘동네방네비프’가 진행되는 모습이다. (출처/ 부산국제영화제)
▲사진은 부산 수영구 광안리해수욕장에서 ‘동네방네비프’가 진행되는 모습이다. (출처/ 부산국제영화제)

이에 더해 제26회 부산국제영화제는 영화제 섹션을 부산 전역으로 확대해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생활밀착형 프로그램 ‘동네방네비프’를 선보였다. 부산의 생활상과 정서를 보여주는 관광 명소와 거점 공간 중 역사성과 상징성, 접근성과 수용성을 고려하여 최종적으로 선정한 14개 구 · 군에 스크린을 설치해 도시 전체가 영화제 행사장이 됐다.

<벌새>, <찬실이는 복도 많지>, <남매의 여름밤>, <빛나는 순간>, <나는보리>, <족구왕> 등 과거 부산 국제영화제를 통해 처음 공개된 한국 영화 화제작부터 칸 황금종려상에 빛나는 디지털 복원작 <쉘 부르의 우산>, <다시 만난 날들> 등 음악영화, <빛 나는>, <교실 안의 야크>처럼 극장에서 만나기 힘든 아시아 영화, 부산 배경의 가슴 뜨거운 실화 <허스 토리>, 애니메이션, 액션 활극, 가족영화 등 다양한 관객 취향을 고려한 장르 영화도 상영했다.

윤재현(23) 씨는 “영화관이 아닌 다른 곳에서 영화를 볼 수 있는 색다른 경험이었다”라며 “다만 영화 소리와 차량 소리가 겹쳐 들리는 것이 아쉬웠다”라고 소감을 전했다. 이에 대해 강정룡 부산국제영화제 대외사업실장은 관객들에게 “보통 야외에서 영화를 상영하면 주변 교통을 통제한다. 실제로 경찰 등 당국과 상의도 했다”라면서 “조용한 환경에서 상영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일대 교통을 통제하면 상당히 많은 분들께 불편을 끼칠 것 같았다. 미리 양해를 구한다”라고 설명했다.

부산대 영화연구소 문관규 연구소장은 부산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동네방네비프는 상영 공간의 확산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라며 “상영작을 선정할 때 다대포에서 촬영한 영화를 다대포에서 상영한다든지 그 동네 출신 배우가 나온 영화를 상영하는 등 상영작 선정을 세심하게 하면 더 좋을것 같다”라고 덧붙였다.

 

잇따른 지연, 미흡한 진행

제26회 부산국제영화제는 코로나19로 영화산업의 변화가 진행되면서 새로운 시도를 했지만, 가장 기초적인 부분에서 실수가 연달아 발생했다. 지난달 9일 부산 영화의전당 하늘연극장에서는 <수베 니어: 파트Ⅰ> 상영이 예정되어 있었는데, 20여 분간 화면이 나오지 않아 상영이 지연됐다. 영상 사고는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지난달 11일에는 부산 해운대구 소향씨어터에서는 영화 <라스트 나잇 인 소호>가 상영 시작 2분 만에 자막 문제와 영상이 끊기는 등 갑자기 상영이 중단됐고 50여 분이나 지연 됐다. 이에 대해 영화제 측은 동영상 디지털 포맷 (DCP)과 컴퓨터 간 충돌로 발생한 사고였다며 티켓을 전액 환불처리 했다. 그러나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프렌치 디스패치>의 상영이 10여 분간 지연 되면서 관객들의 불만은 점차 커졌다.

상영 지연 문제와 더불어 영화제 측의 일방적인 취소와 통보도 계속됐다. 레오 카락스 감독의 <아 네트> 기자회견과 관객과의 대화(GV)가 하루 전날 돌연 취소됐으며, 영화제 측은 관객들에게 아무런 설명 없이 일방적으로 취소를 통보했다. 이에 불만이 쏟아지자 영화제 측은 그제야 프랑스 현지 공항 일정 차질로 인해 취소하게 됐다고 해명했다. 뿐만 아니라 영화 <푸른호수>는 화상 기자회견은 시작 15분 전에 취소됐다.

이에 대해 부산국제영화제 측은 “영사사고는 매년 5~6건 일어나는 일이기는 하지만 2년 만에 행사를 재개했고 방역을 비롯해 챙겨야 할 부분이 늘어 나면서 잘 챙기지 못한 부분은 아쉽게 생각한다”라면서 “폐막까지 영사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철저히 준비하겠다”라고 전했다.

 

아쉬운 안녕

지난달 15일 제26회 부산국제영화제는 폐막식을 끝으로 내년을 기약했다. 폐막식은 △플래시 포워드 관객상 △비프메세나상 △뉴 커런츠상 등 주요 7개 부문 시상이 진행됐고, <안녕, 내 고향>의 왕얼저우 감독과 <같은 속옷을 입은 두 여자>의 김세인 감독이 부산국제영화제의 꽃인 뉴 커런츠 상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같은 속옷을 입은 두 여자>로 부산국제영화제에서만 5관왕에 오른 김세인 감독은 폐막식에서 “짧은 시간 동안 많은 분량을 찍었어야 했는데 다들 열심히 해주셔서 감사하다”라며 “앞으로 어떤 일이 있어도 흔들리지 않고 단단히 글을 계속 쓰겠다”라고 수상소감을 전했다.

폐막작으로는 1980~1990년대 홍콩의 전설적인 가수이자 배우인 매염방이 생계를 위해 무대에 서야 했던 어린 시절부터 가수로 성공하고 영화계에 입지를 굳힌 뒤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순차적으로 담은 렁록만 감독의 <매염방>이 선정됐으며, 폐막 선언과 함께 부산국제영화제의 전통인 자원봉사자 헌정 영상으로 제26회 부산국제영화제는 막을 내렸다.

부산국제영화제를 관람한 황수연(23) 씨는 “황금종려상을 받은 영화 <티탄>이 가장 인상 깊었다” 라며 “바디 호러물에 기괴한 성적 욕망 등이 하루 종일 감탄을 자아내게 만들었다. 이번 부산국제영 화제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된 만큼 내년에 있을 제 27회 부산국제영화제도 기대된다”라고 관람 소감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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