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이 선진국? 장애인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109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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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이 선진국? 장애인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1093호〉
  • 박새롬 기자
  • 승인 2021.10.11 10: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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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속 불편함

① 진입조차 쉽지 않은 ATM기기, 보이지 않는 화면

누구나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ATM기기. 하지만 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기기가 높아 화면이 제대로 보이지 않거나, 장애인용 ATM기기라고 해도 휠체어를 사용하기에는 하부 공간이 여전히 좁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ATM기기에 진입부터 어렵다는 것이다. 경사로가 없거나 ATM부스 면적이 좁은 경우, 장애인들은 이용 자체를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고 한다.

② TV로 볼 수 있는 건 뉴스뿐

청각장애인은 TV 앞에 앉아 채널을 돌리며 드라마를 볼지 예능을 볼지 선택하는 일상을 기대하기 힘들다. 모든 프로그램이 수어로 통역되지 않아 청각장애인이 볼수 있는 프로그램은 고작 뉴스 정도이기 때문이다. 장애인들에게는 방송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조차 부여될 수 없는 것이었다.

③ 재난 대응, 장애인은 어떻게?

건물이 흔들리고 물건이 떨어지는 지진 공포 속에서 장애인들은 그저 방안에 웅크리고 있을 수밖에 없다. 어떻게 대피해야 하는지 장애인을 위한 매뉴얼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현재 정부에서 나온 재난 행동 지침은 대부분 비장애인을 기준으로 작성되어 있다. 지진 발생시 엘리베이터를 타면 안 되는데 휠체어 탄 장애인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기 어렵다. 재난 대응 시설 또한 미흡하다. 사이렌 소리를 들을 수 없는 청각장애인은 시각 경보기가 필요하지만 설치된 곳이 매우 적다. 대피소 중에는 경사로가 없어 휠체어 출입이 어렵거나, 시각장애인을 위한 점자블록이 없는 곳이 많다. 언제 어떻게 발생할지 모르는 재난. 제대로 된 대응책 없이는 장애인은 속수무책이다.

 

장애인 편의시설도, 인식 교육도 부족했다

장애인들은 그들을 위한 편의시설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아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20 장애인실태조사결과’에 따르면, 교통수단 이용 시 장애인의 39.8%가 어려움을 느끼는 것으로 나타나 2017년에 비해 약 3.1% 증가한 것으로 밝혀졌다. 교통수단 이용이 어려운 이유는 △버스 · 택시가 불편해서(52.6%), △장애인 콜택시 등 전용 교통수단 부족(17.4%) △지하철 편의시설 부족(12.1%)의 순으로 높았다.

▲장애인 교통수단 이용 시 어려움 여부 및 이유를 나타낸 그래프 다. (출처/ 보건복지부)

문화 체육 시설에서도 장애인을 위한 편의시설이 매우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보건복지부와 한국장애인 개발원이 발표한 「2017년도 장애인차별금지법 이행 모니터링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문화 · 예술 · 체육시설 (기관 등) 809곳을 방문한 결과 티켓 구입 시 편의가 제공되지 않는 곳이 92%, 시각장애인을 위한 화면 해설과 청각장애인을 위한 한글 자막 서비스가 제공되지 않는 곳은 각각 87.8%, 77.2%였으며, 장애인 관람석이 없는 곳은 56%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렇듯 장애인은 문화생활도 제대로 보장받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문화 · 예술 · 체육시설의 장애인 편의 실태를 나타낸 그래프다.(출처/ 2017년도 장애인차별금지법 이행 모니터링 연구 보고서)

장애인 편의시설과 더불어 장애인에 대한 인식 개선 교육 역시 제대로 이행되고 있지 않은 실정이다. 더불어 민주당 최혜영 의원실의 ‘장애인식개선교육 실시 현황 (2020)’에 따르면, 국회의원 300명 중 장애인식개선교육에 참여한 의원은 2016년에 4명(1.33%), 2017년에는 1명 (0.34%)이었고, 2018년과 2019년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이수율이 0%로 의무교육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다. 또한 2019년 기준 국가기관은 2,449곳 중 1,241곳만 교육을 진행해 절반이 교육 의무를 지키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장애인식개선교육은 대면으로 실시하기보다는 인터넷과 동영상을 활용한 온라인 교육의 비중이 점점 커지고 있기 때문에 교육 이행률도 낮을 뿐더러 교육의 질 또한 담보하기 어려워 보인다.

지난해 말 기준, 우리나라 등록 장애인은 263만 3,000명으로 전체 인구의 5.1% 수준이었다. 2019년 말(261만 8,000명) 대비 약 1만 4000명 증가했으며, 지난해 새로 등록한 장애인은 총 8만 3,000명이다. 장애인의 수는 점점 늘어나는 추세이지만, 장애인을 위한 편의시설은 물론이며 인식 개선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이다.

 

코로나19 속 장애인 어려움은 더 극대화 돼

코로나19가 대유행하면서 장애인들의 생활 속 어려움은 더 극대화 됐다. 보건복지부의 '2020 장애인 실태 조사'에 따르면, 코로나19로 인해 장애인이 경험한 가장 큰 어려움은 △외출 △정서적 안정 △경제활동 △의료 이용 순으로 나타났다. 코로나19가 전 세계적으로 유행 하면서 마스크는 이제 일상이 되었다. 마스크는 전염병을 막기 위한 가장 효율적인 도구지만 사람들의 입 모양을 읽으며 소통하는 청각장애인에게 마스크는 재앙과도 같았다. 마스크로 입을 가리는 것은 청각장애인들에게는 소통의 벽이 되었으며, 소통의 문제는 단순히 ‘불편함’의 문제가 아닌 청각장애인의 생존권 문제였기 때문이다. 지금은 투명막이 있는 마스크도 나오고 투명 안면보호 마스크도 나왔지만 그들이 겪는 불편함을 완전히 해결해주지는 못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시각장애인에게 코로나19는 불청객과도 다름없었다. 세균 감염 방지를 위해 엘리베이터나 여러 시설물에 붙는 향균 필름은 시각장애인들이 점자를 읽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점자를 읽기 위해서는 남들이 만진 부분을 전부 만질 수밖에 없게 되었고, 이는 시각장애인들을 감염에 더 취약하게 만들었다. 경증 시각장애인 이영애씨는 코로나로 인해 다중이용시설에 들어갈 때도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는 경인일보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QR코드가 잘 보이지 않아 직원에게 애기하면 ‘그럼 명부 쓰세요’라는 대답이 돌아와요. 잘 안 보여서 도와달라고 하면 ‘그럼 안경 쓰세요’라는 대답이 돌아옵니다”라고 말했다.

코로나19로 인해 시작된 ‘고강도 사회적 거리두기’ 실천은 장애인 당사자와 그 가족들의 삶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지난해 4월 전국장애인부모연대 설문조사에 따르면, 돌봄 스트레스로 인해 건강에 문제를 나타내는 부모가 73.7%, 코로나19로 인해 고립 스트레스에 따른 행동을 표출하는 발달 장애 자녀가 87.8%인 것으로 나타 났다. 장애인복지관이나 장애인단체 사업 이용이 어렵게 되면서 발달 장애인들은 집에서만 생활하는 시간이더 많아졌기 때문이다.

 

장애로부터 자유로운 세상 만들기, 배리어프리 (Barrier Free) 운동

장애인 수는 점점 늘어나는데, 이들의 일상 속 불편함은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그래서 장애인 들의 권리를 찾기 위한 ‘배리어프리(barrier free)’ 운동이 등장했다. ‘배리어프리’는 1974년 국제연합(UN) 장애인생활환경전문가회의에서「장벽 없는 건축 설계 (barrier free design)」보고서가 발표된 이후 생긴 개념으로, 장애인들도 편하게 살아갈 수 있는 도시를 만들기 위해 물리적 · 제도적 장벽을 허물자는 운동이다. 해당 보고서가 발간된 이후로 세계 각국에서는 휠체어를 탄 고령자나 장애인도 비장애인과 다름없이 지낼 수있도록 ‘문턱’을 없애자는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도 장애인의 권리를 보호하고 장애인도 비장애인처럼 편하게 일상생활을 할 수 있도록 배 리어프리 디자인을 도입하고 있다. 우리 일상 속 배리어 프리의 사례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앞서 살펴보았듯, 장애인은 교통시설에서 큰 불편함을 겪고 있다. 정부와 지자체는 장애인이 쉽게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도록 버스와 지하철부터 배리어프리를 시행하고 있다. 버스는 바닥이 낮고 출입구에 계단이 없는 ‘저상버스’를 도입하면서 장애인의 이용 어려움을 줄여나가고 있다. 저상버스에는 경사판이 장착되어 있어 휠체어를 타고서도 버스에 탑승할 수 있다.

▲저상버스 출입구에 계단이 없는 모습이다.
▲저상버스 출입구에 계단이 없는 모습이다.

2018년 기준 전국 저상버스 보급률은 약 25%이며, 국토교통부는 2022년까지 보급률을 40%까지 올릴 계획이라 밝혔다. 서울시는 2025년까지 모든 시내버스를 저상버스로 교체할 예정이다.

지하철은 ‘엘리베이터’ 설치로 장애인의 이동을 돕고 있다. 기존의 휠체어 리프트가 사고 위험성이 높아 엘리베이터 설치가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2022년까지 서울 시내 모든 역에 엘리베이터가 설치될 예정이다.

배리어프리는 영화나 드라마에도 적용되고 있다. 기존의 영화나 드라마 장면을 설명해주는 음성해설과 화자 및 대사, 음악, 소리 정보를 알려주는 배리어프리 자막을 넣어 모든 사람이 함께 즐길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OTT 플랫폼 넷플릭스에서 그 예를 볼 수 있다.

 

▲넷플릭스 ‘갯마을 차차차’ 장면 중 일부다. (출처/ 넷플릭스)
▲넷플릭스 ‘갯마을 차차차’ 장면 중 일부다. (출처/ 넷플릭스)

 

넷플릭스의 자막 서비스는 청각장애인들이 그동안은 시청하기 불편했던 드라마를 편히 감상할 수 있게 만들었고, 현재는 비장애인들도 많이 이용하는 서비스 중 하나이다.

시각장애인을 위한 배리어프리 영화도 등장했다. 지난해 국립극단 온라인 극작 연극 <스카팽>은 시각장애 인을 위한 음성해설을 도입했다. 무대에 등장하는 인물 들의 표정, 행동, 자막 등의 시각적 정보와 유추할 수 없는 청각적 정보를 음성으로 설명을 제공하는 것이다.

 

▲화면 해설이 제공된 연극 ‘스카팽’ (출처/ 유튜브 채널 '국립 극단')
▲화면 해설이 제공된 연극 ‘스카팽’ (출처/ 유튜브 채널 '국립 극단')

 

미국 IT 기업 애플은 지난 5월 20일 실시간 수화통역 서비스 ‘SignTime’을 새롭게 출시했다. SignTime은 △ 미국 △영국 △프랑스 내 고객이 웹브라우저를 통해 각나라에 맞는 수어를 사용해 AppleCare 및 리테일 고객 지원서와 상담할 수 있는 서비스다. 하반기 업데이트를 통해 △운동능력 △시각 △청각 △인지능력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위해 설계한 소프트웨어를 선보일 계획이라고 밝혔다.

 

▲애플의 SignTime 서비스 (출처/ 애플 공식 홈페이지)
▲애플의 SignTime 서비스 (출처/ 애플 공식 홈페이지)

 

장애인의 ‘보통의 삶’을 위한 탈시설화

이렇게 배리어프리를 통해 장애인의 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한 움직임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장애인 시설로부터 벗어나자는 탈시설화 운동 또한 일어나고 있다. 지난해 12월, 세계 인권의 날을 맞아 더불어민주당 최혜영 의원(이하 최 의원) 등 68인의 국회의원이 「장애인 탈시설 지원 등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했다. ‘탈시설’이란 장애인 시설에서 거주하는 장애인이 시설에서 나와 지역사회에 통합되어 개인별 주택에서 자립을 위한 서비스를 제공받으며 자율적으로 살아가는 것을 의미한다. 단순히 장애인이 시설에서 지역사회라는 물리적 공간으로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사회 공동체의 구성 원으로 보통의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이러한 탈시설화가 우리 사회에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장애인에 대한 시설보호는 장애인을 지역사회로부터 분리시키며 획일화되고 집단적인 생활을 강요하여 장애인의 선택권, 자기결정권 등 기본적인 권리가 보장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있어왔다. 거주 시설에 거주하는 장애인의 경우, △오랫동안 지역사회와 단절되는 현상 △ 생활보다는 통제에 초점을 맞춘 일부 시설의 운영 방식 △집단생활에 따라 개인의 주도성이 없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 등에 따라 전문가 및 시설에 대한 의존 현상이나 무기력 등의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또한 보건복지부와 장애인권익옹호기관이 장애인 학대 신고 사례를 분석한 「2019년 전국 장애인 학대 현황보고서」에 따르면, 학대 사례 945건 중 21%인 198건이 장애인 거주 시설 종사자에 의한 학대 사건인 것으로 밝혀졌다. 즉, 장애인을 학대한 사람 10명 중 2명 이상은 장애인 거주 시설 종사자인 것이다. 해당 보고서는 많은 학대가 장애인 거주 시설에서 발생한 점에 주목하며, 시설 학대를 예방하기 위한 근본적 대안은 ‘탈시설-자립 지원’체계 구축 이라고 짚었다. 최 의원은 법안 발의 기자회견에서 “너무나 오랜 시간 동안 ‘보호’라는 명분 아래 장애인의 시설에서의 삶을 묵인해온 것은 사실”이라며 “탈시설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선택의 문제가 아닌, ‘권리’ 그 자체”라고 말하며 탈시설화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인권’, 인간으로서 당연히 가지는 기본적 권리다. 하지만 21세기가 된 지금, 그 인권은 장애인에게는 여전히 제대로 부여되지 않고 있다. 이러한 현실은 어쩌면 장애인들을 스스로 더 움츠리게 만들고 불완전한 존재로 인식하게 만들었던 것은 아닐지. 이제는 장애인들 또한 더넓은 세상에서 만개할 수 있도록 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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