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 아이가 살고 있다 〈109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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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에 아이가 살고 있다 〈1092호〉
  • 민보민 기자
  • 승인 2021.09.27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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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어떤 아이를 품고 계신가요

 

우리 마음속에는 어린아이가 살고 있다. 이 아이는 꽤 오래전부터 우리 마음속에서 도움을 요청했다. 상처와 무시, 폭력 등으로 뒤덮여 존재를 잘 드러내지 않아 트라우마로 인지되기도 하지만, 트라우마와 달리 하나의 독립된 인격체처럼 존재해 우리의 전체적인 감정과 행동에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이처럼 한 개인의 인생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주는 이 아이를 우리는 내면아이(inner child)라고 부른다.

 

상처받고 버려진 아이

내면아이란 한 개인의 정신 속에 있는 아이의 모습으로 어린 시절부터 지속적인 영향을 주는 존재이다. 어른으로 성장했지만, 내면에 존재하는 어린 아이의 모습이 현재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내면아이는 내면 안의 아이(child within)’, ‘신성한 아이(the divine child)’, ‘잊혀진 아이들(the forgotten children)’ 등 여러 가지 명칭으로 불리며 대개 ‘상처받은’ 또는 ‘버려진’이라는 수식어를 동반한다.

내면아이 치료전문가 존 브레드쇼는 내면아이를 긍정적인 아이와 부정적인 아이로 구분했다. 긍정적인 아이는 밝고 자발적이고 창의적인 반면 부정적인 아이는 억압과 방어로 감정과 지적인 성장을 거부한다고 분석했으며, 부정적인 아이를 상처받은 내면아이라고 정의했다. 그는 △개방성과 신뢰의 실종 △신체 및 정서 학대 △올바른 양육의 결여 △의존성 증가 △호기심 억압 등으로 인해 상처받은 내면아이가 형성된다고 밝혔다.

우리 대학 학생상담센터 강명희 연구원(이하 강 연구원)은 “내면아이의 상처는 유년기 경험에 따라, 발달과정에서 겪은 결핍이 무엇인지에 따라, 기질과 환경의 상호작용으로 비슷한 경험을 했다고 할지라도 누가 경험했는가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다”라고 전했다.

세명대학교 정갑임 강사의 「우리 안의 ‘아이’라는 자원」에 따르면 상처 받은 내면아이가 형성되는 가장 큰 원인은 ‘자기다움 거부’이다. 신체적, 정서적 폭력이나 폭력에 준하는 삶 속에서 어린아이들은 방치되거나 학대받는 동안에 자신의 본연의 모습으로 남아있을 수 없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생존전략이자 방어기제로 거짓 자아를 만든다. 이때 형성된 거짓 자아는 진정한 자기에 대한 의식을 점차 잠식 시켜 자신이 정말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자신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인지할 수 없게 만들어 내적 방황을 증폭시킨다. 또한, 상처받은 내면아이가 본래의 모습이라고 착각해 성인이 되었을 때 자신의 삶을 왜곡하고, 특정 상황에 △열등감 △분노 △우울 △불안 △죄책감 등의 감정을 폭발적으로 표출한다. 생존과 방어 전략으로 만들어진 거짓 자아가 마치 자신의 진정한 모습인 양 착각 속으로 빠져 들어 특정한 상황에 예민하게 반응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아이로 남겨진 성인

이러한 상처받은 내면아이를 치유하지 못한 채 어린 시절의 해결되지 않은 문제와 상처를 안고 있는 성인을 성인아이(adult child)라고 부른다.

성인아이는 알코올 중독자 가정에서 성장한 성인이라는 용어에서 시작됐다. 연구자들은 공통적으로 성인이 된 이후에도 어린 시절의 욕구를 해결하기 위해 정신적, 사회적으로 미숙한 모습을 보인다고 말한다. 한편으로는 피터팬 증후군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성인아이는 피터팬 증후군과 전혀 다르다.

논문 「우리 안의 ‘아이’라는 자원」에 따르면 성인아이는 자신의 진정한 감정에 무감각해지고, 내면아이의 정신적인 상처와 고통을 회피하기 위해 △술 △일 △도박 △섹스 등의 중독에 빠져든다. 강 연구원은 “사람은 일생 동안 보편적인 발달과정을 거치게 되며 각 발달단계에서 충족되어야 할 욕구들이 존재한다”라며 “이때 시기별로 욕구가 충족되지 못하고 미해결된 욕구와 과제를 가진 채 어른이 되면 나의 마음속에서 미처 자라지 못한 내면아이가 자리 잡아 내 삶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게 돼 겉은 어른이지만 상처받은 내면아이를 품은 채 살고 있는 우리는 나의 치유되지 않은 상처들로 인해 대인관계, 가족관계, 정신적 또는 신체적인 증상 등 여러 가지 형태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라고 성인아이의 문제점을 강조했다.

존 브레드쇼는 저서 『상처받은 내면아이 치유』에서 성인아이의 특징을 △상호의존증 △공격적 행동 △자기애성 성격장애 △신뢰의 문제 △친밀감 장애 △사고 왜곡 △공허함 총 7가지로 구분했다.

▲표는 존 브레드쇼가 구분한 성인아이의 특성을 정리한 것이다. (출처/ 「우리 안의 ‘아 이’라는 자원」)
▲표는 존 브레드쇼가 구분한 성인아이의 특성을 정리한 것이다. (출처/ 「우리 안의 ‘아 이’라는 자원」)

 

육아 솔루션 예능프로그램에 위로받는 MZ세대

내면아이 상처 치유 전문가 최희수 교수(이하 최 교수)는 김새해 작가와의 인터뷰에서 “드라마, 영화, 노래 등을 통해 감정을 해소하는 것도 내 감정을 만나는 방법의 하나로서 상처받은 내면아이 치유에 도움이 된다”라고 밝혔다.

최근 상처받은 내면아이를 치유하는 도구의 하나로 MZ세대 사이에서 육아 솔루션 예능프로그램이 인기를 끌고 있다. 채널 A에서 방영 중인 ‘금쪽같은 내 새끼’의 경우 닐슨코리아 수도권 기준 세대별 시청률 집계 결과에 따르면 10대 여성(0.57%)과 20대 남성(0.69%) 시청자가 크게 늘었다. 2040 세대의 시청률이 0.3%대에서 최근 1%대까지 올라갔으며 평균 시청률 3.4% 중에서 30%가량을 차지해 해당 연령대 시청자들로부터 지지를 확대해 나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해당 프로그램들을 시청하는 MZ세대들은 아이의 고민을 해결하고 공감하는 과정에서 어린 시절의 자신에게 위로를 건네받는 효과를 경험하고 있다.

▲사진은 채널 A에서 방영중인 ‘금쪽같은 내 새끼’의 한 장면이다. (출처/ 채널 A)
▲사진은 채널 A에서 방영중인 ‘금쪽같은 내 새끼’의 한 장면이다. (출처/ 채널 A)

시청자 전형빈(22) 씨는 “해당 프로그램을 보며 부모님과의 관계를 돌아볼 수 있었고, 특히 34회에 송출된 ‘태희 지금 잘 하고 있어’라는 오은영 박사의 말이 격려가 필요했던 어린 시절의 나에게 전하는 치유 같아 위로 받는 기분이었다”라고 시청 소감을 전했다. ‘금쪽같은 내 새끼’의 연출 김승훈 PD는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기획 초기부터 아동뿐만 아니라 2049 부모들의 상처까지 살피겠다는 의도는 있었지만, 육아를 하지 않는 젊은 층 시청자들까지 위안을 느낄 것이라고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라면서 “어린 시절 자신에게 폭력적으로만 느껴졌던 부모의 마음까지 헤아리게 됐다는 젊은 세대 시청자들의 반응이 적지 않다”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젊은 세대의 관심이 “화해와 소통 방식의 부재가 사회적인 이슈로 부각되는 최근 분위기가 반영된 결과”라고 분석했다.

 

내 내면아이는 안전한가?

아래 표는 김홍운 교수가 「성인아이의 분노조절을 위한 집단상담 프로 그램 개발과 적용」에서 사용한 성인아이 검사지로 △불안감(8문항) △인간 관계의 어려움(10문항) △감정관리의 어려움(9문항) △과대하거나 과소한 책임감(9문항) 총 36문항으로 5점 척도로 구성됐다. 합산 점수가 높을수록 본인의 감정과 행동에 대한 상처받은 내면아이의 영향력이 높다고 해석할수 있다.

상처받은 내면아이 치유하기

상처받은 내면아이를 계속 숨기면 숨길수록 상처받은 내면아이는 자신을 알아주지 않고 받아들여 주지 않는 것에 대항하여 어떤 일에 지나치게 반응하거나 다른 사람과의 인간관계에서 고통스러운 상처를 주고받는 관계를 형성하는 등의 문제를 반복적으로 일으키게 된다. 따라서 내면 아이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발달단계로 되돌아가서 미해결된 과제들을 완결하는 것이 중요하다.

존 브레드쇼가 개발하여 제시한 '상처받은 내면아이 치유프로그램'은 내면아이의 이해, 치유, 성장의 3단계로 구성되어있다. 내면아이 이해는 개인들이 어린 시절에 발달단계에서 필요했던 것이 무엇인가를 이해하고 이를 알아차리도록 돕는 것이며, 치유는 어린 시절 충족하지 못한 욕구를 해소하는 단계이다. 마지막 성장 단계는 성숙한 개인으로 나아가는 과정으로서 상처가 되었던 경험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필요하다.

최 교수는 “치유는 고통스럽지만, 어린아이가 상처를 받았을 당시 어린 아이가 겪어야 할 것들을 다시 겪는 것이다”라며 “상처받은 내면아이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안전한 곳, 안전한 상대의 보호 아래서 어릴 적 잃어버린 감정을 만나야 한다”라고 전했다.

▲표는 상처받은 내면아이 치유프로그램을 과정별로 구조화한 것이다. (출처/ 「교정시 설에 수감 중인 마약사용자 회복을 위한 내면아이 치유 프로그램 개발 및 효과 연구」)
▲표는 상처받은 내면아이 치유프로그램을 과정별로 구조화한 것이다. (출처/ 「교정시 설에 수감 중인 마약사용자 회복을 위한 내면아이 치유 프로그램 개발 및 효과 연구」)

강 연구원은 “내면아이는 우리 누구에게나 마음속에 존재한다”라며 “상처받은 내면아이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내 안의 상처받은 과거의 나를 만나는 것에서 시작된다”라고 전했다. 이어 “상처받은 내면아이를 만나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런 나를 이해해주고, 부둥켜안아주며 스스로가 사랑 하지 않았던 나의 부분까지 소중히 받아들이면 거짓 자아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상처받은 내면아이를 돌보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자아를 찾아가는 길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우리 안에 내제된 수치심과 외로움을 받아들이고, 자신의 슬픔을 해결하지 못해 마음속 어딘가 움츠려 있는 아이를 마주 보고 껴안으며 괜찮다고 위로하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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