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하고 있습니다" 〈108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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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하고 있습니다" 〈1085호〉
  • 김한백 기자
  • 승인 2021.04.19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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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대학 기록정보과학전문 대학원 석사 졸업생 임진영 사무원과의 대담

우리 대학 인문캠 방목학술정보관 2층, 그룹스터디 룸이 즐비한 곳. 우두커니 서 있는 간판이 보인다. 그 뒤쪽은 어두컴컴하게 불마저 꺼져있다. 어둠을 헤치고 가니 간판에서 소개하는 곳이 보인다. 많은 학우가 그룹스터디룸을 사용하러 왔다 우연히 들리지만, 자세히 알지 못하는 미지의 공간. 이곳은 우리 대학의 유구한 역사를 품은 중요한 사료들이 있는 ‘대학사료실’이다. 개방된 문을 따라 들어가니 우리 대학과 관련된 수많은 사료가 있었다. 고개를 돌려 오른쪽을 보니 큰 유리창 너머로 엄숙한 분위기의 두 직원이 앉아 있었다. 순간 분위기에 압도당했지만, 용기를 내어 운을 뗐다. 직원 중 한 명이 기자를 맞아주며 “여기에는 말할 만한 공간이 없어요”라며 일어나 비어있는 그룹스터디룸으로 안내해주었다. 기자를 맞이해 준 직원은 지난해 우리 대학 기록정보과학전문대학원 석사를 졸업한 임진영 사무원(이하 임 사무원). 임 사무원의 “대학사료실이 무엇을 하는 곳이라고 생각하시나요?”라는 물음과 함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이하는 임 사무원과 함께한 일문일답이다.

 

Q. 대학사료실은 어떤 곳인가요?

A. 우선, 대학사료실은 2002년부터 시작했어요.
2002년에는 박물관 산하로 시작했는데, 2010년에 도서관 소속으로 변경되면서 지금 자리에 있게 된 거예요. 대학사료실은 우리 대학과 명지학원의 기록 등, 역사 관련 기록물들을 주로 수집해요. 행정적, 법적, 보존적 가치로서 다방면으로 활용되는 기록물을 수집, 관리, 전시, 열람 지원 서비스를 하는 공간이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Q. ‘보존할 가치가 있다’라는 것은 어떤 기준으로 책정 하시는 건가요?

A. 공공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이 있는데, 해당 기관이 정하는 바에 따라 5년 이상, 10년 이상, 준영구, 영구로 나눠서 관리를 하거든요. 그래서 그 해당 단계가 지날 때마다 평가해요. '이것을 조금 더 가지고 있을 것인가? 말 것인가?'를 따져보고 조금 더 가지고 있겠다고 판단하면, 다시 가지고 있는 것이고, 아니면 버려야 해요. 저희도 공간이 한정적이기 때문에 계속 갖고 있을 수는 없거든요. 그래서 저희는 생산자 입장이 아니라 제 3자의 입장에서 기록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려고 하죠.

 

Q. 일하면서 객관성이 굉장히 중요하겠네요. 그렇다면 이 일에서 가장 중점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A. 기록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명감이요. 또, 가치를 객관적으로 평가하는 거요. 사람이 하는 일이다 보니 주관성이 아예 배제될 수는 없기 때문에 최대한 객관적으로 보려고 노력해요. 그리고 이 하나의 기록물을 판단할 때 저 혼자만 결정하는 게 아니라 같이 전공하고 계시는 조교 선생님과도 논의해요. 주로 ‘과연 우리가 보존할 만한 가치가 있을까?’, ‘이 사료가 우리 대학과 관련된 기록이 정말 맞는가’ 등과 같은 회의를 거치죠. 회의를 거치고 나면, 저희가 소장하고 있는 사료와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도 판단해서 분류하죠. 정리하자면 사명감, 객관성, 가치 산정, 다른 사료와의 연관성이 중요 하다 할 수 있겠네요.

 

Q. 우리 대학 사료실에서 기록물을 선정하는 기준이 궁금합니다.

A. 들어오는 것들은 다 준영구 기록물 이상으로 보시면 됩니다. 웬만한 일이 아닌 이상 다 버리지 않는다고 보면 돼요. 단지, 똑같은 자료는 두 개씩 가지고 있어요.

 

Q. 학생들과 관련된 기록들도 많이 있나요?

A. 그럼요. 굉장히 많아요. 예를 들면, 학생증, 필기 노트, 시험문제 등 예전 자료들이 많아요.

▲사진은 우리 대학 대학사료실에 전시돼있는 ‘학생증의 변천’이다.
▲사진은 우리 대학 대학사료실에 전시돼있는 ‘학생증의 변천’이다.

Q. 이곳에서 일하게 된 계기는요?

A. 제가 타 대학교 문헌정보학과를 나왔는데 졸업을 하고 KBS 아카이브 사업부라는 곳을 들어갔어요. 거기에서는 방송 촬영된 원본들을 받아서 처리하는 업무를 맡았었는데, 그 일이 되게 흥미로웠거든요. 영상을 받아와서 그 영상에 대해 기본 데이터를 저장하는 일이었어요. 그것을 바탕으로 다른 PD분들이 검색해서 해당 자료를 가지고 재방송분에 활용하시기도 하고, 새로운 프로그램에 활용하시기도 하셨어요. 그런 영상을 내부 사이트에 올리는 것을 담당했는데, 일하다 보니 이일과 비슷한 일들이 궁금한 거예요. 당시 부장님도 명지대학교 기록과학정보대학원을 추천해주셨어요. 그래서 알아보다가 일하던 동료분이랑 명지대학교 기록과학정보대학원 입시 설명회에 같이 왔다가 입학하게 됐죠. 1학기, 2학기까지는 하고 있던 일을 하다가 3학기부터 대학사료실에서 조교 자리로 실질적인 업무를 하다가 직원으로 옮겨갔습니다.

 

Q. KBS요? KBS에서 일할 당시를 자세히 설명해주세요.

A. KBS에서 재미있는 걸 많이 봤어요. 제가 근무할 당시에 문재인 대통령이랑 김정은 위원장이 판문점에서 회담하는 장면도 처리했고 또 평창 동계올림픽 때 원본 파일도 정리했었어요. 또 예전에는 카메라가 아니라 비디오 테이프로 찍었잖아요. 테이프에서 디지털 파일로 변환이 안 되는 것들. 그런 파일들을 제가 다 변환 처리해서 내부 사이트에 등록하는 일을 했어요. 아, 이러한 작업을 메타데이터 등록한다고 해요.

 

Q. KBS에서 인상 깊었던 자료는 어떤 것이 있을까요?

A. 신기했던 거는 제가 사는 지역을 찍은 걸 봤을 때에요. 평소와 다름없이 영상 처리를 하고 있었는데, 너무 익숙한 풍경이 지나가는 거예요. 자막을 보니 제가 살고 있던 동네더라고요. (웃음) 70년대 파일이었는데, ‘어 되게 신기하다’ 그러면서 봤었어요. 또 마침 제가 작업하고 있던 것 중에 조선총독부를 폭발시키는 영상이 있었어 요. ‘아 이때는 이랬구나’ 하며 보기도 했죠. 저는 역사적인 사실들을 생생한 영상으로 봤었잖아요. 현장에서 찍은 영상 자체를요. 그 영상에는 자막도 없고 아무것도 없거든요. 마치 역사책을 영상으로 보는 것 같은 기분이죠.

 

Q. 정말 신기하셨겠어요. 다시 대학사료실 이야기로 돌아와서 대학사료실 사료 중, 가장 가치가 있다고 여기거나 애정이 가는 사료는 무엇인가요?

A. 대학교 설립인가증이요. 명지대학교 설립 인가증도 있고 또, 여기(본교) 기초가 됐던 근화여자초급대학 이라든가 물리사범대학이라든가 여기에 대한 것도 다있어요. 어쨌든 가장 가치 있는 사료는 명지대학교의 기반이 되는 자료들이라고 생각해요. 가장 애착이 가는 사료가 뭐냐고 물어봐 주셨는데 그거는 제가 업무를 시작하면서 처음으로 처리했던 기록물이에요.

 

Q. 그렇군요. 처음 처리하셨던 기록물이 무엇인가요?

A. 공교롭게도 명대신문이었어요. (웃음). 제가 처음 사료를 만지고, 사진을 찍고, 파일 올렸던 거라서 제일 감명 깊었던 것 같아요.

 

Q. 몇 호였는지 기억나시나요?

A. 강경대 열사 특집호였는데, 91년도 5월 8일 자예요.

▲사진은 임 사무원이 애정 깊은 사료라고 꼽은 본지의 강경대 열사 추모 특집호다.
▲사진은 임 사무원이 애정 깊은 사료라고 꼽은 본지의 강경대 열사 추모 특집호다.

Q. 일하면서 어려움을 느낄 때도 많을 것 같은데요.

A. 수집하는 게 좀 어려워요. 저희가 기록물 수집, 보존, 이관, 폐기를 다 하는데요. 기록을 수집하는 게 어려운 이유는 사람들이 기록물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니 버리는 경우가 허다해요. 일례로, 저희가 교수님을 통해서 제일 많이 기증을 받는데요. 퇴직하시는 교수님께 저희가 매번 연락을 드립니다. 많은 교수님께서 “이게 무슨 가치가 있다고 기증을 하겠느냐”라고 말씀하셔요. 본인한테는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시니까요. 그런데 교수님이 진행하셨던 연구 보고서라든가, 학교에서 발생한 연구 보고서라든가, 명지대학교에서 발행한 주차 카드라든가 교수님께서 우리 대학에서 재직하시면서 받았던 다양한 것들 있잖아요. 또, 기념품을 받으셨다든가, 학교 이름으로 해외 출장 가서 찍은 사진이라든가. 그런 것들이 저희한테는 하나하나 다 가치 있는 것들이거든요. 그래서 교수님께서 버리려고 할 때 저희가 매달려요. (웃음) 저희가 교수님 물건들 버려드리겠다고요. 또, 일반 학생들한테 홍보가 안 되는 게 많이 아쉽죠.


Q. 학생들이 잘 모르다 보니 소외감이나 회의감이 들것도 같은데요.

A. 회의감보다는 아쉽고 안타까운 게 커요. 보통 스터디룸에 오는 학생들이 대학사료실 쪽에 화장실이 있다 보니 오가다가 ‘이 공간은 뭐지?’ 하면서 들어온단 말이 에요. 그러면 저와 같은 직원 한 분이 계시거나 조교 선생님이 계시면 못 들어올 곳을 들어온 줄 알고 들어오셨다가 재빠르게 나가요. 이곳에 있는 시간이 1분 채 안 되게 눈으로만 쓱 훑어보고 나가는 분이 많아서 안타깝더라고요. 학생분들이 사료에 대해서 여쭤보시면 저희가 대답해드리는데 저희가 있음으로써 부담스러우신가 봐요. 천천히 보셔도 되는데...

▲사진은 대학사료실 벽 한편에 붙어있는 업무 관련 목록표다.(현재는 찾는 사료가 달라졌을 수도 있다)
▲사진은 대학사료실 벽 한편에 붙어있는 업무 관련 목록표다.(현재는 찾는 사료가 달라졌을 수도 있다)

Q. 코로나19가 종식되고 나서 학생들이 사료실에 방문했을 때, 박물관에서 큐레이터들이 설명하는 것처럼 운영하실 의향은 없으신 건가요?

A. 전시공간이 되게 한정적이잖아요. 그래서 현재 전시공간을 바꿔볼 생각은 있어요. 한 10년 가까이 전시품의 교체가 안 된 걸로 알고 있거든요. 그런데 말씀해 주신 거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라 고려해 봐야겠네요.

 

Q. 반대로 보람을 느낄 때는 언제인가요?

A. 예기치 않게 기록을 활용해야 할 때가 있거든요. 그때 저희에게 기록물을 요청하시고 감사하다고 하시는 분들이 계셔요. 관련된 에피소드가 하나 있어요. 예전에 근무하셨던 분께서 본인의 88살 기념으로 인생 앨범을 만드시겠대요. 그러면서 우리 대학에서 근무했던 기록들을 스캔해 달라고 요청하셨는데, 그분이 20년~30년 가까이 근무하셨더라고요. 그래서 한 10년 치를 스캔해서 보내드렸어요. 그리고 며칠 뒤에 너무 감사하다고 연락을 주시면서, 본인 앨범이 나오면 사료실로 하나 보내 드리겠다고 하시더라고요. 이럴 때마다 보람을 느끼죠.

▲사진은 임진영 사무원이 사료를 정리하는 모습이다.
▲사진은 임진영 사무원이 사료를 정리하는 모습이다.

Q. 본인 나름대로 기록이라는 정의를 내리자면?

A. 그 당시를 가장 객관적이고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는 자료 및 지표라고 생각해요.

 

Q. 마지막으로 재학생에게 하고 싶은 말은

A. 그냥 업무적인 이야기로는 많이 오셨으면 좋겠어요. 부담가지지 말고요. (웃음) 개인적으로 하고 싶은 말은 대학생활 때 다양한 경험을 해 봤으면 좋겠다는 거예요. 저도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는 이쪽 길로 들어올 거라는 생각 자체를 못 해 봤었어요. KBS에서 일하면서 재밌다고 생각을 해서 이쪽 계열로 왔었잖아요. 언제 어디서 본인의 미래가 결정될지 모르니까 최대한 다양한 경험을 해 봤으면 좋겠어요.

 

임 사무원과 인터뷰 중, 가장 많이 들었던 이야기는 “대학사료실에 많은 학생이 찾아왔으면 좋겠어요”였다. 중간 시험 준비로 한창인 지금. 머리도 식힐 겸 우리 대학의 옛이야기를 만나러 대학사료실에 가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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