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작은 세계] 당신을 지켜보고 있다 〈1084호〉
상태바
[나의 작은 세계] 당신을 지켜보고 있다 〈1084호〉
  • 이유리
  • 승인 2021.04.05 00:3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본 칼럼은 ‘은정’이라는 가상의 인물을 주인공으로 하는 소설 형식의 철학 칼럼입니다. 원 저자는 이준형 작가임을 밝힙니다.

  퇴근길에 무심코 켠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에는 다소 과격한(?) 제목의 글이 메인 상단에 걸려있었다. ‘코로나19 잡기 전에 꼰대부터 잡아야 하는 거 아니냐?’

  도입부터 끝까지 분노와 실망으로 가득 찬 글의 요는 이러했다. 코로나19가 대유행한다고 모임만 금지하면 뭐하냐. 회사는 코로나19든 뭐든 사람 가득한 대중교통 타고 출근부터 하라는데 말이다. 자기들 맘대로 아무 문제 없다면서 정상 출근 지시하는 건 다반사고, 기껏 자율 시행 이라고 해 놓고는 윗대가리랑 승진 대상자들은 그런 적 없다는 듯 아침 9시면 본인 자리에 앉아 있다. 그래, 너희는 승진이라도 해야 한다고 치자. 왜 멀쩡히 재택근무하는 사람들을 다 공짜 휴가 간 사람 취급하냐. 어차피 메신저로도 무슨 일하냐, 시킨 건 다 마쳤냐 하면서 들들 볶아 대면서 말이다. 저녁때는 또 어떻고, 사람들 지정해 가지곤 우리 단체 회식해야 하니까 각각 전화해서 예약 잡으라고 하더라. 그거 걸리면 다 벌금 내야 하는 거 모르고 그러는 거냐.’

  댓글 창은 같은 분노로 가득했다. 모두가 비슷한 경험을 해서다. ‘우리 팀장은 30분마다 화면 캡쳐해서 보내라고 해요’, ‘그건 양반이죠. 전 아침에 일어나면 화상 앱부터 켜야 해요. 하루 종일 일하고 있는지 확인한다고요. 이럴 거면 차라리 출근하라고 하지, 아휴.. 진짜 스트레스받는다니까요’, ‘전 재택근무하라고 하더니 그게 무슨 업무일이냐고 휴가 처리해 버렸어요 ㅠㅠ 그나마 있던 애사심까지 싹 사라지더라니까요’

  생각해보면 나 역시 그랬다. 옆 건물에서도 확진자가 나왔다며 한참 위기감이 조성되던 시기, 팀장의 한마디로 상황은 모두 정리되었으니 말이다. “은정 씨, 입사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잖아. 재택으로 업무 이월 못 받으니까 일단 그냥 나오자” “아, 네..” “그래, 그래. 나도 은정 씨 어떻게 일하는지 좀 봐야지. 다른 사람들도 은정 씨 가르쳐줘야 할 게 있을 테니까, 가급적 다나오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솔직히 집에 있으면 일 못 하잖아?” 팀장이 자리를 비운 사이, 옆자리 오 주임이 혼잣말처럼 투덜댔다. “아니, 솔직히 어디 있던 무슨 상관이야. 어차피 인트라넷으로 뭐 하는지 다 알아볼 거면서 말이야” 

  “빅 브라더는 당신을 지켜보고 있다”라는 문장으로 잘 알려진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는 지금으로부터 37년 전인 1984년을 1949년에 예측한 미래소설이다. 오웰이 그린 1984년은 암울하다. 고도로 발달한 기술을 토대로 독재가 이뤄지는 세상이기 때문이다. 당원의 집에는 각각 ‘텔레스크린’이라고 부르는, 방송 수신과 송출이 동시에 가능한 기계가 설치되어 있다. 텔레스크린은 함부로 끌 수도 없다. 기껏 해야 소리만 조금 낮출 수 있을 뿐. 빅 브라더는 이 기계로 모든 것을 감시한다. 사람들이 아침에 무엇을 먹었는지부터 저녁에는 누구와 무슨 행동을 했는지까지 말이다. 하층 노동자들은 텔레스크린의 감시를 받지 않지만, 그들이 자유로운 것은 결코 아니다. 그들은 이미 의심하지도, 반항하지도 않는다. 『감시와 처벌』의 저자이자 20세기 프랑스의 철학자인 미셸 푸코 또한 우리 사는 세상이 『1984』의 그것과 그리 다르지 않다고 말하는 것 같다. 그는 우리가 모두 짜여진 ‘구조’ 속에서 세상을 인식한다고 설명한다. 구조 속에서 통용되는 다양한 담론은 불변의 진리를 담은 것이 아닌, 권력에 의해 발생하여 진리로 ‘통용’되는 것일 뿐이다. 우린 의심하지 않고, 설령 의심하더라도 그 구조가 지시하는 방향을 따른다. 이미 그 구조에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그는 이처럼 한 시대에 널리 퍼진 세계관 또는 인식의 무의식적 체계를 ‘에피스테메(Episteme)’라고 불렀다.

  문득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내가 사는 지금 이 세상은 얼마나 다를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업무 능력을 확인받기 위해’ 세상 변한 것 하나 없다는 듯 출퇴근하는 나와 어차피 내가 언제 어디서 뭘 하는지 속속들이 알고 있는 회사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건 어쩌면 ‘효율’이라는 말로 포장된 ‘감시’일지도 모른다. ‘에휴, 어쩌겠어. 그래도 벌어야 되는데’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페이스북을 열었다. 피드에는 내가 오전에 무심코 들여다본 텀블러 상품 페이지와 유사 상품 광고가 잔뜩 띄워져 있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 인문캠 :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거북골로 34 (명지대학교) 학생회관 2층
  • 자연캠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명지로 116 학생회관 2층
  • 대표전화 : 02-300-1750~1(인문캠) 031-330-6111(자연캠)
  • 팩스 : 02-300-1752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승환
  • 제호 : 명대신문
  • 창간일 : 1954년 11월
  • 발행인 : 유병진
  • 편집인 : 송재일
  • 편집장 : 한지유(정외 21)
  • 디자인·인쇄 : 중앙일보M&P
  • - 명대신문의 모든 콘텐츠(영상, 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명대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jupress@hanmail.net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