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를 잘 아는가? 선택의 삶 속 ‘나’의 의미 〈108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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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를 잘 아는가? 선택의 삶 속 ‘나’의 의미 〈1084호〉
  • 김진주 미래정책센터 연구교수
  • 승인 2021.04.05 0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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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다. 모든 순간은 선택으로 이루어져 있고, 그 선택들이 모여서 삶과 방향을 결정한다. 그리고 이러한 선택에는 ‘나’라는 존재가 있다.

  대의민주주의에서 정치적 대리인을 선출하는 선거는 ‘선택’으로만 이루어진 대표적인 행위이다. 학자들은 유권자들이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고민하고, 연구하며, 이론을 정립해왔다. 1940년 대에 등장한 콜롬비아 학파는 개인이 속해있는 계급이나 경제적 상황 등의 사회경제적 배경이 투표선택에 가장 중요하다고 주장했고, 1957년 앤서니 다운스(Anthony Downs)를 중심으로한 학자들은 합리적인 개인이 후보자들에 대한 기대와 투표할 당시의 상황들의 이해관계를 고려하여 기대효용을 근거로 투표를 한다고 말했다. 또한 그 외에도 1960년대 미시간 학파는 정치 사회화를 통한 정당일체감, 이념 등과 같은 개인이 가지고 있는 사회심리학적 요인이 투표선택에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했다.

  학자들은 위와 같이 개인의 투표선택을 연구 하여 유형화시켰다. 그렇다면 여러분의 선택은 어떤 이유에서였는가? 가장 최근 선거에서 나는 무슨 근거로 투표에 참여하고 후보자를 선택했는가? 우리는 이러한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우선 ‘나’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내가 나를 제대로 알지 못한다면, 내가 왜 그렇게 했는지도 설명할수 없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의 말로 알려져 있으나 실제로는 그리스 현자 중 누군가의 저작이 라는 “(네 자신을 알라)”는 네 자신이 가진 지식의 깊이, 수준을 알라는 의미지만, 보다 포괄적으로 네 자신에 대한 모든 것을 스스로 알라는 말로도 해석할 수 있다. 나는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라고 단언할 수 있을까? 여러분은 ‘네 자신을 알고’ 있는가?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도합 12년간 우리는 책상 앞에 앉아 옆 친구와 나를 비교하며 경쟁해왔다. 나를 보기보다 남을 보면서 나를 재단하고 평가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한 기간 동안 우리는 남에게 집중해오면서 정작 진정으로 ‘스스로’를 바라본 경험은 많지 않다. ‘스스로’를 바라본다는 것은 내가 누구이며,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는 데에서 출발한다. 대학에 대한 선택도, 과에 대한 선택도 성적에 맞추어 혹은 그때 상황에 따라 결정하는 경우가 많은 것이 현실이다. 그리고 대학생활을 보내다가 취업을 앞두고 자기소개서를 쓰면서, 그제야 대다수 우리는 처음으로 제대로 ‘자신의 삶’, ‘자신의 길’에 대해 고민한다. ‘나’라는 사람 으로 20년을 넘게 살아왔는데, 아직도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무엇이 잘 맞는지 모르고 있다는 것은 서글픈 일이다. 그리고 ‘나’에 대해 모르고 있다면 결국 내 선택은 제대로 이루어질 수 없으며, 하나뿐인 나의 삶은 길을 잃게 된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코로나19로 대학생활을 마음껏 즐기지 못하고 수많은 소중한 사람들을 만나지 못해 힘들지만, 반대로 우리는 스스로 자기 자신과 마주할 너무나 귀중한 시간을 갖게 됐다. 이 귀중한 시간에 가장 처음으로 돌아가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보면 어떨까.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떤 사람인가?”.

  그리고 이러한 질문을 통해 자기 자신을 깨닫고 나 자신을 그리고 나의 의견을 가장 잘 표현해 주는 선택을 하길 바란다. 모든 선택이 다 옳을 순 없겠지만, 그 선택에 ‘나’라는 존재가 중심을 잡고 있다면 분명 선택들이 모인 내 삶은 온전히 ‘나의 것’이 될 것이다. 가장 불안하지만 찬란한이 시기를, 무엇보다 소중한 ‘나’로 가득 채울 수 있기를 바라 본다.

김진주 미래정책센터 연구교수
김진주 미래정책센터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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