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락의 인문학 공동체] 쓸모없는 공부를 위한 변호 〈108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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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락의 인문학 공동체] 쓸모없는 공부를 위한 변호 〈1082호〉
  • 김종락 대안연구공동체 대표
  • 승인 2021.03.06 1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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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엊그제 몇몇 청년이 내가 일하는 인문학 공동체를 찾았다. 7~8년 전 이곳에서 언론사 취업 준비모임을 꾸리던 이들이다. 다른 분야의 취업도 그렇겠지만 기자나 PD가 되는 것도 쉽진 않았다. 언론사는 널렸는데 이들은 한동안 시험을 치기만 하면 떨어졌다. 최종면접에서 낙방하는 것도 괴로웠겠지만 1차 서류전형에서 불합격하는 것은 더욱 절망스러워 보였다. 세월의 치유력은 무섭다. 이제 30대 중반, 이들은 낙방거사로 지내던 그 암담했던 날들을 떠올리면 서도 오랜만에 만난 반가움에 웃고 떠들었다. 그러면서도 한결같이 입을 모았다. 다시 20대를 돌려준다고 해도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며….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이들은 대부분 기자나 PD가 되었다. 그러나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입사하기 전 이들이 꿈꾸던 것과 현실의 거리는 생각보다 컸던 것이다. 천신만고 끝에 기자가 되었던 청년은 수습기자의 의례인 경찰서 출입도 마치기 전에 사표를 냈다. PD가 된 청년 또한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의 엔딩 크레딧에 몇차례 이름을 올리는가 싶더니 회사를 나왔다. 여전히 방송사에 남아 있는 청년의 SNS도 우울로 가득하다.
  어렵사리 스펙을 만들고 공부해서 바늘구멍을 통과했던 이들이 몇 년도 못 돼 회사를 그만둔 이유는 무엇일까? 앞으로 또 세월이 흐르면 이들은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날까?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1908~2006)가 불확 실성의 시대란 명저를 쓴 것이 1977년이다. 확신에 찬 경제학자도, 자본가도, 사회주의자도 존재하지 않고 진리로 믿었던 많은 것들이 하루아침에 뒤집히는 시대가 되었다는 것이다. 세상이 핑핑 돌아가는 요즘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첫 직장에서 뼈를 묻곤 하던 그 시절이 불확실 성의 시대라. 뭐, 놀랄 것은 없다. 2,500년 전 붓다가 설한 핵심 가르침 중의 하나가 제행무상, 즉 변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니까 말이다.
  갓 기자가 되어 새벽마다 경찰서를 돌던 30여년 전의 동료를 생각한다. 이때만 해도 기자 이외의 일을 하리라고는 상상하지도 않은 이들이 었다. 하지만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사태를 계기로 이들은 하나, 둘 언론계를 떠났다.
  기업으로 옮겨가서 임원이 된 이가 있는가 하면 정치인이나 공무원이 된 친구도 있다. 뒤늦게 유학을 떠나 학위를 받고 교수가 된 이들도 여럿이다. 물론 나처럼 이도 저도 아닌 이들은 더 많다. 중도에 언론계를 떠난 이들과 기자로 한우물을 판 이들의 삶에 대한 만족도를 따져보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이미 한 세대 전에 사회 생활을 시작한 우리가 이 정도라면 이제 대학생인 이들의 삶은 어떻게 요동칠까?
  인공지능을 앞세운 과학기술 혁명은 삶과 사회를 발본적으로 바꾸어가는데, 코로나19까지 가세해 변화를 가속화하고 있다. 대부분의 직종에서 평생직장이 사라진 것은 이미 오래다. 청년을 위한 대안도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인공 지능이 대신할 수 없는 일을 하라, 창조력이 생명이다, 평생 공부하라, 그래도 부의 양극화가 심화할 수밖에 없으니 사회 국가적으로는 기본 소득제 등의 대안이 필요하다 등등.
  미약하나마 인문학을 대안으로 제시하는 소리도 들린다. 시대가 변화할수록 모든 것의 근원, 혹은 토대를 따지고 질문을 던지는 인문학을 살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의 삶과 세상을 거시적으로 조망하는 눈을 길러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공허하다. 법학이나 의학, 혹은 경영학은 돈 되는 공부인데 반해 인문학 자가 가난했던 것은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에도 나온다. 인문학의 비중은 아담 스미스 당대에 비해 형편없이 쪼그라들었다. 그런데도 인류의 복지는 오히려 증진되었다는 사실은 인문 학의 쓸모없음을 웅변한다.
  그럼에도 인문학 공동체를 운영하는 이로서 이를 위한 변호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청년들에게 현실에 적응하고 동화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현실을 개혁하고 변화, 발전시키는 것이다. 플라톤 이래 철학, 인문학의 과제는 어떻게 사는 것이 진정한 의미에서 잘 사는 것인지를 탐구하는 것이었다. 우리가 인문학을 공부하는 것도 무엇이 잘 사는 것인가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다. 어떻게 사는 것이 재미나면서 보람차고 좋은 삶인지가 전제되어야 부와 권력을 추구하든 진리를 좇든 현실을 변화시키든 할 것 아닌가.

 

김종락 대안연구공동체 대표
paideia2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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