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제66주년 명대신문 백마문화상 - 더 나은 내일을 위하여 (비평 부문 가작) 〈108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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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제66주년 명대신문 백마문화상 - 더 나은 내일을 위하여 (비평 부문 가작) 〈1081호〉
  • 이영화 학생 (한국외국어대학교 네덜란드어과)
  • 승인 2020.11.30 14: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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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다큐 〈소셜 딜레마〉를 본 뒤

 알고리즘픽이다. No one searched for this. 영상을 검색해 찾아낸 것이 아니라 알고리즘이 자동으로 이용자에게 추천한 것을 클릭하여 봤다는 말이다. 유튜브 커뮤니티 내에서 끝나지 않는알고리즘픽들이 나비효과를 일으키기 시작하면서 실제 방송가에도 영향을 끼치고 있다. 유튜브 알고리즘을 타고 화제가 되었던 깡의 인기에 힘입어 가수 비는 다수의 예능에 출연하고 광고 계약을 성사했다. 영상 하나를 봤더니 알고리즘에 우수수 연관 동영상이 떠 그 영상을 보다가 어떤 그룹을 좋아하게 되었다는 사례도 흔하다. 알고리즘은 단순히 우리에게 영상을 추천해주는 것을 넘어서 우리의 행동을, 사회를 바꾼다. 이제는 알고리즘이 트렌드를 만들어 내는 것인가? 알고리즘을 설계한 회사가 트렌드를 이끌어나가는 것인가? 미디어와 관련된 법과 제도가 아직 미비한 상황에서 미디어는 앞질러 나간다. 넋 놓고 있다가는 미디어에게 먹힐지도 모른다. 때문에 앞으로의 미디어는 어떤 모습이여야 하는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에 대해 이야기 해보려한다. 미디어 상에서 어린이 보호는 어디까지 해야 하는지, 알고리즘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중점으로 미디어가 나아가야 하는 방향에 대해 논의해보려 한다.

 

 뉴미디어에서는 어린이 보호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 어디까지 해야 하는가. 어린이가 시청자일 경우와 출연자일 경우를 나누어 생각해보자. 어린이가 시청자일 경우 어린이들은 걸러지지 않은 컨텐츠를 볼 확률이 커졌다. 티비 프로그램에는 어린이 유해 프로그램을 어린이가 볼만한 시간에 상영할 수 없다. 모든 프로그램에는 몇 세 미만 어린이에게는 시청 지도가 필요한지 전부 관람등급이 설정된다. 그래서 어린이들은 비교적 유해 프로그램이라고 불리는 것들로부터 떨어져 있을 수 있었지만, 뉴미디어 환경에서는 다르다. 사람들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소셜 미디어인 유튜브, 카톡, 인스타그램, 페이스북에서는 유해 컨텐츠를 볼 확률이 압도적으로 높다. 이용자 나이에 상관없이 광고를 띄우고 이용자의 정보를 분석하여 알고리즘으로 추천 영상을 띄우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어린 아이들의 정보를 수집했다가 벌금을 물어야 했던 판례도 있다. 유튜브는 키즈 서비스를 따로 만들었지만, 명절 때 사촌동생들이 핸드폰으로 노는 것을 보면 아무도 키즈를 쓰지 않는다. 엄마와 아빠 핸드폰에 깔린 유튜브를 보기에 일반 유튜브 앱에 들어가 광고를 따라하고 동영상을 따라한다. 그렇다고 하여 우리가 어린이들을 마냥 미숙하게 봐야 하는 지도 의문이다. 잡지 <한편> 인플루언서 호에 실린 어린이의 유튜브 경험(김아미)’을 읽어 보면 어린이들은 유튜브 커뮤니티 내에서 적용되는 규칙을 이해하고, 그 규칙에 따라 행동하기에 유튜브를 자유롭게 사용해도 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의 글이 실려있다. 그 주장도 이해한다. 유튜브 시대에 태어난 아이들에게 마냥 그것을 쓰지 말라고 하는데는 문제가 없다. 언젠가 컴퓨터가 처음으로 등장했을 때도, 텔레비전이 처음으로 등장했을 때도 그것이 아이들을 망칠 것이라는 우려는 언제나 있어왔다. 신기술이 등장할 때마다 아이들은 잘 헤쳐나왔듯 유튜브에도, 다른 소셜 미디어에도 그들과 우리가 적응할 것이라는 주장이 가능할 수도 있다. 하지만 넷플릭스 다큐 소셜 딜레마에서 구글, 트위터, 페이스북과 같은 기업에서 일하던 엔지니어들의 주장은 다르다.

 

 넷플릭스 다큐 소셜 딜레마에서는 알고리즘을 포함한 소셜 미디어의 위험성 그리고 사용자가 한번도 생각해보지 못했을 법한 이야기를 한다. 만약 우리가 돈을 주지 않고 물건을 이용한다면, 우리가 물건이라는 이야기를 필두로 소셜 미디어가 인간의 심리를 이용하여 우리가 실제 행동을 하도록 유도하는지에 대해 설명하는데, 아이들의 심리는 그에 더 큰 영향을 받는다는 이야기가 등장한다. 최근에는 틱톡 필터를 씌운 얼굴이 본인 실제 얼굴이 되게 해달라며 성형외과를 찾아가는 사람들이 증가했고, 인간은 아무도 5분에 한 번씩 사회적 평가를 받도록 설계되지 않았는데 그에 노출됨으로서 세대가 훨씬 우울해졌으며, 소셜 미디어가 등장한 이후로 미국내 여성 청소년의 자살률과 자해 후 입원률이 엄청나게 증가했다는 이야기를 하며 소셜 미디어는 어린 아이들에게 해로울수 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미국과 한국의 경우는 아마 차이가 있겠지만, 소셜 미디어가 한국 청소년의 경우 지난해10대 청소년 10명 중 3명은 스마트폰 과의존 위험군인 것으로 보아 아마 스트레스에 영향을 주는 다른 요인이 있겠지만 소셜 미디어로인한 우울감은 비슷하리라 예상한다. 자아가 형성되지 않은 아이들에게 수없이 쏟아지는 사회적 평가는 아이들의 우울감에 영향을 미칠 수 밖에 없고, 정보를 확인하는 절차에 대해 성인도 헷갈려 하는데 아이들은 더욱이나 가짜 뉴스에 쉽게 휩쓸릴 가능성이 높다. 좋아요를 많이 받거나 조회수가 높다고 하여 그것이 신빙성 있는 정보인 것은 아닌데, 수치와 가치를 혼동하는 요즘에는 가치 있는 정보를 제대로 만나기 쉽지 않다. 성인들도 이것을 제대로 분간하지 못하면서 아직은 보호가 필요한 아이들에게 우리가 이것을 노출시켜도 되느냐에 대한 논의는 반드시 이루어져야 할 필요가 있다. 학교폭력 예방 교육처럼 법적으로 소셜 미디어를 바르게 이용하는 법에대한 교육이나, 디지털 리터러시 교육을 도입하여 아이들에게 현명하게 사용하는 법을 익힐 필요가 있다. 무책임하게 아이들 손에 스마트폰만 쥐어주는 것이 끝이 아니어야 한다. 개인적 차원의 노력도 필요하며, 플랫폼도 이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하지만 플랫폼은 해외에 본거지를 둔 회사고 한국에서 규제를 하기 어려운 만큼 우선은 개인적 차원으로 이용자들이 자녀들의 스마트폰 사용에 신경 쓰는 것이 가장 현실적이고 우선시 되는 방법일 것이다. 아이들과 소셜 미디어 혹은 스마트폰 사용에 대해 대화하는 시간이 필요하며, 아이들이 잘못된 방법으로 스마트폰을 이용하거나 유해 매체를 본다고 판단될 시에는 그 유해성을 알려줄 필요가 있다. 혹은, 많은 부모들이 하는 것처럼 선제적 차원에서 스마트폰 사용 시간을 아이와 상의 후 제약시키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아이들이 스스로 정보에 대해 판단할 수 있고 자아가 형성되어 바깥의 자극에 최대한 덜 흔들릴 때 미디어에 노출될 수 있도록 보호해야 하는 것이 맞다.

 

 어린이가 출연자일 경우, 뉴미디어에서는 어린이의 등장에 대해 최근에 많은 비판이 있어왔다. 최근MBC의 연간 수익보다 더 많은 수익을 벌어들인다는 보람튜브는 아동학대 논란이 있었고, 그외에도 소셜 미디어에 아이들을 노출시키는 것에 대한 논의도 꾸준히 진행되어 왔다. 때문에 사회전반의 인식은 뉴미디어에 아이를 노출시키는 것은 아이들의 선택이 아니므로 신중하게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 정설인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의 귀여움을 필두로 영상을 만드는 사람들을 끊이지 않으며 사람들은 동물 영상을 보면서 귀여움을 느끼는 것처럼 아이들의 귀여움을 소비한다. 허나, 오히려 레거시 미디어에서는 이런 논의가 다루어지지 않고 있다. KBS를 먹여 살린다는 윌리엄 벤틀리, 프로그램 대상도 받은 슈퍼맨이 돌아왔다는 정말 이대로 방송을 계속해도 될까? 2013년 시작된 슈퍼맨이 돌아왔다는 시작은 아빠들의 독박 육아를 보여준다는 기획의도였으나 현재 방송을 보면 아빠들의 육아보다는 아이들의 귀여운 모습에 초점을 맞추어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것으로 보인다. 아이들이 얼마나 예쁜지, 얼마나 귀여운지 보여주는 것이 방송의 핵심 같은데, 우리가 이대로 아이들의 귀여운 모습만을 소비해도 되는 것이며, 아이들의 미래에 이 프로그램이 도움이 될까는 시청자인 우리가 반드시 생각해봐야 한다. 보람튜브가 비판을 받은 부분은 아이가 원하지 않는데도 아이를 이용해서 돈을 번다, 이것은 아이에게 노동을 강요하는 것이니 아동학대라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윌리엄과 벤틀리가 청학동에 가서 훈장님에게 이야기를 들으면서 촬영하는 것은 아동의 노동이 아닌가? 아이들은 본인이 모르는 사이에 이미 노동 중이다. 특정한 상황에 놓여져 특정한 행동을 하도록 유도하는 그리고 아이의 부모에게 출연료가 지급되는 것이 아동 노동이 아니면 뭐란 말인가. 미디어에 관찰예능이라는 명목 아래에 출연하는 아이들은 당연히 노동을 하는 것이며, 이에 대한 규제가 필요하다. 이미 육아예능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는 꾸준히 등장하고 있다. 노키즈존은 늘어나는데 육아예능 속의 아이들은 스타가 되는 이 상황이 너무나 아이러니하다. 아이들을 사랑한다면 아이들을 이해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확산되어야하는데 소리를 지르거나 뛰어다니는 아이들에 대한 혐오는 증가한채로 책임없이 귀여운 모습만 소비한다. 사회가 과연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한다. 다른 모습은 거세한 채로 귀여운 모습만 내보내는 미디어에게도 책임이 있다. 이런 프로그램을 경각심 없이 받아들이는 시청자들의 인식도 분명히 바뀌어야 한다.

 

 아이들에게 이런 프로그램이 어떠한 영향을 끼칠 지 고려한다면 앞으로 아이들을 이용하는 프로그램은 등장하기 어려워야 하는 것이 맞다. 그것이 뉴미디어든 레거시 미디어든 마찬가지다. 현재 뉴미디어에서도 아이들을 등장시키는 컨텐츠가 많고 이에 대해서는 끊임없이 목소리가 나오나 아직 강제성이 없는 조치만 행해지고 있다. 문제는 레거시 미디어에서는 이런 논의가 오히려 더 적에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아무리 잊혀질 권리가 보장되지 못하는 세상이라지만 아이들에게는 잊혀질 권리가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슈퍼맨이 돌아왔다에 출연했던 아이들은 하차한 뒤에도 끊임없이 근황이라는 이름으로 회자된다. 그들이 인기가 많았을수록 더하다. 그들에 대한 외모평가가 쏟아지고 사소한 행동은 기사로 난다. 말할 수도 없는 아기를 슈퍼스타로 만들고 그로 돈을 버는 일이, 과연 사회 전반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지 우리는 모두 생각해봐야 한다. 개인 뿐만 아니라 사회적 차원에서도 강제화 된 규제가 필요하다. 영국이나 독일의 경우에는 특정 나이 이하의 어린이의 방송활동을 위해서는 허가를 받아야 한다. 사실상 이런 육아예능이 많은 나라에서는 아예 만들 수 없는 컨텐츠에 해당된다. 한국이 기이할 정도로 영유아를 등장시키는 관찰예능이 많을 뿐이다. 이것이 유행이라, 사람들이 이런 컨텐츠를 원하기 때문이라는 말은 이유가 될 수 없다. 10시 이후에 청소년은 방송에 등장할 수 없는 조치처럼, 미디어에 등장하는 아동은, 그들이 주인공이 되어 관찰되는 형식이라면, 이것은 노동에 해당되기 때문에 노동법이 적용되어야 한다. 관찰 예능이라는 편법 속에서 아동 노동이 아니라고 여겨지는 인식을 개선하고 규제를 적용시켜야 한다.

 

 알고리즘 이야기로 돌아와서, 알고리즘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도 생각을 해봐야 한다. 수용자의 입장과 알고리즘을 이용하는 기업의 입장으로 나누어서 생각을 해본다면,수용자는 소셜 미디어를 비판적으로 바라보면서 목소리를 내야하고, 기업은 사용자의 정보를 수집하는 일을 정부가 제한시켜야한다. 한국 내에서 해결하기 어려운 일일지라도, 한국 지사를 통해 의견을 전달하거나, 한국 서비스에 적용시킬 수 있는 범위내에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 한다. 기술과 미디어는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데 관련법은 미비한 상황이다.

 

 수용자, ‘user’라고 불리는 이용자의 입장에서 우리는 왜 그들이 우리를 이용자라고 부르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왜 고객이 아니라 이용자일까, 왜냐면 그들은 이용자들을 이용해서 돈을 벌기 때문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이용자들이 그들의 상품이기 때문이다. 앞서도 언급했던 것처럼, 어떤 서비스를 무료로 이용한다고 하여 그것이 정말 무료가 아니다. 그럴 경우에는 우리의 데이터가 상품이 되어 그 데이터 베이스를 바탕으로 광고주들이 미디어 플랫폼에 우리를 대신하여 가격을 지불할 뿐이다. 알고리즘의 선택을 받은 영상을 즐기면서 그것을 우리가 봐주는것에 중점을 두지 말고 유튜브 알고리즘이 우리가 해당 영상을 보도록 유도했다는데 중점을 두고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유튜브는 우리가 본 영상, 우리가 그 영상을 몇 분 봤는지, 어떤 영상에 좋아요를 눌렀는지, 우리의 검색 기록을 분석하여 우리가 관심있어 할 만한 영상을 추천 동영상에 띄운다. 알고리즘이 추천해준 영상을 보는 시간이 유튜브 영상 시청시간의 70%를 차지한다고 한다. 그 시간동안 사람들이 유튜브에 머무르는 대가로 유튜브는 돈을 번다. 이 때, 이용자의 건강은 유튜브를 비롯한 플랫폼 회사의 고려대상이 아니다. 이용자가 가짜뉴스를 듣던 유해 컨텐츠를 보건 플랫폼들은 대개 큰 관심이 없어보인다. 가짜 뉴스가 필터링되지 않는 점만 봐도 그렇다. 때문에 우리는 미디어를 이용할 때 정확한 정보를 말하는지 이중으로 체크하는 습관이 필요하며, 추천 동영상을 보면서 유튜브 알고리즘에 이끌려 다니는 것보다 자신이 그것을 관리할 줄 아는 습관이 미디어 주체성을 회복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정말 사소한 이야기지만, 자주 시청 기록을 지운다든지, 추천 동영상을 제거하거나, 검색하여 동영상을 주로 보는 습관같은 것들이 쌓이다 보면 미디어 환경이 알고리즘에 이끌려, 인공지능이 이미 우리의 행동을 조종하는 것에서 벗어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비관적인 생각이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인공지능은 수많은 소셜미디어를 통해서 우리의 행동을 유도하고 있으며 플랫폼은 그것이 효과적인 수익 모델이기 때문에 방관하고 있으니 일단 우리 스스로 노력해보는 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현대인이 그렇듯 스마트폰 없이는 삶을 살아갈 수 없을 정도로 우리는 무엇에 이미 중독되어 버렸을 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목소리를 내는 것과 내지 않는 것은 다른 사회를 불러올 것이기 때문이다.

 

 기업 차원에서 스스로 정화의 노력을 한다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치 않다. 최근 제품에 대한 대화를 했을 뿐인데 웹사이트 옆에 해당 제품에 대한 광고가 떠 크롬이 음성을 수집하는 것 같다는 논란이 제기됐다. 아주 놀라운 일은 아니다. 인공지능 스피커는 이미 주변의 소리를 수집하여 논란이 된 적이 있다. 기술적 측면에서는 이용자의 명령 없이도 이미 이용자의 음성 정보를 수집할 수 있다. 이에 대해 국회에서는 개인정보 최소수집원칙을 적용해야 한다며 개정안을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 데이터3법이 통과되면서 가명 정보 개념을 도입하고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등의 개인정보 처리위탁 시 원칙적 동의 규정이 폐기되어 기업들이 이용자의 정보를 이용하는 데에 규제를 완화하였다. 정부에서는 관련 사업의 발전을 국민들의 정보 보호 권익보다 더 중요시 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물론 기업의 발전과 그에 따른 세수의 증가도 정부에게 중요한 고려 요소겠지만 장기적으로 바라보았을 때 기업들이 역차별을 받고 있다고 주장하는 그 길이 모든 사람들에게 바람직한 길이었는지는 곰곰이 생각해보아야 할 일이다. 우리가 알고리즘이라고부르는, 머신 러닝을 이용하여 사용자 정보를 분석하고 그로 인해 미래를 예측하는 시스템이 사회에 긍정적인 효과와 함께 언제나 부정적인 효과를 일으킬 수 있다는 점을 인지해야 한다. 모든 이야기를 소셜 미디어를 통해서 하는 현대인들은 사실상 사생활이 없는 셈이다. 이대로 가다보면 정말 그렇게 될 것 같다. 모든 정보를SNS 플랫폼에게 제공하고 우리가 혼자 간직할 수 있는 이야기는 사실 손으로 종이 일기장에 쓰는 말 밖에 남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하루가 다르게 미디어 환경은 변화하고 있으며, 모두가 개인 미디어를 지닌 세상이 되었다. 코로나로 인해 실제 만남을 갖기 어려운 요즈음 온라인으로 라도 만날 수 있는 기술이 존재한다는 것은 큰 축복이다. 그로 인해 우리는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느낄 수 있으며, 멀리 있는 가족들과도 영상통화를 할 수 있다. 하지만, 미디어 환경이 변화하면서 누구나 정보를 생산할 수 있게 되자 혐오는 잘 팔리는 컨텐츠가 되었으며, 사회 갈등은 심화되고, 신뢰할 수 있는 정보를 찾는 것이 어려워졌고, 입은 비대하고 귀는 닫힌 사회가 되었으며, 아이들은 이런 환경에 속수무책으로 노출되고 있다. 아이들 뿐만 아니라 성인들도 마찬가지다. 세상을 더 많이 경험했다고 하여 성숙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미디어로 수익을 얻을 생각보다는 이 미디어가 후에 불러올 영향력을 우선시해야 한다. 쉽지 않겠지만, 수익을 벌어들여야 한다는 이유로 사회가 바람직하지 못한 방향으로 가서는 안 된다. 개인, 기업, 정부를 포함한 우리 모두는 우리가 생산하고 소비하는 미디어에 대한 책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 모두는 미디어에 대한 책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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