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제66주년 명대신문 백마문화상 - 팔자 (시 부문 당선작) 〈1081호〉
상태바
2020년 제66주년 명대신문 백마문화상 - 팔자 (시 부문 당선작) 〈1081호〉
  • 윤지영 학생 (서울예술대학교 미디어창작학부)
  • 승인 2020.11.30 12:2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스무 살이 되기 전에 엄마가 죽게 해주세요

그렇지 않으면 신성모독을 할 테다

K가 거울을 바라보며 중얼거린다

 

표현이 재밌다고 생각하며

신이 그 말에 밑줄을 긋는다

 

하얀 뼈 같은 변기통을 붙잡고

장기가 다 딸려 올 때까지 토를 하면

 

신이 K의 등을 두드려주다가

척추를 더듬어 뼈와 뼈 사이 공간을 찾는다

비어 있으면 들어가려고

 

아끼는 인형에게도

자기랑 똑같이 배꼽이 있나 없나 궁금해 하는 아이의 마음으로

 

네가 어떤 일을 불행이라고 말하는지 알고 싶어 머리카락을 모두 뜯어보고 싶을 만큼

 

K는 눈썹이 두꺼워서 말년에 서방을 잡아먹을 예정이다


배꼽이 없다면

가위로 후벼서라도 만들어줘야지

나랑 똑같아지게

 

신은 모든 곳에 있을 수 없어서

어머니를 만들었다는 말을

진심으로 웃기다고 생각하는 신

 

대머리 철학자가 자신을 부정하는 것은 괜찮지만

인생이 우연의 연속일 뿐이라고 말하는 태도만큼은

참을 수 없다

 

주사위 놀이 같은 건 하지 않지만*

평상에 앉아 화투를 치며

온 세상 사람들 흉을 보는 여자들의 이야기는

속속들이 들어줘야 하므로

 

하얀 뼈가 될 때까지

불행에 대해 말하기 좋아하는 입술들을

꽤나 사랑하는 편이다

 

모든 인생이 특별하다는 건

모든 인생이 특별하지 않다는 것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

문장의 순서를 매번 헷갈려 하지만

좋은 기억력은 신의 유일한 자랑거리

그렇기 때문에


수면제를 먹는 바람에

응급실에서 위세척을 하면서

차라리 죽여 달라고 우는

K의 입술에


다정한 입맞춤을

잊지 않는다


*데이비드 A. 시앙 『신은 주사위를 던지지 않는다』

 

수상소감

 당선 소식을 듣자마자 누구보다 멋진 당선 소감을 쓰리라 결심했습니다. 울음으로부터 노래를 시작하게 되었다는 밥 말리처럼, 어떻게 시를 쓰게 되었는지에 대해 시보다 더 멋진 당선 소감을 쓰겠다구요. 하지만 막상 쓰려고 하니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울음이 날 것 같은 기분입니다. 그래서 왜 시를 좋아하는가, 에 대해서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좋아하는 것에 대해 말하면 기분이 좋아지니까요.

 늘 꽉 차 있는 것보다 텅 비어 있는 것이 좋았습니다. 하나부터 열까지 다 맞는 말 보다, 어떻게 말할지 몰라 침묵을 선택해 버리는 마음에, 뱉어 버리려다 속으로 삼켜 버린 문장 바로 거기에, 뭔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시는 제게 텅 비어 있음의 고백이었습니다. 있는 그대로 말할 수 없어서 차라리 비어 버리는 것. 그 농담 같은 말에 몇 번이고 흔들릴 수 있는, 정답이 없는 언어 자체로 완전할 수 있으므로 시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심사위원분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나의 가족에게, 당신들이 내 시의 모든 것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함께 상을 수상한 나의 애인 민기, 내 시를 느리게 읽어줄 민영 지우 현정, 나의 파트너 주원, 궁금한 게 많은 우리 코딱지, 무지개 다리를 건넌 유키와 우리집 막내 아띠, 늘 내 삶 근처에 있는 누군가에게. 영원히 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윤지영 학생 (서울예술대학교 미디어창작학부)
윤지영 학생 (서울예술대학교 미디어창작학부)

 

 

심사평

 많은 응모작들 중에서 2020학년도 백마문화상 시부문 가작으로 선정한 작품은 「생일」 외 2편이었다. 상당히 안정적으로 감각을 직조해내가는 솜씨가 인상적이었다. 첫 번째 작품인 「생일」의 경우, 해가 들지 않는 텅 빈 방에서 홀로 맞이하는 생일의 외로운 감정을 담아낸다. 촛불을 끄며 “내가 아닌/사랑하는 것들의 안녕을 빌”고, “사람들은 창문 밖을 스쳐가고/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나는 그들을 잊어본 적 없지만”이라고 말하는 화자의 목소리는 일면 담담해보이기도 한다. 내가 사랑하는 만큼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이 곁에 있으면 좋으련만 지금 주위에는 아무도 없다. 방 안의 고요가 점점 수위를 높여갈 때, 창문 밖을 응시하는 눈빛은 더욱 쓸쓸하고 그래서 오랜 잔상을 남긴다. 같이 응모한 작품 중 「일몰」에서도 이 응모자 특유의 쓸쓸한 정서는 부서지는 겨울 빛의 무늬처럼 읽는 이의 가슴에 서늘한 흔적을 남긴다. 다만 이 여운과 안정감이 세계를 있는 그대로 수용해버리고마는 태도로 귀결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당선작으로는 「아이들은 모두 집으로 돌아가고」외 2편을 선정했다. 처음 두 편보다는 오히려 세 번째 작품인 「팔자」가 좋았다. 이 작품은 아주 도발적인 기도로 시작한다. “스무 살이 되기 전에 엄마가 죽게 해주세요/그렇지 않으면 신성모독을 할 테다”라는 구절은 K의 것이다. K의 말대로라면 이후의 시적 서사가 악행으로 번져나갈 것 같은 위태로움이 느껴지지만 K의 비극적인 삶을 방관하듯 내려다보며 즐거워하는 신이 등장하는 순간 우리는 신과 K의 (실은 이미 승패가 정해진) 싸움이 어떻게 펼쳐질지 기대하는 심정으로 따라 읽게 된다. “네가 어떤 일을 불행이라고 말하는지 알고 싶어/머리카락을 모두 뜯어보고 싶을 만큼”이라고 말하는 신의 희희낙락한 모습도 얄밉지만 “K는 눈썹이 두꺼워서 말년에 서방을 잡아먹을 예정이다”라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신의 모습은 세상의 말도 안 되는 편견이 팔자라는 이름으로 실현될지도 모른다는 예감 앞에서 과연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 하는 공포로 이어진다. 저 연약한 K의 비극을 멀리서 희극인 것처럼 관람하며 즐기는 신의 모습. 마침내 수면제를 먹어 위세척을 하면서 “차라리 죽여 달라고 우는/K의 입술”에 “다정한 입맞춤” 을 하는 신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삶을 자신의 의지대로, 뜻대로 살아가지 못하는 이 땅의 무수한 K들에 대한 연민, 어떻게 해도 벗어나지 못하는 부조리한 삶에 대한 섬뜩한 자각 때문에 우리는 몸서리를 칠 수밖에 없다. 결국 이 작품에 등장하는 ‘신’은 종교적 신이라기보다는 우리 삶을 제멋대로 흔들어버리는 어떤 거대하고 파괴적인 힘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시를 다 읽고 나면 이상하게도 K는 악착같이 더 싸우면서, 끝내 운명과 대적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비극적 삶에 대한 이야기를 손쉬운 타협으로 희석 시키거나 얼버무리지 않는, 독특하고 매력적이며 야성적인 작품이었다. 수상자들에게 축하를 보낸다. 이번 소식이 작은 격려가 되기를 바란다.

박상수 교수 (문예창작학과)
박상수 교수 (문예창작학과)
남진우 교수 (문예창작학과)
남진우 교수 (문예창작학과)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