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제66주년 명대신문 백마문화상 - 소확행은 위험하다(비평 부문 당선작) 〈108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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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제66주년 명대신문 백마문화상 - 소확행은 위험하다(비평 부문 당선작) 〈1081호〉
  • 김성열 학생 (명지대학교 정치외교학과)
  • 승인 2020.11.30 12:2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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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의없는 기표이자 박제되어서는 안되는 단어

1. 박제될 수 없는, 또는 박제되어서는 안되는 단어

 ‘소확행’이라는 말은 무라카미 하루키로부터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루키는 ‘랑겔한스섬의 오후’라는 수필집에서 처음 ‘소확행’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그에게 소확행은 ‘서랍 안에 잘 접힌 깨끗한 팬티 한 뭉치’와 ‘새 옷 냄새가 풍기는 하얀 면 셔츠 따위’를 가리키는 단어*였다. 하루키 특유의 감성이 묻어나는 단어. 세제향이 풍길 것 같은 감각적 단어. 소확행은 그 자체로 정의되지 않고 이미지와 감각으로만 ‘느낄’수 있는 단어다.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라는 의미는 소확행을 규정하는 항이 아니라 단어를 풀어놓은 것일 뿐이다. 이미지와 감각으로만 느껴지는 소확행의 정의는 계속 지연된다. 결코 정의될 수 없다. 정의되는 순간 소확행은 박제가 되고 박제된 정의는 또 다른 기표로 쓰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소확행은 본질적으로 불온하고 위험하다.

* 무라카미 하루키, 무라카미 하루키 수필집3: 랑겔한스 섬의 오후, 김난주 옮김, 백암, 1994, 49~50쪽.

 우리는 어느새 ‘작은’ 행복이라는 말에 익숙해 졌다. 행복이라는 개념은 본래 개인적이면서도 상대적인 개념이다. 모든 사람이 같은 행위를 했을때 동일한 정도로 행복을 느끼지는 않고, 시대나 사회가 추구하는 방향성에 따라 행복의 범주는 달라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굳이 큰 행복을 마다하고 작은 행복을 추구하는 심리는 무엇인가. 언제나 있는 일상의 일탈이 만들어내는 낙차가 행복감이라는 감각을 강화시키는데 더 유용하지 않은가. 이런 측면에서 ‘소확행’이 행복 패러다임의 전환이라는 말은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소확행이 ‘바쁜 삶과 치열한 경쟁 속에서 나만의 케렌시아(querencia)를 찾고자 하는 현대인의 성향과 맞물려 주요 키워드로 나타났다’는 주장은 흥미롭다. 케렌시아는 스페인어로 마지막 일전을 앞둔 투우장의 소가 잠시 쉴 수 있도록 마련해 놓은 곳이다. 케렌시아가 투우장의 소에게 잠시 쉬어갈 수 있는 장소로써의 역할을 했다면, 소확행은 일상에 지친 현대인에게 일종의 별채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에 동의하기는 쉽지 않다. 현대인의 삶이 힘들고 어렵기는 하지만, 그 케렌시아가 소확행이어야 할까. 맛있는 음식 먹기를 포기할 정도로 타인이 맛있는 음식을 먹는 걸 보는 것이 과연 행복감을 가져다 주는가. 내가 가는 여행보다 남이 가는 여행을 방구석에 놓인 TV 에서 나오는 조그만 불빛으로 보는 것에서 행복하다고 느낄 수 있는가. 이에 대한 답을 할 수 있는 설명이 필요하지만 케렌시아를 포함한 무엇도 답을 주지는 않는다.


2. 소확행의 기원

 소확행이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한 20세기 말의 일본의 모습은 오늘날 예상치 않게 한국의 모습과 유사하다. 도쿄를 팔아 미국을 살 수 있었던 시절을 뒤로하고 일본은 잃어버린 10년을 맞이했다. 일본 내 탄탄한 기업들이 고꾸라지고 평생직장이라는 말은 사라졌다. 정규직보다는 비정규직 중심의 채용이 이루어지고, 어제보다 더 기대되는 오늘을 맞이했던 일본은 오늘보다 내일이 더 걱정되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 성장한 세대는 돈벌이나 출세에 관심을 끊었다는 의미로 사토리 세대라고 불린다. 사토리 세대는 이전에 고도성장기를 지냈던 단카이 세대와는 확연히 다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태어난 단카이 세대는 일본의 베이비붐 세대로 경제가 성장하는 시기에 건전한 회사에 들어가 정년 보장을 위시하여 많은 혜택을 받았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20대에 가정을 꾸리고, 30대에 모아둔 돈에 은행 대출을 보태 도쿄에 집 한 채를 마련한 후 이 가치가 몇 배로 오르는 시대에 살았다. 그러나 그 이후에 등장한 사토리 세대는 불안한 내일과 감정에 신경 쓸 여유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이전에 남들이 걸었던 길을 따라가기만 하면 어느 정도 누릴 수 있었던 성공적인 삶이 이제는 길을 ‘잘’ 개척해나가도 보장받기 어렵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소확행’은 여유를 잃어버린 삶을 살아가고 있는 청년 들을 위로하기 위해 등장했다.

 20세기 후반 일본의 사회경제적 맥락은 오늘날 한국의 맥락과 비슷하다. 일본에 사토리 세대에 비견하는 세대는 한국의 밀레니얼 세대이다. 이들은 1980년대 초부터 2000년대 초 사이에 태어나 지금 우리 사회의 청년으로 자리 잡았다. 이들은 흔 히 N포세대라고 불린다. 삼포세대(三抛世代)가 연애, 결혼, 출산 3가지를 포기한 세대였다면 이들은한 걸음 더 나아가 보다 많은 것들을 포기해야만 하는 세대이다. 오늘날 20대들의 모습은 과거와 비교해 조금 힘겨워 보인다. 당장 대학생만 되더라도 이전과 비교해 가파르게 오른 등록금과 학교 근처 번화한 집값의 월세를 걱정해야 하고, 이후에도 불안정한 취업 시장이나 능력이 되지 않으면 선택할 수조차 없는 결혼 등의 여러 압박이 기다리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2030 세대는 소확행이라는 선지밖에 없는 ‘1지 선다형’ 시험을 치는 것이다.


3. 한국사회는 왜 소확행을 욕망하는가

 소확행이라는 단어는 3개의 개념으로 구성되어 있다. ‘작다’와 ‘확실하다’ 그리고 ‘행복하다’이다. 여기서 가장 의미 있는 개념은 ‘확실하다’이다. 이는 ‘조작(Control) 가능성’과 ‘접근(Contact) 가능성’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불안정성이 높아지고 예측 가능성이 점점 낮아지는 한국 사회에서 사람들은 자신이 직접 통제할 수 있고, 접근할 수 있는 대상을 추구하는 행위는 자연스럽다. 행동주의 이론에 따르면 개인은 그가 속한 사회의 성격에 따라 다른 모습의 사회적 욕구를 보인다. 이에 따라 이전에 없었던 욕구가 생기기도 하고, 이전에 있었던 욕구가 사라지기도 한다. 성취 욕구 역시 사회적 욕구 중 하나이다. 급격하게 변하는 한국 사회에서 청년들은 자신이 충분히 완수할 수 있을 정도의 목표를 설정하고 이를 이루는 방식으로 자신의 성취 욕구를 만족시키는 것이다. 욕망하고 욕망을 이룰수 있는 사회에서 대기업 입사라는 사회적으로 인증된 성공에 해당하는 목표를 꿈꾸고 이를 달성함으로써 성취 욕구를 충족시켜왔다면, 욕망한 것을 이룰 수 없는 사회에서 사람들은 못 이뤄도 큰 타격이 없는 로또 당첨 아니면 언제든 성취할 수 있는 집 앞 편의점에서 맥주 한 캔 등으로 목표를 바꾼다. 욕망의 충족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사회에서 성취 욕구마저 잃어버린 세대는 매우 크거나 매우 작은 대상을 욕망한다. 둘 다 아무런 충족 욕구를 유발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이러한 맥락에서 바라봤을 때, 소확행은 행복이 아니다. 소확행은 여러 압박에 내몰린 2030세대가 행복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절망이다. 기존의 기성적인 부와 명예를 통한 행복이 불가능한 신세대의 마지막 절규인 셈이다. 사회는 이들을 소확행으로 내몰고 있다. IMF 체제 이후 한국 경제는 생각보다 각박했다. 사람들이 느끼는 삶의 지표는 개선되기는커녕 악화일로를 걸었다. 시간에 맞춰 제때 버스를 탈 수 있는 확률보다 죽기 아니면 살기로 뛰지 않으면 막차마저 제대로 탈 수 없는 형편에 놓인 것이다. 마지막으로 떠나는 지하철을 타기 위해 개찰구에서부터 뛰어 내려온 한 승객이 지하철을 놓치게 되는 장면을 상상해보자. 이는 생각보다 끔찍한 일이다. 더구나 열차를 놓친 사람이 그 승객 한 명뿐이라 텅 빈 플랫폼에 승객 홀로 서 있다면 그 고통의 크기는 여럿보다 훨씬 클 것이다. 조금 다행인 것은 놓친 지하철은 대체할 수 있는 수단이 분명 존재한다. 심야버스를 탈 수도 있고, 택시를 탈 수도 있을 것이다. 상황이 영 여의치 않으면 조금 몸과 마음은 힘들겠지만 몇 시간 더 기다려서 다음날 해가 뜨기 전에 출발할 첫차를 타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만약 인생이라는 하루 속에서 한 대밖에 없는 열차처럼 중요한 몇 번뿐인 기회를 놓친다면 사람들이 선택할 수있는 별다른 옵션은 주어지지 않는다. 이런 이들에게 소확행은 스스로를 위로할 수 있는, 좀 더 정확하게 말하면 위로한다고 스스로에게 믿게 만드는 주술적 행위이다.

 다만 조금 더 살펴볼 점은 과연 밀레니얼 세대들만 이전 세대보다 불안정하고 불확실해진 삶을 살아 가고 있느냐는 점이다. 물론 모두가 그렇지는 않다. 그러나 이전보다 밀레니얼 세대들이 ‘더’ 불안정하고 ‘더’ 불확실한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는 점은 여러 지표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이전의 세대들에게는 5판 3선승제 게임이 가능했다면 밀레니얼 세대들에게는 단판 승부의 게임만이 가능하다. 오늘의 실수를 내일 회복할 수 있는 게임이 아니라 오늘 지면 탈락하는 구조 속에서 구성원들은 살아남기 위해 커다란 스윙이 아닌 번트를 대기 마련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소확행은 사회 구성원으로의 역할과 노력을 포기할 수도 있다는 무의식적 선언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나의 욕망을 이뤄줄 사다리가 보이지 않는다면 사라진 사다리를 찾기보다 사다리가 사라졌다는 사실을 외면하겠다는 심리적 결정체가 바로 소확행인 것이다. 그러나 이제 이러한 외면마저 쉽지 않다. 이전의 소확행이 기성세대가 정의해놓은 성공에서 조금 벗어나 일상에서 충분히 행복을 누리는 것을 의미했다면, 코로나 19는 그만큼의 행복마저 쉽게 허락하지 않는다. 접근가능하고 조작 가능했던 일상조차 바이러스의 위협 속에 통제 불능의 상태로 내몰린다. IMF 체제 이후 반복되는 경제 위기 속에서 사회적 생존을 추구했던 구성원들이 코로나 19사태로 이제는 물리적 생존을 직접 걱정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다. 행복이라는 애매한 측정 도구로 스스로를 위안할 수밖에 없었던 우리 사회 구성원들은 이제 그 애매한 도구마저 사용하지 못할 위기에 처해있는 것이다. 빛을 잃은 세상 속에 빚만 가득한 청년들에게는 소확행은 닿지 않는 신기루이자 어둠에서만 정겹게 보이는 장식용 촛불에 불과하다.


4. 좌절된 욕망을 가리는 실체로서의 소확행

 어제 저는 실수를 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어제의 저도 여전히 저입니다. 오늘의 저는 과거의 실수들이 모여서 만들어졌습니다. 내일, 저는 지금보다 조금 더 현명할지도 모릅니다. 이 또한 저입니다. 그 실수들은 제가 누구인지를 얘기해주며, 제 인생의 우주를 가장 밝게 빛내는 별자리입니다. 내가 누구인지, 내가 누구였는지, 내가 누구이고 싶은지를 모두 포함해 나를 사랑하세요.*

* BTS UN 연설문, https://www.sedaily.com/NewsView/1S4RVLY6D5, 2020.10.11. 검색.

 BTS의 UN 연설문은 감동적이다. 요즘 인터넷에서는 BTS류의 ‘행복’, ‘사랑’과 같은 추상적인 개념을 강조하는 내용의 인터뷰 등을 흔히 볼 수 있다. 최근 만들어지고 대중들에게 수용되는 메시지는 ‘너는 잘하고 있다’라거나 ‘나를 다시 인식하라’라는 식이 다수를 차지한다. 즉, 손에 잡히는 구체적인 부분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으며 고통스러운 현실을 애써 피하려는 의도가 전면화된다. 기존의 산업사회가 계급이나 지위 등에 의해 보상받을수 있는 사회였다면 오늘날 한국 사회는 행복이나 사랑과 같은 추상적인 개념을 통해 개인의 삶을 측정한다. 더 이상 무언가를 보상해줄 수 없는 시대에 이러한 추상적인 개념은 벼랑 끝에 놓인 사람들을 달랠 수 있는, 혹은 스스로를 위로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이면서도 값싼 수단이 되었다.

 일상생활에서 나타나는 고통과 행복은 이렇듯 인정욕구에 의해 좌우되므로, 삶을 깊이 있게 들여다 보면 인간의 모든 행동은 인정욕구를 충족시키려는 노력의 연속임을 알 수 있다. (중략) 이렇듯 고통의 발생과 해소는 한 개인이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타인과 맺고 있는 사회적 관계와 관련되어 있으므 로, 자신의 삶의 조건을 벗어날 수 없는 고통은 심각한 것으로 느껴지기 마련이다.*

* 이정은, 사람은 왜 인정받고 싶어하나, 살림출판사, 6-7 쪽, 2005.

 개인은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고통의 발생과 해소를 이어나간다. 그러나 고통에 대한 해소가 구조적으로 가로막힌다면 고통을 해소하려는 욕구는 자연스럽게 왜곡된다. 더 나은 삶을 희망하는 개인에게 사회가 사다리를 차버린다면 개인은 사회가 계층과 계급이 있는 공동체로 인지될 것이고 극심한 좌절감에 빠지게 된다. 이들에게 소확행은 그무엇보다 달콤한 사탕이다. 소확행은 남들보다 나은 삶을 욕망하는 사람들에게 너의 삶은 뒤처지지 않았노라고 인정해주는 ‘증명서’인 것이다. 이 맥락에서 ‘소비자가 값비싼 음악회의 표를 구매하면서 실제로 음악회에서 연주되는 음악 그 자체를 좋아하고 숭배하기보다는, 연주회 입장권을 사기 위해 자신이 지불했던 돈을 숭배한다.’*라는 아도르노의 주장은 적절하게 들린다. 즉, 사람들이 소확행을 외치는 이유는 소확행이라는 행위를 통해 행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소확행을 했노라 말하는 순간 얻을 수 있는 그 만족감이 소확행을 욕망하게 만든다. 이제 사람들은 더 이상 행위의 결과로서의 행복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어떠한 행위가 아닌 행위 자체가 ‘전시’되어야 비로소 행복이 완성될 수 있다. 아니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행복감이 확정되는 것이다. 바로 이때 왜곡된 욕구로써 소확‘행’은 ‘완성’된다.

* 신해경, 벤야민 & 아도르노 대중문화의 기만 혹은 해방, 김영사, 99쪽, 2009.


5. 2020년 소확행의 실체

 전시를 통해 인정되는 소확행은 하루키의 소확행과 궤도를 달리한다. 처음 언급됐던 소확행을 기억하는가. 소확행은 한 장의 깨끗한 면 티셔츠와 같은 소소한 그러나 확실한 감각적 실체였다. 그러나 최근의 소확행은 소확행의 탈을 쓴 인정욕구의 실현체로 변신한 지 오래다. 지금 우리 사회가 바라고 누리려는 소확행은 우리 스스로 만들어낸 욕망의 괴물일지도 모른다. ‘소확행’은 실제로 사람 들에게 선택받은 적 없는 행복이었지만, 사람들은 기의 없는 텅 빈 기표로서의 소확행을 욕망한다. 기의가 없기에, 즉 박제가 되지 않았기에 소확행은 어떤 맥락에서도 ‘멋진’ 단어가 된다.

 20세기의 대중사회를 예언했다는 평가를 받는 오르테가는 기본적으로 대중을 세상을 파괴하지도 않지만 개선의 의지가 없는 존재로 인식했다. 더불어 그는 대중에서 하나의 독특한 특성을 추출한다. ‘하나의 기본 유형을 반복해서 따라 한다’라는 것이다. 인기 프로그램인 <삼시세끼>는 이를 잘 보여준다. <삼시세끼>는 ‘자급자족’ 유기농 라이프 라는 주제로 몇 명의 연예인이 외딴 농촌이나 어촌에서 머무는 내용으로 방송이 진행된다. 프로그램 내에서 소확행이라는 직접적인 언급은 없지만. 우리에게 익숙한 사람들 내지는 우리가 동경하는 사람이 밥을 짓고 밭일을 하는 등의 일상적인 행동을 보며 우리는 그들이 누리는 ‘소확행’에 공감하며 이를 가상으로 소비한다. 프로그램이 있기 전까지는 해보고 싶은 생각도 할 생각도 하지 못했던 행동들이 ‘소확행’이라고 규정되면서 우리는 어느새 이를 욕망하고 있는 것이다. 소확행은 모델로 보여질 뿐, 우리는 그 소확행을 누리지 못한다. 소확행은 전시될 뿐이다.

 오르테가의 식으로 바라보자면, 오늘날 대중은 ‘소확행’이란 기의 없는 기표를 계속 소비하면서 이를 자신의 취향이자 삶의 한 부분으로 인식하는 것이며 이는 자기기만으로 귀결된다. ‘소확행’이라는 개념이 자신의 주체적 판단에 의해 형성된 개념이 결코 아니다. 소확행을 통한 만족감은 이미 자신의 것이 아니라 조작되고 인위적으로 조성된 감정이자 이미지일 뿐이다. 그래서 소확행은 ‘위험’하다.


참고문헌

■ 무라카미 하루키, 무라카미 하루키 수필집 3 - 랑겔한 스섬의 오후, 백암, 1994.

■ 신용환, 이캐시연주, 「이중적 관점으로 본 밀레니얼 세대의 소비와 거울을 통한 브랜드 커뮤니케이션 연구」, 한국디자인문화학회지24-1, 한국디자인문화학회, 2018.

■ BTS UN 연설문, https://www.sedaily.com/NewsView/1S4RVLY6D5, 2020.10.11. 검색.

■ 이정은, 사람은 왜 인정받고 싶어하나, 살림출판사, 2005.

■ 신해경, 벤야민 & 아도르노 대중문화의 기만 혹은 해방, 김영사, 2009.

■ 자크 라캉, 욕망 이론, 문예출판사, 1994.

■ 오르테가 이 가세트, 대중의 반역, 역사비평사, 2005.

■ 군터 케바우어, 스벤 뤼커, 새로운 대중의 탄생, 21세기북스, 2020.

 

수상소감

 여러분의 2020년은 어땠나요? 올 한 해, 우리는 코로나19라는 새로운 존재로 조금은 힘겨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하지만 그 시간 동안 당연한 것들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기도 했습니다. 이 글 역시 그속에서 얻은 깨달음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부족한 제가 한편의 글을 쓰기까지 많은 분의 도움이 있었습니다. 먼저 언제나 곁에서 방향을 잡아주시는 주민재 교수님, 정치학이라는 학문을 가장 따스하게 전달해주시는 정성철 교수님을 비롯한 여러 교수님께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더불어 대학 생활의 즐거움을 깨닫게 해준 세은, 다은, 민석등 동기와 선후배분들, 차은경 조교님 감사합니다. 마지막으로 언제나 제 편이 되어주시는 부모님과 가족들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비평의 수상 소감은 어떠해야 하나 고민했습니다. 차갑고 날카로워야 할지 따듯한 온기를 전달해야 할지 생각했습니다. 고민의 끝에 따듯함을 더하고자 합니다. 수많은 동화에서 주인공들은 시련과 고난에도 견디면서 삶의 의미를 찾아갑니다. 저는 제 인생이라는 동화 속 2020년이라는 조금은 힘겨웠던 한 장을 이 상으로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그리고 새로운 장에서도 저는 여느 동화의 주인공처럼 서툴지만 씩씩하게 앞으로 나아가겠습니다. 여러분도 각자의 삶 속에서 의미를 더해가기를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김성열 학생 (명지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김성열 학생 (명지대학교 정치외교학과)

 

심사평

 2020학년도 백마문화상 비평 부문에는 총 7 편의 작품이 제출되었다. 현대 사회의 일반적 문제를 다룬 주제에 더하여 재난이나 기후 위기를 다룬 작품들이 제출된 것은 코로나19 및 환경 변화로 우리 사회가 암울한 상황에 처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예년에 비하여 적은 응모작이지만 우리 사회가 당면하고 있는, 어쩌면 인류의 생존과도 직결될 수 있는 심각하고 중대한 문제에 대한 나름대로의 비평적 전망을 모색하고자한 노력이 엿보인다는 점이 2020년 응모작들에서 찾을 수 있는 의의라고 하겠다.

 응모작들의 관심사는 다양했다. ‘소확행’, ‘소셜 미디어’, ‘기후 위기와 감염병’, ‘재난’, ‘결혼, 이혼, 비혼’, ‘현재의 정치’, ‘악플’ 등 시사적 의미를 지니는 주제들이 골고루 다루어졌다. 이러한 사회문제에 대하여 직접적으로 비평을 전개하는 방식을 택한 응모작도 있었으며, 혹은 이러한 주제를 다룬 문학작품에 대한 비평을 전개하며 이와 함께 사회 문제를 거론하는 방식을 택한 응모작도 있었다.

 당선작 「소확행은 위험하다」는 소확행의 의미를 현 시점의 맥락을 고려하여 새롭게, 그리고 예리하게 분석한 점이 돋보였다. 소확행은, “욕망의 충족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사회에서 성취 욕구마저 잃어버린 세대가 오로지 선택할 수밖에 없는 1지 선다형 시험”과 같은 것이며, 그러므로 소확행은 진정한 행복이 아니고 “여러 압박에 내몰린 2030 세대가 행복이라고 말할수밖에 없는 절망’을 표현한 것에 불과하다는 해석은, 소확행의 이면에 숨겨진 젊은 세대의 고충과 고민을 정확하게 포착한 것이었다.

 이러한 분석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소확행이 타인 앞에 ‘전시’되어야 비로소 완성되며 이러한 성격으로 인해 지금의 소확행은 왜곡된 욕구이고, 티비 프로그램의 소확행을 무비판적으로 따라하는 현 세대의 경향을 통해 현재의 소확행이 ‘조작되고 인위적으로 조성된 소확행’임을 알 수 있다는 지적은, 우리 사회의 소확행이 애초의 기원에서 이미 멀어진 채 타인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으로 성격이 변질되었음을 매우 정확하게 짚어내고 있는, 이 글의 백미로 여겨지는 대목이었다.

 소확행의 기원, 소확행의 의미 구성 등을 거론하면서 전개하고 있는 소확행에 대한 이러한 일련의 성격 규명이 짜임새 있는 구도 하에 진행되고 있지만, 도입부에서 볼 수 있는 소확행이 “결코 정의될수 없다.”와 같은 선언적 표현이나 중간 중간의 논리적 비약이 있는 문장들은 보완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더 나은 내일을 위하여-넷플릭스 다큐 ‘소셜 딜레마’를 본 뒤」라는 응모작도 소셜 미디어의 문제점을 나름대로 날카롭게 파악한 글이었다. 뉴미디어로부터 어린이 ‘시청자’를 보호하는 방법에 대한 논의는 다소 평범했지만, 어린 ‘출연자’에 대한 보호가 필요하다는 논의에서는 현재의 이슈를 적절하게 쟁점화하고 있다고 할 수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유튜브 알고리즘을 이용한 기업의 수익 창출과 국회의 비호에 대해서도 적절한 비판적 목소리를 내고 있는 글이었다.

 그 밖에 「기후 위기와 감염병 시대-포스트 휴먼으로 살아남기」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밝히고자 한 점에서 온당한 문제의식을 지닌 글이었으며, 「재난은 누구에게 유리한 가-최진영, ‘해가 지는 곳으로’에 답하다」는 작품에 대한 비평이면서 아울러 2020년의 재난 문제를 다루고, 또 한국 사회의 다양한 사회적 화두를 함께 언급하고자 한 노력이 돋보이는 글이었다.

 비평 부문에 응모한 글들을 심사하면서 아쉬웠던 점이 있다. 주제에 대한 선택은 의미가 있었지만, 그 주제를 한 편의 글로 구체화하면서 명확한 의미가 전달되도록 표현하지 못한 글이 꽤 있었다는 점이다. 한 편의 글에는 통일성과 긴밀성이 갖추어져야 의미가 명확하게 전달되는데 이를 도외시한 채 현학적 수사로 일관함으로써 어떤 의미를 전달하고자 하는지 파악하기 힘든 글이 있었다. 문장과 문장, 문단과 문단의 연결 고리에 조금 더 신경을 써서 글을 써 주었으면 좋겠다.

장혜영 교수 (방목기초교육대학)
장혜영 교수 (방목기초교육대학)
육민수 교수 (방목기초교육대학)
육민수 교수 (방목기초교육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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