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진칼럼] 단 한 줄의 힘, 희망〈108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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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진칼럼] 단 한 줄의 힘, 희망〈1080호〉
  • 김희진 방목기초교육대학 자연교양 교수
  • 승인 2020.11.16 13: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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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85년 그려졌으나 크게 알려지지 않았다가 2008년 말에 가서 갑자기 서구 사회의 주목을 받게 된 작품이 있다. 바로 조지 프레더릭 왓츠의 그림, ‘희망’이다. 색감이 너무도 아름답다. 그러나 찬찬히 들여다보면, 희망보다는 절망감이 밀려 온다. 축축 늘어져 몸을 휘감는 천으로 된 옷을 입은 한 여성이 리라라는 이름의 수금을 타고 있는 모습이다. 위태로운 구(球) 위에 불안정하게 앉아 있는 여성은, 맨발에, 두 눈도 흰 천으로 동여매인 채 몸을 기울여 수금을 타는 데에 집중해 있다. 그런데 그녀가 그토록 애써서 연주하는 수금의 줄은 사실 다 끊어져 있고 오직 하나의 줄만이 남아있다. 절망스럽다 못해 처절하다.

 왜 작품명이 희망일까? 왓츠는 희망은 이런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듯하다. 어느 것 하나 의지할것 없고, 무엇 하나 안정적으로 확보되지 못한 가장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수금을 타는 자에게 남아있는 수금의 그 한 현, 그것이 바로 희망이라고. 그것이 그녀가 포기하지 않고 삶을 지속하게 하는 힘이라고. 그렇게 해석하고 보니, 그녀에게서 결연한 의지가 느껴진다.

 우리 사회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절망을 이기지 못했을까? 지난 연말 우리나라 자살자는 급증했고 올해에도 감소 경향은 보이지 않는다. 지난 10년 이상 지켜온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 라는 불명예를 언제까지 이어갈 것인가? 자살의 직 · 간접적 원인은 많지만 그들이 삶을 포기하게 한 공통된 생각이 있었다. 더 살아봐도 지금보다 조금도 나아지지 않을 거라는 확신. 그들에겐 수금의 그 가느다란 한 현마저 없었던 것이다.

 경제적 빈곤 속에서의 절망, 상대적 박탈감 속에서의 절망, 편견과 차별 속에서의 절망, 내집단ㆍ 외집단 편향을 노골적으로 보여주며 이를 드러내고 싸우는 어른들이 보여주는 절망…. 다음 세대를 이어 갈 아동, 청소년, 그리고 청년들에게 우리 사회의 미래는 어떻게 보일까?

 수금 타는 여인이 한 줄 남은 수금에도 희망을 버리지 않은 것은 단지 아직 한 줄이 남아있다는 이유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지금은 비록 척박한 상황이나, 아마도 성장기에서부터 어른들과 사회가 만들어 준 환경적 요인이 영향을 끼쳤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것이 삶의 DNA가 됐을 것이다. 청년들은 왜 계속해서 스스로 목숨을 버리는가? 그건 이 사회의 어른들이 절망의 상황에서는 그렇게 해버려도 된다고 반복된 시범들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어떤 어른들은 ‘괜찮아, 다 잘 될 거야’ 하면서 여러 가지 형태의 핑크빛 미래를 선언해도, 이 또한 ‘희망 고문’의 한 얼굴로 남은 적이 많다. 많은 이는 헛된 희망을 품게 하며, 결국 작고 소박한 목적지에도 이를 수 없게 하면서, 절망감만 연장시키는 희망 고문을 비판한다. 그러면서 희망도 싸잡아 비판한다. 희망 고문은 희망이 아니다.

 수금의 현 중 아랫면과 윗면 모두에 닿아있는 줄, 그 한 줄만이 진짜 희망이다. 지금 눈에 보이는 줄이 제법 길고 튼튼해 보여도 그것이 윗면과 끊어져 있는 현이라면, 그것을 절망의 대안이라고 말하지 말자. 썩은 동아줄만은 잡게 하지 말자. 진심으로 존경할 수 있는 어른을 만날 수 있다면 좋겠다. 젊은이에 비하면 많이 산 나도 그러한데, 우리 청년들은 얼마나 삶의 모델을 보고 싶어 할까? 좋은 정책으로 이들의 앞날을 밝힐 수 있는 어른들도, 경제적으로 직접적인 도움을 줄 수있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그건 매우 좋은 일이지만 모든 어른이 그리할 수도 없으며, 더구나 그 좋은 일을 한 사람의 삶이 본이 되지 못하는 삶이라면, 더 많은 사람을 실망시키거나 나아가 괴롭게 만들 수도 있다. 대신, 평범해도 바른 신념으로, 묵묵히 정직하고 일관되게 살아가면서, 좋은 본을 보여주며, 가정 안에서 또 밖에서 만나는 이 땅의 미래들에게 손을 내밀어 주고 정서적으로 비빌 언덕이 될 수 있는 어른들이 많아진다면 어떨까? 가늘지라도 진짜인 희망의 줄을 한 가닥, 한 가닥 놓아 가는 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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