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인생을 이야기하는 영화평론가, 허남웅(아랍 93) 동문을 만나다〈107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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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 인생을 이야기하는 영화평론가, 허남웅(아랍 93) 동문을 만나다〈1079호〉
  • 박재우 기자
  • 승인 2020.11.16 13: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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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마가 아닌 초원 위의 말처럼 주위를 둘러보며 달릴 수 있는 사람이 되세요"

 

 

 

 

 

 

 

 

 

 

 

약력

2001년 딴지일보 영화팀 기자

2006년 스크린 취재 기자

2007년 FILM 2.0 취재기자

2010년 서울아트시네마 프로그래머

2012년 무비위크 객원기자

2013년 맥스무비 매거진 객원기자

 

Q. 안녕하세요, 허남웅 평론가님. 간단하게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명지대학교 93학번 허남웅이라고 하고요. 1993년에 아랍어아랍문학과에 입학했고, 졸업 후에는 영화에 관심이 많아서 영화평론가로 활동하고 있어요.

 

[영화평론가, 허남웅을 말하다]

Q. 영화계에서 20여 년 동안 글을 쓰며 살아 오셨는데, 어떻게 영화 평론을 시작하셨나요?

 처음부터 글을 쓰려고 해서 쓴 건 아니었고요. 저는 1998년 2월에 졸업을 했어요. 졸업하기 전부터 고민이 있었죠. 사회에는 수순이 있잖아요. 그게 저한테 맞을까 고민이 있어서 졸업하고 바로 어디에 들어가지는 않았어요. 밥도 팔고 술도 파는 곳에서 3, 4년 정도 일하고 지내면서도 글은 계속 쓰고 있었어요. 그 당시에는 지금하고 다르게 홈페이지가 유행이어서 ‘영화도 보고, 영화 글도 써보고, 시간을 좀 때우자’라는 생각으로 홈페이 지를 운영했어요. 그렇게 홈페이지에 글을 쓰는데 딴지일보에서 연락이 온 거예요. 딴지일보에 들어가서 글을 쓰다 보니 그 길이 확정된거죠. 처음부터 딴지일보에 들어가서 ‘영화 기자가 되어야겠다, 영화평론가가 되어야겠다’ 이랬던 건 아니고요. 어쩌다보니 홈페이지를 만들었고, 그걸 보고 딴지일보에서 연락이 왔고, 딴지일보를 다니다가 또 필름 2.0을 가게 됐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영화평론가로서 활동하게 된 거죠.


Q. 일을 하시면서 기억에 남는 일 혹은 순간이 있었나 ? 있었다면 에피소드를 들려주세요.

 가장 큰 기쁨은 딴지일보에서 불러줬을 때였어요. 그런 순간적인 기쁨 말고는, 내 안에 자부심이나 뿌듯함이 있다면, 프리랜서를 2009년부터 시작했을 때 ‘이걸로 몇년이나 갈 수 있을까, 생활이 가능할까’ 생각했는데 지금 보면 계속 하고 있잖아요. 이게 저한테는 자부심으로 다가와요. 잡지는 폐간되고 불안감이 있지만 저는 이 일을 계속하고 있으니까요. 또, 대학생 분들과 학보사에서 연락이 올 때 보람과 자부심을 느끼죠. 대학생 분들한테 연락이 온다는 것은 제가 그분들에게 인상을 남긴 거잖아요.


Q. 영화평론가가 하는 일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고 싶어요.

 저는 영화평론가로서 TV나 라디오에 출연해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영화 관련 글을 기고하고 있어요.
어느 매체건 영화에 대해 한두 꼭지는 가지고 있잖아요. 그렇다 보니까 강연이나 외부활동을 하는 일이 생기게 돼요. 영화라고 해서 영화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문학하고도 연결이 되고 음식과도 연결이 되기 때문이죠. 또, 문학 관련 팟캐스트도 하고 있고요.

 고전적으로 영화평론가는 영화를 보고 깊이 있는 글을 쓴다고 많이들 생각하시지만 그건 좁은 의미의 영화 평론가이고, 지금은 영화평론가라고 하면 영화와 관련해서 광범위하게 활동하는 사람을 말하죠. 저도 영화에 대한 이야기와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두루 하고 있어요.


Q. 평론가님만의 영화평론 과정과 기준이 궁금합니다.

 저는 주제 잡는 것을 좋아하고, 미장센 하나하나에 주목해요. 영화라는 것은 주제가 무엇이냐에 따라 색감, 배우들의 캐스팅 등 영화의 모든 것이 주제에 맞춰 진행 되거든요. 영화에 대한 글을 쓸 때도 주제가 무엇인지에 대해 먼저 밝혀요.

 화면 안에 모든 미장센에 주목해서 보기도 하죠. 단순히 영화 소품뿐만 아니라 배우의 손짓 하나하나에도 주목하는 거예요. 이 사람이 갑자기 입김을 부는데 카메라가 어떻게 따라가는지 카메라의 움직임까지 포착 하는 거죠. 가령 「기생충」에서도 지상에서는 큰 창문 으로 세상을 보여 주는가 하면, 반지하에서는 세상을 반만 볼 수 있고, 지하층에는 아예 창문이 없죠.

 영화를 볼 때 또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영화의 첫 5분이에요. 영화의 첫 5분 안에 주제와 관련한 핵심들 이라든가 영화의 트렌드 같은 것이 담겨있어요. 그 영화의 5분이 마지막 5분과 어떻게 연결될까 생각해보기도 하죠. 「마더」의 첫 5분은 김혜자가 혼자 춤추는 장면인데 마지막 5분에는 관광버스에서 모든 어머니들이 다같이 춤추는 장면이 나와요. 그 장면을 통해 ‘김혜자’라는 어머니 개인에 한정된 얘기가 아니라 모든 어머니에 해당되는 얘기로 확장되는 거예요.

 

 

 

 

 

 

 

 

 

▲ 사진은 영화 ‘기생충’(왼쪽)과 ‘마더’(오른쪽)의 포스터 모습이다.

 

Q. 평론가가 되기 위해 어떤 노력들을 하셨나요?

 저는 다른 사람들이 글을 잘 쓰는 것을 보고 그 사람 들과의 차별점을 찾아보다가 다른 사람들보다 많이 쓰려고 노력했어요. 다른 사람들이 이러한 강점이 있다면 나는 어디에서 다른 점을 찾고 차별화를 이룰 수 있어야 하는지 알아야 해요. 많이 쓰는 것이 차별화였다고 하니 지금 와서 생각하면 미련하다고 할 수 있지만, 다른게 무엇이 있을까 찾는 시도였다는 점에서 의미 있었다고 생각해요.


Q. 프리랜서 영화평론가로서의 삶과 생활에 대해 말해주세요.

 하루 패턴이 정해져있지는 않아요. 그렇지만 프리랜 서는 시간 약속을 정확히 맞춰야 해요. 활동하다보면 글을 특출 나게 잘 쓰는 사람이 있고 마감을 잘 맞추는 사람이 있는데, 매체가 선호하는 사람은 마감과 약속을잘 지키는 사람이에요. 프리랜서는 결국 자기 시간을 자기가 계획하는 사람이거든요. 프리랜서 중에서 정리도 못하고 마감과 방송 시간을 못 맞추는 사람이 있는데 저는 이 사람들이 시장에서 낙오되고 도태되는 걸 많이 봤어요. 그것들은 신뢰와 신용의 문제잖아요.
보통 자유라고 했을 때 타인에게 피해를 입히면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잖아요. 그것은 이기적인 거죠. 타인에게 피해를 안 주면서 내가 누릴수 있는 것을 누리는 것이 자유죠. 타인에게 피해를 주 면서 성공하려고 하는 사람은 결국 성공할 수 없고 만약 일시적인 성공을 이루더라도 곧 몰락할 거라는 생각을 갖고 있어요. 그거야 말로 진정한 정의라고 생각해요.

 

[93학번 허남웅 선배가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

Q. 평론가님의 대학 생활은 어떠셨나요?

 대학에 처음 들어왔을 때는 대학에 들어온 것 자체가 좋았어요. 반면에 대학에 들어와서 힘들었던 것은 대학에 들어오기 전까지 대입이라는 목표를 갖고 살아왔는데 대학에 들어오니까 그런 목표가 사라진 것이었죠. 사람이 시간을 쓰기는 하는데 아무 목표 없이 시간을 쓰니까 시간을 낭비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힘들었어요. 제가 학사경고를 2번 받았어요. 학사경고 3 번이 퇴학인데, 2번 받은 것도 수업 안 듣고 농구하고 영화보고 여행 다니고 해서 받은 거였어요. 생각해보면 당시에 논 것도 좋았지만 ‘그때 책도 읽고 공부를 했다면 좋았을 텐데’하는 아쉬움이 남아요.

 또, 저는 중앙 농구 동아리 ‘파인’ 창립 멤버였어요. 농구하는 것을 좋아해서 농구를 하다가 같이 농구하는 친구 몇 명이 “다른 학교에 농구 동아리가 있는데 우리도 동아리를 만들자” 해서 만든 거예요. 그게 얼마나 갈까 생각했는데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고 지금도 창립총회가 있으면 연락도 와요. 지금의 도서관 자리에 있었던 체육관에서 명지전문대학교 농구동아리와 농구 게임도 했었죠.


Q. 대학생 시절 힘드셨던 점이 있나요?

 집 사정이 힘들었어서 등록금이 제일 문제였어요. 등록금이 1학년 때 80만 원에서 졸업할 때 120만 원까지 올랐는데, 지금 생각하면 큰 금액은 아니었지만 등록금이 매년 인상됐으니까요. 아르바이트를 하고 주변사람들에게도 많이 빌리기도 했어요. 요즘 대학생들도 학자금 대출을 받고 갚는 게 힘들어 보이더라고요.


Q. 영화평론가가 되기 위해 필요한 역량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보통 영화평론가, 영화기자라고 한다면 영화를 심도 깊게 공부하고 영화를 많이 연구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또 영화를 많이 봐야한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기본이에요. 여러 분야를 아는 것이 필요하죠. 미술도 좀 알고 세상 돌아가는 것도 알아야 해요. 항상 예술 매체는 현실의 반영이에요. 영화는 지금의 정치 현실을 대놓고 얘기 하지는 않지만 정치 상황이 은유되어 있어서 전체를 보는 시야가 중요해요.
책을 많이 읽는 것도 중요해요. 만화, 소설, 인문학, 과학 분야 등 넓은 스펙트럼의 책을 읽어야 해요. 또 중요한 것은 무엇을 하던 간에 약자라던가 소수자에 대한 관심을 기울이면서, 모든 예술이나 문화매체의 다양성을 존중해야 하죠.


Q. 영화평론가가 익숙한 직업이지만, 막상 준비하려면 생소한 직업이기도 한 것 같아요. 영화평론가를 지망 하는 명지대학교 학생들이 있다면 어떤 말들을 해주고 싶으신가요?

 만약 무엇을 한다면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면서 활동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해요. 가령 저도 홈페이지를 만들고 글을 써서 영화 관련 일을 시작하게 됐고요. 지금은 홈페이지, 블로그, SNS 특히 유튜브가 있잖아요. 영화 잡지사에 들어가고 싶은데 준비가 안 된 거 같다고 하시는 분도 봤는데, 준비를 완벽하게 하고 무엇을 시작할 수는 없어요. 무엇이든 그 세계에 들어가 겪으면서 익히는 게 중요해요.

 자기가 재능 있고 좋아하는 것을 공개된 장소에서 해나가고, 그 재능이 누군가에 눈에 뜨인다면 그런 시도 자체가 기회를 창출할 수 있어요. 자격을 갖출 때까지 공부를 하는 것보다는 공개된 장소에서 보여주는 것 자체로 공부가 될 수 있죠. 그런 실질적인 노력이 필요해요. 그렇게 하다보면 어디선가 연락이 올 거라고 확신해요. 저도 그렇게 된 케이스니까요. 진짜 경험이죠. 물론 알고 한 건 아니었지만, 해보니까 그렇게 일이 풀리더라고요.


Q. 청년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인 ‘공정과 정의’에 대해 해주고 싶은 말이 있으신가요?

 저는 당연히 그런 가치들이 존중받고 지켜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야만 모든 사람이 기회를 부여받고 동등한 조건으로 실력을 인정받을 수 있는 토대가 마련 되니까요. 청년들이 공정과 공평의 화두를 계속 끌고 가서 정의로운 사회, 공정한 사회가 올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세상이 돌아가는 게 그렇지 않아요. 사회의 조직이 이성적이거나 합리적이지는 않죠. 청년들이 사회의 불공정과 불공평을 마주하게 되었을 때, 너무 큰 상처를 받지 않았으면 해요. 삶이라는 것은 변수가 있으니 상처를 받지 않는 대신 공정하고 공평한 사회로 변화해야 한다는 의지와 마음가짐을 유지하면 좋겠어요. 사회에 나오게 되면 꺾일 수밖에 없는 분위기가 있지만요.


Q. 명지대학교 학생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 면요?

 학생이니까 학업에 충실하는 것은 당연하고요. 또 너무 공부만 하지 말고 공부 외에 개인이 가진 많은 재능을 시험할 수 있는 시간을 가졌으면 해요. 40대까지는 힘들고 30대 중반까지는 시도해봐도 될 거 같아요. 한편으로는, 40대 이전에 어느 정도 직업적 기반을 갖추지 못한다면 40대 이후에 되게 힘들어요. 제가 영화계에서 일하면서 보면 어느 정도 기반이 된 사람과 기반이 안된 사람이 구별이 돼요. 40대가 넘어가면 기반이 안 되는 사람은 힘들어 해요. 뭔가를 바꿔야 되는데 40대가 되면 책임과 배경이 커지기 때문이죠.

 또,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뒀으면 좋겠어요. 가령 법관 되기나 삼성전자 입사를 목표로 세웠을 때, 그 목표에 매진해서 꿈을 이뤘다면 그것도 의미가 있겠지만 바라는 대로 실현이 되지 않을 가능성도 있죠. 그래서 목표만 바라보고 살아왔을 때 실패로 생기는 허무함은 어떻게 할 것인가 할 때, 무언가에 올인하기보다 다른 길을 열어두고 가능성을 생각해둔다면 만약의 좌절감과 상실감도 최소화하고 목표를 향한 길도 자연스럽게 열릴 거예요. 꼭 빠른 길을 추구하지 말고 우회해서 천천히 가면 여유도 있고 조급하지 않게 갈 수 있어요. 그래서 명지대학교 학생들이 경주마 같은 삶이 아닌 초원 위의 자유로운 말처럼 주위를 둘러보며 달릴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좋겠어요.


Q.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시나요?

 계속해서 평론 시장이나 영화 매체 쪽에서 불러준다면 그거야 말로 더할 나위 없이 좋겠죠. 한편으로는 세상이 코로나19 시대로 바뀌었잖아요. 대중들이 집안이나 제한된 공간 안에서 무언가를 즐기고 자기 콘텐츠를 만들어 내는 게 중요해졌어요. 그래서 ‘내 콘텐츠는 무엇일까, 앞으로 무엇으로 할까’ 계속 고민하고 있어요. 그런 고민을 해나가면서 평론을 계속 해나갈 생각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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