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대신문 기자들의 소회〈107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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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대신문 기자들의 소회〈107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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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20.11.16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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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민 기획부장(기획부 59기 정치외교학과 19학번)

 명대신문 창간 66주년을 맞는 1079호는 필자가 신문사에 들어와 발행하는 25번째 신문이다. 신문사에 처음 들어와 보도기사 하나를 쓰면서도 힘들어했던 필자가 기획부 부장이라는 자리에 앉아 25번째 신문의 마감 작업을 진행하기까지는 고단한 나날의 연속이었다. 기획기사 소재를 정하지 못해 밤새 소재를 찾았고, 겨우 준비한 기획안은 “어려울 것 같아요”라는 말과 함께 물거품이 됐다. 며칠 밤을 새가며 신문을 발행하고 나면 동기들과 선배들의 얼굴에는 피곤함이 드리워져있었다. 그렇지만 멈추지 않았다. 이번에도 무사히 신문을 발행했다는 뿌듯함과 안도감, 기사 하단에 실린 석 자의 이름과 동료 기자들이 필자의 동력원이었다.

 ‘종이신문의 위기’라고 불리는 시대에 명대신문은 여전히 종이신문을 만들고 있다. 거기에 코로나 19라는 새로운 위기까지 닥쳐왔지만 명대신문은 멈추지 않고 한 발씩 계속 나아가고 있다. 우리가 발행하는 신문은 에타보다 느리고 유튜브보다 재미없음을 안다. 하지만 명대신문은 계속해서 명대신문만의 가치로, 우리의 언어와 소통방식으로 존재하고 있다. 66주년을 맞은 명대신문은 예전과 많이 달라졌지만, 기자들의 열정만은 예전과 같다. 우리는 여전히 밤새 기사를 쓰고 있고, 본 적 없는 사람과 인터뷰를 하고, 신문을 만든다. 마감을 마친 동기들과 후배들의 얼굴에는 여전히 피곤함이 드리워져있다. 학생과 기자 일을 병행하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우리를 계속해서 움직일 수 있게 하는 것은 이번에도 무사히 신문을 발행했다는 뿌듯함과 안도감, 기사 하단에 실린 석 자의 이름과 동료 기자들이다.

 

유근범 기자(기획부 59기, 정치외교학과 19학번)

 학우들의 목소리가 필요합니다.

 코로나19 시대에도 명대신문은 지난 3월부터 현재까지 13개의 신문을 발행했다. 학교를 대표하는 언론사로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고 그 자리를 묵묵히 지켜온 결과이다. 필자는 기획부 기자로서 2020 년도 5개의 사회기획을 작성했고, 그중 4개의 사회기획에서 ‘청년’을 중심으로 기사를 썼다. 마찬가지로 명대신문 기획부 기자들도 ‘청년’을 핵심으로 기사를 작성하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 청년을 위해 목소리를 내는 사람은 드물다. 청년들은 미래 사회를 이끌어갈 주체로, 스스로 목소리를 낼 줄 알아야 한다. 대학 사회에서는 이를 학보사가 대신할 수 있다. 신문의 모든 지면을 ‘청년’과 관련해서 쓸 수있는 것은 학보사만이 가능하다.

 하지만 우리 대학 학우들의 명대신문 참여도는 저조하고 신문을 읽지 않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는 학교의 부조리함을 묵인하고, 사회 기득권 세력에게 굴복하는 것과 같다. 명대신문은 학교뿐만 아니라 사회의 부조리함까지 학우들을 위해 대신 전달할 준비가 되어있다. 따라서 학우들이 명대신문을 적극적으로 활용했으면 좋겠다. 필자도 초심을 잃지 않고 늘 한결같은 마음으로 학우들 앞에 설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더불어 명대신문에서 백마인의 울림터 카드뉴스를 제작하고 있는 만큼, 우리 대학 학우들이 명대신문에 더 가까이 다가갈 방법을 고민하고 또 고민할 것이다.

 

박재우 기자(보도부 60기, 국어국문학과 15학번)

 명대신문은 보통 2주 간격으로 신문을 발행한다. 첫째 주 월요일에는 강평과 기획회의를 진행하고 그다음 주 목요일과 금요일에는 마감과 조판 작업으로 한 호의 신문 발행을 마무리한다. 그사이 신문사 기자들은 취재를 진행하고, 신문사 데스크진은 데스크 회의와 기타 업무로 빽빽한 시간을 보낸다.

 2주간의 일정을 보내고 신문을 학교 곳곳에 배포하면 우리 대학 구성원들은 학교 곳곳에 비치된 신문 거치대에서 신문을 읽거나, 교수자들의 경우 연구실에 배포된 신문을 읽을 수 있다.

 명대신문 기자로서 신문사에 지원하면서 세웠던 목표는 ‘읽히는 신문을 만들자’였다. 신문은 글이기 때문에 읽히기 위해 쓰인다. 언뜻 당연해 보이는 목표를 다짐으로 세웠던 이유는 나부터 학내 신문의 존재조차 몰랐기 때문이다. 학보사에 대한 무관심은 타 대학도 마찬가지다. 종이 신문의 구독률이 떨어지고 포털 사이트에서 뉴스를 과자처럼 소비하는 시대에 학교 이야기를 담은 기사를 지면으로 (혹은 학보사 홈페이지로) 찾아 읽는다는 건 귀찮고 무용한 일이다.

 이런 현실에도 본 기자가 신문사에 지원하고 계속 활동을 이어나가는 이유는 확실하다. 기자가 시간 들여 읽을 만한 기사를 생산하면, 정보가 필요한 학내 구성원은 명대신문 거치대와 홈페이지를 찾을 거라 확신하기 때문이다. 지난 66년 동안, 명대신문이 읽을 만한 기사를 발행하고 독자들이 이를 구독해왔듯이 말이다.

 

김정세 기자(보도부 60기, 국어국문학과 20학번)

 명대신문에 자기소개서와 지원서를 메일로 보내던 날을 기억한다. 수습기자 지원의 마지막 날이었는데, 아무리 봐도 내 지원서가 미흡한 것 같아 보내지도 못하고 고민하고 있었다. 그렇게 긴장하며 시작한 기자 생활이었다. 말을 많이 못하는 성격인데도 불구하고 학교 이곳저곳에 전화를 걸어 인터뷰를 요청하고, 처음 보는 학우들에게 인터뷰를 해줄 수 있는지 물어봤다. 그리고 코로나19로 인해 대부분의 학우들이 등교하지 않는 학교에 찾아오기도 했다. 이렇게 바쁜 일상에 치여 살다보니 수업이 비대면으로 이뤄지는 게 차라리 낫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다보니 시간이 훌쩍 지나 2학기가 됐다. 수습기자에서 정기자가 되니 신문사에서의 일상은 더욱 바빠졌다. 방학 도중에는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마치 출퇴근하듯이 학교에 와야 했고, 개강 이후에는 개강호를 제외하고 매번 탑기사와 기획기사를 번갈아가며 작성했다. 그러지 않아도 오래 걸리던 마감은 더욱 늦어져, 평소보다 마감을 일찍 시작했음에도 12시가 훌쩍 넘은 시간에 학교 밖으로 나와 어떻게 집으로 돌아가야 할지를 고민했다.

 그럼에도 명대신문의 기자라는 일에 매달려 있게 만드는 것은 기사가 통과된 이후의 성취감 때문이다. 기사 작성을 끝마치고 나오는 길에는 그래도 이번 호도 무사히 끝마쳤다고 안심하며 기쁘게 발걸음을 옮겼고, 신문이 발행된 이후에는 기사 말미에 적힌 내 이름을 보며 뿌듯해했다. 몇 번의 마감을 거친 지금도 여전히 명대신문은 내게 너무 어려운 일이지만, 여전히 내게 커다란 뿌듯함을 안겨주는 일이기도 하다. 지금에 와서는, 내가 작성한 기사가 명대신문에 실린다는 것이 행운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김한백 기자(기획부 60기, 정보통신학과 20학번)

 목요일. 주말의 관문인 금요일의 바로 전날. 목요일이 되면 신문사의 불은 밝혀진다. 밤을 새서 마감하고 첫 차를 탄다. 고단한 하루를 마감하고 오는 길. 고단한 하루를 시작할 사람들과 마주한다. 그들을 보면 이런 생각을 한다. ‘매일 반복되는 일상이 싫증나지 않을까?’, ‘그들의 삶을 지탱하는 동력은 뭘까?’ 그리고 자연스레 필자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생각으로 넘어간다. ‘신문사 일이 힘들지 않은가?’ 잠깐의 고민 후 돌아오는 답은 밤을 새서 마감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아직까지 싫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이토록 열심히 무언가를 해본 기억이 드물기 때문. 하지만 이 일에 대한 열정이 사그라들고, 점차 반복되는 일상에 지치게 될까 두려움도 느낀다. 두려움이 엄습해올 때 필자는 ‘이 일을 하게끔 지탱하는 동력은 뭐지?’라고 스스로에게 묻는다. 사람마다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필자는 초심이라고 생각한다. 명대신문에 들어올 때, 필자가 가졌던 초심은 ‘설득할 수 있는 글을 쓰자’였다.

 여러 사람에게 내 자신을 각인시키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감정이 실리게 되고, 독자를 위한 기사 보다는 본인 만족을 채우고 있었다. 그래서 생각을 달리 했다. 감정을 싣지 않는 글을 쓰겠다고. 흩어진 정보를 집약해 학우들이 읽기 쉽게 전달하겠다고. 다시 그들을 본다. 이 모든 과정을 이겨낸 듯 의연해 보인다.

 

김석호 기자(보도부 60기, 행정학과 17학번)

 명대신문 창간 66주년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명대신문이 쌓아온 전통의 계보를 이어나갈 수 있다는 데에, 명대신문의 일원으로서 자랑스럽습니다. 선배님들의 노력에 먹칠하지 않도록 정진하겠습니다.

 지난 4월, 복학과 동시에 명대신문에 입사했습니다. 군 복무 중 수많은 고민을 거듭하며 다짐한 결과였습니다. 부족한 제게 기회를 준 명대신문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의지’와 ‘학우분들을 대변 한다는 자부심’으로 취재했습니다. 물론 힘든 순간도 여럿 있었지만, 단 한 순간도 후회하지 않았습니다. 명대신문은 그저 학보사가 아닌, 저를 성장케 한, 저의 첫 언론사이기 때문입니다.

 올해, 각종 학내 논란이 불거졌습니다. 저는 보도부 정기자로서 이를 개진해야 한다는 일념하에, 열의를 갖고 보도했습니다. 학우분들의 목소리를 실어 해결책 제시를 요구했고, 학우 권익 증진을 도모했습니다. 저의 작은 노력이 수많은 학우분들을 대변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임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학우분들을 대변해야 하는 기자로서 여전히 부족한 게 사실입니다. 제가 자격이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끊임없이 노력하겠습니다. 문제를 통찰해 사견이 배제된 기사로 찾아뵙겠습니다.

 언제나 학우 여러분 곁에서 등불을 밝히는 명대신문이 될 것입니다. 명색을 내세우지 않는 겸손한 기자가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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