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자인경제학]공간경제학〈107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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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경제학]공간경제학〈1079호〉
  • 장기민 디자인경제연구소장
  • 승인 2020.11.16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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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3월, 세계적인 건축가 렘 콜하스(1944~)가 설계한 갤러리아백화점 광교점이 오픈했다. 이곳은 렘 콜하스의 건축 스타일답게 실내조명과 자연광이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디자인패턴을 보여주고 있는데, 안정적인 외관과 불규칙한 볼륨감을 적절히 믹스시킨 새로운 형태의 건축물이다.

 지금까지 우리들의 관념 속 백화점의 형태는 모든 면이 벽으로 막혀있어 밖을 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그렇지만 갤러리아백화점 광교점은 울퉁불퉁한 형태의 창문을 건물 외벽 중간중간마다 연결해 백화점 건축설계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전통적으로 백화점의 공간디자인에서 시계와 유리창은 늘 배제되는 요소였다. 백화점을 찾은 고객들이 시계를 보게 되면 쇼핑을 일찍 마치고 귀가해 버릴 수 있는 이유에서였다. 유리창 또한 손님들이 날이 저물고 있다는 걸 깨닫고 일찍 쇼핑을 마무리 할 수 있다는 계산에서 설치하지 않는다. 바깥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면, 우산 없이 등교한 아이 걱정에 황급히 쇼핑을 마무리하고 떠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백화점의 전통적인 풍토 속에서 ‘우 산 없이 집을 나간 아이 걱정’, ‘얼른 집에 가서 저녁 준비를 해야겠다’ 등의 조급함을 불러올수 있는 유리창을 갤러리아백화점 광교점은 과감히 설치한 것이다.

 발터 슈미트(1965~)가 지은 『공간의 심리학』이란 책에는 햇빛이 없을 경우 사람들의 생활리듬이 어떻게 변화하는지에 대한 실험이 소개된다. 행동생리학자인 위르겐 아쇼프 (1913~1998)는 햇빛이 들지 않는 격리된 수면실에 사람들을 넣고 관찰했다. 그러자 대부분의 사람은 햇빛이 없는 환경 속에서 25시간의 생활리듬을 보인다는 것을 알게 됐다. 햇빛이 없는 환경 속에서 사람들은 시간을 조금씩 늦게 인식하고 행동하게 됐으며, 햇빛이 인간의 생활리듬을 조절하는데 많은 부분을 기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동안 우리는 햇빛이 들지 않는 백화점에서 쇼핑을 해왔고, 외부 세계와 철저히 차단된 공간을 경험해왔으며, 이 때문에 백화점 매출에 많은 도움을 제공했다.

 창문이 없는 건축양식이 백화점의 전형적인 패턴이었다면, 이제는 유리창이 있는 백화점이 생겨났으니 백화점 업계에서는 창문이 있고 없고의 두 부류 경쟁이 시작된 셈이다. 사람들은 반신반의할 것이다. 그동안 백화점이 창문을 만들지 않았던 데에는 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서였을 텐데 굳이 그 부분에 대해 무리한 도전을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말이다.

 의학심리학자인 요제프 빌헬름 에거(1775 ~1854)의 말을 인용하면, 온화하고 따스한 빛은 심리적 안정감을 제공해주는 동시에 가라앉은 기분을 밝게 끌어올려 준다고 한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우리는 정 가운데에 있는 책상보다 창가에 붙어있는 책상에 심리적으로 더 이끌리게 된다고 한다. 즉, 햇빛이 들지 않던 기존의 백화점은 손님의 하루를 25시간으로 늘려주며 더 많은 시간을 외부와 단절된 쇼핑 공간에서 지낼 수 있게 했지만, 햇빛이 들어오는 백화 점은 손님에게 안정감과 밝은 기분을 제공해 할수 있다는 것이다.

 심리학자 커트 르윈(1890~1947)은 사람과 환경이 상호작용하고 있으며, 공간이 변하면 사람의 태도 또한 바뀐다는 것을 수학 공식으로 증명해낸 바 있다. 우리는 장소별로 행동해야 하는 태도에 대해 어느 정도 인지하며 지내고 있다. 노래방에서는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게 가능하지만, 노래를 다 부르고 난 뒤 나와서는 소리를 지르면 안 된다는 점, 운동장에 서는 자유롭게 소리치며 뛰어다닐 수 있지만, 병원이나 교회에서 그래서는 안 된다는 점 등말이다.

 우리는 그동안 백화점이라는 공간 안에서 해도 되는 행동과 하면 안 되는 행동에 대해서 머릿속에 잘 계산된 상태로 지내오고 있었다. 백화점을 방문할 때의 마음가짐도 다른 공간의 경우와는 달랐다. 하지만 이제는 백화점에서 행동에 대한 고정관념을 고수할 필요가 없을 듯하다. 백화점이라는 공간이 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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