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작은 세계]두 시간의 작은 쾌락〈107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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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작은 세계]두 시간의 작은 쾌락〈1078호〉
  • 이유리 작가
  • 승인 2020.11.09 17: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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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칼럼은 ‘은정’이라는 가상의 인물을 주인공으로 하는 소설 형식의 철학 칼럼입니다. 원 저자는 이준형 작가임을 밝힙니다.


 ‘현타’는 늘 마사지에서 시작된다. 몇 날 며칠 이어진 야근을 마친 다음 날, 어깨와 목이 단단히 뭉쳐 나도 모르게 단골 마사지 숍의 번호를 누른 그 순간부터 말이다. ‘오늘 아침에 출근하며 산 커피가 삼천 원, 점심때 먹은 밥값은 팔천 원이었지. 그리고 저녁에 친구랑 먹은 맥주랑 안주가 대충 이만 원쯤 했던 것 같고, 지금 내가 받는 마사지가 두 시간에 칠만 원이니까. 하아, 오늘은 번 돈보다 쓴 돈이 더 많네.’ 시발 비용*이 급격히 많아진 건 이직 직후부터였다. 작은 에이전시라 사람은 적고, 일은 많은 날이 이어지니 뭐라도 내 나름 해방구를 찾아야 했던 탓이다. ‘최종의 최종의 최최종 본.jpg’를 만들어야 했던 지난주엔 한동안 눈여 겨보았던 원피스를, ‘새로 들어온 외주가 기한이 짧으니 당분간 야근’이라는 대표님의 선언을 들은 이번 주 월요일에는 살까 말까 고민했던 고급 무선 마우스와 기계식 키보드를 주문한 식. ‘최선을 다해 살고 있으니 이 정도는 괜찮아’라는 스스로의 선택에 대한 합리화는 늘 덤이었고 말이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이라는 명제로 잘 알려진 공리주의 사상가 제러미 벤담의 철학은 쾌락주의에 기초한다. 그는 인생의 목적이 쾌락에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철학자답게 그저 나만잘 사는 것이 아니라 보다 많은 사람이 함께 행복한 쾌락을 추구해야 한다고 역설했고 말이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사람의 행동은 쾌락과 고통이 지배한다. 올바른 행동이란 쾌락의 양을 늘리고 고통을 양을 줄이는 것이며, 잘못된 행동은 그 반대라는 것. 그는 특정 행위의 옳고 그름을 계산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벤담은 이를 확인하기 위한 나름의 기준도 제시했다. 강도, 확실성, 근접성, 다산성, 지속성, 순수성, 범위라는 7가지 척도가 그것. 먼저 ‘강도’는 그 행동으로 인한 쾌락의 정도가 얼마나 큰지를 평가하는 기준이다. ‘확실성’은 그 행동이 얼마나 확실하게 쾌락을 주는지 판단하는 기준이며, ‘근접성’은 쾌락을 얼마나 빨리 얻을수 있는지를 평가한다. ‘다산성’은 그 쾌락이 다른 쾌락을 동반할 여지가 있는지를 확인하는 요소이며, ‘지속성’은 쾌락이 얼마나 지속될 수있는지를 판단한다. ‘순수성’은 고통의 요소가 동반되지 않는지 확인하며, 마지막 ‘범위’는 쾌락이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묻는 내용이다.

 가령 오늘 내 마사지 숍 방문에 대해 벤담은 어떻게 평가했을까? 아마도 그는 내게 ‘작은 쾌락’에 목매고 있다며 손가락질했을 거다. 쾌락의 강도나 확실성, 근접성은 높을지 몰라도 지속성이나 순수성, 범위 면에서는 한참 평균에 못 미치는 선택이라며 말이다. 특히 지속성 면에선 마사지가 끝난 순간부터 다시 통증이 시작될 테니 10점 만점에 1점도 못 된다며 비웃지 않았으려나?

 벤담의 시대와 이전 시대 철학자들의 핵심 화두는 늘 ‘옳고 그름’이었다. 무엇이 옳은지, 어떤 행동이 보다 선한 것인지 등을 두고 치열하게 고민했던 거다. 하지만 그는 이러한 고민이 무의미 한 것이라고 보았다. 오히려 그보다는 ‘결과’ 그자체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즉, 그저 더 많은 사람이 행복하다면 그게 도덕적인 것이고 좋은 것이라고 본 것이다. 그의 이러한 이 입장은 이후 철학자들에 의해 많은 비판을 받기도 했다. 단순히 쾌락의 ‘양’만으로는 옳고 그름을 따지기 어렵다는 게 그 이유였고 말이다.
이후 벤담의 철학은 제자인 존 스튜어트 밀에 의해 계승, 발전됐다. 그 유명한 ‘배부른 돼지보다는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되겠다’는 그의 말처럼 쾌락의 양과 함께 ‘질’도 따져야 한다는 것이 밀이 펼친 주장이었다.

 

 온몸의 근육을 꾹꾹 눌려가며 얼마 전 읽은 철학책의 내용을 되새기던 찰나, “앉으세요~” 라는 마사지사님의 말과 함께 두 시간의 대장정이 마무리되었다. ‘그래, 작은 쾌락이면 뭐 어때, 덕분에 오늘 하루도 버틴 게 중요한 거지.’ 이쯤은 이런 거창한 이론까지 따져가며 고민하지 않아도 될 만큼, 통장이나 조금 더 두둑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오늘도 숍을 나섰다.


* 비속어인 ‘시발’과 ‘비용’을 합친 단어로 ‘스트레 스를 받지 않았으면 발생하지 않았을 비용’을 뜻하는 신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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