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진칼럼]코로나19 시대의 마음 다스리기〈1078호〉
상태바
[명진칼럼]코로나19 시대의 마음 다스리기〈1078호〉
  • 송효종 공과대학 환경에너지공학과 교수
  • 승인 2020.11.11 13:3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행복하길 원합니다. 어릴 적부터 불안한 가정 환경에서 자란 탓인지 제 안에는 행복에 대한 관심이 더 컸습니다. 심리학적인 요법이나 종교적인 활동 등에도 의지해봤지만 오랜 시간 마음의 평안을 보장하는 절대적인 원리를 찾을 수는 없었습니다. 혹시 여러분 중에도 자신이 맞설 수 없는 상황들에 오랜 시간 노출돼 우울 감에 빠진 사람은 없나요? 저는 이 글을 통해서 제가 그동안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고민하고 얻은 제 나름의 답들에 대해서 나눠보려고 합니다.

 때마침 코로나 블루가 지배적인 시간들이니, 평범한 사람들에게도 제 글이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일단 마음 속의 스트레스나 우울감에 대해서 지나치게 반응하지 않는 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 다. 사실 일정 부분의 스트레스는 우리가 추진력 있게 일을 처리하는데 있어서 도움을 주니까요. 그리고 원칙적으로 모든 시간을 행복감에 젖어서 사는 일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요. 내가 행복 해도 주변 사람들의 어려움이 보이고, 또한 그것을 무시하면서 마냥 행복하기만 하려는 것 자체가 모순되고 이기적인 행동이 될 수 있으니까요.

 우리 주변에서 우울한 일들이 벌어지는 것을 막을 수는 없지만, 중요한 점은 마음 속 거리두기인 것 같습니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익숙한 시기에 거리두기라는 단어가 좀 와 닿으시나요?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여러 불안의 상황들이 살다보면 펼쳐지죠. 사람 사이의 관계일 수도 있 고, 학업이나 직장과 같은 미래에 대한 불안, 죽음에 대한 공포 등이 관련된 일들도 그렇습니다. 이 문제들이 우리 삶에 영향력을 갖고 있는 것은 맞지만, 그 문제들이 우리 마음 속에 지나치게 깊게 침투하도록 두지 않는 것이 필요합니다. 나의 기분이나 감정과 거리두기를 하는거죠. 결국 그것들은 우리 두뇌의 호르몬에 의해 영향을 받는 부분들인데, 내가 거리를 두고 조금은 관조적으로 사유하다보면 지나가거든요.

 거리두기에 대해서 조금 더 살펴보자면, 어떠한 타인도 나 자신이 될 수는 없다는 사실을 명심하 는게 필요하다고 봅니다. 아무리 가까운 지인이라도 내 모든 마음을 헤아려줄 수는 없고, 나에게 충분한 만족을 줄 수는 없죠. 어떤 물질이나 사상이라 하더라도 그것이 내 안에서 나를 휘두를 정도가 되면 거기에 중독돼 스스로를 잃게 되고 객관 적으로 사유할 수 있는 내적 평안을 잃게 됩니다. 이것을 피하는게 마음 속 거리두기입니다.

 나에게 벌어지는 상황들을 가능한 관조적으로 바라보는 거리두기는, 어려운 상황에 빠진 사람에게 차분하게 그 상황들을 헤쳐나갈 수 있는 정상적인 사고가 가능하게 합니다. 어려운 상황 자체에 휘둘리지 않기에 그런 자신에 대한 자기 존중감을 가질 수 있고요. 사회의 정상적인 일원 으로서 보통의 사람들과 연대하며, 그 안에서도 자신의 생각이 살아있는 조화로운 삶의 시발점이 됩니다.

 그러나 거리두기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한 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죽음의 문제입니 다. 죽기 직전까지 죽음 자체에 대해 철학적인 자세로 관망하는 것까지는 가능하지만, 그 이후에 벌어질 일들에 대해서는 인류의 힘만으로는 알기가 어렵습니다. 죽었다가 살아난 사람을 만나 보지 못했기 때문이죠.

성경은 죽음에서 다시 살아난 사람을 소개하고 그 사람을 만난 사람의 기록을 제공합니다. 죽음에서 부활한 이는 바로 예수이고, 그 예수를 만나 자신의 삶이 뒤바뀌었다고 말하며 부활한 예수를 만나기 전과 후의 삶에 대해서 진솔하게 기록한 사람이 바로 바울입니다. 성경은 크게 구약과 신약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구약은 옛 약속을 말하고 신약은 새로운 약속을 말합니다. 옛 약속은 인류의 죽음의 문제를 해결할 존재를 보내겠 다는 약속이고, 새로운 약속은 그 존재가 이 땅에 강림해 죽음의 문제를 해결했기에 그것을 믿는 사람들에게 부활을 약속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예수를 죽은지 삼일만에 살려낸 존재가 다른 사람들도 살릴 수 있다고 기대하고 바라는 것이 바로 기독교의 참신앙입니다.

 바울은 다시 살아나서 초월적으로 존재하는 예수를 빛과 음성을 통해 만났습니다. 예수가 부활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잡아 옥에 넣기 위해 예루살렘으로부터 다마스쿠스로 가는 도중 이었죠. 그는 그 빛 때문에 눈이 멀고 아나니아 라는 예수의 부활을 믿는 사람에 의해서 다시 눈을 뜨게 됩니다. 부활하신 예수를 만난 이후로 바 울은 예수의 부활을 전하는 사람이 됐습니다.

 신약 성경의 사도행전부터 그 뒤로 이어지는 바울의 편지를 읽어보면 그의 기록들이 진실된 기록임을 알 수 있습니다. 더불어 예수의 친형제 로서 예수가 초월적인 존재라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야고보가 예수의 부활을 인정하고 변화된 어조로 적은 야고보서를 비롯한 다른 사람 들의 기록들도 참고할 수 있습니다.

 이 기록들을 면밀히 검토해볼 때, 다시 살아날 예수가 죽은 것은 자신의 잘못 때문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죄를 뒤집어 쓰고 대신하기 위한 것임을 알게 됩니다. 이 사실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예수가 십자가에서 살을 찢기고 피를 흘리는그 현장에 자신의 죄를 전가시켰기에, 죽음 이후에 있을 심판에서 자유를 얻게 됩니다. 결국 이사실들은 마음 속 거리두기만으로는 해결되기 어려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해소할 수 있는 충분한 증거가 됩니다. 이게 바로 성경이 말하는 복음입니다.

 코로나 블루 시대에 평안을 확보하는 방법, 바로 마음 속 거리두기와 복음을 믿는 것입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 인문캠 :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거북골로 34 (명지대학교) 학생회관 2층
  • 자연캠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명지로 116 학생회관 2층
  • 대표전화 : 02-300-1750~1(인문캠) 031-330-6111(자연캠)
  • 팩스 : 02-300-1752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승환
  • 제호 : 명대신문
  • 창간일 : 1954년 11월
  • 발행인 : 유병진
  • 편집인 : 송재일
  • 편집장 : 한지유(정외 21)
  • 디자인·인쇄 : 중앙일보M&P
  • - 명대신문의 모든 콘텐츠(영상, 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명대신문. All rights reserved. mail to mjupress@hanmail.net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