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작은 세계]아군과 적군〈107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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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작은 세계]아군과 적군〈1075호〉
  • 이유리 작가
  • 승인 2020.08.24 0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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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칼럼은 ‘은정’이라는 가상의 인물을 주인공으로 하는 소설 형식의 철학 칼럼입니다. 원 저자는 이준형 작가임을 밝힙니다.

  회사에서 내가 마지막으로 담당한 서비스의 이름은 ‘퀵킥’이었다. 엄마는 이름만 듣곤 퀵서 비스를 하는 회사냐고 물었지만, 그건 아니고 요 즘 강남과 판교 바닥 곳곳에 깔린 전동 킥보드 대여 사업을 하는 서비스였다. 회사 설립 당시 배민(배달의 민족), 요기요 등의 출시 붐을 타고 O2O 서비스를 진행하던 리버스 컴퍼니가 갑자 기 킥보드 사업에 진출한 건, 순전히 J의 입김이 큰 역할을 했다. 대표의 신임을 얻어 순식간에 ‘경영진’에 합류한 그는 입사 첫날 자신이 준비 한 피피티를 마무리하며 “우리가 그동안 배달을 통해 사람과 서비스의 거리를 좁혔다면, 이제는 새로운 사업을 통해 세상의 거리를 좁혀갈 때” 라고 말했다. 발표를 들은 대표는 하루종일 그에 대한 칭찬을 늘어놓았다. 물론 그게 후속 투자 가 급한 대표 속을 긁어 준 일이기 때문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말이다.

  “역시 J 씨를 삼고초려한 게 신의 한 수였어. 입사 첫날부터 저렇게 철저하게 준비해서 오는 사람이 어딨냐는 말이야. 지난달에 들어온 은 정 씨만 봐도 그래, 첫 주는 이메일 만드니 명함 뽑니 하면서 그냥 다 날렸잖아. 기억나요? 그런 데 J 씨는 지난주에 Y한테 연락해서 그런 자질 구레한 일들 다 정리해 놓고 들어오더라니까.”

  대표의 일장연설이 끝난 뒤, 사람들은 모두 이번엔 저 공존이 얼마나 갈까라며 코웃음 쳤 다. 동료 직원들에 따르면 대표는 늘 ‘자기편’과 ‘적’을 만드는 사람이었다. 자기편에는 무한 신 뢰를 보내고, 적으로 규정한 사람은 대놓고 무 시함으로써 차별 없는 회사에 차별을 만드는 것이 그의 생존 전략이라는 것이었다.

  물론 대표가 신뢰하는 아군과 무시해야 할 적 은 시시때때로 바뀌었다. 초창기 멤버지만 한직 으로 물러나 있는 개발자 K의 경우가 대표적인 예시였다. 동료들에 따르면 그 역시 한때 대표의 무한 신뢰를 받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신 규 사업 런칭 시점을 두고 둘의 사이는 극단적으 로 갈라졌다. 대표는 하루라도 더 빨리 서비스를 출시하라고 개발팀을 압박했고, 이를 보다 못한 K가 나서서 대표에게 반기를 들었던 것이다.

  “뭐 어쩌긴 어째요. 지금 그 사업 완전 죽 쑤 고 있는 거 보면 몰라요? 제대로 디버깅*도 안 된 상태에서 출시 버튼 눌러 놓고 마케팅비만 쏟아 부은 거죠 뭐. 은정 씨 들어오기 얼마 전까 지 앱 평점이 1점대였다니까? 지금 서비스 유지 되는 것도 그나마 K가 다 뒤집어쓰고 문제 해 결해서 그런 거예요. 매번 미안하다는 말 한 번 안 하고 사람을 소모품처럼 사용하니까 회사가 성장도 못하고 계속 정체돼 있는 거지 뭐예요.” 대표의 다음 적은 누구일까, J는 그의 적이 되지 않고 무사히 퇴사할 수 있을까. 동료 개발자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머릿속에선 쓸데없는 생각 들이 공전했다.

  『장미의 이름』을 쓴 움베르토 에코가 뉴욕 에 갔을 때, 어느 택시기사가 ‘당신 나라의 적’ 은 누구냐고 물었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에 코의 이야기에 따르면 ‘적’이란 건 인간 사회에 서 꽤나 의미심장한 존재다. 많은 사람은 적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적과 자신을 비교하며 자기가 가진 우월성을 확인한다. 이런 사람들은 적이 없을 때, 구태여 적을 만들고 그 대상을 악마화한다. 에코는 이런 현상을 ‘적 발 명하기’라고 불렀다.

  실재하는 적보다 더 큰 문제는 ‘발명된’ 적이 다. 이런 적은 자신의 생존을 위협하기 보다는 그저 ‘차이’를 가진 존재인 경우가 많으니 말이 다. 이렇듯 타자를 악마화함으로써 자신을 정 당화하는 사람들은 자기 스스로의 정체성을 찾 지 못한 경우가 많다. ‘나’를 제대로 알지 못하니 ‘남’을 통해 스스로를 정당화하는 셈이다.

  에코는 ‘적 발명하기’에 관한 글을 철학자 사 르트르의 단막극 속 한 장면으로 끝맺음한다. 『출구 없는 방』이라는 제목의 이 작품에는 사 방이 꽉 막힌 방에 갇힌 세 명의 인물이 등장한 다. 방 안에는 고문하는 사람이 없음에도 이들 은 끊임없이 자신이 고문당한다고 느낀다. 이들 은 서로를 보며 증오심을 키우고, 또 키워간다. ‘우리 모두는 다른 두 사람을 고문하는 자로 행 동할 거야.’

  J는 1년을 채 채우지 못하고 회사를 떠났다. 프로젝트 기획 단계에서 벌어진 대표의 지나친 간섭이 문제였다. “은정 씨도 빨리 이직 준비해 요. 이 회사는 대표 때문이라도 더 성장하긴 글 렀으니까.” J와 마지막 인사를 하는 순간, 그의 입사 첫날 손을 움켜쥐며 웃던 대표의 얼굴이 떠올랐다. 어쩌면 나 역시 누군가를 적으로 여 기며 삶을 살아온 게 아닐까? 희미한 윤곽만 남 은 책의 내용을 떠올리며 나를 향한 의문이 머 릿속을 맴돌았다.

 

*만든 프로그램들이 정확한가를 조사하는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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