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진칼럼] 글로벌 비즈니스를 위한 S.N.T.M.〈1067호(개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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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진칼럼] 글로벌 비즈니스를 위한 S.N.T.M.〈1067호(개강호)〉
  • 최영길 아랍지역학과 명예교수
  • 승인 2020.03.15 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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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가족들이 붙여준 ‘정신 나간 녀석’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1975년 12월 14일 김포국제공항을 출발해 타이베이, 방콕, 홍콩, 뉴델리, 뭄바이를 경유, 홍해에 자리한 사우디아라비아의 항구도시 제다(Jeddah)에 도착했다. 사우디아라비아로 가는 길은 순탄치 않았다. 여러 나라를 경유했기에 비행기 시간을 맞추는 게 문제였다. 홍콩에서 팬암 여객기의 이륙이 세 시간 반 정도 지연되면서, 인도의 뉴델리 공항에서 갈아타야 할 뭄바이행 국내선 비행기를 놓치게 됐다. 그 결과 뉴델리에서 5일간 머물러야 했고 뭄바이에 도착해서도 사우디아라비아 제다행 비행기 예약이 지연되면서 10일을 더 묵게 됐다.

  비행기 이륙 지연으로 어쩔 수 없이 머물게 된 2주 동안의 인도 여행은 외부 세계와의 첫 조우였다. 그때를 시작으로 사우디아라비아에서 4년, 그리고 아프리카 수단에서 지낸 3년 동안의 유학생활은 여러 지역의 서로 다른 음식과 냄새와 언어와 문화를 접하는 기회이기도 했다.

  외국의 음식문화를 받아들이는 것은, 쉽지 않았다. 어떤 지역의 음식은 마치 설사해놓은 배설물 같아 쳐다보기도 싫었고, 이상야릇한 색소에 기름 덩어리가 뒤섞여 손이 가지 않는 음식을 내놓는 곳도 있었다. 거기에다 손으로 밥을 먹고 손으로 쥐어 다른 사람에게 밥을 건네주는 모습은 비위를 상하게 했다. 이러한 현지 음식만을 접하다 보니 처음에는 한국 음식만 생각나고 제대로 먹지 못해 몸무게가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그런데 고픈 배를 잡고 생각해보니 한국으로 돌아갈 게 아니기 때문에 여기서 먹고 살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먼저 현지 음식에 적응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먹기 싫어도, 냄새가 나고 비위가 상해도 먹었다. 여러 사람이 둘러 앉아 함께 먹는 밥에 새까만 손들이 들어올 때는 눈을 감고 먹었다. 이렇게 지내는 동안 내 위는 어느덧 현지 음식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먹어도 먹은 것 같지 않고 거북하던 음식이 내게 힘을 주고 있었다. 위(S: Stomach)가 글로벌화 되었기 때문이다.

  나라마다 기후, 식품 재료, 요리방법이 다르다보니 음식 맛과 냄새가 다르고 그러다 보니 사람들의 체취와 화장실 냄새까지도 달라진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적응했는데도 수단의 아프리카 음식은 내 코를 괴롭혔다. 이슬람 전통에 따라 서로 껴안고 인사를 주고받을 때 상대방 몸에서 풍겨 나오는 이상야릇한 냄새, 그리고 화장실에서 일을 볼 때 풍기는 고약한 냄새에는 코를 막을 수 밖에 없었다. 다시 수단 지역의 냄새에 적응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했다. 한 번만 맡아도 될 냄새를 일부러 두 번 세 번 맡아가면서 빨리 현지 냄새에 적응하려고 노력했다. 처음에는 그렇게도 고약했던 냄새가 서서히 적응되면서 어떤 것은 다시 한번 냄새를 맡고 싶을 만큼 고소하게 느껴질 정도로 적응할 수 있었다. 코(N: Nose)가 글로벌화됐기 때문이다.

  말과 글은 그 나라의 문화를 이해하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다. 그런데 영어교육만이 세계화의 모든 것인 양 떠들어대는 사람들을 보면 세계화에 대한 그들의 상식이 초등학교 수준처럼 느껴진다. 다른 나라 사람을 상대로 사업을 하고 선교를 하려면 그 지역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야 한다. 때로는 따뜻한 느낌을 주고, 때로는 시원한 느낌을 심어주고, 속삭이고, 웅변해야 할 때가 있다. 사랑과 위로와 동정의 마음을 전해야 할 때도 있다. 현지인의 마음을 감동하게 하려면 그 나라의 언어로 해야 한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체류하고 있을 때 한국교민들 사이에서 붙여진 내 별명은 ‘사고처리반장’이었다. 내가 현지인과 영어로만 대화를 나누려고 했다면 그곳에 진출한 한국기업이나 교민들에게 일어났던 이런저런 사건, 사고를 원만하게 해결하는 데 별 도움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영어를 전혀 쓰지 않는 현지 법원의 법조인과 현지인을 어떻게 영어로 설득하고 변호하고 탄원을 하겠는가! 즉 혀(T: Tongue)가 글로벌화 되어야 한다.

  유학 시절 현지 언어를 습득하는 것보다 더 어려웠던 것은 문화를 익히는 것이었다. 언어를 몰라서 문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문화를 잘못 알고 있어서 언어를 습득하기 어려웠다. 한국에서 배우고 들은 이슬람문화와 그곳 대학에서 가르치고 있는, 현지인들이 말하는 이슬람 문화와의 차이가 너무 컸다. 이러한 이유로 단어 하나를 정확히 이해하는 데 4년이 걸리기도 했다. 현지문화를 정확하게 알고 이해하는 마음(M: Mind)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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