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선준 동문
30 지령 900호를 맞은 명대신문. 그 역사와 전통에 맞게 편집장의 자리도 수십 명이 거쳐 갔다. 하지만 63명의 편집장 중 신문을 30회 이상 낸 편집장은 단 3명. 30회 이상 신문을 발행한 편집장들을 만나보도록 한다. 그 중 2000년 9월 4일부터 2001년 12월 10일까지 53대 편집장으로 총 31회 신문을 발행했던 장선준(영문 99, 39기) 동문(이하 장 동문)과 2006년 8월 26일부터 2007년 11월 26일까지 59대 편집장으로 총 32회 신문을 발행했던 손은경(디미 05, 45기) 동문(이하 손 동문)을 만나봤다.
※신문 최다 발행(33회)한 11대 편집장 고경식(3기) 동문은 연락두절로 인터뷰를 하지 못했습니다. 또한, 신문 최다 발행(98회)한 이범국(도시행정학) 명예교수는 건강상의 문제로 인터뷰를 하지 못했습니다. 이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Q. 30회 이상 신문을 발행한 명대신문 편집장으로 꼽힌 소감이 어떠신가요?
명대신문 지령 900호의 일부분을 담당했다는 것이 자랑스럽게 여겨집니다. 하지만 제가 편집장으로 30회 이상 신문을 발행하게 된 건 저 혼자의 힘이 아니라 선후배 그리고 동기들과 함께 만든 ‘소중한 추억과 열정의 산물’이라고 생각합니다.
Q. 편집장으로 임기를 수행하며 생긴 에피소드는 무엇인가요?
명대신문사는 매주 월요일마다 기획회의를 합니다. 당시 기획회의는 자연캠에 내려가서 했습니다. 마감을 인문캠에서 했기에 형평성을 맞추기 위함이었죠. 월요일 저녁에 자연캠 신문사에 전 기자가 모여 밤새 회의하고, 이야기꽃을 피우다 화요일 아침 첫 차를 타고 인문캠에 되돌아가곤 했던 것이 아직도 기억에 남습니다.
Q. 편집장으로서 어떤 신문을 만들고자 했나요?
신문사 내의 의견충돌과 신문사 밖의 갈등들을 중간에서 조율하는 것이 편집장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명대신문을 학내 구성원들 간에 소통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 수 있으니까요.
Q. 지령 900호를 맞은 명대신문에 한 말씀 해주세요.
각 시대마다 요구하는 ‘시대적 요구’와 20대 만이 할 수 있는 ‘젊은 고민’을 갖고 좀 더 창조적이고 시대가 원하는 신문을 만들었으면 합니다. 또한, 대학신문임을 잊지 않고 항상 학내 구성원들과 소통하고, 또 소통을 위해 학우들에게 다가가는 명대신문이 됐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