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력하는 자 만이 기회를 얻을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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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력하는 자 만이 기회를 얻을 수 있으리라
  • 이재희
  • 승인 2009.10.11 00: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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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는 우리 땅’ 가수 정광태 동문을 만나다.

편주.

울릉도 동남쪽 뱃길 따라 이백리 외로운 섬 하나 새들의 고향~ 그 누가 아무리 자기네 땅이라고 우겨도 독도는 우리 땅~♪

다들 한 번쯤은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노래를 불러보거나 들어본 적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노래를 누가 불렀는지 생각해본 적 있는가? 바로 우리대학 무역학과를 졸업한 정광태 동문(무역학과 74, 이하 정 동문)이다. 전직 KBS 개그맨이었으며 현재는 가수를 비롯해 한국연예제작자협회 부회장, 울릉도ㆍ독도 홍보대사 등을 맡으며 다양한 활동을 하는 정 동문을 만나 그의 독도에 대한 열정과 학창시절의 추억, 우리대학 학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들어봤다.

 

기억에 남는 수상은 무엇보다도 ‘울릉군 감사패’

정 동문의 집을 방문한 본 기자는 먼저 거실 복도 한 곳을 가득 메운 상패와 사진을 보고 놀랐다. 그는 화려한 수상경력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1983년 ‘KBS 남자신인가수상’과 ‘울릉군 감사패’, 2005년 ‘대한민국 화관문화훈장’이 눈에 가장 먼저 띄었다. 정 동문은 독도 의용수비대의 고 홍순칠 대장에게 1983년에 받은 ‘울릉군 감사패’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정동문은 감사패와 관련해 “그분에게 초청받아 상을 받은 것은 내가 처음인 것으로 안다”며 “벌써 이 노래를 부른 지 28년이란 세월이 흘렀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본 기자에게 입고 있던 티셔츠 중앙을 가리키며 “Do you know Dokdo the korean territory?”라고 읽어 보였다.

1974년, 무역학과 신입생이 KBS 개그맨으로 데뷔한 이유는

정 동문은 대학교 신입생 시절, 명동에 있는 한 카페에 놀러 갔다가 ‘아마추어 스테이지’에 참가한 적 있었는데 KBS PD가 그곳에서 우연히 정 동문을 발견하게 됐다고 했다. ‘TV에 출연해보는 게 어떻겠냐’는 PD의 제의를 승낙하면서 정 동문은 방송에 데뷔하게 됐다. 정 동문은 “무역학과 신분이긴 했지만 어릴 적부터 연예 업종에 종사하는 것이 꿈이었다”고 말했다. “연예인 신분의 대학생이라 학교의 체전 등 각종 행사에 참가할 기회가 많아 즐거웠다”는 정 동문은 “운 좋게도 적성에 맞는 일이 일찍 기회가 찾아왔던 것 같다”며 “관심 있는 분야에 열심히 일하다 보면 기회는 반드시 찾아오게 돼 있다”고 말했다.

 

“정광태 씨, ‘독도는 우리 땅’ 음반 제작해봅시다”

정 동문은 KBS ‘유머일번지’ 프로그램에서 개그맨 장두석, 임하룡, 이상운과 함께 포졸복을 입고 ‘독도는 우리 땅’노래를 부른 적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당시 일본 교과서 왜곡사건이 문제로 등장하면서 음반 제작을 제의받게 됐다”고 말했다. 옴니버스 형태로 제작된 앨범은 흥행에 성공했고, 지금은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국민가요’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국가정보원이 1999년에 발표한 자료를 보면 노래 ‘독도는 우리 땅’은 북한 주민이 즐겨 부르는 남한 가요 다섯 곡 중 한 곡에 선정되기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후 2005년에는 가수 김흥국과 함께 ‘독도로 날아간 호랑나비’라는 노래를 발표하기도 했다. 정 동문은 “사람들이 내 노래를 힘차게 따라 불러주며 좋아해 줄 때 가수로서의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REJECT! 일본 입국비자 거부사건

‘독도는 우리 땅’ 음반 발표 후 정 동문은 1996년 SBS 추석특집 프로그램 준비로 일본에 갈 일이 있었지만, 일본으로부터 입국비자를 거부당한다. 결격사유가 없던 그는 “그 당시에는 정말 화가 났었다”며 “그 이후로는 일본에 가고 싶지도 않았고 일본 갈 돈으로 독도를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그렇다고 일본을 무조건 좋지 않은 시각으로 바라보라는 것은 아니”라며 “일본의 독도를 자국 땅이라고 주장하는 끈기와 열정은 높이 살만하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또, 정 동문은 외국으로부터 ‘우리 것’을 빼앗기지 않으려면 국력을 길러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이를 위해 “정권이 바뀔 때마다 바뀌는 일시적인 연구가 아닌, 독도를 전문적으로 연구할 역사학자의 발굴과 국민의 관심이 필요하다”면서 “국민의 관심과 노력이 헛되지 않도록 정부 측에서도 영토문제와 관련한 외교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하려는 자세를 보여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근 G20 정부사이트 상당수에 ‘동해’가 ‘일본해’로 표기돼 있다는 보도에 대해서도 “대응하지 않는 것이 최선의 방책은 아니다. 아무리 명백하게 우리의 땅이라 하더라도 자국의 영토라 주장하지 않는 자에게는 돌아오지 않는 법”이라며 정부의 소극적 대응에 일침을 놓았다.

정 동문은 “내게 앞으로 주어진 임무는 국민의 관심을 더욱 고취하는 것이다. 우리의 참역사를 쉽고 정확하게 국민에게 알려주는 일은 역사학자가 할 일이요, 이를 바탕으로 독도에 관심을 두고 앞장서서 지켜내는 것은 모두가 해야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정 동문의 넘치는 ‘독도 사랑’

1998년, 그는 본적을 독도 주소인 ‘경상북도 울릉군 울릉읍 독도리 1-96번지’로 바꿨다. 또, 그는 “1984년 3월에 독도를 방문한 것을 환영한다는 의미로 예포禮砲를 받기도 했다”며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노래를 부른 가수가 왔다며 경비대에 계신 분들이 정말 기뻐하시는 모습을 보고 더 열심히 노래를 불러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야겠다는 다짐을 했다”고 말했다. 또, 2002년 ‘독도 수호대’와 함께 독도로 뗏목 탐사를 떠났던 일, 2005년 전국 45명의 ‘애국 전사’(정동문은 참가자들의 애국심에 감동해 그들을 ‘애국 전사’라 불렀다.)를 모아 수심 2천 미터가 넘는 동해를 릴레이로 수영횡단 했던 기억을 떠올리면서 “참가자들이 흘리던 감동의 눈물을 잊을 수 없다”며 독도에 대한 애틋한 감정을 보였다. 또, “우리는 광활한 만주벌판을 거친 숨결로 호령하던 당당한 기마민족의 후손이다. 그러나 우리는 주인 된 도리를 다하지 못하고 또 하나의 영토를 빼앗기려 한다”며 “후손들에게 부끄러운 선조로 남지 않도록 모두가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4년이란 시간, 그리 긴 시간은 아니야

정 동문은 우리대학 학우에게 “시간은 강물과 같아 한 번 흐르면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라면서 “노력하는 자만이 선택받을 수 있고, 당당하게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또 그는 “노력하지 않는 자의 문제는 외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있다”며 “인생은 각본 없는 드라마와 같다. 기회는 언제 자신에게 다가올지 모르니 늘 준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적지 않은 등록금을 내며 내가 과연 대학생활에서 4년 동안 무엇을 얻어갈 수 있을까 늘 고민하고 자신의 경쟁력을 키워나간다면 대한민국의 국력도 후배들의 지성으로 더욱 강해질 것이라 믿는다”며 “다시 오지 않는 시간을 귀하게 잘 사용하는 후배가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후배들도 독도를 포함한 사회문제에 관심을 두고 우리의 것을 지켜 후손들에게 물려줄 수 있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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