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작에 버금가는 수작이자 생생한 역사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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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9.10.08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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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의 포도>- 원작에 버금가는 수작이자 생생한 역사자료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의 평가를 들어 보면 아무리 잘 만든 작품도 대개 원작보다 못하다는 말을 듣는다. 그러한 배경은 영화에는 원작과 달리 ‘시간 제약’을 비롯해서 여러 가지 한계점이 작용하기 때문이다. 생각해보라. 두 시간 내외의 상영 시간에 얼마나 많은 관점이나 논지를 표현할 수 있는 지를. 더욱이 세 가지 이상의 복선을 깔거나 관점을 넣으면 관객이 혼란스러워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번에 소개하는 <분노의 포도>는 결코 그렇지 않다. 베스트셀러 소설인 원작과 마찬가지로 <분노의 포도>는 위대한 작품이자 생생한 역사자료로 간주 받고 있다. 원작자 ‘존 스타인 벡’과 고전 서부극 감독으로 잘 알려진 ‘존 포드’ 두 사람 모두 이 작품을 통해 거장의 입지를 탄탄하게 굳혔다.
1930년대 대공황 시절 농촌을 배경으로 한 <분노의 포도>. 영화는 오클라호마에 살고 있던 어느 농민 가족이 고향을 떠나 캘리포니아로 이주하는 과정을 아주 사실적으로 그리고 있다. 그렇다면 주인공 ‘조드 가족’을 비롯하여 무려 백만 명에 이르는 농민이 어째서 고향을 등지고 ‘약속의 땅’으로 불리는 캘리포니아로 이주했을까.
영화에서는 토지를 소유한 회사가 수지 타산을 맞추기 위해 소작인을 내쫓은 뒤 기계화로 대체 했다거나 혹은 모래폭풍으로 가뭄이 심해졌기 때문이라는 대사만이 잠깐 등장하지만 이주 이유에는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특히 영화에서는 나오지 않는 국외적인 요인과 경작 방법이 크게 영향을 끼쳤다.
즉,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의 농촌이 황폐화된 상태에서 미국 농업이 사상 유례없는 호황을 누렸다가 갑자기 상황이 바뀌었다. 전후 복구를 통해 유럽의 농업이 재기하고 미국의 농업이 곧바로 생산되면서 농산물 가격이 급락한 것이다. 게다가 주인공 가족을 비롯하여 중소 자영농이 자신의 땅을 담보로 은행에 융자를 받는 일이 반복되면서, 결국 은행으로 땅이 넘어가고 자영농은 소작인으로 전락하게 되었다.
또한, 예상치 못한 기상이변으로 토지가 사막화 됐다. 주인공이 살았던 오클라호마를 비롯해서 텍사스, 콜로라도, 뉴멕시코, 그리고 캔사즈 일부가 ‘황진지대’가 된 것이다. 여기서 황진지대란, 가뭄과 황진으로 황폐화된 지역에 붙여진 이름이다. 이 지역들은 19세기 말에 개척된 지역인데 정착한 농민들은 자생하고 있던 자연초들을 뽑고 경작을 했다. 문제는 그 자연초들이 뿌리가 깊어 수세기 동안 가뭄으로부터 그 지역의 토양을 보호하는 역할을 해왔다는 점이다. 결국 자연초들이 없어지자 한파와 바람에 그대로 노출되어 먼지폭풍이 태양을 뒤덮고 가축을 질식 시켜서 도저히 농사를 지을 수가 없었다.
결국 이러한 상황 때문에 주인공 가족은 고향을 등지고 캘리포니아로 이주했다. 허나 그 곳 역시 두 발 뻗고 편히 지낼 곳은 아니었다. 몰려드는 이주민으로 노동력이 남아도는 상황에서 농장 주인들은 터무니없을 정도로 낮은 임금을 제시했다. 혹여 농민들이 반발하면 어김없이 경찰이 나타나서 연행했고, 자경단원이 구타와 살인을 자행하기까지 했다. ‘약속의 땅’이 아닌 또 다른 ‘고통의 땅’ 캘리포니아. 바로 그러한 상황을 직접 체험한 열혈 청년인 주인공 ‘탐 조드’는 이에 격하게 반응해 투쟁에 나설 것을 다짐한다. “굶주린 자들이 먹을 것을 위해 투쟁하는 곳이 있다면 그 곳에 바로 내가 있을 겁니다.”
이렇게 볼 때 이 영화는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일종의 사회주의 영화로 비춰질 수도 있지만, 사실 그렇진 않다. 왜냐하면 영화 후반부에 등장하는 편의시설이 잘 갖춰진 수용소는 농민을 구제하기 위해서 정부의 뉴딜정책 하에 농업안정청이 제공한 것이다. 더욱이 영화 속에는 가족의 소중함이 곳곳에 묻어나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분명한 역사적 사실은 이러한 농민들의 고통을 궁극적으로 줄여준 것이 가족의 끈끈한 유대감이나 뉴딜정책이 아니라는 것이다. 즉, 미국의 대공황을 끝나게 한 것은 제2차 세계대전이라고 말한다. 이 영화가 1940년에 개봉된 이후 그 다음해에 태평양전쟁이 벌어지면서 미국의 산업은 본격적으로 활기를 되찾았다. 성공이나 실패는 노력이나 재주만을 가지고선 안 되고 운이 크게 작용한다는 걸 두 차례의 세계대전이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연동원 역사학자ㆍ영화평론가     
임선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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