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제65주년 명대신문 백마문화상 - 얼음의 온도 外 2작 (시 부문 가작) <106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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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제65주년 명대신문 백마문화상 - 얼음의 온도 外 2작 (시 부문 가작) <1066호>
  • 조우형(우석대학교 문예창작학과) 학생
  • 승인 2019.12.13 22: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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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음의 온도

 

좌우가 대칭인 도형에 선을 긋는다

나는 사랑을 그런 방식으로 이해한다

 

차가운 기억이 떨어지는 물방울처럼

부풀었다가 터지기를 반복하는 밤

냉동실에 넣어 둔 얼음이 몸을 웅크린다

스스로의 온도를 이해하려고 하면서

우리는 서로의 몸을 끌어안는다

 

얼음은 완벽하게 대칭을 이루는 순간 녹아버린다

 

꿈을 꿨어, 아무 소리도 빛도 없는 방이야

우리가 서로를 껴안고 자고 있는데

누가 들어와서 우리를 억지로 떼어 놓았어

한 쪽만 뜨거운 빛을 받는 얼음처럼

우리는 서로를 잃어버렸어

 

슬픈 이야기를 하고 나면 이가 시려

양 볼에 손을 얹고

 

있잖아, 얼음은 순수한 물 안에서 가장 빨리 녹는대

어째서 우리는 녹지 못하고 울기만 할 수밖에 없는 걸까.

 

밤의 피부가 녹는 시간

너와 등을 맞대고 자다가 문득,

추위에 눈을 떴을 때

 

털끝이 얼어붙는 소리를 들었다

 

외국어 배우는 시간

 

너의 목젖까지 손가락을 넣으면

네가 하는 말들을 만져볼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그런 때마다 헛구역질을 하는 네가 떠올랐고

 

선생님이 칠판에 글자를 쓰고 있다

‘연인’이라는 뜻을 가진 여러 국가의 연인이 삐뚤빼뚤하게 걸어간다

 

우리는 선생님 몰래 쪽지를 주고받는다

서로에게 받은 쪽지의 내용을 이해할 수 없어서

받자마자 백지가 되는 종이를 모른 척한다

 

완벽하게 의미를 잃어버린 글자들이 많아질수록

우리는 더 많은 종이가 필요하다

 

너와 단 몇 초 동안만 키스할 수 있다면

너의 발음을 닮을 수 있다고 믿었는데

 

“외국어는 자연적으로 습득할 수 없습니다. 외국어를 배우기 위해서는 목적의식이 필요합니다.”

선생님은 이렇게 말하며 수업을 마쳤다

 

너를 데려다주고 집에 돌아오면

오늘 배운 단어들을 다시 발음해본다

아침이면 기억이 나지 않겠지만

 

그런 밤에는 너의 잠꼬대를 빌려서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양들의 숲

 

창밖을 오래 보면 얼굴이 흐릿해진다

누군가 반대편에 서 있는 것 같다

 

침묵이 검은 잉크처럼 풀어지는 밤

멀리서 총소리가 들려오면 죽은 양의

눈동자가 천장에 걸린다

 

오래 된 밀렵의 기억

나의 방에도 양이 찾아오던 때가 있었는데

 

시선을 피해 창밖을 보면

누군가 몰래 와서 우는 것 같다

이 숲 속에 사는 사람은 나뿐인데

 

녹이 슨 총구, 까맣게 굳은 손가락

지금은 이런 것들이 전부가 되었지

 

아버지, 밤이 무서워요 저 검은 밤이, 밤의 뱃속으로 들어가고 있는 숲이 제 창문을 두드려요.

얘야, 괜찮단다. 천천히 양을 세어보렴 너를 잠에 들게 할 거다.

아버지, 저는 양이 무서워요 질식할 것처럼 튀어나온 눈알이, 나를 충분히 파묻을만한 털이 제 방에 가득해요.

얘야, 괜찮단다. 그런 건 쏴죽이면 된다.

 

오래 된 기억 속에선 항상 양이 죽었다

 

창밖을 오래 보다보면 커다란 양이 앞에 서 있다

처음부터 와 있었다는 듯이 숨을 참는 표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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