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제65주년 명대신문 백마문화상 - 새의 비행 (시 부문 당선작) <106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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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제65주년 명대신문 백마문화상 - 새의 비행 (시 부문 당선작) <1066호>
  • 김학윤 학생 (계명대학교 문예창작학과)
  • 승인 2019.12.09 09: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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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의 비행

 

인간은 새를 부렸다

새의 발목에

새가 모르는 언어를 묶은 뒤

다른 이에게 날아가라고

 

그래서 새는 예언을 배웠고

허공을 종잇장 찢듯 날다

투명한 유리에 머리를 박는다

 

이런 일은 예언인가 예감인가

농담이다, 어쩔 수 없었다는

새를 가리던 손이 물러나고

 

살보다 뼈가 민감해진다

 

나는 나의

콩팥이나 폐를 만져본 적 없다

지금 가슴을 열면 흰 깃이 들어있을까

 

새를 부리던 사람은

모두 죽고

 

얼룩진 유리 밑의 새들은

잠깐 죽었다가

영영 죽기도 하고

 

유리에 손을 대면

손끝으로 숨이 만져졌다

 

이건 심판인가 심장인가

새를 들어 올리니

오래전 꿈꾸듯

새가 축축했다

 

수상소감

화장실에서 당선 소식을 들었습니다. 물 내려가는 걸 확인하고, 바지를 추스르면서 별생각 없이 부재중 전화로 뜬 번호로 전화를 걸었는데 명대신문사였습니다. 흥을 내고 싶었는데 손 씻고 바로 강의 들으러 가야 해서 흥을 바지 정리하듯 추슬렀습니다. 그래서 당시에는 별 감흥이 없었는데 이렇게 당선 소감을 쓰고 있으니 실감이 납니다. 아, 내가 상을 탔구나. 앗싸. 그럼 이제 저는 어떻게 되는 걸까요. 반문해봤습니다. 크게 변할 건 없을 듯합니다. 저는 계속 쓰겠습니다.

시는 쓸모없다고 생각합니다. 쓸모없다고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건 아닙니다. 쓸모없어서 할 수 있는 일이 있습니다. 제 방의 보라색 커튼을 끈으로 묶어두면 격자무늬 셀로판지를 붙여놓은 창으로 들어오는 햇빛이 벽에 기이한 그림자를 그리곤 합니다. 이 그림자는 쓸모가 없습니다. 쓸모없는 그림자를 자주 만집니다. 저는 이런 그림자 같은 시를 쓰겠다고, 막연하게 생각합니다.

언제나 이런 그림자 같은 시를 읽어주는 언과 환에게 고맙습니다. 앞으로도 제가 쓴 시를 읽어주세요. 민망하지만, 선생님들에게는 상 받았다고 자랑 좀 하고 싶습니다. 선생님들께 문학을 배워서 다행입니다. 한탕 하고 여기를 뜨겠다는 말에 늘 동의해주는 빌트 조원들과 빌트에 몸담았던 모든 분이 복 받기를 바랍니다. 보라매도 마찬가지로 복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주변에 자랑한다고 바쁘신 부모님에게 존경을 표합니다. 끝으로 저에게 상도 주고, 돈도 주신 명지대학교와 심사위원 분들께 감사합니다.

김학윤 학생 (계명대학교 문예창작학과)

심사평

총 188명이 응모한 2019년 백마문화상 시부문에서 최종 논의된 작품은 다음과 같다. 「드림 캐쳐」외 3편, 「알 수 없는 기분은 알 수 없는 표정이 된다」외 2편, 「잠든 사막의 베두인과 낙타」외 2편, 「얼음의 온도」외 2편, 「새의 비행」외 3편이었다. 개성적이고 독특한 상상력을 펼친 작품들은 금방 눈에 띄었지만 그만한 설득력을 갖추지 못해 아쉬웠다. 결과적으로 안정적이며 익숙한 화법안에서 의미있는 성찰을 선보인 작품들 중 가작과 당선작이 결정되었다. 둘 모두 세계가 텅 비어 있다는 느낌에 기반하고 있었는데 아마도 이 공통감각이 지금 20대의 작품 세계를 결정짓는 중요한 배후가 아닌가 싶다.

우선 가작으로 「얼음의 온도」외 2편을 골랐다. 「얼음의 온도」는 완벽하게 대칭을 이루며 붙어 있다가 끝내 녹아버리는 얼음의 이미지로 슬픈 사랑의 감각을 보여준다. “꿈을 꿨어, 아무 소리도 빛도 없는 방이야/우리가 서로를 껴안고 자고 있는데/누가 들어와서 우리를 억지로 떼어놓았어”라고 말할 때, 죄없는 연인의 강제된 분리는 더없이 순수하고 또한 비극적이다. 관계와 사랑에 대한 관심이 세계를 차분하게 바라보는 시선과 어우러져 의미있는 사유와 만날 때 이 사람의 작품은 빛이 난다. 다만 시의 중반부터 초반에 제시한 이미지의 확장성이 크게 약해지고, 기성 시인의 어떤 문장이 어색하게 덜컥거리고 있는 대목이 발견되기도 해서 아쉬움을 남겼다.

당선작으로 「새의 비행」외 2편을 골랐다. 응모작 중에서 가장 고른 실력을 선보인 사람이다. 「새의 비행」은 인간이 부리던 새가 다른 이에게 날아갔다가 투명한 유리에 머리를 박고 마는 상황을 따라간다. 그것 자체로 크게 새롭지는 않은 이미지의 담담한 전개이지만 이 시를 알레고리적으로 읽자면 문득 인간과 언어에 대한 의미있는 우화로 읽히기도 한다. 언어를 쓸 때, 우리는 우리가 아는 것 이상의 무언가를 담아 상대방에게 날려 보낸다. 불행하게도 우리의 본의는 제대로 전달되지 못한다. 새의 날갯짓이 결국 좌절될 때, 이것은 ‘예언’의 실현일까, ‘예감’의 응답일까? 아니면 언어를 쓰는 자들이 겪게 되는 어쩔 수 없는 ‘농담’같은 상황일까. 그럼에도 “살보다 뼈가 민감해”질 정도로 유리 밑의 새를 어루만지며 숨을 느껴보려 애쓰는 화자의 태도가 만만한 포기에 그치는 것만은 아니어서 인상적이었다. 함께 투고한 작품 중 「봄병」이 빚어내는 나른하고 사랑스러운 감각도 이 작품을 선택하는 데에 영향을 끼쳤다. 이번 수상이 작은 격려가 되기를 바란다.

남진우 교수 (문예창작학과)
박상수 교수 (문예창작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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