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의 당신이 보아야 할 <106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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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의 당신이 보아야 할 <1065호>
  • 김일송 공연칼럼니스트
  • 승인 2019.11.25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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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미국에서 ‘우리가 99%다(We are the 99%)’라는 구호로 월가점령운동이 벌어졌다. 실제로 지난 10월 크레디트스위스에서 발표한 글로벌 웰스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의 상위 0.9%가 전체의 절반에 가까운 44%의 부를 소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하위 50%가 보유한 자산은 전체의 1%를 밑돌았다. 하위 90%가 보유한 자산은 전체의 18%에 불과했다. 부의 불평등은 어떻게 시작되었으며,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경제학자들이 던질 법한 질문을 던지는 이 연극의 이름은 <자본>이다. 편의상 ‘연극’이라 명명했지만, 극단이 내세우는 제목은 다음과 같다. ‘연극이 아니어도 좋은 연극’ <자본>. 연극이 아니어도 좋은 연극? 이에 대한 설명은 공연에 대한 설명으로 대체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자본>은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연극적 언어로, 연극적 문법에 따라 설명하는 일종의 강의다. 분명한 사실은 연극이(라는 장르가) 아니어도 좋은 연극이라는 사실이다.

연극은 배우들이 각자 고단한 삶을 이야기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사연도 각양각색이다. 대학졸업 4년째이나 아직 학자금대출을 갚지 못한 사연. 월세를 감당할 수 없어 고시원에서 나와야 할 처지의 사연. 아르바이트 자리가 없어진 사연. 아버지가 직장을 잃어 복학의 꿈을 버린 사연. 자연스럽게 그들은 자문한다. 왜 일을 하는데도 계속 빚을 지는 걸까? 다음 날, 누군가 헌책방에서 산 책을 한 권 보인다. 마르크스의 『자본론』이다.

이때부터 그들은 『자본론』을 연극적으로 설명하기 시작한다. 마르크스가 주창한 사용가치와 교환가치, 상품의 가치와 가격, 상품의 교환과정, 잉여가치와 착취, 노동자의 잉여가치와 자본가의 이윤 등을 현실에 빗대 설명한다. 이런 식이다.

“칼 마르크스는 자본의 시작을 가격이 아니라 가치에서 출발한다고 봤습니다. 마르크스는 노동자가 만드는 상품에는 ‘시장의 가격’ 이전에 ‘노동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수업시간에 배운 경제 교과서는 ‘시장의 가격’에서 출발하면서 ‘노동의 가치’를 소외시킵니다.”

중반 이후로 넘어가며 연극은 각종 도표들을 보여주며 한국사회의 자본론에 대해 이야기한다. 배우 뒤로 국민총소득 대비 가계와 기업, 정부의 소득비교 그래프, OECD회원국의 경제성장률비교 그래프, OECD회원국의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비율 그래프 등이 보이며, 부의 불평등과 재벌의 횡포,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 재벌 중심의 경제구조 등 지금 여기에서 벌어지고 있는 부조리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연극은 지난해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사고로 숨진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을 소환한다. 연극에는 배우들의 실제 경험담이 녹아있는데, 배우들은 이 작품을 위해 6개월 간 워크숍을 진행했다. 그 과정에서 『자본론』 외에도, 『마르크스의 자본, 판도라의 상자를 열다』, 『위험한 자본주의』, 『왜 분노해야 하는가?』 등의 관련서적을 읽었고, 연극에는 이러한 다양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연극 <자본>은 일명 ‘프로파간다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공연되는 작품이다. ‘프로파간다 프로젝트’는 사회적 이슈를 무대로 가져오는 극단들이 모여 진행하는 프로젝트로 올겨울 내내 진행될 예정이다.

이번 칼럼이 올해의 마지막 칼럼이다. 내년에 다시 만나게 될지 아닐지 현재로선 알 수 없다. 해서 마지막 한 마디만 덧붙이고 싶다. 예술은 안식을 주기도 하지만, 인식을 주기도 한다. 우리가 예술가를 떠올릴 때, 당장 생각나는 예술가들은 아마도 주제건 형식이건 인식의 틀을 깨뜨리고 사유를, 감각을 확장한 이들일 것이다. 부디, 많은 이들이 예술에서, 조금 더 바란다면 공연에서 인식이 깨지는 경험을 맛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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