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펜 끝은 녹슬지 않습니다 늘 그랬듯이 〈106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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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펜 끝은 녹슬지 않습니다 늘 그랬듯이 〈1063호〉
  • 손정우 기자
  • 승인 2019.11.04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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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대신문이 학우들과 만난 지 65주년. 그동안 명대신문은 학우들과 학교생활의 희로애락(喜怒哀樂)을 같이 했습니다. 멀게는 민주화 운동 시기부터 가깝게는 ‘명지학원 규탄 집회’까지. 과연 명대신문은 어떤 길을 걸어왔을까요? 본지가 소개해드립니다. 명대신문의 역사일람.

65년의 역사를 보관한 서고에서...

학우들에게 소개할 기사를 찾기 위해 서고로 갔다. 서고에는 기자가 태어나기 훨씬 전에 발행된 기사부터 지난번에 발행된 1062호까지 잘 정리되어 있었다. 서고는 한눈에 보기에도 65년이라는 세월을 실감할 수 있게 해주는 신문사의 보고였다. 그러나 명대신문의 창간호 신문은 아쉽게도 어디에도 없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방목학술정보관의 사료실에 찾아갔으나 마찬가지로 창간호 신문은 찾을 수 없었다. 그러던 중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 국학자료실에 명대신문의 전신인 서울문리사범대학보의 창간호가 보관되어 있다는 정보를 얻었다. 취재 결과 이는 사실이며 연세대학교 학술정보원은 모든 언론지의 창간호를 보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해당 창간호는 현재 훼손이 심해 열람이 불가하다.

명대신문의 시작, 그리고

최초의 명대신문은 볼 수 없었으나 그 못지않게 오래된 명대신문을 서고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신문들은 우리 대학의 발전 과정을 담고 있다. 좋은 내용의 기사를 많이 찾았으나 지면의 부족으로 모두 소개해 주지 못할 것 같다. 혹시라도 해당 신문을 읽기 원한다면 우리 대학 사료실에서 열람할 수 있다. 먼저, 우리 대학이 어떤 과정을 통해 세워졌는지, 명대신문 발행 순으로 살펴보겠다.

우선 첫 시작은 1976년 1월 1일 자 212호 신문(1)이다. 4년제 대학 승격과 남가좌동 캠퍼스로의 이전을 담은 기사로 대부분의 학부가 본디 자리를 잡았던 서소문동에서 남가좌동 캠퍼스로 옮겨졌으며, 건전한 면학 분위기를 형성하자는 내용이다. 대학본부도 이때 명지빌딩에서 서울캠퍼스(이하 인문캠) 본관으로 옮겼다. 대학본부와 교사(校舍)가 남가좌동으로 이전하면서 명지실업학교(현 명지전문대학교)가 서소문캠퍼스로 옮겨갔다.

학생회관이 세워진다는 내용의 이 기사는 1977년 4월 15일 자 236호 기사(2)다. 현재 명대신문이 위치한 학생회관을 만들기로 한 것이 바로 이때다. 당시 기사에는 새로 지어진 학생회관에 명대신문사가 들어간다는 내용은 없다. 과연 당시 기자들은 새로 지어진 학생회관에 명대신문사가 들어갈 것이라고 예상했을까?

1979년 9월 1일 자 277호 기사()에서는 용인캠퍼스(이하 자연캠) 건축이 시작됐음을 알렸다. 1964년 유상근 박사의 학장(현재의 총장 직위) 취임 이후 우리 대학은 종합대학 승격을 목표로 많은 사업을 벌였고, 자연캠 건축도 그 사업의 일환이다.

우리 대학은 1983년 9월 마침내 종합대학으로 승격하게 됐다. 같은 해 9월 11일에 발행된 347호(3)는 종합운동장과 대학본부 및 도서관이 곧 완공될 것이고 종합체육관도 다음 해 안으로 착공할 예정이라는 소식을 담았다. 초기에 우리 대학은 대학본부를 포함해 대부분의 학과를 용인으로 내려보내고 서울에는 야간대학 몇 개 학과만 남겨뒀다. 그러나 용인 이전 후 낮아지는 인지도로 인해 다시 한번 변화가 필요했다. 그리하여 이후 1989년 10월 계열별 이원화가 채택돼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이다. 우리 대학의 변천사를 명대신문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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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대신문 투쟁의 역사, 편잡자율권의 의미

1991년은 명대신문에 있어 의미가 깊은 해다. 편집자율권을 쟁취했던 해이기 때문이다. 편집자율권이란 언론사가 신문을 편집하는 과정에서 그 어떠한 세력의 간섭이나 제재로부터 자유롭고 자율적으로 편집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자유가 숨쉬는 것만큼이나 당연해지고 있는 지금, 우리는 자유를 얻기 위해 투쟁했던 역사를 잊어가고 있다. 현재 사람들은 흔히들 대학신문은 구조적인 문제, 양질의 기사 부족, 종이 신문 수요 감소 등의 이유로 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말한다. 추가적으로 대학 총장이 발행인으로 있고 총장의 위임에 따라 주간 교수가 신문 발행
을 총괄하기에 사람들은 간혹 학보사를 학교 홍보기관으로 치부하기도 한다. 그러나 명대신문은 어떠한 간섭이나 제재로부터 편집자율권을 지키기 위해 투쟁해 왔다. 이는 1991년 당시 총학생회의 후원으로 발행한 호외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다음은 호외의 내용 중 일부를 발췌한 것이다.

「창간기념호에 실은 ‘해방’이라는 화보와 학원 자주화 · 민주화 투쟁에서의 학교 측의 불성실한 태도를 규탄하는 기사 내용을 트집 잡아 명대신문사 주간교수가 명대신문 기자들에게 일방적으로 「언론탄압 5개 항」을 제시, 이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신문 제작을 중단시키겠다고 통보해 온 것입니다. 학우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진정한 정론직필을 위해 노력해야 할 명대신문이 학교의 기관지로 전락하게 될 그 상황에서 명대신문 기자들은 8천 명지 학우들의 정당한 권리를 찾기 위해 11월 6일 자로 파업을 결의했습니다.···(후략) 」 편집자율권을 위한 기자들의 정신에 대해선 이와 같이 적었다.

「대학언론의 순수한 생명은 무엇인가? 대학신문의 개성과 자유로운 발달은 어디에서 연유되는가? 우리는 그것을 대학의, 대학에 의한 편집의 자율권이라고 정직하게 요구하고 싶다. 엄격히 확보된 그 자율권은 대학언론의 자유인 동시에 자주임은 두말할 나위없다. ··· (중략) ··· 우리가 편집자율권의 쟁취를 위해 매진하려는 험난한 여정에 있어서 패배주의나 이기주의는 결코 용납될 수 없으며 학교 당국의 고립화 · 분리화 계획에 이용되는 일이 있어도 결코 안 될 것이다. 우리는 이를 적극 저지 투쟁하고 언론의 양심과 소명을 다하기 위해 어떠한 차원의 도전에 대해서도 단합된 의지로 우리의 한 몸을 희생할 것을 다짐한다. 또한, 아집과 독선, 특권 의식을 벌고 자신의 철저한 자기반성으로 보다, 효과적인 언론자유 운동을 전개해나갈 것이다.」

편집자율권을 지키기 위해 당시 기자들은 신문사에서 밖으로 나와 투쟁하는 것을 선택했다(5). 이투쟁을 계기로 얻어낸 편집자율권을 수호하기 위해 했던 노력은 비교적 최근에도 벌어졌다. 2009년에 일어난 명대신문 발행정지에 대해 당시 기자들의 입장을 요약하자면, 주간 교수와의 회의에서 「2009년 선거 세칙 위반 부정선거 논란」 기사 두 면을 할애해 기획 보도하는 것을 보고했고, 당시 주간 교수는 공동선을 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취재 및 기사작성을 승인했다. 하지만 기자들은 해당 내용이 바로 다음호 신문에 발행되길 원했으나 주간 교수는 새내기 특집호에 이러한 내용이 들어가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결국, 898호는 발행 중단을 말했고, 더불어 관련 기
사를 전면 삭제하지 않을 경우, 앞으로도 발행할 수 없다고 했다. 이에 당시 명대신문 편집장을 비롯한 전 기자는 이번 발행정지 사태는 기사 수정을 권고하는 주간 교수의 지도 및 역할을 벗어나 편집장의 편집 권한과 우리 대학 학우들의 알권리를 침해하는 언론탄압으로 직시, 이에 대한 입장문을 내면서 항의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2017년 3월 27일에 발행된 1019호에 ‘「대학신문」의 백지 발행을 지지하는 서울권대학언론연합회의 공동성명’을 광고로 게재했다. 서울대학교 학보사가 학교 측에 의해 편집권을 침해당하자 이에 대응해 백지 발행한 것을 지지한다는 내용이다. 이처럼 명대신문은 학우들의 알권리와 편집자율권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5)

사회와 소통하는 명대신문

우리 신문은 학내 소식을 넘어서 사회 전반의 목소리를, 특히 20대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있다. 2016년 1013호 창간기념호에 게재된 정수민 기자의 「구국의 목소리를 모아서」라는 기사가 대표적이다. 바로 대학가에서 시국 선언을 할 때 이에 관해 쓴 것이었다. 이외에도 세월호 사건이 일어났던 2014년 970호에서 커버로 희생자들에 대한 애도 했고, 이후 이루어졌던 장미 대선 전에 「대학생, 대선후보를 만나다」연속 기획물을 발행해 대학생들에 대한 대선 후보들의 입장을 들어보기도 했다. 이처럼 명대신문은 학내의 일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적으로 있었던 일을 사회와 생활 기획을 통해 학우들과 공감했다. 또한, 현재도 ‘파발마’와 ‘시사시사’ 등의 코너를 통해 사회에서 일어난 일들을 비판적인 태도로 꼬집고 있다.

그리고 2019년, 현재

이렇게 명대신문은 65년간 학우들에게 학내 소식을 전하고 있다. 올해는 특히 큰 이슈가 많았다. 바로 인문캠 복합시설 신축공사 개시 소식과 명지학원 파산신청 논란과 같은 이슈다. 특히 명지학원 파산신청 논란은 최초 보도를 포함해 관련 기사를 3번이나 탑 기사로 게재했다. 그만큼 명대 문이 명지학원 파산신청 논란과 그로 인해 파생된 이야기들을 주시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시다. 파산신청 논란 기사의 최초 보도는 1057호 김인기, 임정빈 기자의 「재단법인 명지학원 파산신청 논란」이다. 이어 1058호에는 오상훈, 이정환 기자의 「법원 ‘조정 권고’에 교육부와 명지학원, “검토 및 조율 중”」, 그리고 파산신청 논란으로부터 재점화된 총장직선제에 대해 김인기 기자의 「민주적인 총장 선출방식 도입을 위한 위원회 발족 합의」 기사로 이어졌다. 이런 기사를 보도할 수 있던 배경에는 많은 학우의 관심과 앞서 말한 편집자율권이 지켜졌기에 가능했던 성과다.

오늘도 명대신문을 읽는 당신께

명대신문은 기자들만의 신문이 아닙니다. 그 어떤 명문이라도 읽는 이가 없으면 한낱 종이 쪼가리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이번 창간기념호를 준비하면서, 오랜 65년의 역사 속에서 우리 대학 학우들과 함께했던 명대신문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학우가 있기에 명대신문이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명대신문 최고의 가치는 학우입니다. 아무리 좋은 내용을 담고 있는 기사라도 학우들을 벗어나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앞으로도 꺾이지 않는 펜대로 보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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