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을 죽음으로 내몬 건 <106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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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을 죽음으로 내몬 건 <1063호>
  • 김일송 공연 칼럼니스트
  • 승인 2019.11.02 2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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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로마비극>

셰익스피어는 다작으로 유명한 작가다. 보통은 양과 질이 반비례한다지만, 셰익스피어의 극은 밀도가 높았다. 지금도 셰익스피어의 공연이 매일 오르고 있는 사실이 이를 증명한다. 그 대부분은 아마도 4대비극일 테지만. 그렇다고 다른 작품들의 수준이 낮은 것은 아니다. 특히 여기서 다룰 로마극 3편, <율리우스 카이사르>(1599),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1606), <코리올라누스>(1608)가 그렇다. 이를 주인공의 생몰시기로 다시 정리하면 <코리올라누스>가 제일 앞에 있고, <율리우스 카이사르>,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가 마지막에 선다. 여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말로는 비참했다. 그런데 그들을 죽음으로 내몬 건, 그들의 미덕 때문이었다.

먼저 기원전 5세기 인물인 코리올라누스는 귀족 출신의 용맹하고 정직하고 청렴결백한 원칙주의자였다. 전장에서는 앞장섰으며, 다른 이의 전과를 자신의 수훈으로 돌리지도 않았으며, 재물보다는 명예를 택하는 애국자 중의 애국자였다. 원로원에서는 이러한 점을 높이 사 그를 집정관으로 추대하였고, 이후로도 그는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고 아첨에도 굴하지 않았다. 심지어 그는 민중권력의 눈치도 보지 않았는데, 어쨌거나 그를 파멸로 이끌었던 건 앞선 미덕 때문이다. 원칙주의자는 나중에 쓸쓸한 법. 그의 권력이 커질 것을 염려한 호민관들은 민중을 선동해 그를 추방한다. 추방당한 코리올라누스를 보고 그의 오랜 지기 메니니우스는 “그 성품이 속세에 살기에는 너무도 고결하다”고 말한다. 추방당해 간 적국에서도 그의 인기는 높았지만, 이번에는 적군의 장군이 민중들과 그를 이간하고 결국 그는 암살자의 손에 죽게 된다.

두 번째 작품은 <율리우스 카이사르>로, 제목과 달리 사실 이 극의 주인공은 브루투스와 안토니우스로 작품의 백미는 두 사람의 연설에 있다. 공화주의자였던 브루투스는 카이사르가 독재자가 될 것을 우려해 그를 살해한다. 그리고 연단에 올라 말한다. 짧게만 인용하자. “저는 카이사르를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로마를 더 사랑해서 카이사르를 죽였습니다.” 이 연설로 브루투스는 민중의 지지를 얻지만, 지지는 오래가지 않는다. 뒤이어 연단에 오른 안토니우스는 브루투스가 했던 말을 정중하게 반박한다. 마지막에 그가 “로마 시민 모두에게 75 드라크마씩 주겠다”고 카이사르의 유언을 말한 순간, 분노한 민중들은 봉기를 일으킨다. 결국 브루투스는 이상주의로 인해 파멸을 맞게 된다. 안토니우스는 말한다. “브루투스는 가장 고결한 로마인이었소. 다른 역모자들은 모두 카이사르를 증오해 시해했지만 브루투스 이분은 공명정대한 정의감과 만인의 행복을 위하여 한패가 되었소. 이분의 생애는 고결하였소”라고.

마지막에 등장하는 <안토니우스와 클레오파트라>의 안토니우스는 앞서 등장했던 바로 그 안토니우스다. 브루투스의 사망으로 내전이 종식된 로마는, 안토니우스와 옥타비아누스, 그리고 레피두스 세 사람에 의한 삼두정치 체제를 맞게 되었다. 그러나 이 체제는 오래가지 못했다. 옥타비아누스가 합의를 깨고 다른 이들을 적으로 내몬 것이다. 이때, 안토니우스는 전쟁 대신 클레오파트라와의 사랑을 선택하는데, 결국 그 사랑으로 인해 파멸하게 되는 것이다. 삼두정치의 지도자 중 가장 연로했던 레피두스는 옥타비아누스가 안토니우스의 주색잡기에 대해 혹평하고 불평을 털어놓을 때, 이렇게 말했다. “나는 그에게 모든 선량함을 어둡게 할 만한 악덕이 있다고 생각지 않소이다. 그가 지닌 과실은 하늘에 별들처럼 밤의 어두움 때문에 환히 보이는 것이죠. 후천적이라기보다 천성적인 것이며, 선택한다기보다 어쩔 수가 없는 법이요”

결국 이들 세 사람을 죽음으로 내몬 건 다 그들의 미덕 때문이다. 원칙주의, 이상주의, 애정지상주의, 이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융통성 없는 원칙주의, 현실성 없는 이상주의, 무책임한 애정지상주의. 물론 다른 결함도 많은 인물들이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언급하고 싶은 게 있다. 사실 그들을 죽음으로 내몬 건, 그의 정적들과 그들의 설득, 달리 말해 이간에 휩쓸렸던 성급한 민중은 아니었을까. 11월 8일 공연되는 연극 <로마 비극>을 연출하는 이는 ‘민중의 적은 민중’이라는 <민중의 적>을 올렸던 연출가 이브 반 호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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