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Goal)을 콜(Call)하다, 스포츠캐스터 신승대 (전자 92)! 〈1059호(개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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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Goal)을 콜(Call)하다, 스포츠캐스터 신승대 (전자 92)! 〈1059호(개강호)〉
  • 류성우 기자
  • 승인 2019.09.02 00: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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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축구의 심장 박지성(체육 99) 동문에겐 ‘해버지’라는 별명이 있다. 지금의 해외축구 팬들을 이끈 장본인이라는 것. 그렇다면 여기 ‘해삼촌’ 정도는 될 만한 인물이 있다. 바로 우리 대학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MBC SPORTS+(이하 엠스플)에서 활동하고 있는 신승대 캐스터(이하 신 캐스터)다. 신 캐스터는 축구 중계를 중심으로 해 △“전방으로 깊수카게” △“팍스 안촉카지~” △“콜입니다(인더) 콜”1)과 같은 특유의 멘트로 즐거움을 주기도 했다. 본지는 신 캐스터와의 만남을 통해 스포츠 중계 대한 그의 생각을 들어본다.
1) 순서대로 △전방으로 깊숙하게 △박스 안쪽까지 △골입니다 골

▲QR 코드를 스캔하시면 신승대 캐스터의 멘트를 직접 들을 수 있습니다.

 명지대학교 전자공학과 학사
 2001년~현재 MBC SPORTS+ 아나운서
 2009년 축구 월간지 베스트일레븐 선정 최고의 축구캐스터

 

방송을 꿈꾸던 공학도, 스포츠 캐스터가 되기까지

Q. 어떻게 전자공학과에서 엠스플로 들어가신 건가요?
A. 사실 대학 지원할 때, 원래는 방송 일을 하고 싶어했어요. 마땅한 대안이 없으니까 일단 흐름 따라 간 거죠. 그런데 사실 대학생활을 즐기면 본인 생활이 많잖아요. 물론 공부도 해야 하지만 남는 시간에 방송에 관심이 더 있었던 거예요. 그런 취미생활을 하다가 졸업할 때쯤 IMF가 갑자기 터져요. 그런데 IMF가 오히려 저에겐 전화위복이 된 거죠. 제가 과에서는 장학생도 아니고 그냥 졸업만을 위해서 성적을 다루던 학생이었으니, 그래서 아예 취업 원서도 안 넣었어요. 그리고 방송 일을 하고 싶어서 그 당시에는 SBS에서 하던 방송 아카데미 아나운서 반에 들어갔죠.

Q. 방송을 공부하시면서 어렵진 않았나요?
A. 정말… 재밌죠, 제가 4년 동안 전자공학을 공부한 사람이 맞는가 싶을 정도로. SBS 방송아카데미 기간이 6개월이었는데 그때가 제일 재밌었어요. 방송 일을 배우며 “이런 다른 세상이 있구나!” 뭔가 희망이 보이는거죠. “아, 방송 일을 할 수 있겠다.” 그런데 방송 일을 도전하는 게 쉽지는 않죠.

Q. 그래도 결국에는 붙으셨는데.
A. 뭐, 우여곡절이 많았죠. 떨어지기도 많이 떨어지고. 어떤 사람은 한 번에 철컥 붙었다는데 그건 정말 실력, 운, 면접관이 잘 맞아 떨어진 것이고요. 저도 후배들 카메라 테스트나 시험 보러 많이 들어갔는데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지금 지원자를 내가 인터뷰 하고 있는데 만약 다른 면접자가 인터뷰를 하면 저 지원자는 붙을 것인가. 그런데 그것도 인연인 것 같아요. 코드가 얼마나 맞느냐. 사실 지방까지 돌면서 한두 곳 정도는 붙은 적이 있는데 계속 서울 쪽으로 알아보다가, 엠스플(당시 MBC ESPN)은 마지막으로 생각하고 본 거죠.

Q. 마지막으로요?
A. 네, 왜냐면 거의 2년이라는 세월이 또 흘러가는 시점이어서 ‘아 이거 너무 허황된 꿈 좇아가는 거 아니야?’ 이런 생각이 들었던 거죠. 합격해야만 내 능력을 펼칠 수 있는 공간이 있고, 이 공간 바깥에서 아무리 능력이 있어도 누군가와의 인연이 없다면 방송 못 하는 거예요 (웃음). 그래서 마지막이라 생각하고 시험 본 거죠. 그런데 전국 돌아다니며 시험 본 게 오히려 많은 도움이 된 거 같아요. 단점을 보완하게 된 거죠. 그렇게 내 인생 마지막 시험을 봤는데 좋은 소식이 들려온 거예요. 정말 마지막 시험이었어요(웃음).

 

축구 중계 대표 캐스터로

Q. 스포츠 중계를 계속해오셨는데 처음 맡은 중계는 어떤 건가요?
A. 처음에 제일 먼저 했던 건 하이라이트 더빙이었어요. 누가 들어와도 처음부터 중계를 시키지는 않습니다. 그거를 한 1년 정도 전 종목에 걸쳐서 꽤 길게 했던 거 같아요. 미국에서 들어오는 1시간짜리 스포츠 하이라이트 방송을 우리가 30분으로 줄여서 매일 하이라이트로 내보냈죠. 그러면 그 하이라이트 더빙을 해서 중계스타일을 만들어 가는 거죠. 그렇게 1년 정도 더빙을 하고 처음 들어왔던 중계가 어…. 아이스하키였나, 럭비였나? 헷갈리는데 그 2개를 제일 먼저 한 기억이 나네요.

Q. 그럼 축구는 어떻게 맡게 되신 건가요?
A. 축구는 한 1년 지나서 프리미어리그부터 바로 들어갔죠. 그때는 우리 한국 팬들에게 별로 친숙하지 않았던 팀들 위주로 중계했던 거 같아요. 한국 선수들이 없던 시절이죠. 2002년부터 프리미어리그 중계를 했고 박지성 선수가 2003-4까지 에인트호번에 있었다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로 갔는데, 우리는 프리미어리그를 1주일에 1~2경기 꾸준히 하고 있었으니까. 우리가 컨택하는 경기는 아니었어요. 그 당시 싱가포르 ESPN이라고 미국 ESPN이 싱가포르에 지사를 차
린 건데, 거기서 위성으로 보내주는 경기만 중계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싱가포르 사람들이 좋아하는 매치업을 중계한 거죠. 그러다 박지성 선수가 맨유로 갔는데 우리가 컨택을 못하잖아요. 그러니까 계약 자체를 싱가포르 ESPN을 통해서 중계권료를 더 낼 테니 우리가 원하는 맨유 경기를 위성으로 보내라 그런 식으로 맺은 거예요. 그 2005년 때부터 본격적으로 프리미어리그 중계가 시작된 거예요. 물론 박지성 선수는 에인트호번에 있을 때부터 중계했었죠. 그렇게 맨유 위주로 중계권을 계약해서 박지성 선수가 QPR 이적하기 직전 해까지 중계했죠. 거의 2005년에서 2011년까지니까 맨유만 6년을 중계한거예요. 에인트호번 시절 포함하면 8년. 그리고 챔피언스리그를 한 2년 정도 더 했으니까 거의 10년 동안 박지성 중계만 한 거 같아요.

Q. 전담으로 중계 하신 건가요?
A. 그렇죠, 요즘은 다방면으로 뛰지만 그 당시 회사의 방침은 야구와 축구로 나뉘었기 때문에 저는 축구로 지원하게 된 거에요. 고민을 했죠. 야구도 재미있는데 또 축구도 재미있는데(웃음). 근데 야구 쪽에는 선배 하나가 있었고 축구 쪽이 비어있어서, 차라리 내가 이쪽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것이 좋겠다 싶어서 지원했어요. 그때가 2001-2년 때인데 회사에서도 축구를 안 밀어주고 야구를 밀어줬어요. 당시 박찬호 선수 자체가 광고를 많이 따오는 콘텐츠이다 보니까 축구는 곁다리로 하는 거죠. 싱가포르에서 무심히 쏴주던 재미없던 경기만 중계하다가 갑자기 박지성 선수가 맨유로 가면서 대우가 달라지는 거죠(웃음). 캐스터가 콘텐츠에 따라서 같이 따라가요. 그러니 맨유 외에도 중계가 막 쏟아지는 거예요. 10시부터 새벽 4시까지 3, 4경기 연달아서. 그래서 그 당시에 축구캐스터를 대폭 늘려요. 근데 저는 어려웠을 때부터 자리잡고 있었기 때문에 맨유 경기를 중계하며 자리 잡아 나간 거죠.

Q. 인기가 늘어나는 게 느껴졌나요?
A. 그렇죠, 정말 대단했습니다. 축구 인기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2002년 한일 월드컵 이후에 바로 프리미어리그로 이어진 거죠. 어마어마했어요. 그 전까지 메이저리그는 월드시리즈를 현장중계로 했어요. 계약에 있는 거니까. 프리미어리그는 맨유와 토트넘, 박지성과 이영표가 마주친 경기를 현지 중계했는데 그게 국내 방송 역사상 프리미어리그 첫 생중계였을 거예요.

Q. 첫 생중계요?
A. 네 그 이전에 어떤 방송사도 현지에 가지 않았어요. 처음이었죠. 그 정도로 인기가 많았던 거죠. 그 이후로도 한 3, 4번 정도 더 갔다 왔어요. 저도 회사 내에서도 어깨 펴고 고개 들고, “시청률 잡아주는 캐스터” 소리들으며 당당히 다니던 시절이었죠.

Q. 정말 인상 깊은 경기였던 것 같아요.
A. 아 정말 인상 깊었어요. 국내 최초 프리미어리그 현지 생중계, 런던 화이트 하트 레인 앞으로 날아가서 오프닝을 따는데, 그 감격스러움. 정말 대단했어요.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백 년 축구 역사 전통의 발상지 런던에서 오프닝을 전해드립니다”하는데 내가 얘기하면서도 정말 소름이 돋는 거예요. 경기 자체도 재미있었고. 박지성이 이영표 제치고 연결했던 게 바로 골이 되어서 그게 아마 기사로도 나왔을 거예요. 그때에 박지성과 이영표가 손 맞잡은 장면을 현지 기자가 사진 찍은 게 나중에 게재가 되었죠. 현장에서는 그 장면을 놓쳤었는데 나중에 ‘아 저런 게 있었구나’하고, 더 느낌을 받았어요.2)

2) 당시 해당 경기는 케이블TVㆍ위성방송으로는 기록적인 시청률을 낳았다. 경기는 우리 시간으로 2006년 4월 17일 밤 11시부터 생중계되었는데, 시청률 조사기관 AGB닐슨미디어리서치의 집계 결과 전국 케이블TV 가입 가구 기준으로 가구 시청률이 11.23%에 이르렀다.

 

'신승대' 중계스타일과 파트너

Q. 축구 중계를 하시며 확실히 이름을 알리신 거 같아요. 아직도 특유의 멘트들 좋아해 주시는 분들이 많잖아요.
A. (웃음) 꽤 됐는데. 벌써 7, 8년 지났어요. 아직도 축구장 가면 간혹 알아보시는 분들이 이야기해주시더라고요, 프리미어리그 잘 봤다고. 그때마다 감사하죠. 특유의 그 멘트들, 요즘은 날강두라고 불리는 “호날두!, 골!” 이런 거 많이 따라 하시는 분들도 있는 거 같고요.

Q. 그런 거는 그냥 나오는 건가요? 만드는 과정이 있나요?
A.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거죠. 처음부터 그걸 생각하고 한 게 아니고 하다 보니까 습관화되어 굳어진 것들. 어떤 사람들은 골인데 왜 콜이라고 하냐고도 하는데, 오히려 나중에는 골이라고 하면 사람들이 안 좋아해요. (웃음) 무조건 콜이지, 워낙 발음이 격해지다 보니까 그런 거예요. 골입니다! 콜입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 것이죠.

Q. 그 멘트도 재미있고 또 골이 터지면 해설자와 같이 말을 쏟아 붓잖아요? 특정 부분에 포인트를 맞춰야하는 건데 그런 것들은 생각하고 하게 되는 건가요?
A. 눈앞에 펼쳐지는 것들을 멘트로 쏟아내는 거죠. 좀 전에도 얘기했지만 하이라이트부터 시작해야 된다는 게 바로 그런 부분이거든요. 현장 가서 장난하다가도 펼쳐진 상황 앞에 가면 바로 그 멘트를 할 수 있게, 그렇게 기본기를 다듬어 가는 거죠.

Q. 그러다가도 어떤 순간에는 침착하게 중계를 이어나가잖아요?
A. 캐스터는 중계를 하는 게 주목적이지만 MC 역할도 있어야 한다고 봐요. 원래 MC 쪽을 못해서 한이긴 하지만 MC 보는 것을 굉장히 좋아했었고. 중계를 막 하다가도 잠잠해지면 MC 분위기로 넘어가는 거죠. 프리미어리그 할 때도 그런 느낌을 주려고 노력을 했어요. 중계는 중계대로 해설자와의 담화 때는 약간 토크쇼 같은 분위기. 그러니까 농담도 자연스럽게 나올 수 있어야한다. 국내 방송은 분위기가 되게 경직되어있어요. 그런 부분들을 많이 깨보고자 노력을 했었던 거고. 그러다 보면 궁합이 잘 맞는 해설자들이 나오죠. 그러면 자연스럽게 나오는 거고, 했는데도 잘 안 되는 해설자들이 있으면 그냥 그대로 가는 거고(웃음).

Q. 그렇다면 어떤 멘트를 가장 좋아하시나요? 저는 어떤 캐스터나 다 하는 오프닝 멘트가 캐스터님 멘트 모음에 있어서 인상 깊었는데요.
A. 그게 아마 그냥 단순한 멘트면 잘 기억이 안 될 거예요. 제 멘트가 약간 독특한 억양이 있어요. 그래서 기억에 남는 것 같아요.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 신승댑니다.” 이런 말투와 리듬 때문에. 거기다가 1호 멘트는 “골입니다 골”이죠. 발음이 세지면서 “콜입니다 콜”, 더 빨라지면서 “콜 인더 콜”로 되는 거고. 그리고 함께 “시청해 주신 여러분 고맙습니다. 안녕히 계십쇼”, 요거 마무리. 다른 사람들이 들으면 글로 써놓으면 “시청해주신 여러분 고맙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지만 들으면 “시청해주신 여러분 고맙습니다. 안녕히 계십쇼”, “계십쇼”. 그러니까 아나운서는 시작도 깔끔하게 마무리도 깔끔하게 해야 한다는 틀을 깬 거죠. 나는 그게 개성이 있는 게 더 중요하다. 모든 아나운서가 다 똑같이 그러면 그냥 아나운서죠. 그러니까 신승대가아닌 거죠.3)
3) 본 답에서 나온 멘트와 설명은 위의 QR코드를 통해 직접 들을 수 있습니다.

Q. 그런 면에서 캐스터님 중계는 다른 중계와는 다른 재미가 있는 거 같아요.
A. 감사합니다.

Q. 아까 궁합 얘기를 해주셨는데 이상윤 해설위원님과의 궁합이 좋다는 얘기가 많잖아요.
A. 궁합이 좋은 건 아닌 거 같아요(웃음). 오랜 세월을 같이 하다 보니까 끼워 맞춰진 것 같아요. 2005년부터 한 14, 15년 째 호흡을 맞춰왔는데, 우여곡절이 많죠. 싸우기도 하고 그러다 보니 이제 미운 정 고운 정이 쌓인거죠. 처음 방송을 시킬 때는 너무 투박하고 거칠고 정제되지 않았었죠. 야생마 다루듯이 그 부분을 그대로 살려둔 거예요. 모든 해설이 다 단정하게 고급스럽게 간
다면 개성이 없을 것 같다. 축구 중계팀도 그런 생각을 했고 저도 동감했으니. 이젠 말만 하면 그냥 가는 거예요. 어떤 분위기인 줄 아니까. 뭐 최고의 파트너죠.

 

아나운서 캐스터 엔터테이너 '신승대'

Q. 임수정 선수와 직접 씨름 경기를 한 것도 이슈였는데요, 평소의 철학이 반영된 것인가요?
A. 우리 엠스플이 그런 독특한 생각을 많이 하죠. 그러니까 예전 아나운서들은 뭔가 무겁고 딱딱해 보이는 느낌이 있잖아요. 그런 이벤트를 하면서 인간적인 면을 보여주는 거죠. 인간적인 면이 드러났을지는 모르겠어요(웃음). 그래서 더 엔터테이너가 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Q. 그럼 캐스터님께서는 스스로를 어느 정도 만족스러운 엔터테이너라고 생각하시나요?
A. 아직 부족하죠, 왜냐하면 아직 그런 걸 보여 줄만한 충분한 무대가 아직 갖춰지지 않았잖아요(웃음). 신입 초창기 6, 7년 차까지는 날아다니는 거죠. 외부행사도 많고 회사 내에 있는 각종 행사들, 야외 오프닝 등 무대가 있는 곳에 많이 서기도 했는데 이제 오로지 중계만하는 거예요. 아직 그런 역할을 해보고 싶기는 한데 회사 정책에 따르는 거죠. 그런 자리만 있다면 전 아직 보여줄 게 많아요. 그런 엔터테이너적인 요소들(웃음). 

Q. 마지막으로, 신승대에게 명지대란?
A. 명지대가 있어서 제가 아나운서가 된 거 같아요. 과하고는 약간 분리가 되는 부분이에요. 과를 좋아해서 왔는데 과하고는 별개로 개인적인 일을 많이 했어요. 그러다 보니까 우연한 기회에 학교행사에서 노래 진행 사회 MC를 맡게 되었는데, (웃음)그게 정말 너무 잘 맞는거죠. 딱 하루 진행을 했는데 되게 재밌으면서도 그 3시간을 어떻게 진행을 했을까, 그런 생각이 난 거죠. 그 3시간이 금방 지나간 거예요. 아주 재밌게. 이게 내가 할 일인가 보다(웃음). 그 분위기가 되게 잘 맞았던 거 같아요. 만약에 다른 학교였다면 내가 저런 역할을 맡을 수 있었을까. 다 인연인 거 같은데……. 명지대는 공부도 내 수준에 맞게 할 수 있었고 다양하게 내 취미생활도 동시
에 할 수 있었던 좋은 학교 분위기였던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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