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동장유가 <1059호 (개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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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동장유가 <1059호 (개강호)>
  • 육민수 교수
  • 승인 2019.09.02 0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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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겸의 '일동장유가'는 1763년 8월 3일부터 다음해 7월 8일까지 계미통신사(癸未通信使)의 삼방서기(三房書記)로 일본 사행(使行)에 참가한 경험을 기록한 가사 작품이다. 제목에서 ‘일동(日東)’이란 일본의 별칭이며, ‘장유(壯遊)’란 500여명이나 되는 많은 사절단이 참여한 장대한 행차였다는 점을 나타낸다. 악기 소리가 산천을 진동하고 깃발이 하늘을 덮을 정도였으며 짐은 육십 리에 이어졌고 구경하는 사람만 십만을 헤아릴 정도였다고 하니 당시 상황을 고려해 볼 때 그 규모가 얼마나 컸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어지러운 생소 고각 산악을 진동하고/ 무수한 부월정기 천일을 가리었다/ 연락한 복태 바리 육십 리에 닿았으니/ 거동행차 제하고 비할 데 전혀 없다/굿 보는 남녀노소 십만을 헤리로다”)


일본으로의 사절단인 만큼 임진왜란 때 우리 민족이 겪었던 고통을 회고하는 장면이 작품 곳곳에 등장한다. “한강을 얼핏 건너 이릉(二陵: 임란 때 왜병이 파헤친 성종, 중종의 능)을 지나오며 임진년을 생각하니 분한 눈물 절로 난다”에서 처럼 여정 중간 중간에, 임진왜란 당시를 기억하게 하는 사적이 있을 때마다 김인겸은 당시의 아픔을 떠올리고, 또 한편으로는 충절을 지키며 싸웠던 인물에 대하여 공경의 마음을 표현하고 있다. 예(禮)를 중시하는 조선 사회에서 왕의 능이 훼손당한 이릉지변(二陵之變)과= 같은 사건은 엄청난 충격과 분노를 불러일으켰을 것이다.

 

계미통신사에서 정사는 조엄(趙曮)이었으며 부사는 이인배(李仁培), 종사관은 김상익(金相翊)이었는데 김인겸은 종사관을 수행하는 삼방서기의 직책을 맡았다. 서기의 주된 역할은 우리나라 사람의 글을 원하는 일본인들에게 글을 지어 줌으로써, ‘글’로써 그들을 교화하고 우리나라의 문화적 역량의 우수함을 전달하는 것이었다.(“왕화에 목욕 감겨 예의국 만들고자”) 일본인들이 얼마나 많이 우리의 글을 얻기를 원했으며, 그로 인해 서기들이 얼마나 고된 직무에 힘들어 했는지를 다음 대목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병들어 어려우나 나라에서 보낸 뜻이/ 이놈들을 제어하여 빛 있게 하심이라/ 병이 비록 중할 진들 어이 아니 지어주리/ 일생 힘을 다 들여서 풍우처럼 휘쇄(揮灑)하니/ 겨우 다 차운하면 품속에서 다시 내어/ 여러 놈이 함께 주면 턱에 닿게 쌓이도다/ 또 지어 내어주면 또 그처럼 내어놓네/노병한 이내 근력 시진할까 싶으도다/ 젊었을 제 같게 되면 그 무엇이 어려울고/ 우리를 보려하고 이삼십 리 밖의 놈이/ 양식 싸고 여기 와서 대엿 달씩 묵었으니/ 만일 글을 아니 주면 낙막하기 어떠할꼬/ 무론 노소 귀천하고 다 몰속 지어주니/ 이러므로 우리 역사 밤낮으로 쉴 때 없네” 비록 힘든 몸이지만 온힘을 기울여서 일본인들이 써달라고 부탁한 글에 화답하는 장면이 애처롭기까지 하다. 한 사람의 글에 화답하고 나면 곧바로 다른 사람이 부탁해서 이내 써야 할 글이 수북하게 쌓이는 장면, 그리고 우리나라 사람의 글을 얻기 위해서 2~30리 밖에서, 양식을 준비하여 5~6개월을 묵으면서까지 기다리는 일본인의 모습에, 저자가 있는 힘을 다 짜내어 글을 써주는 장면이 상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250여 년 전 우리 문화에 대한 자긍심을 바탕으로 한, 조선 지식인의 문화 전달의 현장을 '일동장유가'는 생생하게 보고하고 있다. 요즘처럼 한일 간의 갈등이 심각하고 아울러 왜곡된 시각에서 자료가 다루어지는 상황에서 올바른 가치관을 정립하기 위해 일독한다면 여러 모로 도움이 될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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