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사과는 무엇인가 <1058호(종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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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사과는 무엇인가 <1058호(종강호)>
  • 김일송 공연칼럼니스트
  • 승인 2019.06.11 16: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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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티가 동의했어?”

“무슨 소리야? 당연히 안했지. 그 여자는……. 내……. 우리는……. 말을 할 필요가 없지. 섹스였다고. (......) 나는 우리가 사랑을 나누고 있는 줄 알았어! 왜 걔가 생각하는 게 진실이야?”


“왜냐하면 그게 법이니까! 내가 정리해줄게. 너는 키티가 원하지 않는다는 걸 알았어. 키티가 널 떠난다고 했어. 팀하고 사랑에 빠졌다고 했어. 그런 다음 너는 키티랑 섹스를 했어. 동의없이. 부부 사이 강간의 전형적인 케이스야.”

 정리하면 이렇다. 에드워드는 키티와 부부 사이다. 짐작했듯 에드워드와 키티는 지금 불화상태다. 에드워드의 외도가 먼저다. 그리고 에드워드에 대한 복수심으로 키티 또한 맞바람을 폈다. 이 장면은 에드워드가 키티로부터 그 사실을 들은 후 친구 레이첼에게 상담하는 장면이다.여기서 이 작품의 제목 ‘콘센트_동의’에 대한 실마리 하나를 짐작할 수 있다.

 6월 14일 명동예술극장에서 국내 초연되는 연극 <콘센트_동의>는 바로 ‘부부 사이의 강간’에 대한 이야기다. 작품은 에드워드와 키티가 친구 레이첼과 제이크를 집으로 초대해 파티를 여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에드워드와 키티 사이에는 이제 막 아이가 태어났다.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들이 얼마나 애틋한 관계이고, 또한 얼마나 아이를 사랑하는 지 알 수 있다. 친구인 레이첼과 제이크 역시 그렇다. 얼핏 보기에는 이상적인 가정을 꾸리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키티는 산후우울증을 겪고 있고, 레이첼 역시 최근 남편의 외도 사실을 알게 되어 속병을 앓는 중이다.

 파국이 오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변호사인 에드워드가 재판에서 패소하면서 사건이 시작된다. 에드워드가 변호하던 이는 성폭력 피해자 게일이었다. 결국 에드워드는 성폭력 재판에서 가해자를 승소하게 만든 셈이다. 이 지점에서 작품은 이러한 질문은 던진다. 과연 법이 언제나 공명정대한가? 보다 직접적으로 표현하자면, 법은 왜 공정치 못한가? 이렇듯 작품은 재판을 통해, 그리고 부부의 관계를 통해 사법제도의 허점을 폭로한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는 아니다.

 키티가 원하는 것은, 대개의 피해자들이 그러하듯 진정성 어린 사과이다. 그는 에드워드가 한 번도 제대로 사과를 하지 않았다고 이야기한다. 사과에 조건이 달렸으며, 이러한 조건부 사과는 진정한 사과가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핵심은 그것이다. 상대가 진심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것은 제대로 된 사과가 아니라는 것. 이것은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정답이다. 그리고 여기에서 작품의 결말이 나왔다면, 그것은 서사를 잃은 것이나 다름없다. 다행히 작품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에드워드는 말한다. “너는 나를 진심으로 용서해준 것 있어?” 그리고 둘의 관계는 더욱더 파국으로 치닫는다. 자신의 가족, 심지어 자기 자신까지도 파멸시키면서 사과를 받아내려는 키티의 모습에서 가슴아림을 느낄 수도 있다.

 그래서 과연 두 사람은 어떻게 될까? 결말까지 다 드러낼 수는 없지만, 몇 마디 똥겨드릴 수는 있을 것 같다. 또 다른 인물 중 하나인 자라가 키티에게 하는 말이다.

 “사과는 대가를 치를 때 진짜인거야. 아니면 사과가 아니야. 나 자신도 미안하게 만들지 않으면, 미안한 게 아니야. 그래서 우리가 사람들한테 벌을 주는 거야. 미안해지라고. 이게 네 논리 맞지? 너는 말 그대로 강요하잖아. 너한테 공감하라고. 네가 불행하니까 다른 사람도 불행하게 만들잖아. 네가 불행하니까, 에드까지 불행하게 만들었어.”

콘센트(consent)의 뜻은 동의, 합의, (정식)인가이다. 그런데 그 어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거기에 ‘함께(con) 느끼다(sent)’, 다시 말해 공감이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거기에서 작품의 골자를 발견할 수 있다. 법적 부부관계를 맺지 않은 연인관계에서도, 나아가 모든 인간관계에서 곱씹을 화두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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