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에 대한 끊임없는 열정을 보인 이소용(바둑 08) 캐스터를 만나 <1058호(종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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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에 대한 끊임없는 열정을 보인 이소용(바둑 08) 캐스터를 만나 <1058호(종강호)>
  • 김영서 수습기자
  • 승인 2019.06.10 12: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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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에 지치지 않는 자가 성취한다" -드라마 <미생> 8화 中-

인터뷰 진행을 위해 방문한 KBS 스튜디오에서는 ‘KBS 바둑왕전’ 녹화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녹화가 끝나고 이소용(바둑08) 캐스터는 따뜻한 미소로 다가와 “오느라 길을 헤매지는 않으셨나요?”라는 인사를 건넸다. 본지 기자는 인터뷰를 진행하는 내내 바둑을 향한 그녀의 사랑을 느낄 수 있었다.

바둑캐스터 이소용

이소용 캐스터는 2010년 '바둑TV'에 공채 입사한 이후 2011년부터 본격적인 바둑캐스터 활동을 시작했다. 그녀는 세간의 관심이 주목됐던 2016년 이세돌과 알파고의 승부인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에서 중계를 맡아 능숙한 진행과 바둑을 알지 못하는 시청자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표현을 쓰며 인기를 얻었다. 현재 그녀는 KBS 바둑왕전 진행자를 맡아 활동하고 있다.

Q. 먼저 바둑캐스터가 되려면 어떤 준비가 필요한지 궁금해요
A.저는 최초로 생긴 바둑캐스터 오디션에 합격해 바로 바둑캐스터가 된 케이스에요. 제가 어린 시절부터 바둑을 배우고, 연구생으로 활동하면서 전문적인 지식을 쌓아오긴 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바둑을 진심으로 좋아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바둑캐스터가 되기 위해 가장 필요한 사항이라고 생각해요.

Q. 바둑해설자와 바둑캐스터의 공통점과 차이점이 궁금해요
A. 긴 바둑중계 시간동안 시청자들이 지루함을 느끼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 바둑해설자와 바둑캐스터의 공통점인 것 같아요. 차이점을 말하자면 바둑해설자는 현 바둑이 어떻게 흘러가는지에 대한 풀이와 선수가 왜 수를 이렇게 뒀는지에 대한 풀이를 담당하는 
반면 바둑캐스터는 시청자를 대변해 궁금할 만한 점을 해설자에게 물어보는 역할을 담당하죠. 

Q. 오랫동안 바둑캐스터로 활동하시면서 겪은 고충이 있나요?
A.꽤 있는 것 같아요. 바둑캐스터는 한번 방송을 시작하면 장시간 진행을 해야 해요. 특히 방송 중에는 스튜디오가 건조하기도 하고 말도 많이 하게 되니까 자연스레 수분섭취를 많이 하게 돼요. 그러다보면 화장실을 가고 싶은데 못 갈 때가 엄청 많아요. 예전에는 그 부분이 굉장히 힘들었는데, 이제는 어느 정도 노하우가 생겨서 전날부터 짠 음식을 피해 섭취하는 등 고충
을 스스로 해결해 가고 있어요.

또 다른 고충이라면 제가 진행하고 있는 KBS 바둑왕전을 시청해주시는 분들의 실력 편차가 다양하다는 것이에요. 그래서 항상 ‘어떻게 하면 많은 사람들의 궁금증을 채워주고, 바둑의 즐거움을 전달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Q. 바둑캐스터를 하면서 기억에 남는 일화가 궁금해요
A. 바둑이 끝난 이후에 대국자와 인터뷰를 진행할 때가 있어요. 그중 이세돌 9단은 복기에 관한 담론을 가장 깊이 있고 호기심에 가득 찬 상태에서, 오랫동안 나누는 것으로 유명해요. 그런데 이세돌 9단과 인터뷰를 하면, 이세돌 9단의 복기 내용이 너무 흥미로워서 주어진 인터뷰 시간을 맞추기가 쉽지 않았어요. 그래서 주어진 시간 안에 마무리 짓느라 애를 썼던 것이 기억에 남아요. 그리고 이세돌 9단과는 방송이 끝난 후에도 복기를 추가적으로 1시간 이상 했어요. 바둑인으로서 우리나라 최고 바둑기사 중 한 명인 이세돌 9단과 복기를 장시간 나눴던 건 정말 꿈같은 일이었죠.(웃음)

Q. 대중의 관심을 끌게 하는 바둑의 요소가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A. 바둑이 주는 가장 좋은 요소 중 하나는 인내와 끈기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바둑을 끝낸 후 내가 무엇을 잘못 두었는지 되돌아보는 시간인 복기를 하죠. 이러한 바둑의 요소들은 제가 어떤 일을 하든 상관없이 도움이 많이 되는 것 같아요. 특히 아이를 키울 때, 바둑은 내 아이가 어떤 시련과 고난이 와도 무너지지 않고 견디게 할 수 있어요. 이러한 점에서 대중이 매력을 느낄 것이라고 생각해요. 중국의 경우, 바둑을 정규과목에 포함했고 러시아와 프랑스의 경우, 바둑대회가 150개가 넘는 등 전 세계적으로 바둑에 대한 인기가 상승하고 있죠. 이렇게 아시아권에만 머물던 바둑이 세계로 뻗어가고 있어요.

Q. 그럼 이소용 캐스터만의 시청률을 높이는 방법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A. 남편이 프로기사 원성진 9단이다 보니 집에서도 늘 바둑 이야기를 해요. 남편을 통해 바둑의 기술적인 면도 많이 배우고 바둑을 중계할 때 바둑을 잘 모르는 시청자들도 쉽게 알아들을 수 있는 표현을 쓰게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바둑의 기술적인 풀이와 더불어 바둑계의 뒷이야기도 같이하며 방송을 재미있게 이끌어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바둑학도 이소용

Q. 바둑과의 인연, 어떻게 시작됐나요?
A. 어렸을 적부터 아버지는 제게 스포츠를 시키려고 하셨어요. 아버지가 테니스와 정구를 전공으로 하시다 보니 딸에게도 좋은 스포츠를 소개시켜주고자 많이 노력하셨죠. 그러던 와중 오로지 두뇌만을 이용하는 바둑을 접하시게 됐고 이후 저에게도 바둑을 소개시켜주셨어요. 

Q. 대학에서도 바둑학을 전공으로 선택하신 이유가 궁금해요
A. 당시, 전 세계에서 바둑학을 전공으로 할 수 있는 유일한 대학이 명지대학교였어요. 그래서 전 세계의 친구들이 바둑을 배우러 명지대학교에 왔고, 또 제가 바둑을 좋아하다 보니 어렸을 때부터 바둑학을 배워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명지대학교에서 바둑학을 전공하게 됐어요.

Q. 그렇다면 이소용의 대학생활은 어땠나요?
A. 대학생 때의 기억을 돌이켜보면 항상 수면이 부족했던 것 같아요. 2010년에 오디션을 통해 바둑TV 공채입사를 해 2011년부터 바둑캐스터 일을 시작했어요. 대학생이었기 때문에 학교 공부와 아르바이트를 하는 동시에 바둑캐스터를 위한 준비를 하다 보니 잠을 줄일 수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지금 생각해보니 ‘내가 참 열심히 살았구나’라는 생각이 드네요.

Q. 그러면 대학에서 공부와 바둑캐스터 오디션 준비를 제외한 다른 특별한 활동을 하진 않으셨나요?
A. 저에게 시간이 많이 주어지진 않았던 것 같아요. 저 같은 경우, 프로바둑기사를 준비하다가 실패한 케이스였기 때문에 학과공부를 했던 친구들을 따라잡기 위해서 공부에 더 많은 투자를 해야만 했어요. 어찌 보면 프로바둑기사에 떨어진 실패자라는 낙인이 찍혔기 때문에 당시 시점에서 더욱 성공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학과공부와 캐스터 일에 노력을 더 기울였었죠. 하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당시 친구들이 많이 했던 어학연수나 세계 일주와 같은 활동에 도전하지 못했던 게 아쉬워요.

한국기원 연구생 이소용
이소용 캐스터는 2002년부터 2007년까지 약 5년 동안 한국기원에서 바둑연구생으로 활동한 바가 있다. 한국기원은 한국바둑의 발전과 바둑의 보급을 목적으로 설립된 단체로 1년에 4차례 치러지는 선발전을 통과해야만 연구생으로 선발된다. 한국기원에서 연구생은 입단을 목적으로 체계적인 바둑 지도를 받아 입단대회 또는 추천을 통해 프로기사에 입단하게 된다. 하지만 19세까지 프로로 입단하지 못하면 연구생 지위를 박탈당하게 된다.

Q. 한국기원에서 약 5년 동안 활동하시면서 힘들었던 점은 없었나요?
A. 바둑연구생들은 자는 시간과 밥 먹는 시간을 제외하곤 바둑판 앞에 앉아 있어야 했어요. 공휴일에도 연구생들끼리 시합을 해야 했기 때문에 쉬는 날이 거의 없었죠. 특히 당시에는 여자 입단자를 1년에 1명만 선발했기에 더욱 입단하기 쉽지 않았어요. 경쟁체제이다 보니 남들보다 바둑을 더 공부하려 했고 집에 있는 동안에도 바둑 공부를 하느라 쉴 수가 없었어요. 그게 힘들었던 것 같아요.

Q. 그렇다면 그곳에서 겪은 일화 중 기억에 남는게 있나요?
A. 연구생 신분일 때 식당에서 이창호 사범님을 뵌 적이 있었어요. 워낙 존경했던 사범님이셔서 힐끗힐끗 쳐다보고 있었는데 이창호 사범님이 말씀도 없이 식당에 있는 연구생들의 밥을 다 사주신거에요! 이전부터 워낙 존경하던 분이었는데 식당에서 있었던 일 이후 존경하는 마음이 더욱 커진 것 같아요.(웃음)

바둑인 이소용

Q. 바둑의 매력이란? 
A. 일단 바둑은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라고 생각해요. 대국을 진행할수록 계속해서 생각하게 되는 습관을 갖게 돼죠. 그래서 제가 바둑의 매력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요.

Q. 나에게 바둑이란?
A. 애증의 관계인 것 같아요.(웃음) 이제는 제 인생에서 뗄 수 없는 분신과도 같은 존재가 됐죠. 특히 프로기사인 남편을 두다 보니 바둑이 더욱 가족과 같고 공기와 같아요. 바둑이 제 인생의 전부인 것 같아요.

Q. 끝으로 명지대 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A. 명지대학교 바둑학과 출신으로서의 저는 명지대학교 바둑학과에 굉장한 자부심이 있어요. 후배 여러분들도 자부심을 갖고 사회에 나가 열심히 활동을 하다보면 사회에서 인정받고 원하는 일을 모두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바둑은 흑과 백이 영토경쟁을 통해 많은 집을 지은 쪽이 이기는 승부다. 흑백이 서로 많은 집을 지으려다 보면 경계선을 둘러싼 분규가 일어나기 마련이며, 그것은 치열한 전투로 이어지게 된다. 그 치열한 전투에서 돌들이 접촉하는 과정에 있어 돌의 삶과 죽음이 발생한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수많은 격언과 교훈이 파생된다. 그래서 바둑은 흔히 인생에 비유되곤 한다. 그녀는 한국기원에서 연구생으로 활동하다가 끝내 프로기사로 입단하지 못했다. 하지만 바둑에 대한 사랑과 열정으로 현재 바둑캐스터로 활동하는 그녀를 보면 ‘완생’이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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