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탕자 <1057호>
상태바
돌아온 탕자 <1057호>
  • 김세곤 역사 칼럼니스트
  • 승인 2019.05.27 00:5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작년 4월에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다녀왔다. 에르미타시 박물관에서 레오나르도 다빈치, 루벤스의 명화를 감상했다. 렘브란트(1606∼1669) 방에선 ‘다나에’,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그리스도’, ‘이삭의 희생’ 등을 보았다. 렘브란트 말년에 그린 ‘돌아온 탕자’도 보았다. ‘돌아온 탕자’는『신약성서』루카복음 15장에 나온다. 세리들과 죄인들이 예수의 말씀을 들으려고 모였다. 이것을 본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은 “저 사람은 죄인들을 환영하고 또 그들과 함께 음식까지 먹는군”하고 투덜거렸다. 
예수께서는 세 가지 비유로서 말씀하셨다. 첫째는 다시 찾은 양 한 마리, 둘째는 다시 찾은 은전 한 닢, 셋째는 ‘돌아온 탕자’ 이다. 어떤 사람이 두 아들을 두었는데 둘째 아들이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을 재산을 미리 받아서 고향을 떠났다. 그는 방탕한 생활을 하다가 돈이 떨어졌는데 흉년까지 들어 남의 집에서 종살이 하는 신세가 되었다. 결국 그는 못 견디고 아버지에게 돌아간다. 집으로 돌아오는 아들을 멀리서 본 아버지는 달려가 아들의 목을 끌어안고 입을 맞추었다. 그러자 아들은 “아버지, 저는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 저는 감히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할 자격이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렇지만 아버지는 하인들을 불러 “내 아들이 다시 살아왔다. 잃었던 아들을 다시 찾았다”라고 말하며 성대한 잔치를 열었다. 

그러면 그림을 자세히 보자. 빛은 눈먼 아버지와 ‘돌아온 탕자’에 집중되어 있다. 소위 렘브란트 조명이다. 아들은 무릎을 꿇고 아버지의 품에 머리를 파묻고 있다. 누더기 옷을 입고 닳아진 신발 뒤축으로 물집 잡힌 시커먼 발바닥을 드러낸 아들의 모습은 오갈 데 없는 처지를 함축적으로 보여준다. 붉은 망토를 두른 늙은 눈 먼 아버지는 돌아온 아들을 감싸 안으려는 듯 앞으로 몸을 굽히고 아들의 등과 어깨에 두 손을 대고 있다. 아버지 모습에는 부정(父情)과 관용이 느껴진다. 또한 아버지와 아들의 옷 색상이 비슷하여 화합을 이룬다. 

한편, 맨 오른편에 붉은 망토를 하고 두 손에 지팡이를 집고 서 있는 사람은 큰 아들이다. 그는 동생을 환대하는 아버지가 매우 못 마땅한 표정이다. 큰 아들은 아버지에게 항의했다.

“아버지, 저는 여러 해 동안 아버지를 위해서 종이나 다름없이 일을 하며 아버지의 명령을 어긴 일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저에게는 친구들과 즐기라고 염소새끼 한 마리 주지 않으시더니, 창녀들에게 빠져서 아버지의 재산을 다 날려버린 동생이 돌아오니까 살진 송아지까지 잡아 잔치를 베풀다니요!” 큰 아들의 투덜거림에 아버지는 말했다. “얘야, 너는 늘 나와 함께 있고 내 것이 모두 네 것이 아니냐? 그런데 네 동생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왔으니 잃었던 사람을 되찾은 셈이다. 그러니 이 기쁜 날을 어떻게 즐기지 않겠느냐?” 
(루카복음 15장 31-32절) 

그런데 그림에는 세 명이 어둠 속에서 돌아온 탕자와 아버지의 재회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앉아서 가슴을 치고 있는 모자 쓴 남자, 뒤 쪽에 서있는 여자, 그리고 컴컴한 어둠속에 아주 희미하게 보이는 여인. 이들의 시선은 담담하다. 

‘돌아온 탕자’의 주제는 회개와 용서이다. 그리고 이 그림은 렘브란트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렘브란트는 1642년에 아내 사스키아가 죽은 후 방탕하게 살다가 1656년에 파산 선고를 받아 빈민가에서 처참하게 지냈다. 그의 식사는 빵과 치즈 그리고 절인 청어가 전부였다. 더구나 그는 1663년에 사랑하는 여인 헨드리케, 1668년에 외아들 티투스마저 잃었다. 1669년 10월4일, 렘브란트는 63세에 쓸쓸히 세상을 떠났다. 그의 이젤에는 ‘아기 그리스도를 안은 시몬’이 미완성인 채로 걸려 있었다. 10월8일에 렘브란트는 암스테르담 베스테르케르크 교회 묘지의 헨드리케와 티투스 옆자리에 묻혔다. 그가 죽은 후 공식발표는 없었으며 교회의 기록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10월8일 돌 호프 건너편, 로젠흐라흐트에 살던 화가 렘브란트 반 레인, 관을 나른 사람 여섯 명, 유족은 자식 두 명, 비용은 20길더" 

그랬다. 렘브란트 유족은 헨드리케가 낳은 15살 된 딸 코르넬리아와 한 살도 채 안 된 손녀 티티아 뿐이었다. 금년은 렘브란트 서거 350주기이다. 빛의 화가 렘브란트의 재조명을 다시 한 번 기대해 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