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정치에서 을들의 연대가 시작되는가? <105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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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정치에서 을들의 연대가 시작되는가? <1056호>
  • 정성철 (사회과학대학 정치외교학과) 조교수
  • 승인 2019.05.12 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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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정치만큼 갑질이 만연한 곳이 있을까? 근대국제체제가 형성된 이후 강대국이 번영과 지위를 두고 경쟁했다면 약소국은 생존과 주권을 유지하고자 경주하였다. 파잘(Tanisha Fazal)의 연구에 따르면 1816년부터 2000년까지 66개국이 지도에서 사라졌다. 약소국의 억울함을 풀어줄 재판관도 강대국의 횡포를 막아줄 경찰관도 없는 무법천지이다. 전쟁의 윤리와 주권의 평등을 외치는 소리가 곳곳에 들리지만 갑들의 질주를 멈출 수 있는 방법은 딱히 없다. 그러기에 국제정치의 주류를 차지하는 현실주의자들은 ‘권력’과 ‘생존’을 핵심 키워드로 내세운다. 

물론 국제정치에서도 친구가 존재한다. 군사동맹을 맺어 곤경에 빠진 상대국을 돕곤 한다. 하지만 영원한 친구는 없다. 공동의 적에 대항하기 위한 한시적 동반자이거나, 새로운 부를 안겨다 줄 동업자일 뿐이다. 제2차 대전에서 승리를 합작한 미국과 소련은 금세 서로에게 핵무기를 겨누었고, 패전국 독일과 일본은 재빨리 미국의 핵심 동맹국으로 거듭났다. 일단 동맹조약을 체결하더라도 약한 동맹국은 강한 동맹국이 자신을 언제든 버릴 수 있다는 불안에 빠지고, 강한 동맹국은 약한 동맹국이 시작한 분쟁에 말려들어 갈까 봐 걱정한다.

지난 역사에서 강대국의 각축과 약소국의 희생에 대한 스토리는 넘쳐난다. 따라서 영토와 자원, 군사력과 경제력을 두루 갖춘 국가가 등장하면 주변국은 우려와 경계를 늦출 수가 없다. 강대국의 부상으로 힘의 균형이 깨지거나 힘의 역전이 일어나는 상황에서 전쟁이 발발한 사례는 반복되었다. 그런데 강대국의 충돌이 예견될 때 약소국이 취할 수 있는 전략은 애매하다. 갑들의 갈등을 완화 혹은 예방하면서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능력이 없는 을들이 국제정치에서 흔히 종속변수로 표현되는 이유인 것이다.

그렇다면 정녕 비강대국은 강대국이 되기만을 꿈꿔야 하는가? 세계정치는 강대국의 역량과 의도의 함수에 불과한가? 흥미롭게도 최근 국제정치에서 을들의 연대가 주목을 받고 있다. 중국의 공세적 외교가 선명해지고 미국의 자국우선주의가 거세진 상황에서 자유주의와 시장경제를 공유하는 중견국이 손잡을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한국과 호주, 인도와 일본, 일부 동남아 국가가 바로 그들이다. 이들은 중국의 부상으로 역내 불안이 가중되고 미국의 의지와 역량이 줄어든 상황에서 이미 고민을 나누던 사이였다. 

실제로 아시아 중견국들의 최근 행보는 유사하다. 한국이 신남방 · 신북방 정책을 통해 아시아 전역의 국가들과 교류하면서 외교 영역을 넓히고자 한다면, 호주는 규칙기반질서(rulesbasedorder)를 강조하면서 오랜 라이벌인 인도네시아와도 협력을 증진하고자 한다. 인도는 신동방정책(Act East Policy)을 통해 중국과 미국 이외 주변국과 긴밀한 관계를 구축하고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며, 일본은 미국의 탈퇴에도 불구하고 포괄적 · 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의 체결을 주도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렇다면 실제로 중견국의 연대는 힘을 발휘할 것인가? 규칙을 제정하고 벌칙을 부과할 강대국이 없는 상황에서 무임승차에 대한 우려를 잠재우고 을들이 성과를 일구어 낼 것인가? 분명 역사적 앙금과 지리적 거리라는 암초를 피해 가야 하는 아시아 중견국의 공동 항해는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중국이 남중국해를 자국의 바다로 주장할수록, 미국이 글로벌 리더십에 흥미를 잃어갈수록 아시아 중견국들이 서로에게 느낄 매력은 커져갈 수밖에 없다. 다만 이들의 연대가 구호와 회합에 머물지 않고 평화와 번영을 일구어내기 위해서는 각국의 리더십과 시민사회의 긍정적 역할이 중요하다. 막연한 우려와 체념에서 벗어나 매력적 비전과 의식을 갖추어야 할 또 하나의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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