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死)의 찬미 <105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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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死)의 찬미 <1054호>
  • 김세곤 역사 칼럼니스트
  • 승인 2019.04.14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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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막한 광야에 달리는 인생아 
너의 가는 곳 그 어데이냐.
쓸쓸한 세상 험악한 고해(苦海)에 
너는 무엇을 찾으려 하느냐.


눈물로 된 이 세상에 나 죽으면 고만일까
행복 찾는 인생들아 너 찾는 것 허무


웃는 저 꽃과 우는 저 새들이 
그 운명이 모두 다 같구나.
삶에 열중한 가련한 인생아 
너는 칼 위에 춤추는 자로다.


눈물로 된 이 세상에 나 죽으면 고만일까
행복 찾는 인생들아 너 찾는 것 허무


허영에 빠져 날 뛰는 인생아
너 속였음을 너 아느냐
세상에 것은 너에게 허무니
너 죽은 후는 모두 다 없도다.
(후렴)

작년 12월 초에 SBS TV 드라마 <사의 찬미>가 방영됐다. 조선 최초의 소프라노 가수 윤심덕과 천재 극작가 김우진의 비련(悲戀)이 재조명되었다. 이종석과 신혜선의 연기는 처연했고, 소향의 ‘가슴만 알죠’ 노래는 사랑의 아픔을 더했다. 그런데 김우진과 윤심덕은 정말로 1926년 8월 4일 현해탄에서 정사(情死)했을까?「삼천리」잡지는 1931년 1월호에 두 사람의 생존설을 제기했고, 2007년 10월호「신동아」는 ‘윤심덕과 김우진, 현해탄 정사 미스터리’ 기사를 실었다. 두 사람의 비련은 지금도 미스터리이다. 먼저 1926년 8월 5일 동아일보부터 살펴보자

현해탄 격랑 중에 청년 남녀의 정사(情死)
남자는 김우진 여자는 윤심덕 지난 3일 밤 11시에 시모노세키를 떠나 부산으로 항해하던 관부연락선 덕수환이 4일 오전 4시경에 대마도 옆을 지날 즈음에 양장을 한 여자 한 명과 중년 신사 한명이 서로 껴안고 갑판에서 돌연히 바다에 몸을 던져 자살을 하였는데 즉시 배를 멈추고 부근을 수색하였으나 그 종적을 찾지 못했으며 선객명부에는 남자는 전남 목포부 북교동 김수산(金水山 30), 여자는 경성부 서대문정 1정목 173번지 윤수선(尹水仙 30)이라 하였으나 그것은 본명이 아니라 남자는 김우진이요 여자는 윤심덕 (후략). 

사건은 장안의 화제였다. 김우진은 장성군수를 한 목포갑부 김성규의 장남으로 일본 와세다 대학 영문과를 졸업한 천재 극작가, 윤심덕은 평양 출신으로 일본 유학을 다녀온 조선 최초의 소프라노 가수였으니. 

“이 소문이 알려지자 모아 앉으면 이야기는 모두 이 방면에 쏠렸다” (8월 6일 동아일보) 

7일에는 윤심덕이 일본 오사카 닛토(日東) 레코드사에서 ‘사의 찬미’를 취입했다는 기사가 났다. 곡조는 루마니아 작곡가 이바노비치가 지은 ‘도나우 강의 잔물결’이었다. 8월 10일 조선일보에는 김우진 가족의 항의 기사가 실렸다. 김우진의 가족들은 김우진과 윤심덕의 동반자살을 믿지 못했다. 유서도 없고 목격자도, 시신도 없는데 신문에서 ‘김우진과 윤심덕이 서로 껴안고 갑판에서 돌연히 바다에 몸을 던져 정사(情死) 운운’ 기사를 썼으니, 이는 아들과 딸이 있는 가족에 대한 모독이고, 가짜뉴스였다. 김우진의 가족들은 시신을 찾는데 500원의 거금을 현상금으로 걸었지만 끝내 찾지 못했다. 8월 20일경에는 ‘사의 찬미’ 음반이 발매되었다. 음반은 대박을 터트렸다. 윤심덕과 김우진의 동반 정사가 노이즈 마케팅이 되어 무려 10만 장이나 팔렸다. 이러자 닛토 레코드 회사의 음모설이 나돌았다. 윤심덕이 미국 유학길에 오른 여동생 윤성덕에게 이탈리아로 유학 갈 것이라는 말을 했고, 김우진도 독일 유학 준비 중이었다는 점도 레코드 회사가 두 사람을 도피시켰다는 음모설을 부채질했다. 1930~1931년에는 두 사람이 이탈리아에서 살고 있다는 소문도 퍼졌다. 이탈리아 어느 소도시에서 악기 판매상을 하고 있다는 루머, 이탈리아 여행 중에 두 사람을 보았다는 목격자까지 몇 명 나타났다. 김우진의 동생 김철진은 조선총독부에 생존 여부를 확인해 달라고 의뢰했다. 1931년 11월 이탈리아 주재 일본 공사관은 이는 허위라고 공식 확인했다. (「그 때 오늘」2010. 8. 3. 중앙일보 기사) 하지만 1934년 2월 27일자 조선일보에는 “윤심덕씨는 생존, 옥동자를 낳았다”라는 이야기가 실릴 정도로 두 사람의 사랑은 전설이 되었다. (「조선일보로 본 한국풍속 85년」, 2005. 3. 3. 조선일보) 

윤심덕이 1926년에 부른 ‘사의 찬미’는 93년이 지난 지금에도 리메이크 되어 대중의 사랑을 받고 있다. 바다, 나윤선이 불렀고, 복면가왕에서 임형주, 영화 <해어화>에서 배우 천우희도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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