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연희동 100미터 <105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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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있는 연희동 100미터 <1054호>
  • 박대권 (사회과학대학 청소년지도학과) 교수
  • 승인 2019.04.14 14: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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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 오면 즐겁다. 먼저 학생들이 있어서 즐겁다. 내 수업을 듣는 학생들, 우리 과 학생들과의 교감 때문에 많이 웃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교실과 복도에서, 도서관에서 오며 가며 스치는 청춘들 때문에 더불어 신이 난다. 대부분 선배인 교수님들 덕분에도 즐겁다. 학생들은 썰렁해 하는 아재 개그를 뭐라 하지 않고 후배의 애교로 웃어주시기 때문이다. 연구실에 혼자 있으면 외로울까 봐 커피도 내려주시고 밥도 사주시는 교수님들 덕에 학교에서의 삶이 윤택해진다. 

요즘은 학교에 오면 더 즐거워졌다. 17,500평 캠퍼스 안에서뿐만 아니라 가까운 이웃으로 밥 먹으러 가는 재미가 쏠쏠하기 때문이다. 학교 앞 정류장에서 7612, 7734 버스를 타고 10여 분만 가면 다다르는 연희동 골목 100m 때문이다. 정확하게는 연희동 11길이다. 노래 두 곡을 들으면 도착한다. 학교에서 연희 삼거리에 다다르는 증가로와 만나는 연희 맛 길은 오래되고 제법 알려진 맛집들이 많다. 연희동 11길은 연희맛로와 사러가 쇼핑에서 교차하는 좁은 골목길이다. 신사동의 가로숫길과 세로수길과 비슷한 꼴이다. 

이 길의 터줏대감은 중국집 이품(二品)이다. 주머니가 가벼우면 군만두를, 마음먹고 카드를 긁으려면 전가복을 먹으면 된다. 물론 탕수육도 빼놓을 수 없다. 절대로 서비스로 군만두를 제공하지 않는 이유를 먹어보면 안다. 이 집 만두는 사모님 댁 전통인데 만두의 비법을 주방을 책임지시는 사장님이 재현하고 계신다. 10년 넘는 단골에 대한 의리는 이 집의 맛을 더욱 풍성하게 한다. 

젓가락질 대신 포크를 쓰고 싶으면 옆에 있는 마우디(Maudie)에 가면 된다. 같이 갔던 교수님들이 꼭 다시 찾아가신 집이다. 이태리 가정식 요리를 추구하는 오너 셰프는 미국에서 화학과 영양학을 전공하였다. 훈남 셰프의 스펙과 외모는 세상이 불공평하다고 투덜거리게 할 것도 같지만, 음식을 맛보면 그저 웃게 된다. 이태리 파스타는 프랑스 파스타와 달리 크림을 쓰지 않는다. 까르보나라 위의 달걀 노른자는 파스타 둥지 위에 크림이 전혀 없어도 이태리 파스타가 더 맛있다는 걸 외치는 것 같다. 쫄깃한 면발이 톡톡 끊어지는 까르보나라 스파게티는 이탈리아 음식이 우리 입맛에 오랫동안 친숙했을 거라는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아침이나 점심에는 얼마 전 연희동 100m 이웃이 된 에브리띵베이글(Everything Bagel)에 간다. 한국말보다 영어가 자연스러운 사장님들은 뉴욕에서 배워왔다는 베이글이 맛없으면 이상할 거라는 믿음을 준다. 두 개밖에 없는 테이블 중 하나에 운 좋게 앉게 된 날, 커피와 함께 먹으면 10여 년 전에 마친 뉴욕 유학 시절로 나의 오감을 이끈다. 가게 가득한 베이글과 뉴욕 지도들, 노래와 음식 만드는 소리, 커피와 어우러지는 향기, 입에 가득한 맛, 말랑말랑한 베이글 느낌 모두 말이다. ‘그때가 좋았지’가 아니라 ‘지금이 더 좋다!’라는 생각이 가득해져서 가게를 나온다.

점심이건 저녁이건 마무리는 아이스크림이다. 내 살들의 반을 차지하는 아이스크림이지만 콜드 레시피(Cold Recipe)의 아이스크림은 밥으로 끝나지 않은 내 식사의 절반을 흐뭇하게 채워준다. 바닥에 떨어진 아이스크림 장식이 왜 있나 싶다. 먹다 보면 안다. 아까운 아이스크림 한 조각이라도 안 흘리려는 내 마음의 상징임을. 같이 간 사람들은 ‘달지 않은 아이스크림이 너무 맛있다’고 똑같이 말한다. 내가 녹음기처럼 “달지 않은 아이스크림은 없다. 덜 달 뿐이다”라고 까칠하게 한 마디 쏘아붙여야 작은 컵에 담긴 아이스크림에 빼앗긴 정신이 제자리로 돌아온다. 얼그레이 티보다 아이스크림이 더 맛있을 수 있다는 걸 알려준 가게이다.

학교에서 조금 더 떨어진 연남동이 뜨면서 연희동도 이렇게 되었다고들 한다. 그런 김에 버스를 타지 않아도 남가좌동과 거북골로 근처에서 이런 즐거움을 느끼게 되는 날이 속히 오기를 바란다. 물론 비슷한 즐거움을 주는 집이 두 집이 있다. 그 두 집이 어디인지 찾는 건 중간고사를 앞둔 명지인들에게 던지는 퀴즈이다. 그 집을 찾아서 한 끼를 먹으면 같은 돈을 내고 먹는 밥이 이렇게 다를 수 있다는 행복감에 젖어 학교 다니는 게 좋다는 생각을 한번 더 할 것이다. 자연캠에서 오는 학생들도 직접 와보면 교통비가 전혀 아깝지 않다는 생각과 더불어 명대신문 읽기를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기를 바라며 또 웃어본다.

 

박대권 (사회과학대학 청소년지도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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